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의 증거 / 행10:24-43 2005-10-14 11:29:02 read : 360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행10:24-43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의 증거
Peter's Preaching at Cornelius' house
설교의 대가인 스펄젼 목사님이 한 번은 그의 설교 도중에 할아버지의 얘길 했다.
“할아버지는 대가족의 부양자였으나 아주 적은 수입으로 살아갔으며 주님 무척이나 사랑하며 섬겼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복음전하기를 좋아했으며 심지어 황제에게도 전했다.
그는 조그마한 농장과 한 마리 소를 갖고 그날그날 살아갔는데 어느 날 그 젖소마저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낙심하여 주님은 늘 “예비하신다고 하셨죠?”라고 불평어린 기도를 털어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영국 귀족협회에서 시골의 가난한 목회자를 위한 기부금을 부쳐왔다.
할아버지는 그것 보세요 하나님께서 늙은 소만 못하시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환상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가 없었던들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해서 이처럼 개방적이고 열린 자세를 취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즉 신앙이 있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을 영접하고 자기 집에 유숙하게 한 후 그 이튿날 그들을 따라 흔쾌히 길을 떠나 고넬료의 집으로 들어갔다.
고넬료는 이미 베드로의 방문을 예상하고 그의 모든 일가들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Vision의 사람, 기도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며, 그 말씀이 임할 때 즉각 즉각 순종하여 열매를 경험하는 사람이 된다.
베드로가 고넬료와 상봉하여 축복의 말씀을 전하게 된 날은 고넬료가 환상을 본지 4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즉 첫째 날에는 고넬료가 환상을 보았고(10:1-8).
둘째 날은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서 함께 유숙했고(10:9-23).
셋째 날은 베드로가 “욥바”를 떠나 가이사랴로 갔으며(10:23).
넷째 날에야 비로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고넬료를 만났던 것이다(10:24, 30).
베드로가 욥바를 떠날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환들과 욥바에 사는 “두어 형제”와 함께 동행 했다.
그런데 11:12에는 “여섯 형제”가 동행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고넬료는 믿음으로 베드로가 올 줄 알고 이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본다.
즉 베드로가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서”영접했다.
이것은 그가 겸손하면서도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 개인에게 뿐 아니라, 그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복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태도를 가진 자의 기도는 진실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다.
1. 복음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34-35절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고 하면서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
신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욥34:19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고 하셨다.
아무리 많은 자녀를 두었다 할지라도 부모의 마음은 자녀를 다 똑같이 사랑한다.
재치 있고 똑똑하다고 편애를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미모나 지위, 국적이나 성별, 부귀와 영예로 인하여 인간을 차별하시거나 더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신다.
겉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며 할례를 받았다 할찌라도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와 진노를 형벌로 내리신다.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베드로는 말하기를 28-29절에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고 했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율법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모든 이방인과 상대하지도 그들과 음식을 나누거나 교제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편견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 계획을 가지셨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시대를 통하여 이 일을 이루어시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지상 계실 때 유대인의 편협된 율법과 전통을 깨뜨리고 그들이 머리하는 세리와 창기와 문둥병자와 이방인들까지 가까이 하시고 용납하시고 받아 주셨다.
이제는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사람이 더럽다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고 깨끗하다고 선언하신다.
깨끗케 된 것을 믿으세요.
확신하세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을 믿으세요.
이것이 복음이요, 은혜이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와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7-28)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의 구분이 없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도 유효하고 무할례도 유효하므로 나누임이 없어졌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치 않으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사람들은 그의 학벌이나 신분, 재산 정도에 따라 평가하기 쉬우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며 속사람을 보신다.
고넬료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지위를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종 베드로를 초청하고 그의 말씀 앞에 일가친척을 다 모아 무릎을 꿇는 그의 마음을 보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되 외식적이 아닌 중심으로 사랑하는 복음적인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해야 한다.
38-39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셨느니라”고 했다.
고넬료의 초청을 받은 베드로는 그의 집에서 세상의 잡다한 뉴스거리나, 삼순이, 굳세어라 금순이 TV드라마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세하게 증거 하였다.
예수님은 스스로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 칭하셨으며, 지극히 인간다운 삶을 사셨다.
예수님의 성장과 사역 방법은 나사렛의 평범한 한 청년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가난한 나사렛 사람들 가운데 섞여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셨고 그들 중에 계셨다.
이처럼 철저하게 인간적인 삶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구속사역을 행하셨다.
예수님이 참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성령과 권능으로 당신의 아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셨지만 사실상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증거가 바로 이 “성령과 능력”에 있었다.
하나님이 기름 붓듯이 주신 성령 충만과 능력으로 예수님은 구세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선행들 중에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신 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을 한층 드러내는 사건으로 오직 예수님의 권세로, 예수 이름의 권세와 기도의 능력으로 마귀의 진이 파하여지는 권능을 가지셨고, 또 그를 믿는 자에게 주셨다.
마귀는 어느 때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리고 반역하고 훼방하는 패역한 존재이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게 가난의 저주에 가둬두고 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상태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세상을 다스리며 복된 삶을 살아갈 권리와 자유를 인간에게 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마귀의 무리들이 에덴에서부터 인간을 죄악의 길로 끌어들임으로써,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상처에서 치유 받지 못하게 하며 가난의 저주에 가두어 비겁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예수의 이름과 그의 능력으로 이 모든 마귀의 사슬과 저주를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마귀의 권세를 파하시고 우리를 고치셨고 해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권세 있는 이름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이 마귀를 물리치게 하셨다.
이 귀신을 좇아내고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복음이다.
이와 같이 인간을 죄에서, 가난에서, 마귀의 사슬에서 구원코져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치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까지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22:32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고,
예수님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육신에 져서 육신의 욕망대로 살다가 영벌, 지옥 불”에 거하게 되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신앙생활에는 환난, 고난,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세히 증거 하고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본 증인들이라고 말하였다.
3. 복음은 믿는 자에게 용서의 은혜를 선포한다.
42-43절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 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고 하신다.
사전에 찾아보니 “믿음”은 어떤 신조나 종교에 대한 옳다는 확신이요, 신뢰요, 성실이며, 충성이라고 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모든 인생의 문제에 해답을 주셨다.
모든 상처에 치료해 주신다.
믿음은 기독교인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할 수도 없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요 핵심이다.
그는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로 오신 분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유일성을 강조하셨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를 사하신다.
예수님만이 속죄 제물이 되신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는 자기 죄로 인해 망하거나 심판받거나 지옥에 이르지 않는다.
왜요, 그 무서운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구세주요, 구원자 되신다.
그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여 주신다.”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죄사함 받았다는 믿음이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저를 믿는 사람들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 도다”하니 믿음이 죄에서 자유케 하고 정죄함이 없는 복음의 은혜와 그 축복이 이 시간 넘치기 바랍니다.
EX. 수천 명의 관중이 기다리는 중에 한 운동경기가 막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이때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곧 사라들이 사방에서 개를 둘러쌓았고 이에 당황한 개는 그대로 서서 웅크리고 등어리 털을 고추 세운 채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때 운동장 끝에서 한 소년이 두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큰소리로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러자 강아지는 주인 소리임을 듣고 그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들은 언제든지 나의 주인인 하나님의 음성에, 그의 말씀에 늘 순종하는 고넬료와 베드로 같은 복음적인 성도가 다 되어 가족을 구원하며, 주신 직분과 사명을 다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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