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집사님, 저 좀 돌봐주세요"/ 博愛活則眞情幸福 2003-08-20 09:16:02 read : 202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목사님, 저희 아들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안보겠대요. 한번 오셔서 설득 좀 해주세요.” “목사님, 남편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남편하고 이혼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피하고만 싶어요. 당분간 교회에서도 저를 그냥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요.”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의 사생활이 목회의 일부가 될 때가 많다. 목사를 찾아오는 성도들의 경우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성도수 200여명 이하의 중소형교회라면 성도들의 고민을 듣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짧을 지경이다.
작은 교회는 그래도 낫다. 큰 교회의 경우, 성도들이 익명성을 요구하고 사생활을 감추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한 사례로 지난해 일산의 모 교회에서는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던 여성도가 가정내의 문제를 이유로 자살을 했다.
그 여성도가 자살을 택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음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뒤늦게 목회자와 성도 모두 “진작에 알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었다.
목회자들은 목회에만 전념하면서 성도들의 내면적 문제까지 모두 돌아볼 수는 없을까.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베델교회(담임:김철환목사).
개척목회 8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한 채 불혹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철환목사 부부는 박사학위와 함께 한국교회를 향해 한가지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스데반 돌봄사역’이 바로 그 것. 이름조차 생소한 이 프로그램은 올 초 미국판 교재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스데반 돌봄사역은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상담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교회에서 이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스데반 돌봄사역원장인 배현숙사모는 스데반 돌봄사역을 이렇게 정의했다.
“과거 한국교회는 신앙과 기도만으로 성도를 돌볼 수 있었지만 익명성을 중시하고 철저히 개인화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일대일 돌봄사역만이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 돌봄사역은 평신도들이 직접 위기에 처한 평신도의 돌봄자가 되어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일종의 상담자라고 볼 수 있지만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 상대의 문제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역을 다합니다. 모두들 잘난척하며 말하기만 좋아하는 시대에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중고등학교 시절 ‘마니또 게임’을 연상시키는 스데반 돌봄사역은 개교회 프로그램이다. 교회 담임목회자나 사모, 전도사들이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뒤 평신도를 교육할 수 있다.
평신도는 5개월동안 매주 2시간 30분씩 총 50시간의 훈련을 받아야 돌봄자가 된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10~20대 청년들보다 4~50대의 성숙한 성도가 돌봄자가 되는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돌봄자는 교육을 통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 노인들의 성향, 자살충동자들의 특징, 죽음에 이르는 단계 등을 배운다.
돌봄자와 피돌봄자의 만남은 교회가 관리한다. 담임목회자나 지도자가 돌봄이 필요한 성도와 일대일 사역을 주선하면 돌봄자는 피돌봄자를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피돌봄자를 만난 돌봄자는 충고와 조언을 삼가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돌봄자의 상황과 비밀을 지키는 것이 돌봄자의 임무다.
베델교회가 스데반사역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4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양재동에 교회를 개척한 직후였다. 이전에 목회했던 강북과는 사뭇 다른 강남은 성도들이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다. 구역예배조차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 배사모는 부친상을 당한 성도와 맞닥뜨렸다.
이미 미국에서 스데반 돌봄자과정을 마친 배사모는 이 성도를 꾸준히 관리하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했다. 그 결실로 당시 피돌봄자였던 성도는 지금 돌봄자로 활동하며 위암에 걸린 성도를 돌보고 있다.
또 한명의 돌봄자 김청환집사는 우울증에 걸린 성도를 담당했다. 김집사 역시 남편이 우울증을 앓아온 터라 우울증 환자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만나기조차 꺼려하던 피돌봄자는 점차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중증 우울증 단계에 진입할뻔 했던 이 성도는 대화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체험했고 불과 몇개월만에 교회봉사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스데반 돌봄사역은 한 사람에 대한 관리가 끝날 때까지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 돌보는 일대일 사역을 지속한다. 노인이나 말기암환자의 경우 죽음을 맞을 때까지 일대일 사역은 계속된다.
스데반 돌봄자로 활동하면서 성도들의 성품도 변화된다. 김청환집사는 무엇보다도 성도간에 받는 상처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저부터 모난 성품을 다듬으려고 노력하게 돼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 들죠.” 그도 그럴 것이 스데반 돌봄의 정신은 ‘사랑’에 있고 ‘비밀 지키기’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간에 소문과 비방을 잠재울 수 있다.
스스로를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은 곧 교회의 성숙을 이뤄낸다. 이러한 결과로 베델교회는 개척 3년만에 출석성도 1백명으로 성장했다. 성장지향·물량중심의 교회가 돌봄과 사랑위주로 거듭난 것이다. 베델교회에서 평신도들은 목회 동역자로 지칭된다. 돌봄과 상담으로 평신도간에 관리가 이뤄지고 목회자는 설교와 기도에만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스데반 돌봄사역을 통한 베델교회의 성장을 지켜본 한국교회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철환목사는 “최근 한 대형교단 목회훈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고, 양재2동 지역교회들이 스데반교육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베델교회는 지역교회를 대상으로 오는 9월2일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늘어나고 있다. 빈곤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이혼의 문제, 자녀양육의 문제 등 하나하나 손꼽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치유자가 되고자 하는 교회는 많지만 정작 그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데반 돌봄사역은 하나님을 통해 교회가 직접 나서서 성도를 치유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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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P세대는 386세대의 사회의식, X세대의 소비문화, N세대의 라이프스타일, W세대의 공동체의식과 행동이 모두 융합돼 나타나는 집단이다.
P세대는 최근의 사회 변화에 대해서 약 70%는 긍정적으로 응답했고 80% 이상은 ‘내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일어났던 이슈 중에서 월드컵의 경우 10-20대가 높은 참여와 관심을 보였고, 촛불시위는 관심은 높았지만 직접 참여한 비율은 5%에 그쳤다.
또 대선은 투표권이 없었던 고등학생층까지도 관심이 높았던 이슈였다. 여가활동은 주로 컴퓨터, 게임, 영화 등의 정적인 여가를 즐기고 있지만 향후에는 여행, 운동과 같은 동적인 여가를 더욱 많이 즐기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이들은 ‘의류와 외식’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 ‘물건을 살 때 충분히 사전 정보를 탐색하는가’라는 질문에 5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화장품 하나를 사기 위해 화장품 사이트를 4시간이나 검색한다는 30대 주부도 있다.
한달 평균 25만원 정도를 용돈으로 소비하며 의류와 외식 등 입을거리, 먹을거리에 가장 많은 돈을 쓴다.
P세대의 90%는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이중 80%는 ‘하루라도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답했으며 인터넷의 의미는 ‘즐거움을 찾고, 정보를 나누며 사람들과 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과 연락하기 위해 일반 유선전화나 휴대전화 이외에 문자메시지, 메신저, 채팅, e-메일, 게시판 등 가능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이용한다. 또 주중의 경우 10대와 20대는 인터넷에, 30대는 TV에 집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P세대를 특징짓는 주요 키워드는 ‘CHIEF’. 이를 풀어보면 권위와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도전(Challenger)’. 같은 의식을 가진 집단과 뭉치기를 좋아하고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의미의 ‘관계(Human Network)’.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Individual)’. 다양하고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중시하는 ‘경험(Experience)’. 무슨 일이든지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고 행동 자체에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어 ‘감성(Fun/Feel)’ 등이 이들의 핵심 특성이다.
은행의 도움으로 건축공사가 한창이던 때에 제법 돈깨나 있다는 장로 한 분이 어느 목사와 함께 다녀갔다. 대뜸 하는 말 “목사님! 수고 많습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저가 큰 피아노 한 대를 헌금하겠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순간 눈물이 핑 돌았지만 어느 정도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나는 괜찮다고 배를 한번 내밀었다.
다른 건 몰라도 피아노는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계속 우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5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피아노는 도착하지를 않았다. 배달 사고라도 생긴 것일까? 사실인지는 몰라도 “얼마 안 가 곧 문을 닫게 될 교회인데 내가 왜 헛된 곳에 돈을 쓰느냐?"는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내 귀에 솔솔 들려왔다. 최고급 외제 승용차에다 온갖 폼을 다 잡고 다니는 그는 요즘도 만날 때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른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방에서 어느 장로 한 분이 와서 며칠을 입 안의 혀같이 잘하더니 나보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단다. 건축도, 나머지 수천 평의 땅도, 자기가 다 알아서 매입하고 해결하겠으니 그저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만 잘 준비하라고 훈계를 톡톡히하며 목사가 믿음이 없어 걱정하고 있다고 나무란다.
가만히 듣고 보니 내가 믿음이 없긴 없는 것 같다. 목사의 본업인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라니 너무 고맙다. 산골짜기에 외롭게 엎드려 있다고 하나님이 돕는 천사를 보내셨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근데 이게 왠 일인가? 알고 보니 그는 상당한 전력(前歷)이 있는 자였다.
많은 사람들, 특히 취재를 나온 분들이 나에게 목회철학이 뭐냐고 묻는다. 촌놈에게 무슨 허울 좋은 철학이 필요하며 또 그런 게 있겠냐만 굳이 말하라면 ‘博愛活則眞情幸福’(진정한 행복은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의 이런 철학과는 전혀 딴판인 사람들을 나는 이 골짜기에서 너무 많이 경험했다. 조금 일해 놓고 자기가 다했다고 생색내고 다니는 사람,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토라지는 사람, 자기 앉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고 시비 거는 사람, 먼저 안 섬겨준다고 토라지는 사람, 좋을 땐 ‘호산나!’ 하고 간(肝)까지 빼들고 외치다 수틀리면 일순간 ‘바라바!’ 하고 인정사정 없이 돌아서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이 골짜기에서 많이 만났다.
잠시 서서 돌아보니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 치고 섬겨달라고 목에 힘깨나 주던 이들은 교회가 함께 짐을 나누어져야 할 때는 정작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나는 개척 처음부터 교회에 깃발 두 개를 걸어두었다.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상징하는 태극기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상징하는 교회기이다. 물론 여기에는 엄청난 영적인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거룩한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사명과 책임을 잃어버린 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아파하고 있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특권만 내세우고 사명과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특권의식은 곧 죄’라는 어느 신학자의 말을 한번쯤은 되새겼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동안 책임과 사명이 없는 지도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며 몸부림쳐 왔던가?
우리 모두가 만 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주님의 모습처럼 낮고 천한 이 땅에 섬김의 왕, 종의 모습으로 오신 우리 주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면 정말이지 우리 교회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博愛活則眞情幸福!’ 섬김은 행복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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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모델은 "오직 예수님"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동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예수님을 닮은 기독교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평생을 예수님의 사랑실천에 헌신한 기독교인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 예수님께 사로잡힌 사람
민수선전도사. 재소자를 돌보는 보람선교회 창립식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지만 그에게 남다른 예수님의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그 아름다운 만남을 잊지 못해 서해대교 개통이후 한참 해돋이 마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충남 당진군 소재 왜목마을에 찾아갔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최근 깔끔하게 신축된 듯한 콘도나 팬션주택과는 거리가 먼 허름한 농가주택이었다. 평생을 이웃을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고, 지금도 재소자들의 영혼구원에 노력한 사람에게는 가혹해 보일 정도로 오래된 농가주택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예수님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런 외형적인 조건이 큰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무언의 충고를 하는 듯 했다.
4년 전, 영동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동안 입원한 후 자식들은 더 이상 그녀가 재소자들을 돌보지 못하도록 이곳 낮선 마을로 보냈다.
“이제 자식들도 자리 잡고 살게 되었고 부모님 편히 모시겠으니 교도소선교 그만두시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여생을 즐기세요.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뒷바라지 했으니 이제는 자식들이 효도하겠다” 는것이 이유였다.
큰아들은 부모님이 타고 다니던 승용차까지 폐차시키면서까지 교도소선교를 못하게 했다. 큰 아들은 고급 경찰 공무원, 둘째는 대기업 직원, 셋째는 해군사관학교 졸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부족함이 전혀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 될만큼 효도자식들을 두었다. 그러나 3형제는 용돈을 보내주면 모두 재소자들의 선교에 사용하는 부모님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자식들의 노력은 민전도사의 결심을 막지 못했다.
집에서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편한 여생을 즐길 나이인 그녀가 낮선 타향에서 여러 교도소를 다니면서 연고자 없는 재소자들을 돌보는 까닭은, 예수님의 사랑만이 재소자들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지금은 시내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홍성교도소에 다니면서도 재소자 영혼구원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65세.
● ‘큰 누님’으로 불린 교정공무원
그녀가 처음부터 전도사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3월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재소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남다른 믿음을 소유한 그녀는 재소자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차츰 그들에게 빠져들었다. 재소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생의 즐거움이 되었고, 재소자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복음의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봉사가 마냥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주의의 시기와 질투, 인사상 불이익, 좌천 등의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당시 최고의 권력가와 정치가들이 수용되는 서울구치소에서 잘나가는 민부장으로 교정직공무원의 ‘큰 누님’으로 통했고, 청렴한 공무원으로, 또는 재소자들의 어려움을 보면 못 참는 눈물 많고 사랑 많은 ‘큰 누님’으로 통했다.
그 ‘큰 누님’은 26년 동안 오로지 예수님에게 배운 사랑을 실천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어려운 재소자가 있으면 자신의 집에 데려와 따듯한 밥 한 그릇을 먹이며 새로운 삶에 희망을 심어주었고, 자식을 양육할 수 없는 재소자들의 자식들을 좁은 자신의 집에서 길러내면서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 실천에 평생을 바쳐왔다.
자신이 만난 80% 이상의 재소자들이 부모들의 무관심과 가정환경 때문에 죄를 범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재소자들이 재범을 저지르지 않도록 사랑과 헌신의 복음을 심어주었다.
● 오직 남을 위해서만 살아온 삶
“삶의 유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우선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남에게 이익도 손해도 주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남을 위한 삶을 살았지요.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면 죄는 밉지만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그들을 불행으로 몰고 갔지요. 그들에게 자신의 일생을 통해 단 한번 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예수님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았다. 정복을 입은 공무원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재소자를 도와줘도 예수님은 사라지고 공무원의 본문만이 강조됐고, 이런 고민이 결국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85년 명예퇴직을 신청하게 만들었다.
퇴직 이후 18년 동안 퇴직금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재소자의 친구로 살아오는 데 써 버렸다. 이제는 민전도사에게 남은 검은 나약해진 육체와 평생을 동반자로 자신을 지켜온 남편인 배선관목사 뿐이다.
30년 동안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하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한 배목사(69세)만이 유일한 민전도사의 후원자로 또는 동업자로 그녀의 옆을 지켜주고 있다. 자신의 퇴직금을 남인천교회를 건축하는데 다 내 놓고,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밖에 더 이상 나눠줄 것이 없어 보이는 배목사. 그와의 짧은 만남도 긴 여운을 남겼다.
“많이 가졌다고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배목사(69세)의 표정에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목회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예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 남은 여생 잃어버린 영혼 구할터
30년간을 한번도 새벽예배를 빠진 적 없던 민전도사. 요즘 야맹증으로 조금만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위의 권위로 보람선교회를 창립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사회와 단절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빌면서 아쉬운 짧은 만남을 접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헌신에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기대하면서 아쉬운 만남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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