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물이라오” 은진교회 고물목사 전용열 2003-03-14 02:06:12 read : 240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물(故物) : 1. 고물(古物) 2. ‘오래된 물건이나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본인을 기꺼이 ‘고물’이라 칭하는 이 있으니 그가 바로 전용열(43) 목사다. 스스로를 홀하게 이르는 닉네임에 무언가 심오한 뜻풀이를 기대할 만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고물장수가 아르바이트라서”였다. 요즘 그는 낮 동안 안산 어디께 예배당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느라, 기자는 늦은 저녁 무렵에야 그를 독대할 수 있었다.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엉망이네요.” 두 명이 앉으면 꽉 차는 그의 ‘서재’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정돈이 덜 돼 보였다. 아, 그 전에, 그의 집을 들어설 때 문 곁의 요강이며 올망졸망 세 아이, 남루한 살림살이를 곁눈질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순간 마음을 붙들어 맸음을 고백한다. 기자가 혹 식사를 걸렀을까 기다리다 혼자 요기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파조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리다 걷었음도 함께.
사이버 전사
전용열 목사의 글은 ‘호전적’이다. 까페(http://cafe.daum.net/nagne) 운영자인 그는 설교문이나 칼럼 등을 통해 세상과 기존교회와 대담히 맞장뜨는 사람이다. 정제되고 박학하고 세련된 언어로 말하지는 않지만, 통렬하게 비틀고 꼬집고 일침을 가한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어라, 한국교회의 환부를 나름의 배짱과 시각으로 지지고 있는 중이다. 글을 통해 먼저 만난 그의 첫인상이다. 좀 과한 게 아닌가, 용감하긴 한데 독불장군이겠군 싶었다. 뭐, 직접 만나 느낀 바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에게는 분명 당당히 유아독존하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함부로 정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형제’라는 의식이 있다면 마냥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칭찬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원하는 걸 알죠. 그래도 기존 기독교와 목사님들에 대해 공박하는 것 때문에 친구가 없이 외롭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갈 겁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게 좋아서 하나님도 나를 인정할 거라 착각하는 건 아니냐, 잘 되길 바라며 ‘나’를 중심한 복 구하기가 진정 ‘믿음’이냐, 덩치 커지고 번창하는 교회가 성공의 본보기냐…. 한국교회를 대표해 꼼짝없이 앉아서 걸쭉한 훈계 한 마당을 다 들었다. 새삼 그런 얘기를 왜 하냐 싶지만, 살펴보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어느 새 우리가 말하기 잊어버린, 포기해버린 내용들이다. 먹물 근성과 매너리즘으로 기름기 가득한 머리 속에서 이미 옛이야기처럼 슬그머니 놓아버린 것들. 그런 우리에게 그는 쓴소리 외치는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달콤한 독소가 아닌, 투박하고 쓰지만 생명이 있는 생수로 세상의 나그네(nagne:까페 이름)들을 쉬었다 가게 한다.
◇은진교회의 모토. 그가 식사하는 사이 파파라치처럼 몰래 방안을 찍을까도 했지만, 이 액자 글귀에 카메라가 머물렀다.
은진교회 이야기
“은진교회는 예배당이 없습니다. … 허리 아픈 마나님은 (제가 만든)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힘이 들면 드러눕구요, 큰딸 슬기는 예배하는 동안 두 동생 관리하구요, 저는 의자에 앉아서 주보 순서대로 예배를 인도합니다. … 일주일에 예배 한 번 하는데도 온 식구들이 긴장을 하고, 눈치를 보고, 앉았다 누웠다 하는 처와, 주인이 불교 신자라 너무 크게 하지 말라는 부탁으로 조용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 빼고는 어떤 예배당에서 하는 예배나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 주님만 주인인 교회로, 모이고 흩어지고 자랑하는 주님의 교회를 사모합시다.”
그의 까페에 있는 ‘은진교회 예배 엿보기’라는 글 중 한 부분이다. 600명 정도의 까페 회원에 비한다면 다섯 식구가 집에서 드리는 예배는 언뜻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95년에 개척을 시작했지만 IMF즈음 98년에 예배당을 닫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은진교회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다.
그리고 다른 방식의 목회를 이어간다.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가정을 지키되 목사로서의 직분도 충실히 완수하기 위해 남다른 땀을 흘리며 산다. 비관적으로 몰고갈 수도 있을 상황을 매번 뛰어넘으며 ‘노동’의 신성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매일 밤마다 너댓 시간 고물을 주운 후, 까페에 글을 올리는 일이 중요 일과. 현실적으로 번듯한 예배당을 유지할 상황도 아니고 사람들과 금새 친해지는 성격도 아니라 고민하던 중, 상대 체면을 차리지 않으며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게 ‘인터넷’이었다. “믿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가 만났고, 만나가는 하나님을 알리는 일에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양보가 없는 하나님’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을 내 쪽에서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죠. 사람들은 싫어하겠지만 인간의 ‘죄성(罪性)’을 계속 일깨우는 게 제 할 일입니다.”
◇관악산 등반 까페의 운영자이기도 한 전 목사. 산을 통해 자연의 기운을 마시는 건 그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우금녀 사모와 함께 관악산에 올라.
고물더미 위에 피는 십자가
따로 시간 내 기도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가 굳이 ‘전도’라 말하지 않고 그냥 자기 기반에서 ‘살아가라’고 말하듯, 시간과 장소를 가려 무릎꿇지 않는다. 사실 그럴 여유가 없기도 하다. 리어카 끌고 밤새 걸어다니는 거리가 바로 그의 기도처다. 시간도 밤이라 별별 상황과 만난다. 도둑 취급당하고 시비도 생기는 가운데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은혜를 베푸신단다. 산을 좋아해 홀로 산을 오르며 기도하는 시간 또한 귀중하다.
과거에 안 해본 일이 없단다. 고구마 장사, 양복점, 개 사육, 목수, 땅꾼…. 돈 버는 재주가 없다는 그는 수많은 직업을 거쳐 고물장수에 이르면서 굳은살을 키워왔다. 예전엔 돈을 벌기 위해, 신학생일 때는 학비를 마련하려고, 개척하고는 예배당 유지비로. 자신이 일하지 않을 때는 아내가 고생해야 했고 그 때문에 지금은 허리를 못 쓰는 아내에게 미안해 한다. 목사라고 믿음으로 앉아만 있을 수 없다며 팔 걷어 부치고 현장에 나선 건 그의 적극적 선택이었다. 나름의 목회를 이어가며 동시에 가정을 놓치지 않는 길.
◇계속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 최근에 구입한 트럭. 은진교회를 지탱하는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
고물을 줍는 건 쓰레기 더미에서 더 사용할 만한 물건을 찾는 일이란다. 고물로 생계유지하는 이들의 힘든 형편을 헤아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어렵게 사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장차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안착할 주거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다. 또한 제소자들이 출소해서 정착하지 못할 때 스스로 살 힘을 얻어 독립할 수 있는 공간이기 위함이다. 그가 운영하는 또 다른 까페 ‘사랑나누기’를 통해 모아지는 회비는 그 첫걸음이 된다. 우선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노인을 위한 도움을 지속하는데, 일회적으로 그치면 안 된다 한다. 십자가 내건 예배당은 없지만 인터넷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계속 꿈을 ‘도모’하는 중이다. 없는 이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삶의 현장에서 도울 지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십자가’, ‘복음’을 외치는 미련퉁이 그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척교회 목사’ 그 특별하고 고된 족속. 더구나 전 목사 계통의 고집 있는 부류들. 결기 있게 세상과 맞부딪치는 본인의 수고뿐만 아니라, 그 아내와 아이들과 평균 이하의 생활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다. 목사 자신의 고초와 사모의 눈물, 곧 사춘기를 맞을 아이들. 그네들에게 감상적으로 마음을 한껏 건네고 슬퍼할까도 했지만, 그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마음을 여미며 짐짓 씩씩함을 표했다.
굳은살과 근육과 탄 얼굴로 나서는 세상에 그의 길이 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을 알기 소원”하는 그에게 열리는 하늘이 있다. 멍투성이 몸과 마음이 마침내 위로받고 보듬어질 하늘의 품이 있기에, 현재의 자기 몸놀림에 확신을 갖고 박차를 가한다. 고물을 줍고 글을 쓰는 목사. 인생은 어차피 고물 아니냐 한다.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오래될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정미현 기자 papaya@c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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