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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4-03 17:49:26   read : 172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몇 년 전에 나는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 도널드 코건과 대화를 나누면서 신학 교육에서 일부 문제점들에 관해 논한 적이 있다. 대화 끝에, 신학 교육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은 머리로 하나님을 좀더 알게 되겠지만, 오히려 가슴은 더욱 냉랭해진다는 사실에 동감했다. 코건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길고 힘든 여행 가운데 하나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행이죠.”

    아마 신학 교육에 대한 그의 평생의 관심과 좌절감에서 우러나온 말일 것이다. 물론 영적 에너지의 고갈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을 주는 일부 탈진한 목회자들과의 개인적 접촉도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필자는 신학이 기독교적 삶과 사상에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도 아주 중요하고, 영혼 돌보기와 교회 성장을 위한 보다 나은 새 기법의 발전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교리 선언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올바른 신학 교리만으로 연약한 인간성에 포함돼 있는 상처와 죄를 치유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성(mind)을 중요시하면서 감성(heart)을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학적 올바름에 집착한다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인간 관계의 함양을 도외시한 채 교리의 오류만을 찾아 폭로하는 일에 마음을 쏟게 되면서 냉혹한 비판적 성향이 배양될 수밖에 없다.

    복음은 모든 실존에 영향을 미친다

    필자도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이해’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이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엄청난 집념, 위대한 신앙 교리들과의 씨름이 영적 격려와 지적 개발에 도전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지식’이 다소 무미 건조하며 머리로만 이해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문제점의 한 가지 원인은 우리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필자도 역시 계몽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사상의 문제로 생각하고 올바른 사상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신학 교리의 올바름에 대한 집착은 마음 속에서 어떤 강박 관념으로 변하고 말았다.

    복음은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 즉 사고 방식뿐 아니라 느낌의 방식과 삶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역할을 옹호하고 감정이나 상상력의 교섭을 거부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C. S. 루이스 같은 사람들이 이런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필자의 신앙은 지나치게 학문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성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1989년쯤이며 꽃이 핀 것은 1992년 무렵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와 종교개혁의 영성’에 관한 정기 여름 강좌를 인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종교개혁 시대의 많은 문서를 포함해 기독교 영성에 관한 위대한 본문들을 다루고 있었다.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교재들을 놓고 씨름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질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도전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신앙 생활의 질도 상당히 강화되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지난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독교 정통주의의 기본 교리들을 전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총체적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이해가 천박했음을 깨달으면서, 교리에 함축된 의미들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필자의 교리 사상들은 새로운 깊이에 도달하게 되었다. 믿음의 내용이 변했다기보다 믿음의 질이 강화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

    전통 신학에선 ‘신앙’이라는 단어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믿는 행위로서의 신앙’이 있다. 즉 인격적 차원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헌신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믿는 내용으로서의 신앙’ 즉 일단의 기독교 교리가 있다. 필자의 경우에 ‘믿는 내용으로서의 신앙’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발전하고 성숙한 것은 ‘믿는 행위로서의 신앙’이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식물의 성장이나 씨앗의 착근(着根)에 비유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식물이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힘과 생명력을 더욱 증가시키는 현상이 나에게 일어났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다소 학문적이었던 필자의 예전의 신앙 행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이 신앙에 대해 더 많은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고 우정 어린 충고를 한 것도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굉장히 풍요로운 복음에 대해 껍데기나 핥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그 껍질 속에는 우리가 찾아서 누려야 할 많은 알맹이가 들어 있다. 기독교 신앙의 경이와 흥분과 희열을 깊이 맛볼수록 친구들에게 복음 증거 때도 큰 효과를 나타내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누림도 더욱 깊어진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 묵상뿐

    하나님을 만나 체험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의 의식과 삶이 변하는 것이 바로 ‘영성’이다. 영성은 불건전한 완전주의 성향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 영적 엘리트들의 배타적 금지 구역이 결코 아니다. 깊은 영성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공통적 임무이자 기쁨이다. 성경에 약속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친교에 들어가기를 갈망할 때 우리는 이것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신앙의 내면화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말은 사고 방식, 느낌 등 삶의 모든 측면에 골고루 신앙을 침투시킨다는 뜻이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심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로렌스 형제(1614∼1691)의 방식을 빌면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영성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데에 목표를 둔다. 그것은 우리의 지성뿐 아니라 감성으로도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강화하는 일이다. 하지만 영성은 좋은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곧 신학이 가리키고 약속하는 바를 사유(私有)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영적 삶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은 초기에 필자는 기독교 신앙의 성장이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더욱 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일부 유익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핵심적인 기독교의 사상들을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고 여러 설명 방식들을 개발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삶에서 신앙이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은 미약한 것 같았다.

    그때 성경의 사상들로 하여금 상상과 경험에 충격을 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성경 말씀 묵상의 중요성을 역설한 중세의 인물 게에르트 제어볼트 판 주트펜(Geert Zerbolt van Zutphen, 1367∼1400)의 글을 읽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주트펜에 따르면 묵상(명상)이란 읽거나 들은 것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특별한 방식으로 모종의 불을 붙이거나 자신의 이해에 빛을 비추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 말은 성경 읽기에 새로운 빛과 생명을 던져주었다.

    필자는 예전에 명상이란 것이 크리스천들에게 금지된 일종의 불교의 수행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구약 성경의 기자들이 하나님의 율법 묵상에 대해 얼마나 많이 언급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이었다. 그것은 ‘감정에 불을 붙이고’(얼마나 놀라운 표현인가!) ‘이해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지성뿐 아니라 감성에도 영향을 받아야 한다. 이해의 세계와 감정의 세계가 결합되면서 더욱 참되고 만족스런 기독교적 생활 양식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천국 시민’에 대한 비전을 가져라

    그러면 풍요로운 기독교 신학으로 우리의 지성은 물론 감성까지 양육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한 가지 방법만 살펴보자. 신학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기독교의 비전이 하나의 훌륭한 동기를 제공해 준다. 새 예루살렘의 비전은 우리에게 눈을 위로 뜨고 그리스도께서 가신 곳으로 두 눈의 초점을 모으라고 격려한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 3:1∼3). 새 예루살렘에 관한 교리에서 우리는 최후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을 고대하라고 말씀하신다.

    1976년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바나의 인터바서티 선교대회(InterVarsity Mission Convention)에서 존 스토트는 강연을 통해 신학과 영성 특히 전도에서 미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이 매우 중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그의 강연은 기독교 신앙의 중차대한 사안을 회복하고 이를 당면한 기독교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고 외쳤다. “눈을 뜨십시오! 여러분은 분명히 시간 속의 피조물입니다. 또한 영원의 자녀이고 하늘 나라의 시민입니다. 이 땅에선 외국인이자 나그네며, 천상의 도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입니다.”

    몇 년 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5달러 짜리 지폐를 주웠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는 길을 갈 때 절대로 눈을 들지 않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가 얻은 것은 단추 2만 9,516개, 핀 5만 4,172개, 12센트 그리고 구부러진 등과 구두쇠 같은 마음씨였다.” 하지만 그가 잃은 것을 생각해 보라. 그는 찬란한 태양 빛, 별들의 광채, 친구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봄철의 아름다운 꽃 등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눈이 길 바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와 같은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이 땅에서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임무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대해 망각해선 안 된다. 존 스토트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 나라의 영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경이로움에 동참해 지금 이로부터 깊은 충격을 받으라고 격려하고 있다.

    짧은 글을 통해 지성과 감성의 상호 연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찰하고, 이런 상호 연결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눴다. 신학은 확고한 믿음의 토대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놀랍도록 풍요로운 복음의 진리로부터 자극과 자양분을 끌어내 지성, 감성, 상상력에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토대가 놓이면 건물을 세워야 한다. 상부 구조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바울은 주장한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 우리가 ‘가장 고상함’의 진면목을 크게 깨닫고 새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여정에서 힘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기도한다.


    빛과 소금 /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영국 옥스퍼드대, 위클리프 홀의 학장이며 역사 신학 교수이다. 저서로 「예수를 아는 지식」,「생명으로 인도하는 다리」 등이 있다.
    일러스트 / 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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