몇 일전 텔레비전에서 경기도 안산에 사는 모 섬유업체를 운영하는 사장 가족 5명이 칼에 찔려 숨진 체 발견된 모습이 9시 뉴스 시간에 방영되었습니다.
그때 화면 중에 식탁 위에 "엄마 나 7시에 깨워 주세요" 라는 초등학교 1-2학년의 아이가 엄마에게 쓴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카메라 앵글이 그 아이의 메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무슨 일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나 아침 7시 깨워주세요" 라는 쪽지를 써서 식탁 위에 올려놨지만
그러나 그 아이는 그날 밤에 아버지의 칼에 찔려 아침 7시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나라고 가고 말았습니다.
온 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연은 아버지 우씨가 사업에 실패하자 가족을 먼저 찌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세상을 처음 살아 보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행 착오와 실수와 실패를 겪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당했을 때에 그 실패로 인하여 낙심하고 좌절하여 영원한 패배자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실패를 오히려 삶에 거울로 삼고 다시 한번 재도전함으로 성공에 기틀로 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합니다 자신의 혼자 힘으로는 험한 세상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했을 때에 삶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
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영혼이 위로를 받고 실패와 좌절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요삼 1장 2절에 말씀에 의하면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베드로도 밤새워 고기를 잡으려고 해봤으나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만나고 주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실패를 성공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훼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먼 바다에 나가 84일간의 몸부림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거대한 물고기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도중,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들의 끈질긴 공격을 받으며 이들과 싸움을 하면서 마침내 항구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거대한 물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훼밍웨이는 여기서, 인간의 처절한 생의 투쟁과 인생의 허무를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노인과 바다의 주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중
5절에 있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나이다"하는 베드로의 처지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나가서 이번에는 행여나 하면서 성공을 위하여 열심히 해 보았지만 이룬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베드로처럼 빈 그물을 씻어야 하는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절망의 때에, 낙심의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가장 깊이 고민할 때가 주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입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이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장 괴로운 곳이 주님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냐?"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보아라."
"아니, 깊은 데로요... 내가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 대화 속에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라는 베드로의 순종하는 신앙이 그로 하여금 축복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래 직업적인 어부였습니다.
그는 고기를 잡은 경험도 많고 뜬눈으로 한 밤을 지새우면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렸더니 엄청난 수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 의지하여"
이 베드로의 말을 우리의 가슴 판에 새겨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에 의지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두 배에 가득 차는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시해 주시는 삶의 방향을 깨닫기 바랍니다.
미국 워싱턴에 가면 아브라함 링컨이 다녔던 교회가 있는데,
그 곳에는 링컨 대통령이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성경책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성경은 그의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겨준 것입니다.
"너는 세상 살면서 꼭 이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어머니가 주신 성경을 항상 갖고 다녔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숫한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친구들은 혹시 그가 자살할까 염려가 되어 가방이나 주머니에 칼이 있나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 안에는 늘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는 실패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사업에서도 실패하고, 사랑했던 애인도 죽었습니다.
국회 상원의원선거에서도 여러 차례 낙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고 견뎌서 결국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용하던 성경을 살펴보니 시편 37편에 가장 손때가 많이 묻고 닳아 있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1∼4)
링컨이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마지막에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바로 시편 37편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주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낙심하고 고난을 겪을 때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실패했을 때에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공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에 좌절과 고난과 어려움과 실패가 있었습니까?
바로 그 때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낙심하고 힘들어 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만남을 연구한 마틴 부버라는 사람은 인생에는 세 종류의 만남이 있는데
하나는 나와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너와의 만남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와의 만남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항상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처지가 다릅니다.
서울 사람이 지방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서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동양 사람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가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마귀의 자녀를 놓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한 존재요, 귀중한 존재로서 인생을 아름답게 살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런 나와의 만남을 가능케 해주는 분은
바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당신인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공한 성경 속의 인물들이 많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태어나면서 눈먼 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낙심 가운데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와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슬픔이 바뀌어서 큰 기쁨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잘 만나고 친구를 잘 만나고 배우자를 잘 만나면
행복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사람들을 잘 만남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사람보다 더 귀한 분을 만나야 한다
그 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만물을 다스리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마28:20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무슨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까?
베드로가 축복을 받을 때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1)먼저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잠시 세상의 근심 걱정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베드로가 선상에서 예수님의 기르침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전에서 가르침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 예수님이 개별적으로 베드로를 찾으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개별적으로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 후에 서둘러 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와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갔습니다.
깊은 곳은 위험하고 깊은 곳까지 가려면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은 보화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얼마 전 군산 앞바다 깊은 곳에서 어부들이 고려 청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청자를 발견한 어부들에게 보물 금액에 50%를 보상받게 됨으로서 어부들이 횡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깊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때로 산속 깊은 곳으로 가서 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더 깊이 기도하고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며 읽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헌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이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인간적인 얕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내 생각에는"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세상적인 얕은 생각에서 영적으로 깊은 생각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다면 깊은 곳이라도 찾아가서 그물을 던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얕은 물가에서 편하게 먹고 마시는 삶이 아니라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국의 핸드리 페이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펴보니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대고 있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쥐가 갉은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가 추락하게 될 것이고, 큰일 났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빨리 얕게 내려야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높은 곳으로‘올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엔진을 놓고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습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전선을 갉고 있던 쥐가 산소가 부족하니까 질식하여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더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만사를 그저 얕은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험하더라도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오지를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록펠러는 오늘 말씀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해서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말씀에 의지하여 실천했더니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그런데 8절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축복을 받은 베드로가 갑자기 주님 앞에 털썩 주저앉아 엎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베드로는 놀라운 기적 앞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얻은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그리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것은 베드로의 무슨 숨겨졌던 죄가 드러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 고백은, 마치 태양 앞에 드러난 촛불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알았을 때의 경외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기 전에는 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안 순간, 자신의 참 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경외감 앞에 털썩 주저앉아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는 주님을 만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안다고 하지만 실은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나의 실상은 부끄럽고 추한 것뿐입니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올 때에 주님의 긍휼을 입어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사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티토리우스라는 고명한 수도사에게, 독뱀에 물려 죽어가는 아이를 그의 부모가 데리고 와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수도사님은 거룩하시고 깊은 기도를 하시니 고쳐 주시옵소서."
너무나 간절히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티토리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아이를 구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50년간 수도를 했고 모두가 나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정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여자를 보면 음욕이 생기고 좋은 것을 보면 탐욕이 생기며, 밤이 되면 불안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가짜입니다."
이 말이 그 수도자의 입에서 떨어지자, 그 아이의 코에서 가르다란 숨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저도 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제껏 장사해서 번 돈의 절반은 속여서 벌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이제 아이의 입에서 숨이 새어나오더랍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저는 남이 잘된 것을 보면 배가 아팠고, 기껏 낙이란 것이 남편이 돈을 벌어다주면 돈 세는 것과 잠자는 것을 낙으로 살았습니다."
이 말이 아이의 어머니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에 구원의 은총이 온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말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으로 고백되어질 때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11절 하반 절에 보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합니다.
축복이 사명이 되는 모습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받은 축복을 사명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복을 왜 주십니까?
너나 잘먹고 잘 살라고 복을 주시는 것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돈이 많으면 죄를 짓습니다.
건강하기에 술 마시고 춤추고 간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건강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병든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돈 가지고 자랑하고 세상 낙을 누리고 교만하면 하나님은 결국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맡은 사명을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몇일전 신문에 보니까
삼영화학에 회장이라는 분이 사재 3000억원을 장학금으로 내 놓았습니다.
그는 노랭이처럼 구두쇠처럼 벌었지만 천사처럼 쓰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역으로 그가 천사처럼 쓰고 싶었기에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준 것입니다.
이것이 복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도 주시고 축복의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지식이나 경험에 맞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샘 슈메이커 목사님은 말하기를
10%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10%의 행복을 누릴 것이요, 50%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50%의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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