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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언어로 말하라
    2002-02-08 22:14:32   read : 158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정동섭
    dschung@hananet.net
    침례신학대학교 교수



    사랑의 정의

    우리는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도록 만드셨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Michael Quoist의 “생명의 기도”(Prayer of Life)라는 시가 생각난다:


    주여, 나는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해야만 하겠습니다.
    나 자신은 욕망 덩어리입니다.
    내 마음도, 내 몸도, 사랑할 이성을 밤새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을 아무리 내저어도 사랑의 대상을 붙들 수가 없습니다.
    나는 혼자이기에 둘이 있고 싶습니다.
    내가 마릉ㄹ 해도 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 삶과 내 생활의 열매를 거둘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부요해도 나누어 받을 사람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도대체 사랑이란 어디서 오며,
    또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주여, 나는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주여, 보십시오. 오늘 밤도 내 사랑 전체가 타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다른 사람을 즐거워하고,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완전해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가르치셨다.

    아담을 만드신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사람의 경험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외로움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친밀한 관계, 사랑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사랑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William Glasser라는 심리학자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자신과 타인에게 가치있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행동동기의 두 가지 원천이다”고 하였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사랑을 주고 받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성이나 동성 친구와의 사랑을,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을 평생 지속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시인은 사랑은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존재할 뿐이라고 하였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Erich Fromm은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상대방에 대한 지식,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존중과 수용, 그리고 상대의 욕구에 대한 자발적 반응의 관점에서 사랑을 정의하였다. 반면에 미국의 정신과의사 Scott Peck은 사랑을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정신적 성장을 보양해 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사랑은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상대방의 필요와 고통에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쌍방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안전과 만족과 발전이 당신의 만족이나 안전이나 발전 못지 않게 중요하게 느껴질 때 사랑은 존재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몇 년 전만 해도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었다. 인류역사를 더듬어보면 사랑은 시인, 철학자, 그리고 소설가들의 영역이었다. 심리학자들을 비롯한 사회과학자들은 사랑과는 무관하였다. 사랑은 과학적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나 신비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사랑 연구는 최근 들어 사회과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더 이상 금기시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사랑에 대한 수백 가지의 연구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우리는 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과 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통해 사랑에 대한 논의를 접한 적이 있지만, 사랑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은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Robert Sternberg였다. 그는 사랑에 대한 삼각형 모델을 개발해냈는데, 지금까지 나온 이론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사랑은 삼각형과 같아서, 열정과 친밀감, 헌신이라는 세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정상적인 남녀간의 사랑에는 생리적 자극과 신체적 친밀감에 대한 욕구, 육체적 매력으로 특징지워지는 에로스적인 면이 있고, 가까움과 나눔, 솔직한 의사소통, 지원과 위로로 특징지워지는 친구간의 친밀함, 즉 phileo의 사랑이 있고, 헌신과 책임감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의지적 결단으로서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남편과 아내, 이렇게 사랑하라>는 책의 저자 Les Parrott 부부는 “낭만적 열정과 정서적 친밀감, 그리고 배타적 헌신은 사랑의 요리법에서 각각 뜨겁고 따듯하고 차가운 재료들”이라고 하였다.

    사랑의 유형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친구간의 우애적이고 동료애적 사랑, 이타적 사랑, 소유적 사랑,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사랑, 유희적인 사랑, 열정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Hendricks 교수는 주장하였다.

    서울대학교 김중술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기에 넷째로 중요한 것을 든다면, 서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 젊은이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첫 눈에 반하는 사랑, 즉 낭만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현대최고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Scott Peck은 감정적인 사랑,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은 첫째, 의지나 의식이 있는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며, 아무런 노력이 없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상대방의 성숙과 성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랑은 “성적 충족이나 종족 보존의 본능”을 위한 인간의 반응일 뿐이라고 하였다. 물론 낭만적인 연애감정은 사랑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이것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친구간의 우애적 사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많은 연예인들 간의 사랑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사랑은 파멸과 이혼으로 끝나기가 십상이다.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기업만큼 엄청난 기대와 소망으로 시작되었다가 정기적으로 실패하는 기업도 없을 것”이라고 Erich Fromm은 간파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실망하지 않지만 배우자에게 실망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경험을 통하여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가정사역의 선구자 David Mace는 전세계 78개국을 순회하고 나서 세계에는 문화를 초월하여 naturalism이라는 신화가 결혼을 불행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자연주의, 즉 결혼식만 올리고 나면 사랑은 저절로 된다는 믿음이다. 대부분의 남녀 젊은이들은 일생동안 계속될 결혼을 준비하기 보다는 결혼식을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한다고 가정사역자 Norman Wright도 지적하였다. 나 자신도 28년 전 정작 결혼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서 결혼식, 신혼여행, 가구장만에만 신경을 썼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남편된 자들아, 지식을 따라, 이해심을 가지고 아내와 동거하라”(벧전 3:7)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였다. 사랑에 대해, 아내에 대해, 남녀차이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결혼생활을 시작했었다. 우리는 결혼생활 처음 8년간 서로의 성장배경에 대한 이해부족과 역기능적 의사소통, 남녀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가정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후 28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가정사역을 전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기술을 습득하는 문제”임을 터득하게 되었다. 사랑은 배워야 하는 기술이며 능력이다. 우리는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델을 봄으로, 그리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설교를 듣고 배움으로, 그리고 이와 같이 학습한 것을 행하고 실천함으로 사랑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내가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사랑의 언어

    우리는 종종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상대방도 똑같이 믿으리라고 추측한다. 나에게 의미하는 사랑이나 상대방에게 의미하는 사랑이 같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두 사람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같은 뜻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자녀가 관심과 시간을 원하는데 부모가 돈이나 선물로 사랑을 대신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남자 친구가 칭찬과 인정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데, 여자 친구가 만날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면 사랑이 전달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내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싶어하는데, 남편이 비싼 반지나 목걸이를 선물한다면 아내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수가 있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은 책인데 초콜릿을 선물하면 그것이 얼마나 사랑으로 전달되겠는가?

    지난 10여 년 간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은 아마도 John Gray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와 Debora Tannen의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한언)이라는 책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John Gray는 남녀는 서로 다른 세계인 화성과 금성이라는 외계에서 와 지구에서 서로 적응하며 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화성과 금성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오해가 빚어지고 갈등이 일어난다고 지적하였다. 남녀는 언어가 다른 것처럼 사랑을 표현하며 느끼는 방법도 다양하다. Tannen 교수는 남자는 사실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보고하기 위한 대화를 하고, 여자는 감정과 과정을 나누기 위해 공감을 나누기 위한 대화를 한다고 대화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자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때 여자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표현한다. 데이트할 때 여자가 “오늘 달이 참 밝지요”하고 말하면, 남자는 “오늘이 보름이잖아요”하고 말한다. 나는 말로나 글로 인정하는 말이나 칭찬을 들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내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대화상대가 되어줄 때 남편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나는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아내가 돈걱정을 하지 않도록 생활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어떻게 해 줄 때 아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를 배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바쁜 학기중에도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두어번씩 보문산 입구로 드라이브를 하고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당신은 상대방이 어떻게 해 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가? 사람마다 성장과정에서의 경험에 따라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다. Gary Chapman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이 사랑을 경험하는 언행을 “5가지 사랑의 언어”(language of love)라는 말로 유행시켰다.

    첫째, 어떤 사람에게는 손으로 쓰다듬는 것, 포옹하고 안아주는 것이 일차적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막 10:16). Gary Smalley는 이것을 “의미를 담은 터치”(meaningful touch)라고 표현하였다. Helen Fisher라는 작가는 <사랑의 해부>라는 책에서 “인간의 피부는 풀밭과 같아서, 각 풀잎의 말초신경이 너무나 예민하여 조금만 닿아도 인간의 두뇌 속에 그 순간의 기억을 각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신의 가족은 “많이 만져주는 편이었는가?” 아니면 “적게 만져주는 편이었는가?”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는 당신이 성인으로서 만져줌을 경험하는 것이 어렸을 때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만져줌을 받았는가와 정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저의 어머니는 문맹이었지만, 저를 종종 쓰다듬어 주시고 손을 만져주시곤 하였다. 따라서 지금도 나에게는 아내나 아들을 손으로 만져주고 포옹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당신 부부는 아마 서로 다른 양의 만져줌과 서로 다른 종류의 만져줌을 원할지도 모른다. 서로 어떻게 만져주는 것이 좋은지 상의해 보라. 손을 부드럽게 만져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긴 시간 포옹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만져주거나 포옹함으로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야.” “미안해.”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어떤 이에게는 상대로부터 “미안하다, 괜찮아, 고맙다, 잘했어, 사랑해, 나는 네가 좋다”와 같이 사과, 칭찬, 격려, 애정표현을 듣는 것이 일차적 사랑의 언어가 된다. 남자는 여성으로부터 인정하는 말을 듣지 못하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반면에 여성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이해받을 때 더욱 여성다워지며 본래의 성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남자는 인정받을 때 최선을 다하게 되고 여자는 남편의 애정을 확인할 때 최선을 하게 된다고 한다.

    William Glasser라는 심리학자는 비난하고 탓하고 불평하고 잔소리하고 위협하는 투의 말이 사랑하는 관계를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말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하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칭찬하고 인정하는 말은 사랑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사람은 사랑과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하였다.

    셋째, 선물은 중요한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남자는 비싼 옷이나 자동차와 같이 값비싼 물건을 사주어야 사랑이 전달된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선물의 크고작음에 관계없이 같은 점수를 메긴다. 자상한 관심이 배어있는 선물이면 큰 사랑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선물을 받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받을 때 감동한다.

    강의중에 학생들은 나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마실 주스를 사오기도 하고 커피를 사오거나 심지어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할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커피와 초콜릿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수나 율무차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가을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감과 밤, 그리고 배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선물이라고 항상 사랑의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다, 격에 맞지 않게 너무 비싼 선물을 하면 뇌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고급스런 만년필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선물할 때 그것이 오랫 동안 소중한 사랑으로 기억되고 진정한 사랑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넷째, 사랑의 언어는 봉사의 손길을 제공하는 것, 즉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다. 상대방이 힘들어 할 때 일손을 도와주는 것이다. 방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대신해주는 것이 아내에게 커다란 사랑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숙제를 할 때 컴퓨터를 쳐주거나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과 같이 도움을 받을 때 봉사의 손길이 사랑의 언어인 사람도 있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를 돌보아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가구를 옮겨주는 것이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사랑을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이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함께 외식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영화구경을 하면서 취미활동을 함께 하며 나의 말을 경청해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남자와 여자에게 함께하는 시간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남자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자는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함께 나눌 때 같이 있다고 느낀다. 남자는 물리적 공간을 함께 할 때, 여자는 심리적으로 함께할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남자는 운동을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함께 할 때 친근감을 느끼는데, 여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Paul Tournier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책에서 “적어도 한 사람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이는 아무도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마 7:12)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2절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욕구를 알아야 하고 이것을 채워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상대방의 체감욕구를 알아서 이를 채워줌으로 그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Willard Harley라는 심리학자는 남편의 사랑의 언어로 성적인 만족을 얻는 것, 함께 취미생활이나 놀이상대가 되어 주는 것, 칭찬받는 것 등을 제시하였고 여자의 사랑의 언어로, 애정표현을 듣는 것, 감정을 공감해주는 말상대를 해주는 것을 들었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신체적 성적 친밀감인데, 여자가 원하는 것은 정서적 낭만적 친밀감이다. 남자는 존경받고 싶은데 여자는 사랑받고 싶어한다. 지식을 따라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데, 자신이 주는 사랑과 관심이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랑과 관심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사랑을 전달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한국어로 “당신을 사랑해”하고 말하는데, 상대방은 독일어로 “Ich Liebe Dich”라고 말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데,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결혼한 부부들이 가출, 별거, 이혼, 재혼, 외도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언어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 한 가지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나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일차적 사랑의 언어와 상대방의 일차적 사랑의 언어를 잘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의 언어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환경의 영향을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언어를 식별하는 법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식별할 수 있는가? Gary Chapman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본인이 친구나 배우자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그 행동이 자신에게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상처받는 것에 정 반대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된다는 말이다. 본인이 성장과정에서 박탈당한 부모의 사랑 또는 박탈당한 축복이 사랑의 언어가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무시하는 말이나 거절하는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는다. 따라서 나에게는 인정하는 말이나 축복하는 말, 칭찬하는 말이 일차적 사랑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자신이 친구에게 또는 배우자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 또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바로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자신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사랑의 언어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말, 어떤 행위, 어떤 태도가 각자로 하여금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지를 솔직히 알리고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면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엉뚱한 기대를 하고 실망할 때가 많다. 우리가 상대방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사랑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엡 4:15, 25). Mark Twain은 “사랑은 가장 빠른 것 같지만 자라는 것 가운데 가장 느리게 자라는 것이 사랑이다”고 하였다.

    사랑은 상대방의 표현되거나 표현되지 않은 욕구에 대한 자발적 반응이라고 하였다. 사랑은 상대방의 욕구와 필요를 알아서 채워줌으로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형제 자매와 어울리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필요와 욕구를 배워서 이를 충족시켜주는 연습을 하여야 한다.

    어떤 기자가 한 번은 테레사 수녀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녀의 사역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하나님의 평가에는 성공과 실패라는 항목이 없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평가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1~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본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손과 입을, 그리고 온몸을 사랑의 도구로 주셨다. 말과 입으로, 손으로, 그리고 행함으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연습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며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며,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만약 다시 결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습니까? 51%의 여성은 “아니오”, 72%의 남편이 “예”라고 대답했다. 결혼에 만족한 여성은 30%, 남성은 70%로 나타나고 있다. 사랑은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기술이며 능력이다. 대부분의 부부는 “무식을 따라” 동거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두 사람, 둘째 서로를 온전히 받아주는 두 사람이다. 남편와 아내는 서로의 성장과정과 성격차이, 남녀차이, 가치관, 습관과 기호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과 소원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대화기술과 문제해결기술이 필요하다. 다음은 사랑을 배우기를 원하는 부부에게 권하는 책이다.

    게리 채프만.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 장 동숙 역. 생명의 말씀사, 2000.
    레스 패롯 & 레슬리 패롯 부부 지음. <결혼, 남편과 아내, 이렇게 사랑하라>. 요단, 2000.
    폴 투르니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정동섭 역. IVP, 2000.
    데이비드 메이스. <부부사이의 사랑과 분노>. 진흥, 2001.
    정 동섭. <당신의 가정도 치유될 수 있다>. 하나, 1995.

    (월간 <교회와신앙>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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