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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에 대한 이해 /장로직의 세속화
    2002-07-12 21:34:59   read : 378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광호 목사(철학박사, 고신대)


    1. 서론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다. 이는 다른 어느 동물도 가지지 않고 가질 수 없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선물이
    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당신의 구원을 계시하심으로써 자기 사
    랑을 확증하셨던 것이다.
    성경에는 일반언어 이외에 방언에 대한 기록이 여러군데 나온다. 방언의 목적
    은 무엇이며 왜 인간에게 일반언어 이외에 방언이 필요했던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방언이 필요한가, 그리고 방언이 있는가? 이 글은 방언에 관
    한 이해를 돕고자 하여 쓰여졌다.

    2. 방언과 언어
    방언은 언어의 일종이다. 즉 인격적 의사표현이다. 동물들은 언어를 사용하
    지 않는다. 어떤 괴성이나 소리를 지름으로써 의사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언어
    와 다르다. 인간 역시 언어가 아닌 소리를 동시에 낸다. 그 소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하지만 그것은 언어와 다르다. 그러므로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을 하
    느냐의 여부가 곧 언어인가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란 인격자들 상호간에 나누어지는 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인격을 가진 자가 자기 의사를 설명하여 표현할 때 상대방도 언어를
    통해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갓난아기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아기의 소리는 미성숙한 언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들
    의 입장에서 보면 소리에 지나지 않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것은 다른 동물들
    의 소리와는 엄연히 다르다. 즉 동물들의 단순한 소리와는 다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서 논외로 한다.
    결국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방언이 언어라는 점이다. 즉 단순한 소리가
    아니며 의사전달 방법이다. 성경에는 오순절 성령사건이 있었을 때 방언이 있
    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사도교회 시대에 교회 안에 방언이 있었던 것
    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방언들은 모두가 특별한 언어로써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3. 방언의 목적
    방언이 있는 목적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방언은 하나님으로부
    터 주어진 은사이다. 즉 은사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있었던 하나님의 특별
    한 선물이다. 이러한 방언들이 있었던 것은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강하게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었
    다. 이는 사도교회 시대에만 있었던 여러 가지 이적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설
    명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목적은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서 있었던 은사가 아니
    다. 비록 개인 성도들이 받은 은사대로 활용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
    를 위한 은사였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방언은 단순히 개인의 기쁨
    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교회의 세움을 위해 주어졌던 것이다. 비단 방언을
    말하는 성도들에게 그 은사로 인한 커다란 즐거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차적으로 개인 성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속한 전체적인 각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4. 오순절 사건때의 방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때의 방언은 일반언어였다. 이후 사도교
    회 시대에 있었던 방언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방언은 오순절 강림의 짧
    은 시기에 있었던 단회적인 것이었다. 즉 오순절 성령이 오셨음을 세상에 선
    포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오순절 때의 방언은 사도들을 중심한 성도들이 다른 지역의 언어들을 구사하
    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언어를 공부하거나 배운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역사적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던 여러 사람들의 출
    신지방 언어로써 성령강림의 '큰일'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러자 각자가 고향
    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언어들을 거기에서 듣게 되었을 때 심히 놀라와 했던
    것이다.

    5. 사도시대 교회에서의 방언
    사도시대 교회에는 또 다른 특별한 방언이 있었다. 그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
    로서 다른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언어였다. 이를테면 하나님
    이 알아 들으셨으며 통역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
    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의하면 사도교회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말했다. 어
    떤 경우에는 방언을 말하고 있는 당사자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할 때가 있었지
    만 그렇다고 방언 자체에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
    는 자는 통역하기를 사모하고 교회에서 공적인 방언을 할 때 통역하도록 요구
    했던 것이다(고전14장 참조). 이 말은 곧 방언이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
    니라 교회를 위한 방언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6. 우리시대의 방언은?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방언이 필요하지 않다. 완성된 계시의 말씀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주어진 후에는 더 이상 방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
    를 세움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조명으로써 모든 것이 완전히 충족되기 때문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가운데는 방언을 말한다는 자들이 많
    이 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기쁨이 엄청
    나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언이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을 신
    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가 더욱 깊이 생각을 해 볼 때 이 문제
    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예를들어 지금도 신구약성경이 완전히 번역되
    어 있지 않은 지역의 교회들 가운데서 과연 방언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는 신학적으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신구약 성경을 가
    지고 있으면서 말씀을 통해 신앙을 확인하는 교회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
    게는 더 이상 방언이 필요하지 않다.

    7. 결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 방언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교들에는 방언이 있다. 그들에게는 방언 뿐만 아니라 방서(方書)도 있
    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있는 방언들은 거의가 교회가 견제해야할 대상이
    다. 어쩌면 많은 방언들은 이방종교들에서부터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즉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죄된 종교성이 교인들 가운데 불건전한 방
    언을 말하게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교회가 말씀의 원리에 올바르게 서있지
    않고 타락하게 되면 이방종교에서부터 들어온 방언이 기독교의 행세를 하며
    교회를 어지럽힐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방언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불편한 것이 있는가? 방언을 통해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을 노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우리
    에게는 방언이 있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
    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방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확인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방언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말씀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혹 누가 통역한다고 해도 그것 또
    한 말씀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온전한 방언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직접 확인 가능한 것들만 진
    리라고 믿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
    장로직의 세속화

    이정석 박사/Fuller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교수


    한국교회의 급성장과 부실한 교육제도는 자연히 자질이 부족한 목사와 장로
    의 양산을 결과하였다. 흔히 목사의 저질화를 많이 비판하지만 장로의 저질화
    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장로는 고매한 신앙 인격을 소유하
    여 교회와 사회의 존경을 받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장로들이 소수로 전락하였다. 급성장으로 인해 갑자기 많은 장로들이 필요하
    였고 따라서 선출 절차나 교육 절차가 형식화되고 자질에 대한 기준도 격하되
    었다. 이것이 불가피한 현실이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한국교회는 심각한 혼란
    과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목사와 장로의 갈등으로 침체 혹은 감소의 상황을 맞
    이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책임은 양자에게 공히 있지만 목사의 협력자로
    부름받은 장로가 목사의 견제자 혹은 대립자가 되면서 교회의 발전을 기대하
    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갈등 상황에서 교회의 대다
    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인들은 무고한 피해자가 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도 아니며 모든 장로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된 데에는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적 원
    리가 장로의 선택과정과 자기 이해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교회
    는 이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교회라는 수레의 두 바퀴
    인 목사와 장로가 나란히 한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이끄심이 원활하고 힘차게
    효력을 발생하게 될 것이다.


    영수제도의 기원
    선교사들이 초기 선교 과정에서 교회사에 나타나지 않는 영수라는 제도를 수
    용하였다. 영수는 지교회의 대표격이었으며 사실상 장로의 역할을 감당하였
    다. 그러나 영수들이 '안수받지 않은 장로'로서 장로들과 갈등을 빚게 되면
    서 이 제도가 폐지되고 영수들이 대부분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영수라는 호
    칭은 교단에 따라 20세기 후반까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그보다 더 심각한 영
    향은 영수 제도가 한국 장로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수(領袖)란 '우두머리'라는 뜻으로서 다분히 세속적인 사고를 함축하고 있
    는 용어이다. 물론 모든 영수가 이러한 자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한말의
    유교적 사회 상황에서 이러한 직명의 채택이 자타에게 미친 무의식적 혹은 의
    식적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조 말의 한국 상황은 기존의 사회 제도가 여러모로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
    계층이 발생하였지만 사고 방식은 여전히 유교적이며 계급적이었다. 이런 상
    황에서 기독교가 들어와 전국적인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영수
    가 지역 교회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수들이 장로가 되면서 자연히
    영수의 개념은 장로에게 전이되어 새로운 종교 계급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성경은 장로에게 존경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며 결
    코 계급적 혹은 신분적 고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교적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는 장로를 계급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상당수의 장
    로들 자신도 그러한 사회적 구조에 적응하여 고자세를 취하는 병폐를 초래하
    였다.


    유교의 신분주의
    기독교는 인간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그리
    스도 안에서 만인의 평등을 가르치지만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인생관에 따라 정치적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추구한다. 그 결
    과, 한국인에게는 신분이 중요하며 직함이 그 사람을 규정하게 되었다. 그래
    서 그 사람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묘비에도 직함을 쓴다. 심지어 벼슬
    을 못한 사람은 늙어도 계속 과거를 치르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는 의미에
    서 '학생'(學生)이라고 쓴다. 그리고 종들은 묘비도 없다.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한국인들은 이러한 전통적 사고 방식
    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 단적인 예가 호칭에서 나타난다. 한번 장로
    가 되면 이름과 '장로'라는 직함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되며 심지어 시무를 중
    지한다든지 교회 밖에서도 장로가 호칭이 된다. 직분이 영원한 정체성이 되
    는 것이다. 더욱이 장로를 '항존직'(恒存職)으로 보는 한국 장로교 전통과 결
    합될 때 이러한 신분화가 정당시된다.

    따라서, 장로교회의 모체가 된 개혁교회가 인격과 직분을 구별하여 직분자의
    존경과 인정이 그의 인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역 때문이라고 보는 교회 정
    치적 원리나 거기에 근거하여 직분자의 임기제를 시행하는데 거부감을 가진
    다.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감독중심적 교회관이나 장로중심적 교
    회관은 차별 없이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를 교회로 보는 사도신
    경의 성도중심적 교회관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 15장 23절이 보여주는 대로, 목사나 장로도 모두 한 형제일 뿐이
    다. 그러나, 상하구별과 신분주의가 깊이 뿌리 박힌 한국사회에서 장로직이
    겸손히 수용되기란 쉽지 않다.

    개혁교회를 비롯한 서구교회의 경우 유교 전통에 영향 받은 한국교회의 장로
    호칭은 이해될 수 없는 관습이 아닐 수 없다. 미국교회에서 장로를 부를 때
    는 성이 스미스일 경우 '스미쓰씨'(Mr. Smith)라고 부르지 '스미스 장로
    님'(Elder Smith)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교인이며 그의 현재 직
    분이 장로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임기가 끝나서 평교인으로 돌아가면 그대
    로 '스미스씨'라고 부르기 때문에 피차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장로라고 부르지 않고 서구와 같이 '아무 씨'라고 부
    르게 되면 이는 큰 모욕이며 분노를 유발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장로와 자
    기를 이미 일체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즉 장로가 그의 영원한 신분이라는 의
    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직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유례
    가 없는 직분 과잉 현상을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교회에는 교회가 커도
    장로 몇 명, 집사 몇 명이 있을 뿐이지만 한국교회는 전교인의 과반수에게 직
    분을 남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직분과 신분을 혼동하는 상황에서 장로야말
    로 평신도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신분으로 생각하여 장로가 되기 위해 여
    러모로 노력하고 한번 장로가 되면 영원히 그 신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
    한 유교적 신분주의 사고는 자연히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보다는 지배하고 주
    장하려는 자만한 태도를 가지도록 만든다.


    자본주의의 영향
    현대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이 장로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3장 1-
    7절에 기록된 감독의 자격을 차용하여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규정
    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제적 능력이 그 사람의 능력 지표로 인정되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에 있어서 장로에게 경제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요건들도 고려하지
    만 오늘날과 같이 교회가 지나치리 만큼 거대한 예산을 집행하며 모두 교인
    의 헌금에 의존해야 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능력은 불가피한 조건으로 인식되
    고 있다.

    따라서, 대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장로로 선출되며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
    한 장로는 특히 예산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소외당하거나 스스로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자연히 교회를 회사와 같이 생각하고 장로는 대주
    주와 같은 책임과 권리를 행사하게 되며 무의식적으로 교회에 대한 '소유의
    식'을 가지게 만든다. 따라서,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데 간섭하고 조종하게 된
    다. 이와 같이 과민한 재정 참여는 역시 무리하게 재정을 주관하려는 목사와
    충돌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성경적으로, 헌금은 본래 집사가 관장하도록 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헌금은
    사랑을 실천하는 구제헌금이었으며 그 분배를 위해 집사제도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이런 집사의 재정관리와 분배는 교회사적으로 주된 전통이 되어 왔으
    며 지금도 많은 서구교회들이 재정관리를 철저히 집사들에게 맡기고 목사나
    장로는 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헌법에서 규정한 장로의 직무 어디에도 재정관리가 들어있지 않다. 단지 감리
    교 헌법에서 '장로는 교회의 재정 유지에 힘쓴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재정관리나 집행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현대와 같이 교회의 재정이 복잡
    하고 비대해진 상황에서 장로가 재정에 무관심해서는 안되지만, 장로가 지나
    치게 교회재정에 민감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 정당
    화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영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젊은 장로의 출현
    현대사회가 경제 중심적 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른을 존경하던 과거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으며 교회의 지도력도 노년층에서 장년층 혹은 중년층으
    로 낮아졌다. 이런 경제중심적 사고가 젊은 장로들의 출현을 부추긴 것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이 산업화되고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장로의 년령이 낮아지
    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장로들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으나, 오늘날은 년령기
    준이 30세까지 낮아지게 되었다. 물론 30대나 40대의 장로들이 활력적이고 적
    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나 젊은 장로들의 출현은 성경적 원리보다 세속 정신
    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되며 따라서 많은 문제들이 교회 안에 발생하
    게 되었다.

    본래 장로란 구약의 '자켄'이든 신약의 '프레스뷔테로스'이든 모두 백발
    의 '노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젊은 장로'란 말 자체가 자체 모순을 내포
    하고 있는 말로 성립될 수 없다.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다 할지
    라도 30대의 장로란 성경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젊은 장로의 출현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첫째, 사회가 경제적 생활력을 중심으로 노인을 무시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세
    속적 풍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드리고 정당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교회
    에서 노년층은 소외당하고 정상적으로 장로직을 감당할 수 있는 노년에 도달
    한 장로는 은연중 퇴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둘째, 젊은 장로의 출현은 동년배 혹은 년상의 집사들을 실망시켜 교회 봉사
    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계급적 신분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50대 집사에게 30대 장로는 부담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존재일 수 있
    다.

    더욱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장로들의 미숙성이다. 성경에서 노인을
    장로로 임명한 것은 백발의 노인이 가지는 오랜 경륜에서 오는 심오한 지혜
    와 온유한 덕성과 원숙한 신앙 때문일 것이다. 젊은 장로에게는 그런 것을 기
    대하기 어렵다. 활력과 열심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혜가 부족하고 혈기가 많
    으며 신앙이 미숙하다. 따라서 교인들을 덕스럽게 지도하고 돌볼 능력이 부족
    할 수밖에 없다.

    장로의 주요한 직무는 교인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다. '치리한다'든가 '감독
    한다'든가, 또는 '다스린다'는 표현이 세속적 사고에서는 '지배한다(rule)'
    혹은 심지어 '군림한다(dominate)'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그 성경적 의
    미는 오히려 '형편을 살핀다' '관심을 가진다' '돌보아 준다' 또는 '사랑으
    로 이끌어준다'는 뜻이다.

    장로는 목사가 교인들을 다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목사를 도와 교인들을 심방
    하고 관심을 베풀며 대화하고 도와주는 봉사자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
    면 교인들보다 덕성이나 신앙에서 원숙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젊은 장로의
    관심은 년령의 성격상 교인들을 돌보는 자상한 일보다 사업과 조직에 더 관심
    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장로 본연의 직무보다 교회 업무와 회의에 치중하게
    된다. 더욱이, 젊은 장로는 아직 혈기가 강하고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순
    한 열심으로 목사나 다른 장로와 충돌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할 위험을 상대적
    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영광스러운 장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히 실현되기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는 성령의 도우심
    을 따라 힘차게 발전해야 하는데 장로는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직
    분이다. 따라서, 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에 갔을 때 하나님 보좌 주위에 24장
    로의 보좌가 있음을 보았다: "또 보좌에 둘러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
    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올바른 장로는 성도의 이상이며 교회의 기둥으로서 영광이 약속되어 있다. 장
    로는 세속적인 지배자나 권력자와 달리 목사를 도와 덕과 사랑으로 교인들을
    감화시키고 교회의 화평을 도모하며 형제들을 돌보고 세워나가는 교회의 겸손
    하고 온유한 봉사자들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고난과 수고를 자취하는
    충성스럽고 헌신된 어른들이다. 따라서 성경과 교회사가 증거하는 대로 올바
    른 장로의 몰락은 교회의 몰락을 결과하며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덕스러운 장
    로의 존재는 교회의 평화와 성장을 가져온다.

    실로 장로가 그토록 교회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장로의 순종 여부에 따라 교회
    의 발전이 좌우된다. 예수님 당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될 장로들
    이 소위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중시하여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섰다. 장로들은 세속적 직업과 훈련을 받았
    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속적 상식과 인간적 전통을 더 중시하기 쉽
    다. 이를 극복하고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
    른 장로의 길이다.

    장로의 세속화는 교회의 세속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여기 지적된 장로의 문제
    는 대부분 목사나 다른 직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어는
    상황에서나 교회는 세속화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세속적 영향을 막아내지
    못하면 교회가 부패하고 퇴보하게 된다. 물론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창조적으
    로 적응하며 발전해야 되지만 세속 정신에 복속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항상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 자신을 세속적 영향에서 돌이키고 개혁해 나가는 노력
    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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