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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나님나라 신학과 종교개혁 정신으로 교회를 회복할 수 있을까?
    2013-12-12 21:45:50   read : 4023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하나님나라와 교회, 그 간극을 넘어
    김형국 (edit)

    이 글은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가 기고한 것입니다. 먼저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에서 발표했고 두란노서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목회와 신학> 2월 호에 실렸습니다. - 편집자 주

    들어가며 : 하나님나라 없는 한국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교회 문제가 무엇인가 논의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일정량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필자는 지난 글에서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분리에 있다고 하였다.

    (바로 보기 :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이혼을 넘어(1) /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이혼을 넘어(2)) 대부분의 세계 보수적인 기독교가 그렇듯이, 한국교회도 복음을 하나님나라 사상 없이도 충분히 전달하고 살아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결국 이러한 반쪽짜리, 또는 신학적 척추가 없는 복음은 불완전하며 장애를 가진 교회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학적 반성(theological reflection)이 없는 상태에서의 교회 개혁은 결국 제도적, 인간 중심적, 외형적 개혁밖에 이루어 낼 수 없다.

    한국교회가 개혁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명제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사역자들이 동의하지만, 그 방향성과 방법론에 대해서 일치된 생각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에 있어 일치된 견해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도는 환영받아 마땅하고 또한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놓친 상태에서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것은 미봉책에 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개신교 교회가, 어떻게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속적으로 교회를 개혁하여 종교개혁을 완성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 글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한국교회 개혁에 어떤 면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우리 하나님나라 복음의 사역자들이 어떤 면에서 교회가 더욱 성숙해 나갈 수 있도록 섬겨야 할지 몇 가지 함께 고민하고 이에 대안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다.

    1. 복음과 하나님나라

    가) 이신칭의
    먼저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믿음의 축은 복음에 있는데, 이 복음이 매우 가볍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를 약화시키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매우 단순하나 심오한 성경의 가르침은, 믿기만 하면 어떻게 살든 다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값싼 은혜'의 기독교와 그 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종교개혁 당시, 면죄부 등 행위를 강조하던 구교에 대한 대항으로서 종교 개혁가들이 주장한 '이신칭의' 강조가 극단으로 잘못 간 경우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구원의 도리인 이신칭의는 한 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 강조를 두는 교리가 아니다. 자격 없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여 있는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 주신다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이 하나님나라라는 사상 아래서 가르쳐지지 않기 때문에, 이신칭의가 '천당 입장권'을 받는 것으로 격하되어 이해된다.

    하나님나라의 맥락에서 이신칭의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녀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의지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될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이신칭의를 참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곧 하나님의 왕 되심을 삶 속에서 드러내는 삶을 살아 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그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을 주시는 이신칭의를 이해할 때, 그들은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이 시대(this age)에 굴복하지 않고, 드러내는 삶을 살려고 수고하게 된다.

    이것이 곧 야고보서에서 이야기하는 행위이며, 신약성경 곳곳에서 나타나는 선한 일(good works)이다.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이신칭의의 개념에 대한 얄팍한 이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삶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그리고 세속 사회 속에서 드러내며 살게 된다.

    나) 복음 선포의 참 의미
    교회가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래서 회심자의 숫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복음 전도가 가져온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이다. 지금까지 복음 전도는 교인 숫자를 확대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을 꾀하고, 기껏해야 영혼을 구원하여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도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독교 외에도 택할 수 있는 정신적·종교적 대안들이 다양해진 현대 문화 속에서 죽은 후에 천당을 간다는 복음 전도는 전도자들의 열정과 자신감과 설득력을 잃게 한다.

    그러나 복음 전도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미 임했다는 선포이다. 예수께서 메시아로 이 깨어진 세상을 방문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 인류에게 선명하게 전달해 주었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메시아의 나라, 곧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셨고, 이 하나님나라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초청하고 계시다는 선포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는 영혼을 얻는(winning souls) 사역을 넘어서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 1;15)"라는 선언이다. 이러한 선언은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인격적 결정을 위해서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이해한 전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그리고 꾸짖기까지 해야 한다(골 1:27).

    오늘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를 선명하게 갖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전도로 인한 부작용, 다원주의로 흐르고 인한 문화적 맥락, 그리고 건전한 조직으로 만족하며 더 이상 회심에 관심을 잃어가는 교회 등으로 인해, 복음 전도는 점점 우선순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목회자들 가운데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불신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일이 거의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며, 결국 전도는 교회에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복음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치고 전략을 수립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도 이벤트를 진행하는 헤드쿼터에 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2. 만인제사장주의와 하나님나라

    가) 만인제사장주의

    종교개혁이 가르친 매우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가 만인제사장주의이다. 곧 사제가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지 않고, 우리 모든 신자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순종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서로를 목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세워 나간다는 가르침이다. 더 나아가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들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가르침이다.

    만인이, 곧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었다는 가르침은 구약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사명을 주실 때부터 꿈꾸셨던 것으로 교회가 제사장 나라가 됨으로 완성된 것이다(창 12:1-2; 출 19:6; 벧전 2:9; 계 1:6; 5:10 등).

    모든 성도는 하나님나라 안에서 차별이 없다. 바울은 이를 메시아(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선언한다(갈 3:28).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상속자, 곧 예수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르침이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지나면서 심화된 것이 아니라, 최근 한국교회의 모습이 구교로 퇴행, 회귀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심각할 정도로 의존적이다. 목회자가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세례식과 성찬식 또는 급기야 예배의 축도권(때로 저주권이라는 끔직한 권리)이 목회자에게 있다고까지 가르친다.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은 목회자들에게 독점되어 있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목회자가 하는 것이고, 성도는 목회자의 지도를 받아 일정량의 봉사를 하며, 헌금으로 교회 사역을 지원하면 되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성도의 영광스러운 제사장적인 신분과 역할은 사역자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당연히 교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인 성도가 배제되고 목회자 몇 사람에 의해서 주도되는 교회와 하나님나라 운동은 그 한계를 태생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나) 성도와 사역자의 관계

    만인제사장주의가 희석화된 것은 교회가 하나님나라 사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평신도와 목회자라는 구분은 평신도와 사제라는 구교적 분리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한국교회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역자가 부르심을 받아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한 일군으로서 전문성도 있고 그 필요성도 있지만, 사역자가 일반 성도들 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역자의 역할과 성도의 역할이 동등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평신도로서 사역자를 기껏해야 보조하는 모습으로 전락했다.

    한국교회는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며, 그 하나님나라 백성 가운데 어떠한 위계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정돈해야 한다. 이는 유교적 위계질서를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시한 많은 한국교회로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교회를 세우고, 교회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서 성도의 일반적 역할과 사역자들만이 담당해야 할 전문적 역할이 정리되어야 한다. 성경은 실제로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있고, 특별히 신학교나 어떤 특별한 제도를 통한 사역자의 인증 시스템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를 오늘날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경은 다만 자비량 또는 타인 또는 공동체의 후원을 받으며 전적으로 사역을 하는 사역자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들은 성도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성도를 세우고,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게 한다고 말한다(엡 4:12-13). 교회를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자들의 공동체라고 볼 때, 교회 속에서 성도와 사역자의 역할을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정립하고 실행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의 상태를 지속한다면, 하나님나라가 드러나는 교회보다는 일반 종교에서 보이는 사제와 일반 성도의 구분이 개신교 속에서도 그대로 보여, 하나님나라 운동 공동체로서 교회의 모습은 전혀 부각되지 않고, 하나님나라가 갖는 급진성 역시 약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도 하나하나에게 주신 잠재력이 그대로 묻혀 버리고, 교회 공동체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목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하나님나라의 운동성은 교회라는 조직 속에 갇혀 버리고 결국 사장되어 버릴 것이다.

    3.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하나님나라

    가) 정치 조직화된 교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고, 그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로마가 원시 기독교를 합병한 이후로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왜곡되었다.

    교회는 종교 기관과 조직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들이 구교 속에서도 일어났지만, 구교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한 것은 정치 조직화된 기관으로서의 가톨릭 교회였다. 종교개혁은 만인제사장주의 등을 내세워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었으나, 불행하게도 이렇게 정치 조직화된 교회의 모습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을 완성하지는 못하였다.

    아나뱁티스트와 형제 교회 전통과 같은 소수파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회복하려 하였고 일정량 귀한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는 구교가 가지고 있던 교회론에 약간의 수정만 가하였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이 승화·발전시키기보다는 구교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에서 살핀 평신도와 사역자를 나누는 구분이 이러한 변혁하지 못한 구교의 대표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가 생겨나고, 교파는 교파 나름의 조직을 위해서 교단을 형성하고 그 교단 내에서는 중립적인 의미의 정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개신교 대부분의 교단과 그 교단에 속한 교회는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성격보다는 종교 조직으로서 정치적 구조를 갖춘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서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질서,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왕이 되시는 공동체가 탄생하였는데, 오늘날 교회는 이런 새로운 사회와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라고 부르기가 힘들다. 오히려 세상에서 보는 여러 조직들과 별로 다르지 않는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로는 세상에 있는 이런저런 공동체들의 긴밀함과 인격성이 오히려 교회에서 더 뒤떨어지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놓쳤기 때문이다.

    나) 교회론의 회복과 정립

    21세기에 들어서서 개신교에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교회론의 정립이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는 시도, 건강한 교회로 갱신하려는 모든 노력들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세워야 할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에 대한 그림이 없다면, 교회를 위한 우리의 여러 노력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정신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민주적인 교회, 포스트모던적 교회, 이머징 교회 등이 현대 교회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사도바울을 위시한 초대교회가 추구하였던 하나님나라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고민과 정돈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성경적 교회론의 근본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예수께서 자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요체이며, 바로 그 공동체가 교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가 주인인 교회, 예수가 다스리는 교회를 세울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예수의 영인 성령님이 주도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수결의 원칙을 넘어서서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고, 이를 실행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교회를 민주적으로 세우려는 것은 성령을 제한할 수 있는 시도이다. 성령이 늘 다수자의 의견 편에 서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임하였고, 이제 온전히 임할 때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흐름 속에서 어떤 교회를 우리는 꿈꾸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우려고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신학에서 교회를 이해한다면, 가장 건강한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나라의 특징이 드러나는 공동체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적인 교회론을 회복하고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로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사실 교회로서 본질을 상실한 세상의 종교 조직 중 하나인 단체일 뿐이다.

    4. 복음의 총체성과 하나님나라

    가) 성도들의 삶과 하나님나라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은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성스러운 삶과 주중에 세상에서 세상살이를 하는 속된 삶을 오가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원론적 영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러한 영성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알면서, 또는 모르고 성도들에게 주입한다. 성도들의 삶은 천당에 갈 때까지 유예된 것이고, 기껏해야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주 되심을 나타나게 할 것인가 정도를 고민하게 하며, 이것조차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나 하는 것이지 일반 성도에게는 요구하기 힘겨운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성도들의 삶 속에 하나님나라가 실종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악하고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회복하기 위한 메시아로 오셨음을 참으로 믿는다면, 어떻게 예수를 단순히 자신을 구원해 주는 구원자 그리스도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메시아와 그리스도가 동일한 단어의 히브리어와 헬라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가 실종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고 세계의 대부분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 예수가 가져오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었다는 것과 하나님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은 그저 상징일 뿐이고, 플라톤의 개념처럼 땅의 것과는 별개로 미래에, 또는 천상에서나 완성될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굴복하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다양한 삶의 요소를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이해하고 살아 내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의 나라에 속한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못하다! 교회에 다니는 것 빼고는.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가르치고 살아 내는 본을 보이는 것만이 우리 성도들이 이원론적으로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을 극복하게 도울 수 있다.

    나) 세속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단지 종교적 기관으로 전락해 버려서 세속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 조직이나 집단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린다. 세속 사회에서 다른 집단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접어둔 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그대로 존재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영향을 받고 세워졌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살아냈던 방법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교회는 제도권 속의 종교 기관 중 하나로 기능을 발휘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사회 속의 하나의 조직으로 전락한 교회가 사회의 공공성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거대한 세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형성하고 스스로 게토화되어 세상 속에서의 기본적인 도리와 역할조차 무시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참으로 믿고, 그 나라가 완전히 임할 날을 간절히 사모하는 공동체는 세속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임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스스로 하나님나라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려 애쓸 것이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눈에 보이는 형제를 입술과 혀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사랑하는 일에 진보가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장적 기도에 나오는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를 알아보게 하는 일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성숙해 나간다면, 외부적으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나라 백성은 개인적으로도 선한 일에 힘쓰며 살아가는데, "만물을 회복하시는 이의 회복"(엡 1:23)인 교회, 곧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는 자신이 속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량에 걸맞게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을 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교회는 자선 단체도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도 아니며,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인데, 이러한 사명을 각 지역 교회들이 자신들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수행해 나갈 것인가가 오늘날 교회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한 것도 중요하지만, 성도들이 매일 고민하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 즉 주거, 교육, 가정, 지역 공동체 그리고 직장과 같은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드러낼지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살아 내는 교회 공동체가 절실한 때이다.

    이렇게 하나님나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교회 공동체들의 역량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어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다른 여러 집단과 공존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공공의 가치에 비추어서 살피고 그 최소한의 역할과 도리를 행하는 것은 절실하다. 교회의 공공성을 무시하여 반사회적으로, 반역사적 집단으로 매도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다스림과 아름다움을 세속 속에 드러내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다.

    맺으며 :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한국교회

    복음이 하나님나라와 이혼한 상태에서 낳은 자식인 교회는 태생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교회가 편부모인 복음만으로 세워진 이 끔찍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먼저, 아무나 이야기하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예수가 전하고, 바울이 이해한 하나님나라를 우리 교회가 다시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교회를 시대정신을 휘둘러 자기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교회는 예수께서 주장하신 대로 예수 자신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마 16:18).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즉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어떠해야 할지 깊이 있게 연구하여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진실로 믿고, 그리고 드러내는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 낼 것이다. 그들의 교회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교회 구조와 문화 자체가 변화된, 정치 조직을 넘어선 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더 나아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 내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향할 것이다.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싶은 이들은 이러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

    심각한 고민과 연구, 다양한 실험과 시도, 그리고 건강한 사례의 나눔과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실종된 한국교회에, 매우 오래된 (이천 년 전에 선포되었으니) 그러나 신선한 (오늘 21세기에 적용되고 있으니) 예수의 메시지, 곧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살아 내야 한다. 500년 전과 같이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기 전에,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교회 세우기는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에 속한 ‘표’는 ‘베리칩’ 아닌 ‘의식과 삶’”

    성산생명윤리硏 세미나서 이승구·조덕영 박사 등 발제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박상은 샘병원의료원장)는 7일 오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함춘강의실에서 ‘베리칩,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창립 16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중원 교수(서울시립대 철학과)가 ‘베리칩의 개념과 철학적 함의’를, 박준현 교수(정신의학과 전문의, 인제의대 임상교수)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베리칩 논쟁’을,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장, 창조론오픈포럼 대표)가 ‘베리칩에 대한 신학적 논점’을,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베리칩 관련 생명윤리 논점과 대안’을 각각 발표했다.

    먼저 이중원 교수는 “베리칩이란 ‘Verification’과 ‘Chip’의 합성어로 ‘확인용 칩’을 의미한다. 쌀알 크기의 작은 마이크로 칩으로, 생명체의 몸 속에 투여해 신원이나 정보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며 “베리칩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 뿐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베리칩’이 갖는 철학적 함의에 대해 “첨단기술(도구)에 의해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변질될 것”이라며 “과학기술은 단순한 인간의 산물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적이며 존재적인 사건이다. 더 이상 목적을 위한 수단 혹은 합리적인 도구가 아니고, 현대사회의 모든 존재자들을 대상화하고 부품화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베리칩 신학, 세대주의 종말론과 궤 같이해”



    ▲조덕영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특히 조덕영 박사는 ‘베리칩에 대한 신학적 논점’을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종말론으로서의 ‘베리칩’ 신학은 시한부종말론적 경향을 지닌다는 점에서 세대주의 신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세대주의는 주로 인류 역사를 도식적 세대 구분의 틀 속에 넣는 다는 특징을 가진다”며 “문제는 세대주의의 경우 각 세대 뿐 아니라 마지막에 임할 (천년)왕국시대를 문자적으로 이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지나온 인류 역사를 6세대(6천 년)로 규정하게 되어, 마지막에 임할 천년왕국시대를 계산할 경우 지구는 긴박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시한부종말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박사는 “만일 세대주의에 따른다면, 혹시 휴거와 종말의 시기가 이미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될 정도로 지구는 모든 6천 년이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필연적으로 시급한 종말이 우리 세대에 임해야 하는 것”이라며 “적그리스도가 ‘베리칩’ 곧 666이라는 소동은, 바로 이 같은 세대주의의 세대 구분 신학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기독교는 종말과 재림을 믿는 종교다. 하지만 긴박한 종말론이나 시한부종말론은 항상 큰 부작용을 불러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조 박사는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나 구분하여 가르치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세대 구분이 성경 이해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대주의의 문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도식화해 해석함으로써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양산하는 데 있다”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절대화할 때, 성경이 단순한 책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며,

    성경 내용을 도식화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마치 판타지 만화와 같은 책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즉 기본적 성경해석학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은 미숙한 성경 해석은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다 이단이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베리칩’ 신학은 세대주의 종말론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박사는 “요즘 일부 열정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신비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시한부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우가 한국교회 안에 다시 머리를 들고 있다”며 “이것은 자칫 하나님께 열심을 다한다는 착각 속에서 실은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누(累)를 범할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 박사는 “최근 한국교회에 갑자기 여러 가지 형태의 이상한 신비주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늘 바른 하나님 말씀의 분별이 우선되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일부 한국교회에 이런 불안을 동반한 신비주의가 만연된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베리칩’ 소동은 바로 이 같은 혼돈 속에서 등장해 미혹의 마약처럼 번지고 있다. 깨어 기도하고 사단의 꾀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들, 일반은총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이승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이승구 박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구별된 의식과 삶의 태도가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표’를 가졌다는 것을 드러내고, 또한 그것이 그들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베리칩을 몸 속에 이식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하나님 백성의 특성을 가지는가 아닌가’가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베리칩은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그러므로 베리칩을 요한계시록과 연관시키거나 기독교적 종말론과 연관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건전한 성경해석자들이나 건전한 신학자들은 전혀 그렇게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해 일반은총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일반은총적 관점에서의 논의’란 “각자의 지식과 판단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문제”로, 그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사고를 당했을 때 신속한 의료적 돌봄과 도움을 위해 베리칩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편안하기는 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성경의 입장을 존중하는 사람들로서 어떤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욱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각자 신실한 의견을 제출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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