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막 2:1-12) 2001-12-08 16:00:46 read : 83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마가복음 2장 1∼12절)
설 교 개 요
A. 믿음에 대하여
1. 믿음, 적극적인 믿음
2. 본문 배경 설명
B.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1.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 협력, 고난 중 도움(막 2:1-3)
2.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의 상을 달아 내리니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적극적인 믿음(막 2:4-5a)
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 죄 사함, 치유(막 2:5b-12)
C. 병이나 고난을 당했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적극적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A. 믿음에 대하여
1. 믿음, 적극적인 믿음
세상을 사는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중요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1879∼1955) 박사는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우주선도, 그 어느 것도 믿음이 없이는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이 과학의 기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과학의 기초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나라 문화의 특성에 달렸으며, 그 문화의 특성은 ‘신뢰’에 의해서 결정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화의 뿌리는 바로 ‘믿음’입니다. 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도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만 있으면 국가적인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똘똘 뭉쳐서 힘을 합치면 어려운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으로, 주식이 폭락하고 기업이 망하고 공장이 폐쇄되고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1933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 1882∼1945)는 미국 국민을 향해 외쳤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전진합시다.” 그는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을 파멸에서 구했습니다.
1970년대 영국도 IMF를 당했습니다. ‘영국병’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 수상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 1925∼ )는 “우리 영국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라고 영국 국민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를 회복하여 다시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1998년, 우리 한국도 IMF라는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2000년대도 이 불황이 계속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 우리 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한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나라가 발전할 것을 믿어야 하고, 국민들 간에도 서로 믿어주는 신뢰의 관계가 싹터야 합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 1803∼1882)은 “인간은 믿도록 태어났다. 나무가 과일을 맺듯이 인간은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믿음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구약 말씀을 보면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많습니다. 믿는 자는 풍족함을 얻습니다(렘 17:7∼8). 하나님의 축복을 믿으니까 축복을 받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믿음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습니다(행 3:16). 믿음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으며(행 10:43),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행 13:39). 믿음을 통해서 마음에 평강을 누리고(롬 5:1), 믿음을 통해서 인생을 담대하게 삽니다(엡 3:12). 죽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통해서 천국에 갑니다(벧전 1:9). 믿음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의심하는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믿음을 통해서 승리합니다(요일 5:4).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갈릴리 서북 해안의 가버나움에서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이 중풍병자가 병 고침을 받은 것도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신 후에 가버나움이라는 지역에 돌아오셔서 베드로의 집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러자 그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사람들로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때 네 명의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예수님께로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명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중풍병을 고치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적극적인 믿음과 신앙을 보시고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중에 포기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많은데. 들어갈 수가 없는데. 막혔는데.” 하고 되돌아가는 자, 낙심하는 자에게는 기적도 축복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붕을 뜯어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 적극적인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학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재산과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 마음속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려는 행동입니다. 둘째로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의 상을 달아 내리니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만나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믿음을 말해 줍니다. 셋째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지금 병들었다 할지라도, 사업에 실패했다 할지라도, 비록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주십니다.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B.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1.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 협력, 고난 중 도움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所聞)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容身)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道)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中風病者)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막 2:1∼3)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중풍병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죄에 빠진 사람이 낙심하다가(삼상 25:37), 혹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왕상 13:3), 중풍병에 걸려 죽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다행히도 착한 이웃 네 명을 만났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예수님께 나갈 수 없었지만, 착한 이웃을 만나서 예수님께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네 명의 이웃은 ‘이 사람을 어떻게든 도와주자.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게 하자.’ 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갔습니다.
고난을 당했다 할지라도 도와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고난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돕고 연합하고 화합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함께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솔로몬 왕은 전도서 4장 9∼10절에서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禍)가 있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넷이 낫고, 넷보다는 열이 낫습니다. 그래서 고(故)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다 성경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평소에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협력한 사람은 자신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었을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고침을 받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대인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와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4∼5절에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어려울 때 돕는 손길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평소에 남을 돕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고난을 당했을 때도 도움을 받기 힘듭니다. 여러분, 도움을 베푸는 것이 얼마니 중요한지 모릅니다. 도와줄 때도 행복하고, 도움을 받을 때도 행복합니다.
개미 중에는 ‘꿀개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꿀개미 중에도 ‘꿀단지’라고 불리는 개미는 생긴 것이 보통 개미하고는 좀 다릅니다. 꿀을 너무 많이 빨아들여서 몸이 포동포동합니다. 온 몸이 꿀주머니입니다. 몸 속에 꿀이 가득합니다. 몸 속에 많은 양분을 저장을 합니다.
그래서 개미들은 추운 겨울을 만났다든지, 비가 온다든지 하여 굶주리게 되면, 전부 이 꿀단지 개미에게 모여듭니다. 그러면 이 꿀단지 개미는 전 개미들에게 양분을 공급하여 먹여 살립니다. 그러니까 꿀단지 개미는 평소에 몸 속에 양분을 많이 비축했다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양분을 공급하고, 다른 꿀 개미들은 그 꿀단지 개미를 통해서 양분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우리 사회에도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축복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베풀어야 합니다.
남을 도와주고 협력해야 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축복받은 것을 나 혼자 독차지하고, 내가 잘났다고 내가 더 많이 안다고 내 인생 나 혼자 살겠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반드시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든 사람, 어려운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베푸는 자신에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란 다른 사람이 죄를 많이 졌을 때, 절망에 처하고 넘어졌을 때, 하나님께 돌아와 은혜받고 축복받게 함으로써 돕는 것입니다. 전도는 가장 중요한 도움입니다.
그런데 전도에도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격 전도’, 둘째는 ‘선행 전도’, 셋째는 ‘구제 전도’입니다. ‘인격 전도’란 인격적인 삶을 통해서 남에게 감동을 주어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행 전도’란 선행을 통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구제 전도’란 물질로 남을 도와주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해서, 전도란 무엇입니까?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약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전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상북도 어느 읍에 그래도 제법 큰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1000석이나 되는 교회로,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신축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하고 난 성도들은 이제 할 일을 다 한 것 같았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신앙 생활은 점점 게으르고 나태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김 집사라는 분이 그만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김 집사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여기저기서 기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김 집사의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김 집사 때문에 새벽 기도를 하고,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구역 모임에서도 기도하고, 조 모임에서도 기도하고, 온 성도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김 집사를 위한 기도 운동이 일어나고부터 교회 자리가 점점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교회는 성도수가 500명인 교회였는데, 600명, 800명, 900명, 1000명,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온 성도들은 기도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성전이 가득 차게 되었을 무렵, 암으로 고생하던 김 집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부흥을 주시고 발전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문제만 놓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기도는 남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살아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의 상을 달아 내리니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적극적인 믿음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中風病者)의 누운 상(床)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막 2:4∼5a)
남의 집 지붕을 뜯었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떨 땐 무례를 범하고 욕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욕을 먹는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아갈 방법이 그 길밖에 없다면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가야 합니다. 체면 차릴 것 다 차리고, 얌전하게 믿다보면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좀 무례한 일이라 할지라도 더 큰 것을 위해서 열심히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충성·봉사·헌신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지붕을 뜯어서라도 중풍병자를 내려놓는 믿음, 그 적극적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런데 지붕을 뜯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무례를 범했다면 그 뒤처리도 잘해야 합니다. 중풍병자와 네 명의 사람들이 지붕을 뜯고서 나중에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아마 이들은 낡은 지붕을 싹 뜯어내고 새 지붕으로 갈아 주었을 것입니다. 남의 지붕을 뜯어놨으면 새로 멋있게 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런 적극적인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에스더 4장 16절에 에스더는 민족이 위기를 당했을 때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갔습니다. 뭐든지 죽을 각오를 하고 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금식 기도 합니다. 철야 기도 합니다. 새벽 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소극적인 자세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도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자 그는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子孫)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라고 외쳤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9)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저를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 40∼42절에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방해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앞으로만 전진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앞만 쳐다보고 나가라고 하나님께서 눈을 앞에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빠릅니까, 뒤를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빠릅니까? 뒤를 돌아보려면 시간이 걸리고 복잡합니다.
우리 인생은 전진, 또 전진하는 것입니다. 뒤로 후퇴해서는 안됩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나갈 때, 하나님께서 더 큰 능력과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다가 ‘적극적인’ 믿음이라는 힘을 더 더해야 합니다. 말을 할 때도 긍정적인 말만 하고(민 14:9), 어려움을 당해도 용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삼상 30:6).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에 4:16). 어떠한 시험을 당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욥 1:22). 낙망해서는 안됩니다(눅 18:3). 담대히 살아야 합니다(엡 3:12). 마귀와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벧전 5:9). 그러면 나 혼자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은 “믿음은,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능성을 믿는 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그냥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1등이 1등 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1등은 공부하면 그냥 1등이 됩니다. 그러나 꼴찌가 1등이 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자가 부자 되는 것이 뭐 어렵습니까? 부자는 부자가 됩니다. 돈이 돈을 벌어줍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할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부자 되게 하옵소서. 성공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고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 나도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불가능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 주시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안 될 것도 믿고, 못할 것도 믿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고통과 역경을 당할 때 사람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째는 냉소적인 태도입니다. 고난이 닥치면 “안돼. 별수 없어.” 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둘째는 체념적인 태도입니다.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어떻게든 할 수 없을 까? 해결해야 하는 데. 극복해야 하는 데.” 하는 창조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이야말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1999년, 작년 한해 동안의 사망 원인은, 첫째 30대의 교통사고, 둘째 40대의 간질환, 셋째 50대의 뇌혈관 질환 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모두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통사고도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마구 차를 몰다가 발생하는 것이고, 간질환도 스트레스로 술을 마신 사람이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뇌혈관 질환도 결국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회학자는 모든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서 현대인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수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 모임이라든지 친구 모임, 단체 행사 등, 무슨 일에든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합니다.
둘째, 변화에 대해서, 위기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도망치지 말고 과감하게 부딪쳐서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스스로를 조절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고, 상호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교만하게 혼자 잘났다고, 혼자 하겠다고 발버둥치지 말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향해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건강과 축복과 행복과 성공을 보장해 줍니다.
기독교는 참으로 축복의 종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기독교 국가가 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습니다. 발전하는 나라, 행복한 나라, 축복받은 나라는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올바로 믿어서 하나님의 축복과 도움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공대를 졸업해 현대 자동차 생산기술 공구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자동차용 절삭 자동차용 공구를 만드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무려 170여 명의 사원을 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졌습니다. 직원의 30퍼센트를 내보내고, 남은 직원들도 월급의 50퍼센트밖에 주지 못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 이러다 저 망하는 것 아닙니까? 이 회사 끝장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다. 이것을 잘 극복하면 너는 더 크게 될 수 있다.’
그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벽 기도를 작정했습니다. 무려 6개월간 매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희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부도가 난다 할지라도, 너는 망하지 않는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새벽 기도 나가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고 일이 잘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새벽 기도 6개월째가 되자, 4만 명의 직원을 둔 일본의 큰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합작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올 것이 왔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대회사 직원 4만 명과 자기 회사 직원 2백 명을 합해서 합작 회사를 만드니까 주문이 쇄도하고 자금도 들어왔습니다. IMF 위기를 극복하고 나자 이 회사는 급성장해서 굴지의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기적을 주십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 죄사함, 치유
“중풍병자(中風病者)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략)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榮光)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막 2:5b∼12)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중풍병자에게 안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말씀을 올바르게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나타납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병 고침을 받습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죄악의 결과로 병이 생겼습니다.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지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병은, 죄의 결과로 생길 수도 있고(요 5:14), 연단을 위한 하나님의 시험으로 생길 수도 있고(욥 2: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요 9:1∼11).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병을 다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응답하십니다.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의 병도 고쳐주시고 마음의 병도 고쳐주시고 육체의 병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역사하시고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聽從)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誡命)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 14절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질병이 오고, 죄로 인해서 환난이 오고, 죄로 인해서 사고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병들었을 때, 고난을 당했을 때,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5장 14∼15절도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請)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병에서 고침을 받습니다. 기도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며 기도해야지, 의심하면서 기도하면 안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무디(Dwight Lyman Moody ; 1837∼1899) 목사님은 “죄의 소리는 크다. 그러나 용서의 소리는 더 크다.”라고 했습니다. 병의 소리도 크지만, 치료의 소리는 더 큽니다. 불행의 소리도 크지만, 행복의 소리는 더 큽니다. 실패의 소리도 납니다. 그러나 성공의 소리는 더 큽니다. 패배의 소리도 납니다. 그러나 승리의 소리는 더 큽니다. 저주의 소리보다도 축복의 소리가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나중을 더 크게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 이 하나님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고, 이 하나님을 통해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교회에 고 집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고 집사는 평소 혈압이 높아서 안정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나가도 새벽 기도, 철야 기도, 수요 예배는 다 빠지고 주일 예배에만 겨우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혈압이 높다는 핑계로 교회도 등한시하고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도,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씌우고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감각도 없는 산송장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기도를 하시자, 고 집사는 “전도사님, 하나님이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하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고 집사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지금 원망하고 불평해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회개 기도 하세요. 감사 기도 하세요.”
“감사할 게 뭐 있나요?”
“그래도 죽지 않은 것, 감사해야 합니다. 쓰러져서 죽은 사람도 많은데 죽지 않은 것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말은 들은 고 집사는 그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만했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로 구역 식구들이 찾아와서 21일 작정 기도를 드렸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와서 이 고 집사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1일 작정 기도가 끝났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온몸에 마비가 풀리고 화장실 출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받아서 건강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구역에서 작정 기도 모임 하는 것, 서로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8:20).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작정하여 함께 기도하고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움당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베풀기 바랍니다. 약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도록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C. 병이 들거나 고난을 당했을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적극적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은혜와 축복, 기적을 베푸셨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원망과 불평, 의심을 다 떨쳐버리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내 문제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문제, 친구의 문제, 가족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나와도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 한마디면 치료와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광 목사님 설교
2000년 10월 29일 주일 3·4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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