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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적인 복음보다 은총과 섬김의 복음을 전하라
    2002-02-17 23:57:11   read : 141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장지향, 성공지향에서 벗어나 섬김지향의 목회가 인정받아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은총과 섬김"이란 두 단어는 모든 사상과 종교로부터 기독교를 구별지어 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두 단어를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만큼 교회는 성숙하게 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 그릇된 이단과 행실이 나타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은총"이란 말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왜 이렇게 은혜가 없는가 라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성도들간에 은혜 받으십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상호간에 인사처럼 되어 있다. 이외에도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잘못되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성도들이 사용하는 은혜이란 말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모든 영적인 축복을 은총(은총은 은혜 "은"자와 사랑 "총"자를 가리킨다)이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진 바 되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라 하였다. 은총의 특성은 이미 은총을 입은 자는 누구에게도 은혜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인들 중에도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자들은 은혜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를 아직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은혜 없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자신이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은혜 입은 사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은혜를 이미 받은바 되었기 때문에 은혜 받으십시다 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은혜 입은 자들은 은혜를 더욱 깊이 알아갈 필요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섬김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된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네'라는 찬송가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항상 감사할 뿐이다.

    1. 왜 은총이 더 필요한가?

    교회 안에 참과 거짓은 은혜를 입은 자인가 아닌가가 결정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주어졌다. 첫째는 영원하신 명정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기 때문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둘째는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가된 의이다. 믿음의 은혜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게 하신 은혜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의 성결을 위하여 인치신 성령이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보혜사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주셨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입은자가 된 것이다. 아직도 은혜가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성도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주신 은총을 세어보고 감사하는 것뿐이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삶을 사는 것이다(롬14:7-8). 현대 교인들이 '은혜 많이 받으십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흔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주셨고,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무슨 새로운 은혜가 더 필요하겠는가. 아직도 부족해서 더 달라고 하겠는가.

    2. 섬김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두 가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첫째는 거듭남의 은혜이다. 우리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거듭남의 은총을 주셨다. 둘째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삶을 위하여 성령을 은혜로 주셨다. 왜 거듭난 성도에게 성령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까. 섬김을 위해서이다. 성도는 성령의 은혜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섬김은 은혜이다. 곧 성령의 은혜이다.

    진정으로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자녀는 부모에게 섬김으로 효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참된 은혜를 깨닫지 못한 불효자식은 죽을 때까지 부모에게 달라고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섬김을 알지 못한다. 유학 다녀온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병약한 부모를 길거리에 내어버리는 자식은 기본 인륜(은혜)을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섬기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은혜 입은 성도는 삶에 섬김의 열매가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세상의 봉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성도의 섬김은 오직 성령으로 섬기는 것이다. 자기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섬기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으로 섬기는 자가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버림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서 자신을 섬기는 자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겸손하던 그가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삼상15:12), 또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불순종에 대하여 책망을 듣는 자리에서도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고 애원하였다'(삼상15:30).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직분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성령으로 섬기는 자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 먼저 성령께서 자신을 제어하게 한다. 성도의 섬김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섬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섬김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되어야 한다. 내 자신이 영적으로 준비되지 않고 누구를 섬길 수 있겠는가. 무절제한 생각과 생활을 버리고 바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변화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아름답게 하기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자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격을 세우기 보다 업적을 이루려는데 전력한다. 사람은 남을 섬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섬겨야 한다. 이 말은 온전한 자아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 스스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인간의 욕망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분출하는 용암과 같이 세상을 초토화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 안에 일고 있는 타락한 욕망을 제어하시고 거룩함으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신다.

    역사 속에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어하는 일에서 실패하여 오명을 남기고 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제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지혜자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하였다.

    나아가서 올바른 섬김을 해야 한다. 둘째는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섬김은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 없는 섬김은 위선에 불과하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 없는 섬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사랑 없는 은사는 헛된 것이다. 사랑은 상대의 허물과 죄를 덮어준다. 진정한 용서 없이 섬김은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 진정으로 섬기는 자가 되시려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다.

    한국교회의 교단과 교파의 분열, 개교회 안에 분쟁은 그리스도인들이 섬김의 도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손봉호 교수가 한국 사회에 소영웅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말은 교회 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교회 안에 소영웅이 더 많은지 모른다.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가 많으면 분파도 많다고 하였다(잠18:1). 죄가 많으면 주관자가 많아진다고 하였는데(잠28:2), 한국교회에 분파가 많은 것은 목회자들의 허물과 죄가 많은 연고라고 생각한다. 일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힘으로 교단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자신의 욕망에 맞지 않는다고 분리하는 무리들이 있다. 한국교회의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의 허물과 죄를 용서할 때 이루어진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 간에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섬김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고대 교회 성도들은 궁핍한 가운데 관대하게 남을 대접하였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마6:3). 섬기는 자가 군림하는 이상한 교회를 보게 된다. 해외에 파송 받은 선교사들 가운데 뒤에서 군림하려는 목회자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대형교회들이 가난한 교회를 돕고, 교단회비를 낼 때에는 섬기는 자로 내어야 한다. 그리고 은혜 입은 성도는 자기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을 버리고 참된 섬김의 도를 다해야 한다. 믿음의 조상들이 객을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한 것처럼, 대접하는 자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미치는 것이다.

    넷째는 서로 봉사하는 것이다(벧전4:10). 봉사의 삶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살도록 각각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이 은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는 봉사의 은사이다. 한국교회는 구조적으로 봉사의 삶을 사는데 어려움이 있다. 지나치게 대형화된 교회들, 수없이 분열된 교단과 교파는 참된 봉사의 삶을 방해하는 장애요소이다. 인격적인 교류가 없는 단절된 인간 관계에서는 참된 봉사의 삶을 살수 없다.

    3. 희생을 위하여

    예수님의 생애는 은총을 입은 성도가 어떠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교훈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다. 사람들의 대답은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선지자들 중에 하나와 같다는 것이다. 그 때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다.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하였다. 주께서 크게 기쁘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하셨다. 베드로의 확고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이다. 그리고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주님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그는 깨달은 것이다. 베드로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남이 깨닫지 못한 것을 주님에게서 발견하였다. 베드로는 주님의 정체의 문을 연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그저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 앞에 계신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하였다.

    예수님이 과연 누구인가의 문제의 해답은 그분이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는가의 문제로 옮겨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베드로처럼 칭찬을 듣는다. 그러나 이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16:23)라는 책망을 듣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 이제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만 인류의 죄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셨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곡히 부탁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고 하였다. 그때 예수께서 불호령과 같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베드로의 신세가 처량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명확한 대답을 주었지만, 그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지하였다. 베드로의 생각은 주님 주님은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제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일은 결코 주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베드로는 철저하게 기복적이고 세속적이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현세에 형통하기만 바라고 있다면 처량한 베드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하여 고난과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 가난도 저주요 질병도 저주요 고난도 저주라고 가르치며 사업 잘되고, 자식 잘되고 건강한 것이 주님 믿는 대가라고 가르치는 기복적인 가르침을 중단하여야 한다. 이런 가르침은 '사단의 발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도를 가르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곧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희생의 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베드로는 아직 이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 받은 이후에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이러한 삶을 살게 되었다. 성령 받은 증거는 기적과 능력과 방언이 아니라, 참된 희생의 삶이 그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한없는 은총에 대한 보답의 삶을 위하여 희생과 섬김을 다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성령을 통해서 이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진정한 섬김과 희생이 없다는 것은 진정으로 은총을 깨달은 자가 많지 않다는 증거이다.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정통교회의 3대 개혁가인 성 어거스틴과 루터와 켈빈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들 시대에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이 오늘 시대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의 구원이 이성과 의지적 결단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은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하여,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성도는 희생과 섬김으로 참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교단들도 있다. 교회는 의지적으로 결단할 능력이 없는 유아들에게 부모의 믿음으로 유아세례를 주어 하나님의 은총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인간의 의지를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루터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서 중세 교황교회의 타락상은 주교들의 무지와 거짓 가르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일생을 교황교회의 잘못된 교리들과 가르침을 지적하는데 전력하였다. 그러나 존 켈빈은 중세 교황교회의 타락상은 교회의 교리적 모순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교황교회의 교권주의가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 인정하고 있다. 그는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개신교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절대적 필요를 느껴야 한다. 이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왜곡된 진리'와 구조적인 모순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자신을 비우고 '섬김과 희생'을 위하여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버님은 은퇴하신 시골교회 목회자이시다. 평생을 산골에서 목회를 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였다. 많은 도시 목회자들과 부흥사들의 설교를 접하게 되었다. "가장 위대한 목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금언처럼 되어 있다. 신학공부해서 무엇에 쓰느냐, 많이 공부하면 자유주의 신학자가 된다. 산에 가서 소나무뿌리 뽑아라. 그러면 엄청난 능력을 받는다. 많은 목회자들이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강요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 물론 신학교가 영성의 대안이 아님을 나는 인정한다. 한국교회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너무 소홀히 하고 있고 생각한다.

    나는 사도 베드로가 기록한 베드로서를 읽을 때마다 무식하고 성질 급한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놀란다. 분명한 것은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설교로 보나, 베드로서의 기록을 볼 때 그는 구약에 능하였고, 또한 바울의 많은 기록들을 섭렵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그를 가리켜 기도만하고 능력받은 사람이라 하겠는가.

    21세기 교회성장의 모델로 미국의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한국교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책을 읽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교회가 대기업의 조직처럼 기계적으로 목적을 향해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마치 성공한 벤처 기업의 성공사례을 읽는 것처럼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그 모든 (영적)계획과 조직들이 교회를 어떻게 성공시키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참된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숫적 성장과 양적 팽창을 위해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교회의 모든 영적인 계획과 조직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28절과 에베소서 4장 12절과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기록하고 있다. 주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희생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가 이다.

    가슴 깊이 넘치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 아니하고는 성도는 결코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삶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세상에 성공에 미련이 있는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이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4-27). 여기에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은 은총 입은 자는 은총 입은 자로서 섬김과 희생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고 하셨다. 그리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기적과 권능을 행하지만 그들의 모든 행위는 불법에 해당되는 행위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죄목은 하나님의 은사전용 죄목이다. 섬김과 희생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사로 자신들이 치부한 것이다.

    오늘 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섬김과 희생의 결여이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지나치게 과시적이라는 의미이다. 섬김과 희생은커녕 자기 교만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들 간에도 티코 목사가 있고 에쿠스 목사가 있고, 목회자들 모임에도 성도 몇 명 이상의 목회자들의 모임이라 하여 스스로 특권의식에 빠지고 있다. 도저히 노력해도 성장에 한계가 있는 외지 목회자들의 소외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가슴에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shift)가 일어나야 한다. 성공 지향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목회자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섬김 지향형의 목회자가 인정받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 목회자들의 메시지가 변해야 한다. 믿음과 기적에 대한 신비적인 복음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하게 하는 은총과 공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새로운 활력과 개혁을 주고,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은총과 공의에 있다. 이것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고리모임(CORI): 교회 하나됨을 위한 연구모임
    www.cori.hanmom.com
    김진오 목사 (새김포은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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