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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목회 (딤전 3:2)
    2003-07-09 17:26:01   read : 1949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가정은 교회의 터전이다. 가정 없이는 교회도 없다. 이 사실은 초대 기독교
    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부터 회피할 수 없는 증거를 얻는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자신의 가정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도록 제공한 경우
    나, 고넬료와 루디아에게서처럼 부부, 부모, 자녀, 친척, 친구 등으로 이루어
    진 가족 모두가 함께 기독교의 신앙으로 회심하는 경우나, 스데바나의 가족
    이 전체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헌신한 경우는 초대 기독교가 신
    자의 가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
    로 시사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사람은 책망할 것이 없
    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못박은 것은 결코
    뜻밖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심장한 일이다.

    왜 사도 바울은 구태여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이 "한 아내의" 남편이어
    야 한다고 역설하는가? 틀림없이 이러한 진술은 당시의 로마-헬라 문화에서
    성적인 문란함이 팽배해있었던 것을 반영한다. 당시에는 남자들이 여러 여자
    와 상대하였을 뿐 아니라 여자들도 여러 남자와 상대를 하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조건
    을 제시했을 때, 그것은 당연히 성적인 윤리의 차원에서 부패한 사회를 공격
    하는 강력한 도전의 말이며 동시에 건전한 가정윤리를 형성하는 새로운 사회
    를 향한 강력한 권면의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성 도덕(sex moral)의
    문제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경악하며 한탄해야 한다. 많은 경우
    에 그 문제가 은닉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연루된 대다수의 목회
    자들이 양심에 일말의 가책이나 최소한의 공개적인 회개도 없이 어쩌면 그렇
    게 버젓이 목회자로 활동을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런 이성문제를 일으킨 목회자들이 더 인기를 얻고 있다
    는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신자들은 심지어 음행과 같은 더 많은 경험을 쌓
    은 목회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유유상종이니까.
    또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의 성적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더 거룩함으로 치장
    을 하고 다른 이들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힘을 기울인다. 이른 바 똥 묻은 개
    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 집단은 바로 이 문제에서 실패함으로써 기독교는 머리
    잘린 닭이 피를 뿌리며 마당을 뛰어다니듯이 아무런 방향 없이 우왕좌왕하다
    가 결국은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는 사람이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
    다"고 덧붙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목회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아내에
    대한 책임을 가지라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헌신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목회자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이지 못하는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것을 이해하
    지 못하기 때문이다 (엡 5:25).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시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
    는 사람은 절대로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아내를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채우는 비열한 남편이 되기 싶기 때문이다. 초대교
    회 당시에 성도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거나 (갈 6:13), 성도를 종으로 삼거
    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하는 (고후 11:20), 심지어 성도를 이용해서 자기
    몸만 기르는 거짓 목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찌 잊으랴 (유 12).

    그래서 진정으로 진실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아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주님과 교회의 일을 위한답시고 아내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이 과연
    바른가? 한 아내 외에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는 남편도 목회자가 될 자격
    이 없다면,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한 책임을 지지 않는 남편도 목회자가 될 자
    격이 없다. 목회자가 아내의 신망을 잃으면 목회의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에 대한 목회가 교회에 대한 목회의 진정한 시작이다.


    --------------------------
    일상 이력서 (딤전 3:1)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진실은 일상에서 증명된다. 어느 교회의 현관 한 쪽 벽면에 여러 장의 종이
    가 줄을 맞추어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장로를 비롯하여 안수집사와 권사를 선
    출하기 위해서 후보자들의 이력서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들이 주
    일학교 부장, 성가대 대장, 전도회 회장, 구역장 등등으로 봉사했다는 내용
    이 가득하게 적혀 있었다. 종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참으로 큰 일, 많은
    일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씁쓸한 맛을 지울 수가 없었
    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에 나의 지도를 받아 신학교 졸업논문을 쓴 목사
    님 한 분에게서 오늘날 교회마다 장로나 권사 같은 직분자들을 선출할 때 제
    시하는 자격조건을 보면 별로 성경적이지 않다는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요새는 목사를 청빙할 때도 외국에서 얼마나 살
    았느냐, 무슨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는 세상이니까 이 정도는 약과
    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진실이 크고 많은 일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

    사도 바울이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말
    하면서 이것을 믿을만한 말 ("미쁘다 이 말이여")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은 진실이 일상에서 증명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음에 틀림
    없다. 감독의 직분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
    나님의 집을 경영하는 사람이다 (딛 1:7). 다시 말하자면 감독의 직분은 하나
    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목양하는 것인데,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
    문에 감독은 성령에 의하여 세움을 받는다 (행 20:28).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막중한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사람에게 제시한 자격조건을 살펴
    보면 언뜻 보기에 너무나 막연하여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사도 바울이 제시
    하는 감독직분을 위한 자격조건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선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니
    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이하에서 선한 일이 무엇인지 하나 씩 하나 씩 구
    체적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일이란 인격, 성품, 재능, 가정, 사
    회생활 그리고 신앙경륜 같은 일상적인 내용을 가리킨다. 여기에 조목조목 열
    거된 사항들을 천천히 읽다보면 가슴이 뜨끔해진다. 사도 바울이 감독직분을
    위하여 제시한 자격조건은 정말로 색다른 이력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무슨 위원장이니 부서장이니 하는 형식과 조직으로 위장된 가짜
    이력서가 아니라 인격과 생활로 표출할 수 있는 진짜 이력서를 요구하고 있
    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내민 백지에 적어야 할 이력은 큰 일이 아니라 선한
    일이며, 많은 일이 아니라 바른 일이다. 감독이라면 엄청난 직분인데 그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크고 많은 일이 아니라 선한 일이다. 사도 바울은 진실이 일
    상에서 증명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도 바울에 의하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선한 일,
    곧 일상적인 일을 "사모한다". 여기에 언급된 "사모한다"는 단어는 많은 경우
    에 정욕과 같은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무엇인가를 너무나 강렬
    하게 추구하는 모습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채용하여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사모한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일상적인 일을 절대로 소홀
    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성품을 드러내고, 사람을 대접하고, 가정
    을 사랑하고, 경건을 연습하는 것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을 무심코 흘
    려보내지 않는다. 그는 일상에서 사람됨을 위한 그리고 신자됨을 위한 진실
    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매일 생활에서 인격을 더 잘 갖추려고, 재능을 더
    잘 활용하려고, 가정을 더 잘 세우려고, 경건을 더 잘 습득하려고 강렬하게
    추구한다. 그는 진실이 바로 이 같은 일상에서 증명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
    다.

    일상 이력서만이 교회를 속임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진실은 일상에
    서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줄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

    -------------------------
    여자의 길 (딤전 2:15)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하와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모든 여자는 하와의 딸인데, 하와의 길
    이 모든 여자에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면, 하와의 타락은 여자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
    이 죽은 것같이, 하와 안에서 모든 여자가 죽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와
    는 저주를 받았고, 하와 안에서 모든 여자가 저주를 받았다. 하와에게 주어
    진 저주는 해산의 고통이었다 (창 3:16). 그래서 모든 여자는 자녀를 낳으려
    할 때 해산의 고통을 맛보게 된다. 이렇게 타락의 문맥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이 고통이 동반되는 해산은 본래 저주 그 자체였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여자에게는 고통스런 해산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니다.
    믿는 여자도 자녀를 얻으려고 할 때 해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산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믿는 여자는 비
    록 해산의 과정을 거친다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게 된다. 믿음의 조건 하에서
    해산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
    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5)고 말했을 때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의도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러나"를 사용하여 전에는 하와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져 고통스런 해산의 저
    주를 받았지만 이제는 여자들이 믿음 안에서 구원을 얻는데 심지어 해산까지
    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역전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본문을 문법적으로 살펴볼 때, "그들이 (여자들이) 구원을 얻으리
    라"는 문장이 한편으로는 "그 해산함으로써"라는 구문에 의하여 수식되고 다
    른 한편으로는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이라는 구문
    에 의하여 수식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이 (여자들이) 그 해산함으
    로써 구원을 얻으리라"는 문장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
    하면"이라는 구문에 의하여 수식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
    자면 "만일 ... 에 거하면" 구문은 "그 해산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리라"는 문
    장을 전체적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구원
    을 얻기 위한 두 가지 조건 ("그 해산함으로써"와 "만일 ... 거하면")을 말하
    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여자들이 구원을 얻는 조건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만일 ... 거하면"). 여자들을 위한 구원의 조건은 믿음과 사랑
    과 거룩함에 거하는 것 밖에는 없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비
    록 모든 여자에게 하와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해산의 과정이 여전히 남아있
    다 할지라도 믿음 안에 거하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해산의 과정은 자녀를 낳으려는 모든 여자에게 필연적인 일이다. 그
    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해산이라는 과정은 여자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저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심지어 해산의 과
    정을 통한다 할지라도 구원에 이른다. 해산은 더 이상 여자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타락의 상태에서는 해산의 과정이 여자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이지만, 믿음의 조건에서는 여자들이 (여전히 고통스럽
    기는 하지만) 해산의 과정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다. 전에는 유혹과 범죄와 타락에 빠진 여자에게 저주로 작용하던
    해산이 이제는 믿음과 사랑과 성결을 지닌 여자가 구원을 얻는데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본문은 여자가 해산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된다. 타락과 관련하여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해산은 구원과 관련
    하여 중립적으로 이해된다. 해산은 자녀를 얻으려는 모든 여자에게 필연적인
    것으로서 타락의 상태에서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심판의 표식이지만 믿음의
    상태에서는 구원의 길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하와의 길은 아직도 멀리 남아있다. 하와는 모든 여자의 어미인데, 모든 여
    자가 하와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 믿는 여자에게는 하와의
    길이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
    정승원 목사(합신 조직신학 교수)

    8. 세속신학(Secular theology)
    대표적 세속 신학자로 우리는 하비 콕스(Harvey Cox)와 죤 로빈슨(John A.
    Robinson)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특별히 창조적으로 신학을 발전시켰다기 보
    다는 이전에 여러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사상들을 종합, 적용시켰다고 하겠
    다. 특별히 이들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ffer)의 영향을 많이 받았
    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입했다가 잡혀 감옥에서 죽은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옥중 서신에서 기독교인은 세속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
    했다. 세상에서의 안주로서의 참여가 아니라 고통을 감수하는 사랑의 참여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종교없는 기독교'를 주장했다. 이것은 하나님, 교
    회, 혹은 예배가 없는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구별된 사회에
    만 그리스도를 가둬 놓지 말자는 말이다. 그리스도도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과 내세적인 것에 너무 마음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본회퍼의 주장들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
    라 할 수 없지만, 세속 신학자들은 이러한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아 비성경
    적 세속신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로빈슨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말
    이 바로 '세속'을 의미한다 하겠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표현을 위해 하
    나님의 영역에만 있어서는 안되고 세상의 영역으로 세속화되셔야 한다는 것이
    다. 로빈슨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개념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고
    무의미하다고 한다. 새롭게 된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리고 교회와 세계간의 선은 지워져야
    한다고 한다. 밴 퓨르센(C.A. van Peursen)은 말하기를 "세속화란 인간의 이
    성과 언어위에 군림했던 종교와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 되는 것"이라고 한
    다.

    한편 하비 콕스는 그의 책 "세속도시"(The Secular City)에서 "하나님은 교회
    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
    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 하나님을 발견한다"라고 주장한다. 또 주장하
    기를 "하나님의 왕국―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인간성―은 모든 장애가 무너지
    는 곳마다 발견된다. 즉 종교적 장애, 도덕적 장애, 사회적 장애가 없어지고
    기독교와 비기독교사이의 차이가 사라지고 형제애가 다스릴 때 발견된다"라
    고 한다. 그는 죄를 어떤 법이나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해
    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한다. 그리고 아담의 죄는 피조물을 다스
    리고 정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주장하기를 "현대의 특징은 도시 문
    명의 발전이요 전통적 종교의 붕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과
    학과 기술의 발달때문이었다고 한다.

    한편 세속신학의 운동 일환으로 우리는 1975년 하트포드 신학교에 여러 학파
    의 신학자들이 모여 발표한 '하트포드 선언문'을 들 수 있다. 이 선언문 중
    중요한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오직 현대적 인간성 모델로
    만 이해할 수 있다.' '제도화나 역사적 전통은 우리의 참된 인간성을 억누르
    며 참된 인간성과 반대된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해방은 진정한 실존과 진정
    한 종교를 요구한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계획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선교의 규범이
    다.' '사후에 관한 소망은 인간의 성취 이해와 무관하던지 별의미가 없다.'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얼마나 현대 신학자들이 세속신학적인 가를 알 수 있
    다.

    사실 세속 신학은 중요한 신학적 학파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신학의 망령이 알게 모르게 기독교를 위협하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교회
    에도 깊숙히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신학의 가장 큰 위험성은 바로 하나
    님을 하나님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세상을 위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다. 무조건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즉 세속적)인 것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분명히 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과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선교와 구제가 그런 것이고, 빛과 소금의 직분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세속주의 신학은 오히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과 의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왜냐면 하나님이 부정되고, 초자연적인 것이 부정된다는 것은 결국 교
    회가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세상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세속
    주의에서도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의 사랑,' 'Missio Dei' 등등
    의 개념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세속주의는 인간
    의 자율성나 자유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는
    다름 아닌 타락된 죄성일 뿐이다. 사랑, 정의, 평화, 하나님 등의 초월적 개
    념의 근거를 죄악된 인간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세속주의가 모든 종교적, 형이상학적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외쳤지만
    사실 세속주의 자체가 인간 자유를 보장받으려고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종교적, 형이상학적 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틀은 砂上樓閣과 같이 얼마
    못가 무너질 틀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 보수주의자들은 극단적 이원론
    에 빠져 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을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
    권이 온 세상을 덮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우리는 세속주의자들보다 더 세상을
    향한 걱정과 책임과 의무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결국 우리 선교의 현
    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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