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 열매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사랑이라고 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7,8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요일 4:9,10 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화목제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아니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입니다.
또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같은 요일 4:13 절에 보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의 열매란 어떤 것일까요?
성경에 사랑의 열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사랑장인 13장 4절로 7절에서 그것을 말해 줍니다.
거기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쉽게 화를 내지 않고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겪는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것을 잘 견뎌낸다는 말입니다.
또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그 사람에 대해서 투기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또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자랑이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모습이며 교만이란 속에 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있지 못함으로, 다시 말해서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특별히 자기가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히 행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사람, 성령의 소욕을 좇는 사람에게서는 무슨 일이 생길 때 이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를 생각하기보다 이것이 성령이 원하시는 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좇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이지요.
그 다음에는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내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분개하는 마음입니다.
또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 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악감을 가지고 ‘이놈, 두고 보자’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잘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행하면서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으며(여기서 말하는 참는 것은 어려움을 참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을 믿으며(최대한도로 믿어주는 것입니다. 손해를 볼지라도, 심지어는 내가 속을지언정 믿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또 모든 것을 바라며(상대방의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면서 더 나아질 미래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힘쓰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힘쓰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의해서 맺혀지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요일 4:11,12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이런 사랑의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는 그런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요일 4:20,2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특별한 행동이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의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다든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육체의 정욕들을 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늘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사랑의 속성들도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주님의 성품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늘 주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율법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진정 사랑하는 아픔을 감내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진정 자신을 깨뜨리는 희생을 통해 향기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를 통해 선을 행하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참된 평안을 허락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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