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은 어떤 사람?/지도자는 전문적이어야 2003-04-16 00:31:37 read : 167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교인은 첫째, 마음이 뜨겁고, 둘째, 경건의 규칙에 따라 훈련됐으며, 셋째, 복음 전도를 잘하며, 넷째, 선을 행하며, 다섯째, 정직하며, 여셧째, 개혁하며, 일곱째, 노래한다.
얼마전 진행됐던 웨슬리 탄생 300주년 기념 기감 중부연회에서 김진두 목사(영등포 중앙교회 담임 목사, 감신대 겸임 교수, 협성대 강사)는 '감리교인이란 누구인가?' 란 주제로 발표했다.
김 목사가 제시한 감리교인의 특성들은 교파를 초월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동일하게 가져야 할 특성들이기도 하다.
1. 마음이 뜨겁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에서 웨슬리는 복음적 신앙에로 돌아오는 회심을 '마음 속에 느꼈다'. 비록 그전에도 이신득의 교리를 알았고 이와 관련된 설교도 했지만, 이날에야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의 은총을 자신의 '심장에 체험'했다.
웨슬리는 "감리교인이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속에 가득히 부어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감리교도들은 기도처에만 머무르는 신비주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 세계로 나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복음적인 행동가들이다.
2. 경건의 규칙에 따라 훈련됐다
Methodist(규칙쟁이, 감리교인)은 웨슬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옥스퍼드대 내 신성회(Holy Club)회원들을 외부
인들이 조롱해 부르던 별명이었다. '규칙에 따라 훈련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어머니 수산나에게 훈련받은대로 웨슬리는 하루 24시간의 삶을 규칙에 따라 영위했는데, 1729년부터 이러한 규칙에 따른 경건 행활을 '신성회' 동료들과 함께 실행했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들기', '이른 아침 기도와 묵상', '고전과 경건 문학 독서', '매주일과 모든 가능한 기회에 성찬받기', 매주 가난한 어린 아이들 가르치기' 등의 경건의 규칙을 따랐으며, 매일의 생활을 정한 시간에 정한 규칙을 따라서 영위했다.
웨슬리의 이러한 규칙 생활은 1739년 이후 감리교인들에게도 적용됐다. 그는 감리교 신도회, 속회, 반회, 연합신도회의 규칙을 만들어 그들이 성결의 생활을 위해 훈련하게 했다.
감리교인들이 지켜야하는 규칙들은 다양한데 그중 세상에 잘 알려진 것들로는 '모든 예배 시간과 약속 시간 엄격히 지키기', 주일과 모든 은혜 받는 교회의 집회에 반드시 참여하기', '모든 교회의 거룩한 법을 엄격히 지키기', '남 험담 안하기', '재산 안 남기기' 등이 있다.
또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의 거룩한 경제 생활을 위해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벌어라', '할 수 있는대로 많이 저축하라', '할 수 있는대로 많이 주라' 는 세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웨슬리는 "아무도 규칙에 따라서 살지 않고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처럼, 감리교인의 최선의 인생과 최선의 신앙과 최선의 행복은 모두 다 거룩한 규칙에 따라서 훈련된 삶을 사는데 있다.
초기 김리교인들은 세속 속에서 수도원 생활을 하며 마음의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유지했으며, 세속 속에서 교회를 개혁, 사회를 성화,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다.
3. 복음 전도를 잘한다
감리교 탄생의 직접적인 동기는 1739년 4월 1일의 브리스톨 야외설교였다. 웨슬리가 시장터 거리의 가난하고 무지한 민중들에게 노방전도를 한 것이 감리교 복음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즉, 감리교회는 거리의 노방전도로 탄생하고 부흥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노방전도를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웨슬리는 "죄인들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기까지는 우리가 죄인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감리교인들은 만인을 구원하려는 전도의 소명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다.
4. 선을 행한다
브리스톨 노방전도에서 웨슬리는 영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대중을 발견했다. 그는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당황하면서 서서히 그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책임지게 됐다.
F. Baker는 "감리교인들은 먹이면서 입히면서 치료하면서 가르치면서 전도했다"고 했다. 감리교인들은 지역사회마다 집, 병원, 나그네, 공동체, 학교를 세워 운영했다.
당시 산업사회에서 감리교가 실행한 삼대사업은 노동조합운동, 성인교육, 나그네공동체였다. 또 감리교인들은 매주 열심히 구제기금을 모았다.
웨슬리는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모든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라. 모든 방법을 다하여, 모든 처지에서, 모든 장소에서, 모든 기회에, 모든 사람에게, 네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선을 행하라"고 말했다.
5. 정직하다
웨슬리는 "감리교의 핵심은 마음과 생활의 성결이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감리교인들은 기도, 금식, 성경 읽기, 철야기도, 속회 모임 등을 하며 '성령의 불세례'를 구했다.
오늘날 감리교는 이런 은사를 상실했든지 포기했다. Albert Outler은 감리교 교리의 핵심인 마음과 생활의 성경 신앙을 버린 감리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하게 됐다고 통탄했다.
6. 개혁한다
옥스퍼드 신성회(Holy Club)는 '개혁 모임(Reforming club)'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웨슬리는 "감리교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믿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어떤 새로운 교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민족을 개혁,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감리교인들은 자신들의 마음과 생활을 성결을 이루는데 헌신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이러한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민족 개혁을 위해서 민족의 생활습관, 생활방식, 그리고 사회도덕을 개혁하는데 집중했다.
처음 감리교 신도회 규칙에는 피하고 개혁해야 할 악한 생활습관과 장려할 습관들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7. 노래한다
감리교는 노래 속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초기 감리교 부흥운동에서 영광스러운 두 소리는 존 웨슬리의 설교 소리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의 찬송 소리였다.
찰스는 일생 약 9년개 찬송을 썼다. 그는 교회역사상 최초의 회중 찬송 즉, 심정의 찬송을 보급한 찬송작가이자 찬송으로 신학을 쓴 시가적 신학자였다.
그래서 '낭만적 감리교', '시적인 감리교'라는 말이 전해졌으며, 감리교 신앙은 '시적인 신앙'으로 일컬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존 웨슬리의 설교는 1마일을 갔고 찰스의 찬송은 2마일을 갔다", "감리교인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감리교 설교를 듣고 감리교인이 됐다면 9사람이 감리교 찬송을 듣고 감리교인이 됐다" 등의 말을 했다.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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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전문적이어야
얼마전 제자교회에서 개최됐던 '셀프리더십 세미나'에서 이강락 대표(KR 컨설팅)는 '지도자의 전문성 개발'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당대 세계 최고 경지에 이른 지도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했다.
판단력과 용기
석유왕 폴 게티는 학교를 졸업한 후 유정을 발굴하는 사업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과잉투자로 실패한 기업을 인수하게 된 그는 어느날 의도적으로 이사회에 참석해 자신은 자금이 충분하니 투자 문제는 걱정하지 말하고 말한 후 반응을 살펴 호의를 표시하는 사람은 배척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만 새로운 경영진으로 구성했다. 새 회사의 주인 앞에서 반대를 표하는 사람은 올바른 판단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약 100개 정도의 회사를 경영하게 됐고, 그 모든 회사의 경영 성과가 좋았다.
일본의 혼다는 어려서부터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전거 수리, 오토바이 전문제조업을 거쳐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자동차 산업에서 일본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용기 있게 세계적인 F-1 자동차 경주대회에 출전해 꼴등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동차를 개선해 결국 1등을 했다.
일본에서 택시 사업을 하는 유봉식 회상은 다른 택시 회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요금 인상을 희망했을 때 택시의 대중화를 위해 도리어 택시의 요금 인하를 주장해 법적 투쟁을 거쳐 요금을 인하했다. 그는 일본 교토 시만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의 사업은 안정적인 성장을 하게 됐다. 천황이 교토에 방문하면 유봉식 회장이 경영하는 MK 택시를 이용한다고 한다.
신속성
통일 일본을 건설한 오다 노부나가는 소총이라는 신기술로 무사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의 전법은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공격이었다. 특히 노부가나는 자신이 약하고 상대가 강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국면에서는 속도전이야말로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미 GE사의 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해당 분야에서 1등이나 2등이 되지 못하는 모든 사업 단위를 매각했다. 그래서 1982년부터 87년사이에 약 100개의 사업단위가 GE를 떠났다. 대단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현대 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씨가 이루었던 많은 성취와 도전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사람들이 발휘하는 것의 몇 배의 스피드로 추진됐다.
헌신적인 희생
미 독립전쟁을 수행했던 위싱턴은 군인들에게 "죽지 않고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의 무사귀환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만약 전쟁에 패하면 저와 여러분은 반란군이기 때문에 총살형을 당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에게 행복은 선물하기 위해 독립전쟁을 합시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은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독립전행에 임했고 많은 이들이 이에 동참해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 근무했던 오오노 다이이찌씨는 낭비를 없애는 일에 대단한 실천력을 발휘했다. 그는 일을 하는 목적은 가치를 부가하는 일로서 돈이 되지 않고 고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낭비라고 하며,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낭비를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노력은 사내에서 인정받게 됐고 정식으로 도요타 생산 방식으로 채택됐다.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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