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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사귐
    2002-04-15 16:53:45   read : 277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5:9-13 // 2002. 3. 10

    세상에는 두 가지 누룩이 있습니다. 음행으로, 술 취함으로, 마약으로, 도박으로, 나쁜 춤으로 세상을 썩게 하고 사람을 멸망시키는 누룩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거룩하게 복되게 명예롭게 하고 영원히 살게 하는 거룩한 누룩이 있습니다.
    사람을 망하게 하는 누룩은 세상, 사탄이 주는 것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누룩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 예수님께서 갖고 오신 것으로 천국 복음의 누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거룩을 유지하며 세상의 음행이나 마약이나 술 취함이나 방탕함이나 도박과 같은 나쁜 누룩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오히려 전쟁해서 세상을 복음의 거룩한 누룩으로 정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빛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의식을 갖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오늘 낮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혹 교회 안에 음행하는 자, 세상의 누룩을 갖고 온 자가 있으면 추방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교회 안의 음행하는 자, 술 취한 자, 탐람하는 자, 후욕하는 자, 남을 비방하는 자, 사기치는 자, 이런 자들은 쫓아내어서 교회의 거룩을 지켜야 되고 상종하지도 말아야 되지만, 교회 밖의 세상에서 음행하는 자들, 탐람하는 자들, 후욕하는 자들, 사기치는 자들, 이런 자들까지 만나지 말고 사귀지 말고 상종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왜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교회는 외로운 무인도로 옮겨가든지 세상 밖으로 나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는 어디에나 그런 사람이 다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과 상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밖으로 나가든지 죽어야 이 세상의 음행하는 사람이나 사기치는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들을 만나지 않지, 이 세상에 살면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우상 숭배자라고 그냥 내리겠습니까? 미국에 가려고 하는데 비행기 조종사가 우상 숭배자라고 비행기를 타지 않겠습니까?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갔는데 식당 주인이 술 취하는 자라고 밥을 사먹지 않겠습니까? 호텔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음행하는 사람이라고 그냥 나오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슬기로운 사귐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사귐과 교회 밖의 사귐을 잘 구별해서 슬기롭게 사귀어야 합니다.
    먼저 교회 안의 사귐은 조심해서 사귀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도 앉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술 취하거나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후욕하거나 우상 숭배하거나 사기치는 자, 그런 자는 만나지도 말고, 음식도 같이 먹지 말고 내어쫓으라.”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되지만, 교회 안의 성도들이 잘못할 때는 교회에서 판단해서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교회 안에 술 취하는 사람, 방탕한 사람, 음행하는 사람, 사기치는 사람, 후욕하는 사람,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지고 복음이 약해지고 교회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 합시다.
    “교회의 능력은 거룩함이다.”
    거룩한 만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만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더러우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경건하고 거룩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들도 장로님들도 다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거룩하지 않으면 내어쫓으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교회를 해치는 일을 하면 저는 여러분에게 인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를 해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것입니다. 장로님이라도 교회를 욕되게 하면 저는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가셔도 가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교회를 욕되게 하는 사람은 상종하지 말고 내어쫓으라는 것이 성경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교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왕따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거룩함을, 빛 됨을 잘 지켜야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빛은 아무리 더러운 곳을 통과해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빛은 아무리 지저분한 곳을 지나가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장을 가든지 이발소를 가든지 혹은 어떤 일이 있어서 술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 있어도, 여관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 있어도 그 어디를 가도 오염되지 않고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누룩으로 퍼지게 될 줄 믿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는 마태복음 13장 33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누룩으로서 이 세상을 다 부풀게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교회 밖의 사귐, 교회 밖의 사회 생활에 대해 말씀합니다.
    교회 밖의 사회 생활은 음행한 자이든, 술 취한 자이든, 방탕하는 자이든, 후욕하는 자이든, 탐람하는 자이든, 누구든지 대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의 사귐도 잘 하고, 교회 밖의 사귐도 잘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사귐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사귐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거할 수 있는 환경 중에 최고 환경이 바로 에덴 동산, 낙원, 파라다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장 좋도록 모든 것을 갖추어 주신 곳이 에덴 동산이지만 거기에 아담이 혼자 있을 때 그는 만족할 수 없었고 웃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구나.’하시며 예쁜 여자를 만들어 주셔서 사귀게 하셨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아담이 행복해 했습니다.
    사람은 왕따를 당하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왕따를 당하여 그 고독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일생에 고독한 때가 없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노인들을 편하게 모신다고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거기에 사시게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노인들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도시 한복판 시끌벅적한 곳에 노인들을 사시게 해 드려야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외로운 삶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4시간마다 항상 종을 칩니다. 그래서 새벽 1시나 2시에도 종소리가 들립니다.
    산장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종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랍니다. 산장에서 외롭게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종소리라도 들려 주어서 그 적막감을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에 사람들이 미치게 된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사니 미칠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귐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사귐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 가족과 함께, 내 교우와 함께, 직장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또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만나기도 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길가다 자동차를 만나는 것도 반갑고 좋은 일인 것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아내와 함께 LA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운전해 간 적이 있습니다. 밤이었는데 2시간을 달려도 자동차 한 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으스스 했습니다. 그러다 달려오는 자동차 한 대를 보게 되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사귐이었습니다.

    사귐을 지혜롭게 슬기롭게 잘 하면 복이 되고 앞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귐을 잘못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귐을 잘못해서 제일 먼저 망한 사람이 이브입니다. 이브는 사귀어서 안 될 뱀과 사귀었다가, 뱀과 대화하다가 선악과를 따먹고 망했습니다.
    또 잘못된 사귐 때문에 망한 사람이 다윗의 아들 암논 왕자입니다. 그는 요나답이라는 심히 간교한 자를 사귀었다가 망했습니다. 암논이 공주 다말을 사랑하다가 병이 생겼을 때, 요나답이 말했습니다.
    “왕자여, 왜 그렇게 병앓이만 하고 계세요? 아픈 체하고 있다가 임금님께서 오시거든 ‘다말을 보내어 제게 음식을 만들어 주게 해 주세요.’라고 하신 후 다말이 오거든 끌여들여 취하세요.”
    암논이 악한 요나답을 말을 듣고 그대로 연극을 했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에게 말했습니다.
    “누이동생 다말이 와서 제게 과자를 좀 구워주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말은 암논의 이복누이, 배다른 누이동생입니다. 아버지 다윗 왕의 말을 듣고 온 다말이 과자를 구워내니, 암논은 사람들을 다 보내고 다말에게 말했습니다.
    “누이야, 침실로 들어오너라.”
    오빠가 들어오라 해도 침실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서울의 모 여자 대학에서는 “아버지도 술 취했으면 믿지 말아라.”라고 한답니다. 술에 취하면 아버지라도 짐승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통행금지가 있을 때, 술을 마시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넘긴 한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집으로 가려면 파출소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통행금지 시간이 넘었으니 그 앞으로 지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을 수도 없으니 큰일났습니다.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은 개처럼 기기 시작했습니다.
    파출소에 있던 경찰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기어가는 것을 보면 개가 분명한데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개가 아니라 사람 같아서 물어보았습니다.
    “거 누구요?”
    그러자 “술 마신 개요.”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술에 취하면 점잖은 사람도 이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논은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다말을 침실에 끌어들여 강간을 했습니다.
    “오라버니, 이러면 안 돼요. 이것은 괴악한 일이에요. 아바마마께 말씀을 드리면 저를 아내로 줄 것이에요.”
    그래도 암논은 상관하지 않고 다말을 취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다말을 그 방에서 쫓아내버렸습니다.
    암논은 자기가 그런 일을 행해도 무사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2년 후 그 일로 다말의 오빠 압살롬의 칼에 목이 잘립니다. 결국 그는 요나답이라는 친구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잘못된 사귐 때문에 망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는 바로 르호보암 왕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많은 백성들이 찾아와 세금을 줄여 달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이 처음에는 맑은 지혜로 정치를 잘 했는데, 나중에는 여자들 틈에서 변하여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고 무거운 멍에를 씌우는 좋지 않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이 몰려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왕의 부친께서 너무 무겁게 한 우리 멍에를 좀 가볍게 해 주세요.”
    그때 로호보암은 백성들에게 3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인 신복들에게 물었습니다.
    “백성들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왕이여, 백성들에게 선한 말을 하소서. 그러면 백성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어 왕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친구들, 악한 친구들에게도 또 물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이여, 백성들이 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소서. ‘내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은즉 나는 내 부친보다 너희 멍에를 더 무겁게 하리라. 내 부친은 너희를 채찍으로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로 다스리리라.’ 그래서 백성들이 겁을 내게 하소서.”
    르호보암은 악한 친구들의 말을 듣고 3일 후에 찾아온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부친이 무겁게 한 멍에를 나는 더 무겁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지만 나는 전갈로 다스리리라.”
    그러면 백성들이 겁을 먹고 덜덜 떨 줄 알았는데 웬걸 “자, 우리는 이제 돌아가자. 이새의 아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르호보암은 너희 집이나 지켜라. 다윗의 집이나 지켜라.”하며 새 왕을 모시고 르호보암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거의 모든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친구를 잘못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좋은 친구 요나단을 사귀어서 죽을 자리에서 살고 일생 그 길이 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사귐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낮에는 교회 안의 사귐, 교회 안의 생활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저녁 말씀의 포인트는 교회 밖의 사귐입니다.
    이 세상에는 술 취한 사람, 방탕한 사람, 음란한 사람,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될까요?
    따라 합시다.
    “마음에 선을 긋고, 선을 두고 만나자.”
    북한의 대표와 우리 남한의 대표가 만나면 선이 있습니다. 선이 있지만 서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족상잔의 피를 흘리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의 대화가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대화를 막으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북한이 칼을 가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면 막 갈던 칼을 천천히 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나라 햇볕 정책으로 전쟁 무드가 많이 누그러진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대화를 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하면 평화의 무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리 나라, 피 흘림이 없는 우리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삼천리 금수강산이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어서 그렇게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우리는 민주 진영이고 북한은 공산 진영입니다. 그러니 선을 그어놓고 우리 나라 대표도 북한 대표도 서로 조심합니다. 만일 북한 대표가 조심해서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면 무서운 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서로 선을 그어놓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교회 밖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악한 누룩에 부푼 사람들이고 사탄에게 쓰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선을 긋고 조심해서 사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한의 대표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조심하고 북한의 대표는 북한의 이익을 위해 조심하며 대화하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만날 때도 늘 선을 긋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을 만날 때도 조심합니다. 우리 장로님들과 식사할 때도 회의할 때도 조심합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조심해도 실수가 많은데 조심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겠습니까?
    제가 여러분들을 만날 때도 조심하는데 하물며 불신자들을 만날 때이겠습니까?
    불신자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 우리도 손해보지 않고 상대방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지역에 어려움을 당한 한 지도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저는 그분이 불쌍하게 생각되어서 우리 교회의 어떤 분에게 그분을 도와 주자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의롭지 못한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양곡교회가 그분의 기둥이 되어 그분을 도와 주고 격려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잘못가도 우리는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구원받도록 도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가서 ‘어떻게 하면 이 물건을 싸게 살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 때문에 이 가게가 득을 보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식당에 가서 라면을 사 먹고 나올 때도 ‘김치에 계란까지 얹어 주고, 이렇게 해서 남는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제가 1000원을 더 드리기도 하는데, 가게 주인들이 잘 받지를 않습니다. 과일을 살 때도 흠진 것, 상처 난 것, 작은 것 등 아무것이나 삽니다. 좋은 것을 고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어떻게 해야 이 가게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야 되고, 물건을 팔 때도 ‘내가 어떻게 손님을 도울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올 때도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식당이 좋아질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위하는 마음,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도 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서 굶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나라 목사님 중에서 저만큼 잘 사는 목사님도 드물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하여 살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습니다.
    트럭을 타고 달리던 한 분이 미국 뉴저지의 고속도로에서 리무진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인데, 자동차는 서 있고 운전 기사는 차를 이리 저리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트럭에서 내려 리무진 운전 기사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차가 고장 났나요?”
    “타이어에 빵꾸가 났습니다.”
    여러분, 빵꾸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표준어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성경학교에서 이런 노래를 배웠습니다.
    「내 양말 빵꾸났네 빵꾸난 내 양말
    빵꾸가 안 난 것은 내 양말 아니지
    내 모자 빵꾸났네 빵꾸난 내 모자
    빵꾸가 안 난 것은 내 모자 아니지」
    그때 저는 이 노래가 찬송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에 인절미가 시집간다면 팥고물과 콩고물에 화장을 하고
    하얀 쟁반 위에 올라앉아서 시집을 간다네 입 속으로」하는 노래도 찬송인 줄 알았다고 언젠가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왜 그런 노래를 가르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리무진 타이어에 빵꾸가 났는데, 스페어 타이어마저 바람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트럭 운전 기사에게 펌프가 있어서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타이어 교환하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때 리무진의 창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 순간, 트럭 운전 기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적인 재벌, 뉴욕의 억만장자 도날드 트럼프의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고맙소. 날씨도 춥고 비도 오는데 이렇게 도와 주어서. 이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러자 트럭 운전 기사가 말했습니다.
    “예, 내일이 발렌타인 데이인데 제 아내를 위해서 장미꽃 열 두 송이만 부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트럼프 씨가 보낸 장미꽃이라면 제 아내가 감격할 것입니다.”
    “알겠소.”
    트럼프는 트럭 운전 기사의 주소를 적어 가지고 갔습니다.
    다음 날 트럭 운전 기사의 집에 어떤 사람이 상자를 갖고 찾아왔습니다. 상자를 여니 장미꽃 스물 네 송이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에 행복을 빕니다.
    당신 남편의 친구 도날드 트럼프로부터
    추신: 당신 집안의 빚을 다 갚았소.’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대개 약간의 돈만 지불하고 나머지 큰돈은 10년이나 20년 동안 갚아 나갑니다. 트럭을 운전하던 분도 집을 사느라 은행에 많은 빚이 있었는데 그 빚을 트럼프씨가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에 바람 한 번 넣어 주고 집 한 채를 번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남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에서 모든 것을 계산하십니다. 착한 마음을 갖고 살면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께 채움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이 집을 도와 주면 어떤 득이 생길까?’하는 것은 장사꾼의 마음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면 그것이 내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감동을 받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인상을 쓰지 말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보통은 웃습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웃지 않으면 그 날은 집사람과 다툰 날로 아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싸워도 크게 싸우지는 않습니다. 제가 싸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대판소판했지만 지금은 집사람이 싸움을 걸어오면 조금 기분 좋지 않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가 아니라 그런지, 너무 솔직해서 그런지 집사람과 조금 기분 나쁜 대화만 나누어도 얼굴에 그 표가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설교를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웃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기쁨으로 대해야 합니다.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웃음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연습이라도 해서 웃어야 하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대령 때까지는 인상이 험해서 사람들이 곁에 잘 가지도 않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생님으로부터 미소 연습을 하라는 말을 듣고 그 때부터 매일 거울 앞에서 10분씩 웃는 연습을 했답니다. 몇 년간 연습을 하니 웃는 얼굴이 되어서 매력 있는 장군이 된 것이랍니다.
    세계적인 할인 마켓인 월마트 직원들은 윗옷의 포켓에 1달러짜리 깨끗한 지폐를 꽂고 다닌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만일 내가 미소를 잃었거든 뽑아가세요.’라는 글을 써 붙여 놓는답니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1달러를 꽂고 다니다가 웃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뽑아가니 그 1달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모두 웃으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1달러를 ‘스마일 달러’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마켓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웃는 집에 가지 않겠습니까?
    대구에 있는 안압정이라는 식당에 가보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직원들이 늘 싱글벙글합니다. 그러니 손님들이 그 식당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소로 대하는 것이 성도인 우리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전도도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무엇이 저렇게 좋을까? 아, 예수 때문인가?’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에서는 웃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고,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는 인상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내 가족에게도 웃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서로 웃어야 됩니다.
    웃음으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 밖의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가장 좋은 마음의 다짐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전도해야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도 전도하고 우리의 행동으로도 전도해야 합니다. 빛을 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서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 삶이 예수님의 옷이 되어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이 나타나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되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에서 수요일 밤 예배를 드릴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이 습관대로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은 일어나세요.”라고 했습니다. 일어선 새 교우들을 박수로 환영한 후 목사님이 “앉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계속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가 안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 누가 서 있어 보십시오. 교인들의 시선이 서 있는 사람에게 자꾸 갈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제가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목사님도 설교가 안 되어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청년, 할 말이 있습니까?”
    “예, 할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지난 주에 비로소 구원받았습니다. 제가 달라스에 18년간 살았는데 18년간 제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지난 주일에 구원받았습니다. 제가 18년간 달라스에 살았는데 아무도 제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제 18년의 세월이 억울합니다.”
    그리고 청년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달라스에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천 개가 넘습니다. 그런데 18년간 그 청년에게 복음을 전한 교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 이야기입니다.
    우리 이웃에 많은 사람이 수년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복음을 한 번도 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세월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삶이 아닙니다.
    택시를 타도 기사분에게 전도하고, 식당에 가서도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전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늘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동네에서 수년을 함께 살면서도 전도하지 않으면 내가 그분의 세월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만남을 통해 상대방이 도움을 받고, 우리의 미소로 상대방이 행복을 얻고, 우리의 복음 전도로 상대방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귐이 또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나 자신과 잘 사귀자.”
    여러분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경건하지 못하면 제가 밉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실수하고 나면 저 자신이 얼마나 미운지 모릅니다. 제가 저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거룩하게, 경건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면 제가 참 좋습니다.
    자신과 사귐도 귀한 사귐입니다.
    내 몸이 귀하고 내 입이 귀하고 내 이름이 귀해야지, 내 이름이 싫고 내가 하는 행동이 싫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귀히 여겨야 됩니다.
    1908년, 독일 베를린에 사는 21세 된 한 청년 피아니스트가 배고픔과 외로움과 서러움에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약도 없고 권총도 없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 하는데, 갑자기 ‘혹 다리만 부러지고 죽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혁대를 뽑아 목욕탕 고리에 걸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매단 후 의자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런데 혁대가 너무 낡아서 끊어지는 바람에 그는 죽지 않고 바닥에 처박혔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갑자기 감사했습니다.
    “아! 나는 살았다.”
    밖으로 나가 보니 모든 것이 희망차 보였습니다.
    ‘그래, 살아보자.’
    그가 누구입니까? 1945년에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가 된 루빈스타인입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80세가 넘어서도 연주를 한 루빈스타인은 쇼팽 음악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자신을 미워할 때는 자살을 했지만, 자신을 사랑하니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자신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배도 사랑하고 내 다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내 몸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귐 중에 최고로 귀한 사귐은 우리 주님과의 사귐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는 혹 무인도에 있어도, 감옥에 가도 주님과의 사귐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친구는 친구를 도와 줍니다. 제 친구는 저를 도와 줍니다. 저도 제 친구를 도와 줍니다. 형편이 어려운 제 친구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가방도 사 주고 옷도 사 주라며 조심스럽게 오십만 원을 보냈습니다. 제 친구니까 도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친구로 살면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주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주님과의 사귐이 최고의 사귐입니다.
    교회 안의 사귐, 교회 밖의 사귐, 자신과의 사귐, 주님과의 사귐을 슬기롭게 잘 하셔서 사귐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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