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1시 온누리교회 순형홀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닉 부이치치는 최근 발간된 자신의 첫 번째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국을 재방문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한국 성도들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기회에 다시금 한국을 방문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계 없는 내 삶의 이야기를, 내가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비밀을 이 책에 담았다”며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책 <허그(HUG): 한계를 껴안다>에는 그가 양팔과 다리가 없는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나 겪었던 온갖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닉 부이치치는 “홀로 있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었다”며 “하지만 15살 때 성경을 읽게 됐고,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계획이 있으심을 알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팔다리가 다 있어도 내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이 지으신 신묘막측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권면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답했다.
닉 부이치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내가 갖고 있는 희망, 사랑, 평화 모두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의 내 인생을 사랑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아주대를 방문해 ‘사지 없는 삶’을 주제로 강연한 그는 △9일 교보문고(광화문점)ㆍ영풍문고(강남점)ㆍ반디앤루니스(코엑스점) 사인회, △10일 온누리교회 25주년 기념예배 강연, △12일 연세대학교 강연 등의 일정을 소화한 후 12일 출국할 예정이다.
한편 닉 부이치치 관련 정보와 미디어 자료를 볼 수 있는 ‘닉 부이치치 한국재단’이 최근 설립됐다. 홈페이지(www.lifewithoutlimbs.or.kr/)를 방문하면 재단의 활동 사항과 후원 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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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옥한흠 목사 추모집 ‘은혜의 발걸음’ 발간
누룩과 같았던 분, 더 많은 이들에게 퍼지길
▲고(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추모집 ‘은혜의 발걸음’(국제제자훈련원) 출간 기념 감사예배가 12일 저녁 7시 서울 강남 노보텔 엠베서더에서 열렸다. ⓒ김진영 기자
고(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추모집 ‘은혜의 발걸음’(국제제자훈련원) 출간 기념 감사예배가 12일 저녁 7시 서울 강남 노보텔 엠베서더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예배에는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해 유족인 김영순 사모와 장남 옥성호 씨,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손봉호 박사, 김경원 목사(교갱협 대표회장),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등이 참석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본문으로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를 제목으로 설교한 손인웅 목사는 “옥 목사님이 남기신 믿음이 무엇일까. 갈수록 크게 울리는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손 목사는 “옥 목사님께서 추구하셨던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이셨다.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그 믿음이 바로 옥 목사님의 믿음이었다”며 “비록 그는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우리가 그 분의 믿음과 뜻을 이어받아 그것을 이뤄드려야 한다”며 “우선 사랑의교회가 그 믿음을 계승해야 하고 생전 그가 만든 교갱협과 한목협이 또한 그 분의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손 목사는 “이 책은 옥 목사님께 영향 받은 많은 이들이 그 분의 귀한 믿음의 유산을 정리해 옥 목사님께 드리는 책”이라며 “이 책 속의 내용이 모두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축사한 손봉호 박사는 “옥 목사님은 가셨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유산이 한국 사회는 물론 외국에서도 여전히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그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이 누룩이었다. 옥 목사님은 참 순수한 천국의 누룩이셨다. 이 누룩이 이 땅에 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실 옥 목사님을 잘 알지 못했다. 돌아가신 뒤에야 더욱 많은 것을 알았다”며 “이전보다 더 존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 이 책이 옥 목사님의 믿음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교회 최고령 목회자인 방지일 목사도 “만약 옥 목사님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는 일에 전심전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옥 목사님의 뜻을 이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 옥성호 씨와 함께 이날 감사예배에 참석한 김영순 사모는 “그 동안 옥 목사님의 많은 책이 출간됐지만 그 중에서도 ‘평신도를 깨운다’에 가장 애착이 간다”며 “사랑의교회를 건축할 당시 수련원을 오르내리며 이 책을 쓰신 것을 기억한다. 당시 이 책을 통해 제자훈련이 자리 잡히고 많은 사람들이 제자훈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옥 목사님이 쓰셨던 책처럼 좋은 책을 많이 쓰셔서 더 큰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며 “제2, 제3의 옥한흠이 나와 훌륭한 책으로 많은 영혼들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출간인사를 위해 강단에 오른 오정현 목사는 “옥 목사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며 “목사님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많이 계획하고 있다. 오늘 출간 기념식이 그 첫 사업이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짧게 인사했다.
책의 제목인 ‘은혜의 발걸음’은 고인의 호인 은보(恩步)를 뜻하는 것으로 책에는 그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64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용기, 하용조, 홍정길, 이동원 목사 등 목회자들은 물론 선교사와 NGO 활동가, 학자, 언론인,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만난 고인의 진솔한 면면을 풀어냈다.
또한 전도사 시절부터 마지막으로 강단에 올랐던 2009년 사랑의교회 송구영신예배까지, 그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 60여 장과 함께 그의 설교와 저서, 인터뷰 등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은 고인을 위한 기념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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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2010서울국제기독엑스포’ 열린다
대한민국 대표 기독교 종합박람회로 자리잡고 있는 ‘2010서울국제기독엑스포’가 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 사장 구본홍) 주관으로 10월20~23일까지 4일간 일산 킨텍스 2홀에서 개최된다.
‘2010서울국제기독엑스포’는 기독교건축관, 선교복지관, 기독교교육관, 기독교산업관으로 구성돼, 약 100개 기업(단체)가 200여개 부스규모로 참가해 열린다. 목회자와 평신도를 비롯해 선교사, 기독실업인, 기독교육인, 기독사회복지사 등 전문사역자에 이르기까지 교계관련 산업과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기독종합전시회다. 특히 관람객대상의 다양한 부대행사와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이번 ‘2010서울국제기독엑스포’에는 부스관람 외에도 다자녀 가족 350명을 초청하는 ‘다둥이 가족과의 행복동행’, 미개봉 기독영화 ‘Save a Life’ 무료시사회, 기독로드다큐멘터리 ‘잊혀진가방’ 무료상영, CTS교회건축컨설팅자문위원회가 주관하는 ‘교회건축세미나’, ‘스마트폰활용 목회세미나’,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3D·4D무비체험관’, 행복한 가정을 위한 ‘가족미술심리치료’ 등 서울국제기독엑스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Astonish’‘·새린’·‘ForBand’·‘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등이 출연하는 다수의 공연을 비롯해 ‘몽골에서 만난 시편묵상사진전’, ‘기독미술인초청전’, ‘춘파 홍덕선 서예초청전’, ‘예루살렘·노아의방주 복원모형전’, ‘세계기독교박물관초청전시전’ 등 각종 기독문화예술행사가 풍성하게 마련된 것도 특징이다.
‘다둥이 가족과의 행복 동행’은 CTS기독교TV,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가 공동주관해 결혼과 출산, 가정의 행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10월20일 개막 당일에 다자녀 가족 350명을 초청하는 가족문화축제이다. 이 행사는 버블매직쇼, 어린이응원단 등의 축하공연과 함께 건강한 가족 만들기 세미나, 신세대 대학생과의 결연식, 출산장려운동 기념식, 경품행사 등을 갖고, 오후에는 자원봉사자 및 결연 대학생들과 함께 롯데월드에서 즐거운 가족나들이를 하게 된다.
기독다큐 ‘잊혀진 가방’상영, 세계기독교박물관초청전 등 다양한 부대행사
권오중·이현우 주연의 기독로드다큐멘터리 ‘잊혀진 가방’과 미개봉 기독영화 ‘Save a Life’도 이번 기독엑스포에서 만날수 있다. ‘잊혀진가방’은 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 콩고, 세네갈, 기니비사우 등 7개국에 걸쳐 잊혀진 가방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두 남자의 여행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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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내 경품 제공, 과연 성경적인가?
[미션라이프] 경기도 김포 A교회는 주일 예배에 새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상품권을 준다. 또 추첨을 통해 컬러 TV와 디지털 카메라, 세탁기 등 경품을 제공한다. 최근 교회 성장이 둔화된 이 교회는 교회에 나오면 상품권을 준다는 홍보 팜플렛을 동네마다 돌리고 있다.
한국교회 내 경품 제공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총동원주일이나 부흥회, 예배, 총회 등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성도들에게는 상품(사은품)을, 초청 받은 사람들에게는 상품이나 경품을 추첨을 통해 나눠주고 있는 사례가 최근 부쩍 늘은 것.
중·대형 교회일수록 경품의 규모나 예산은 더 커진다.
B교회 후원으로 열린 지난 달 27∼29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제100차 총회에선 승합차 1대와 승용차 1대, 노트북 10대가 경품으로 제공됐다. C교회는 매년 전도왕에게 승용차를 선물하고 있다. D교회는 성경 암송대회나 성경 다독왕을 뽑으려고 해외여행 상품권까지 내걸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회 행사 일정을 관리해 가면서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이왕이면 경품이나 상품이 크고 좋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경품 제공은 주로 전도나 성경 읽기, 헌금 등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미자립교회 돕기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경품 제공을 하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사기가 위축되고 새 신자 전도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품 등의 제공이 새 신자나 참석 인원을 더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변질되면서 교회간 경쟁이나 신경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은 교회의 전도의 문을 막거나 적어도 적지 않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목회자들은 기독교 신앙은 요행을 추구하는 신앙이 아니며, 또한 상을 목표로 행동하는 기복 신앙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상은 이웃을 돌볼 수 없는 여유를 없게 하고, 경품은 재수나 운을 신봉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경품 추첨은 결국 교회 부흥만 집착하는 과열된 성장 위주의 경쟁 논리라는 지적이다.
교회에 출석하면 상품권을 준다는 팜플렛을 받아든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교회 출석 10년차 김모(40)씨는 "선교를 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한 중형 교회 목사는 "초창기 선교사들도 이런 방법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경품 제공은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 강북에 사는 박모(54·회사원)씨는 "교회까지 물질을 내세워 교인을 늘리려 하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요즘은 경품 제공이 일반화되어 문제 제기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라며 "하지만 요행이나 상을 지향하는 경품 제공은 분명 비기독교적이며 신앙의 본질에까지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ave a Life’는 10대 청소년들의 고민거리인 경쟁, 따돌림, 자살 등의 문제를 믿음과 희망으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감동 기독영화이다. 미국 개봉 당시 첫 주에 441개관 상영, 200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박스 오피스 순위 5위에 오른 기대작이기도 하다. 22일(금), 23일(토)시사회 후에는 영화평론가와 함께 시네마토크도 진행된다.
CTS교회건축컨설팅자문위원회가 주관하는 ‘교회건축세미나’는 기독교 건축을 계획하고 있는 교회(기관)에게 최적의 정보와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22~23일 이틀간 1시30~4시30분까지 개최된다. 성전, 수양관, 기도원,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기독교 이념과 활동을 위한 모든 분야의 건축에 대해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참가를 위해서는 사전등록이 필요하다. (사전등록접수: 김현희 사무장 02-539-1255)
‘교회스마트폰활용세미나’도 열린다. 고려대 정창덕 교수가 강의로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생활을 변화시키는 스마트폰’, ‘교회 목회와 신앙생활에서의 스마트폰’, ‘스마트폰 활용 영상전도법’, ‘유비쿼터스시대 목회비전’ 등의 주제로 21일 12시30분에 열린다.
상설 전시되는 ‘예루살렘?노아의 방주 복원모형 초청전’과 ‘3D4·D무비체험관”, “세계기독교박물관초청전”도 주목할 만한 기획전이다. 4000mm×3850mm×750mm 크기의 예루살렘 복원모형에서는 성육신하셨던 예수님의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
3D·4D무비체험관에서는 영화를 관람하며 아이들의 놀이학습과 함께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계기독교박물관에서는 토라, 옥합, 비파, 수금, 나드 등 성경에 나오는 성서사물들은 물론, 겨자씨, 쥐엄열매, 유향과 몰약 등 성서식물들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이애실 사모의 ‘구약에 네비게이션을 달아라’(20일 16시, 21일 10시)와 장규철 목사의 ‘성경스케치’(20일 15시), 박은영 감신대 교수의 ‘매일영어QT’(22일 16시) 통해 말씀에 관한 유익한 지식을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휴샘가족상담센터에서 주관하는 ‘건강한 가족을 위한 가족미술심리치료’ 시연회와 춘파 홍덕선 장로의 ‘가족·교회 대상 서예작 증정 이벤트’, 세계기독교박물관의 ‘물맷돌 던지기 체험’, 가장 많은 교회주보를 등록하는 교회에 기독서적을 증정하는 ‘우리교회 행복한 책 읽기 이벤트’도 놓치지 말아야 할 ‘2010서울국제기독엑스포’의 즐거움들이다.
기독엑스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서울국제기독엑스포 홈페이지를 방문해 온라인 사전등록을 하면 현장에서 무료입장을 할 수 있다. 또 관람을 희망하는 성도들이 간편하게 사전등록을 할 수 있도록 ‘070-8893-1004’ 무료문자초청장을 도입했다.
출석하는 교회의 주보를 가져와도 무료입장을 할 수 있는데, 입장과 함께 ‘교회주보콘테스트’와 ‘우리교회 행복한 책 읽기’ 행사에 자동으로 응모되는 혜택도 있다.
김종열 기자
이 대표회장은 “한기총이 절박한 상황이라 나온다고 하는데, 무엇이 절박한 것이냐”고 반문하며 “오히려 명예회장인 분이 다시 하겠다는 그 상황이 절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년 연임 대표회장을 하고 6년 쉬었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논란을 가져 올 여지가 있다”며 “한기총에는 한기총을 이끌어갈 훌륭한 증경총회장들이 얼마든지 있다. 나 아니면 어떤 교단을 이기지 못한다 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고 질타했다.
이광선 대표회장은 한국교회8ㆍ15대성회에 예장합동이 불참한 것을 언급하면서, 길자연 목사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한기총은 연합과 일치정신으로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단체인데, 가장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보여준 8․15대성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를 한 분이 출마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며 “그런 분이 한기총의 연합과 일치를 이뤄갈 수 있겠는가. 그 부분에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이광선 목사 재출마 “십자가는 지고 싶지 않지만…”
이 대표회장은 자신의 재출마와 관련,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두고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십자가는 안 졌으면 좋겠다”면서도 “꼭 져야 할 일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광선 대표회장은 정관 개정 전 실행위원회에서 통과된 ‘개정 운영 세칙 및 선거관리규정’을 정관에 따라 계속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회장은 “일부 명예회장들이 ‘시행유보’를 결의했으나 통일된 의견으로 집약되지 않아 그대로 시행하기로 했다”며 “남은 임기동안 한기총 후반 주요 사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수호대책위원회(이하 수호위) 장로 일동이 최근 국민일보 사태와 관련, “‘노 회장 비리’의 본질을 외면한 채 사실을 왜곡하며 특정인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에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수호위측은 “노승숙 국민일보 회장이 국민일보 비대위를 부추겨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결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며 “국민일보 비대위는 노승숙 회장의 말만 믿고 ‘김성혜 한세대 총장이 4시간 동안 노 회장을 감금해 회장직 사퇴를 종용했다’는 사실내용을 왜곡한 자칭 특보 2호를 1호에 이어 5만여부 제작,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와 일반인들에게 지난 3일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 총장은 ‘주가조작 연루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조사를 받은 바 있는 사장인 둘째 아들 민제의 경영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문제를 두고 사돈 노승숙 회장과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사태가 심각하니 내가 나서서 둘째 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다. 내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힘 센 남자를 감금할 수 있겠느냐. 노 회장이 개인 비리로 사법당국에 고발되어 있으므로 신문사에서 사임하신 후 다른 사업을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수호위는 또 비대위가 특히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해 온갖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수호위의 주장에 따르면 비대위는 조 전 회장이 노조위원장과 허심탄회하게 한 대화내용을 교묘하게 편집해 매도하고 있으며, 가족 범위 수준에서 노 회장 사퇴 문제를 제기한 것을 마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는 것.
조 전 회장은 “노 회장의 비리로 부모 자식간, 형제간의 우애를 갈라놓고 있어 신문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노 회장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해온 사원들 사이에서도 “해도 너무 하다. 노 회장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가 온 것 같다”라면서 조용기 원로목사와의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든 것에 대한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일보 사태’ 두고 계속되는 공방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회장 허동진)는 최근 보도자료와 성명서 광고 등으로 국민일보 노승숙 회장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수호대책위원회(이하 수호위)’에 대해 ‘유령 단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은 조희준 씨의 측근 김규원 씨가 지난 8일 비방광고를 낸 단체와 동일한 이름으로 기독교 뉴스사이트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에 따라 노사 공동 비대위는 김 씨를 형사고발할 방침이라고도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또 수호위에 대해서는 “과거에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설치됐으나 지금은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수호위측은 “작금의 사태를 관망할 수 없는 장로 5명이 공동 대표단이 되어 새롭게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순수한 뜻을 가진 장로들이 노승숙 회장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고 교회 및 조용기 목사 가족 비방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하게 되었다”며 “이 모임 소속 장로들과 안수집사들은 조용기 원로목사의 가족들은 차남 조민제 씨의 장인인 노 회장의 비리가 가시화되면서 측근인 노 회장에게 보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일보는 현재 국민일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백화종 부사장)가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 조희준 전 사장이 경영권을 장악하려 한다며 특보 1호(1만부)와 2호(5만부)를 배포하고, 조 씨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황이다.
수호위측은 이에 대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과 조용기 원로목사의 가족들을 이간질하기 위한 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조용기 원로목사 가족들은 노 회장 개인 비리가 사회화되면서 국민일보의 공익성과 배치되는 노 회장을 국민일보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락 지어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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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키드'가 바라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추억과 기쁨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곳
이승규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 사실은 목사님 대신에 예수님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야 한다. 조용기 목사를 이렇게 만든 건 5할이 교인들일지도 모른다. ⓒ미주뉴스앤조이
4살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녔고, 27살 즈음에 교회를 떠났으니 20년을 넘게 다닌 셈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정작 조용기 목사님을 가까이서 본 적은 없다. 기껏해야 스크린 아니면 대성전 멀리서 바라본 게 전부였다. 한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면서 겨우 한두 번 가까이서 얼굴을 봤을 뿐이다.
그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줄기차게 비판해 왔지만, 주일 학교 시절에는 성가대와 전도반을 번갈아 가며 했고, 군 제대 뒤에는 주일 학교 교사도 5년이나 했다. 주일 학교 성가대 시절 친구들은 지금은 결혼하고 애도 있지만,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교회에서 친구들과 밤새 놀기 위해 엄마에게 철야한다는 거짓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나는 친구들과 그렇게 여의도순복음교회 온 구석구석을 마치 우리 집 안방인양 돌아다녔다. 지난 1월,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주일 예배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했다. 설교가 그리워서라기보다는 그냥 교회가 보고 싶었다. 예배가 끝난 뒤에는 어린 시절 손때가 묻어 있는 곳을 돌아다녔다. 교회를 떠난 지 7년 정도가 됐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교회 곳곳이 기억이 난다.
교회를 우리 집 안방인 것처럼 뛰어다녔는데…
초등학교 때로 추억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교회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저 먼 발치서 조용기 목사가 걸어왔다. 나는 마치 '소녀시대'의 태연을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당연하다.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롤 모델을 만났으니 말이다. 나는 사인까지 받으려고 했다. 그래서 "아, 목사님이다"고 소리를 쳤다.
그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 내 옆에 있던 집사님이 나를 툭 쳤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 집사님은 손을 입으로 갖다 대며, "쉿"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목사님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조선 시대 왕이나 양반들이 지나가면 상놈이나 하인들이 고개를 숙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도저히 나는 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용기 목사가 예수님인가? 누구나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럼 대통령인가? 요즘 같은 시대에 대통령한테도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 당시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2005년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장 이종근 장로와의 인터뷰 사진이다. 오른쪽 위로 최후의 만찬 그림 중간에 있는 조용기 목사의 모습이 보인다. ⓒ미주뉴스앤조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회실에 가보면 재밌는 사진이 걸려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는데,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조용기 목사님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처음 그 사진을 보고 웃음이 나와 참느라 힘들었다. 그리곤 바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조용기 목사의 위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에피소드는 또 있다. 한세대에 다니던 시절, 학과 교수가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1년여를 투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투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조용기 목사가 학교 채플 시간에 설교를 하러 왔다. 우리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투쟁 방법을 찾았다. 결국 우리가 택한 건 피켓 시위와 구호를 몇 번 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사님 근처로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교회에서 파견한 수많은 안수 집사와 집사들이 우리를 막았기 때문이다.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아마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허탈하게 투쟁을 끝냈을 무렵, 조용기 목사님의 위치를 전화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던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이 친구는 우리에게 조 목사님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단독으로 용감하게 적진(?)에 뛰어들어 조 목사 몰래 뒤를 밟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목사님의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졌던 모양이다. 그 즉시 어디에선가 젊은 사람이 뛰어나와 빗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겨 주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고 한다. 교회를 잘 다니지 않던 친구였는데, 목사가 경호원에 개인 코디까지 있는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조용기 목사님, 이제 그만 하시죠
최근 들어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들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김성혜 씨와 조희준 씨에 대한 얘기들이다. <미디어오늘>과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김 씨를 <국민일보> 회장직에 앉히기 위해 조 목사가 이사회를 소집했다고 한다. 또 김 씨는 조 목사가 죽기 전에 재산 정리를 해 놔야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기사를 보면서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다. 물론 조용기 목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아니, 이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철저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나는 아주 좋은 공부를 했다.
조용기 목사가 이제 와서 목회 방침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또 주변에 있는 김성혜 씨나 조희준 씨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멈출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이 옳다며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포스트 조용기를 꿈꿨던 한 젊은 청년의 마음 한 구석은 매우 무겁다. 조용기 목사가 훌륭한 목회를 해서 후배들에게 또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목회자로 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내 희망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 그게 어린 시절 동경했던 어른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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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장로교회 장영춘 목사 “목회 지망생은 말씀 앞에 자신을 분별할 수 있어야”
장영춘(사진) 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목사는 예배 중심과 교육목회로 3500여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를 일군 대표적인 이민목회자다. 그는 1973년 교회를 개척하고 미주크리스천신문과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장학재단, 유치원,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뉴욕 교계 및 미주 한인교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쳐왔다. 국내 부흥성회를 인도하기 위해 잠시 방한한 장 목사를 만나봤다.
"은퇴를 1년 앞두고 있어요. 후임자는 부목사를 거쳐 브라질 서울장로교회를 맡고 있던 박규성 목사를 내정했어요. 박 목사는 현재 후임자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요? 후임으로 앉혀놓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간 교회나 저에게 상처를 입혀요."
장 목사는 미국 내 4000여 이민교회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이민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인 간 이동이 굉장히 심하다는 겁니다.
이민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교단의 정책도 잘 통하지 않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LA만 해도 임지를 찾지 못한 목회자가 6000∼7000명이나 된다고 해요. 뉴욕도 2500여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는 미국 유학을 꿈꾸는 신학생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유학을 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합니다. 신학교에 입학하려면 영어실력은 기본인데 토플 600점 이상은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머리 좋고 영어 잘한다고 신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학적으로 균형이 잡혀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회지망생은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 앞에 자신을 옳게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힘쓰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그의 신학교 입학 동기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의 원로급 지도자인 서기행 신세원 목사다. 그는 1959년 서울 남산신학교 졸업반 시절 예장 합동과 통합이 세계교회협의회 문제로 갈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졸업앨범은 같이 만들었지만 졸업장은 따로 만드는 해프닝도 겪었다. 장 목사는 "한국교회가 살기 위해선 물량주의와 교계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교회는 교육을 통해 6·25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을 영적으로 제대로 키워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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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목사 결정의 7가지 문제
안희환
한 교회의 담임목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은혜로운 시간들이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추악한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조차 강조되는 공정이란 용어가 완전히 실종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신다는 신앙의 기초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담임목사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세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교회가 꽤 성장했을 때 불거져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목회에 성공(?)한 아버지는 자신이 일군(?)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보다 아들에게 넘기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서 세습이 이루어집니다. 아들이 아닌 사위가 그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내용은 동일합니다. 최근에는 교인들의 의식 속에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흐름이 많기 때문에 이전처럼 세습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습을 시도하다가 영향력과 존경을 함께 잃어버리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변칙 세습입니다. 직접 아들이나 사위를 교회로 데려올 수 없는 경우에 우회적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 다른 지역의 목회자를 불러오고 그 조건으로 불러오는 목회자의 자리에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를 심는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서로가 이득을 보게 되는 구조인데 그런 경우 교인들은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인들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힘 있는 정치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개입입니다. 한 교회에 자리가 비었을 때 그 교회 교인들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교단의 영향력 있는 인사에 의해 후임자가 결정되는 경우입니다. 노회나 지방회의 경우 인사부가 있고 영향력 있는 인사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 그들은 인사부를 통해 교회에서 청빙하는 목회자에 대해 제동을 걸기도 합니다. 담임 목회자가 결정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교회로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힘 있는 인사의 요청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넷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돈을 내고 후임으로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군소 교회의 경우 은퇴하는 목회자의 퇴직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경우에 후임자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은퇴 목회자의 퇴직금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담임목사가 됩니다.
100여 명 정도 모이는 교회의 경우 2억 가량이 필요하다는 식의 황당한 이야기는 공연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경우 담임 목사 청빙이란 말 자체가 우스워집니다. 돈으로 담임목사직을 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낀 상태인데 후임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다섯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회 장로님들의 권위적인 태도입니다. 보통 규모가 있으면서 전임 목회자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는데 결정 권한을 가진 장로님들은 면접을 보는 인사 담당자들처럼 후임 목회자를 뽑습니다. 들어온 이력서들 가운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추리고, 추린 사람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역시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는 사람들을 가립니다. 그 후에 이런저런 잣대로 이리 재고 저리 잰 후 후임 목회자를 고용합니다. 이럴 때 청빙이란 개념은 물 건너갑니다. 모셔 오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오는 것이며 자신들의 뜻대로 따르지 않을 때 해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력서를 넣는 수많은 목회자들입니다. 교회 하나에 자리가 비는 경우 후임을 구한다는 광고를 내면 수백 장의 이력서가 몰려드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중에는 부교역자로 있거나 아직 임지가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담임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멀쩡한 목회 지를 놔두고 보다 조건이 좋은 교회에 이력서를 넣는 것이 순수한 목적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 높은 곳으로의 신분 상승이 주목적인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어떤 존재인지요? 이력서를 넣은 교회에서 청빙이 안 될 경우 원위치가 되겠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지지는 않겠는지요?
일곱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력서를 넣은 목회자들 사이의 이전투구입니다. 자리는 적고 목회자는 많기 때문에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 있지만 때로 눈살 찌푸릴 일이 발생합니다. 자신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유력한 후보자를 향해 흑색선전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전단지를 돌리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함으로써 결정권을 가진 장로님들에게 상대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서로간의 관계가 선후배 내지는 동기간이요 더구나 하나님나라를 위해 함께 일할 동역자들인데 서로 헐뜯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교회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후임 목회자를 잘 결정하는 것은 그 교회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구나 그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할 때 그 영혼들을 돌보는 후임 목회자의 결정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세속적인 방법들이 후임 목회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회를 약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죄악이며 악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후임 담임 목회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기도로 부임하고 기도로 청빙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인터넷선교 네트워크 http://cafe.naver.com/internet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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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없는 예배는 공연일 뿐이다
▲ 예배를 통해 분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세워질 수 있을 때 이 예배는 살아 있는 예배다. 사진은 2009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예배.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예전에 예배가 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열심히 예배를 참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주일만 되면 교인들은 여러 차례의 예배, 주일 학교·안내위원·차량 주차·식당 봉사, 각종 회의들로 정신없이 바빴다.
70년대 우리 청소년들은 학생의 교복을 벗어버린 채 예비군복 비슷한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다. 학생들의 꿈과 이상을 논해야 할 학생회는 전쟁과 살상을 명령하는 학도 호국단으로 바뀌었다. 체육 시간에 맨손 체조 대신 총을 들고 총검술이나 국군 도수 체조를 했다. 공 던지기는 수류탄 던지기로 바뀌었다. 성경에는 '맹세하지 말라,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기록되어 있건만, 학교에서는 독재자가 불법적으로 다스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충성을 바치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수없이 예배 설교를 들었고 성경 공부를 하고 주일 학교 교육을 받았건만, 이런 현실이 하나님 보시기기에 옳지 않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뜨겁게 예배를 드렸지만, 이 예배들이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예배는 오로지 내 삶과 단절된 내면의 심리 상태만을 위로해 줄 뿐이었다. 내가 딛고 선 현실 세상과는 유리되어 있었다.
교회를 다닌 지 오래지 않아 담임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다 돌아가셨다. 그 당시에 나는 나이가 지긋하셨던 부목사님이 돌아가신 목사님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가 될 것이라고 공표한 것이 왜 장로님들을 분노케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결국 교회는 새로운 유능한 젊은 목사를 새 담임목사로 초빙하겠다는 조금은 부유한 교우들이 중심이 된 장로님파와 그동안 전 담임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가난한 교우들이 중심이 된 부목사님 지지파로 나뉘었다. 한패는 교회 본당에서 다른 패는 교회 마당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나는 어느 패인지도 모르고 교회 본당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마당에 붙들려 마당 패와 더불어 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 당시에 나는 그것도 예배라고 여겼던 어리석은 소년이었다.
어느덧 신학생이 되어 말단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면서부터는 예배를 드린다기보다는 예배를 운영했다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내가 맡은 부서의 예배 참석자들의 숫자가 적었던 주일은 담임목사를 볼 면목이 안 섰다. 나에게 주일은 결코 안식일이 아니었다. 교역자들의 안식일은 월요일이다.
존경스럽지 않은 어른에게도 외견상 존중하는 체 했어야 했고, 친하지도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분들에게 친근한 척해야 했다. 이 모든 외식과 위선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었다. 낙이 있었다면 아직 현실의 쓴맛을 몰랐던 겸손하고 순진했던 청년들과 만나 밤을 새워 미래를 꿈꾸었던 시간들, 파괴된 가정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여인들과 함께 눈물로 슬픔을 나누던 시간들, 교회 문턱을 힘겹게 넘나드는 가난하고 모자란 바보 성도들과 나누었던 천진난만한 웃음들이었다.
독일로 유학을 간 후에도 습관을 따라 우리 동네에 사는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후손들이 우리를 자기편으로 여길 정도로 매주 꼬박꼬박 예배에 출석했다. 그러나 예배라고 주일 오전 한 번밖에 없고 공동 식사도 없는 독일 교회. 예배 후에 너무 허전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남는 것 같았다.
돌아와 점심을 간단히 하고 낮잠을 잘 정도였으니 얼마나 한가한 주일이었겠는가. 낮잠을 자고 난 이후에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고, 오덴발트라는 깊은 숲 속의 오솔길을 달려 자연의 친구들이라는 작은 산장으로 가서 준비해간 빵과 음료를 함께 먹고, 해 질 녘에야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이 여유롭고 한가했던 독일에서의 주일을 그림 동화처럼 기억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더 이상 교회에서 전도사를 하지 않는다. 일 년에 거의 반 이상은 해외 현장을 돌 수밖에 없는 처지에 교회의 직분을 맡는다는 게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교회의 초빙을 받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동체에서 방문객들과 조용히 주일을 지내기도 한다.
이런 고요와 침묵, 자연 속에서 공동체 식구들, 구도자들과 함께 여유롭고 한가하게 주일을 지내며 주일과 예배의 의미를 더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피조 세계와의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고, 예배의 핵심은 이 총체적인 회복을 위한 진실한 사귐이며, 주일의 안식은 이 사귐을 펼치기 위한 텅 빈 공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배의 목적, 회복
지나온 시절 나는 내가 예배를 율법적으로 드렸던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주일은 성수해야 했고 예배는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것이었다. 예배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회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삶의 변화 없이 드리는 예배는 성전 마당만을 밟고 지나가는 허탄한 짓임을 깨닫지 못했었다. 단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회복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와 평화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주일 성수를 하는 집사님들이 남편과는 원수가 되어 있었다. 새벽 기도회까지 일 년 내내 빠뜨리지 않고 출석하는 권사님이 며느리와 불화하는 시어머니인 경우들이 종종 있다. 교회에서는 예배당의 앞자리에 자애로운 모습으로 앉아계신 장로님이 직장에서는 폭군이고, 예배 시간마다 예배위원으로 봉사하는 충성스런 안수 집사들이 아내를 비참하게 만드는 바람둥이 남편인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예배에 앞서 이런 모든 비뚤어진 관계들을 만든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참회하고, 이런 삶을 중단하겠다는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 또 결심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배는 이처럼 하나님이 인간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평화로운 관계로 회복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문제는 대부분 큰 교회들의 예배가 이런 관계의 회복, 병들과 일그러진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재창조하는 힘을 상실한 채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는 쇼와 이벤트와 퍼포먼스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교회들이 원칙이나 철학 없이 이런 세태의 흐름에 편승하려 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아름다운 예배는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킨다.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게 한다.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재창조 과정이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매시 부지런히 할 수 있는 한 모든 이와 평화를 누려야 한다. 특별히 갈등과 다툰 일이 생기면 주중에 화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일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누군가 내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제물을 제단 앞에 놔두고 먼저 가서 그와 화해해야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배를 포기하고라도 원한 진 형제나 자매를 찾아가 그와 화해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주일을 의미 있게 지내는 것이다.
예배의 핵심, 사귐
문제는 우리가 실제 예배를 통해 진실한 사귐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진실하게 설교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모여들도록 예배와 설교를 디자인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진실한 사귐은 목사의 인기몰이 속에서 실종되어버린다.
성도들 간에도 친밀한 사귐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교회는 대형 극장화되어 가고 예배는 고도의 연출된 프로그램이 되었다. 성도들은 얼굴 없는 군중 속에 숨어 예배를 감상한다. 강단은 더욱더 현란한 조명과 충동적인 음악과 율동으로 예배 참여자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퍼포먼스가 연출되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감각의 제국'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진실한 만남과 사귐은 성도들의 거짓과 위선 없는 진실한 삶과 언행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실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위선과 거짓, 외식과 냉소주의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형식적인 만남, 의무적인 사귐으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자. 주일이야말로 진실을 찾는 구도자들과의 만남과 대화, 사귐과 나눔을 통해 우리 자신이 신선하게 재충전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 감동을 주는 사람들, 기쁨을 주는 사람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과 사귐을 갖기 위해서 주일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에서 그들을 만난다. 자기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신앙과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과 인류와 세계의 미래를 함께 꿈꾸는 가슴 벅찬 시간이 주일이다.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여겨 거룩히 지키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안식의 참뜻을 모른 채 율법적으로 주일을 지켜왔다. 단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주일에는 모든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줄로 알았었다. 그러나 안식의 참뜻은 참된 사귐을 위한 공간 할애다.
만일 참된 사귐이 없다면 안식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시간 낭비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오랜 세월 예배의 핵심이 무엇인지 주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전혀 평화롭지 않은 심지어 불화 속에서조차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예배드릴 수 있었다. 주일을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만남과 사귐으로 허비했었다. 도올의 고백처럼 차라리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느니 산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차라리 나았었을 것 같다.
고르반을 내려놓으라
하나님께 드릴 예물(고르반)을 드리고 나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려야 할 것은 안 드려도 그만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을(막 7:11) 예수님이 책망하셨던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과의 평화와 똑같이 중요한 것이 우리 이웃,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다. 눈에 보이는 이 사람들과 평화를 만들 수 없다면, 또 불화와 원한을 진 이들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평화는 거짓 평화에 불과하다. 마치 탕자의 형이 자신은 동생과는 달리 아버지와 평화로운 관계라고 착각하고 있었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직책을 맡겨 주셨다. 일을 맡긴 그분이 또한 그 일을 수행할 능력을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예배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샬롬)를 회복하는 힘을 나타낼 때 비로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한 화려한 쇼와 현란한 이벤트,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과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그치자. 다시 우리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자. 골고다를 향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자. 제자의 삶을 살아가자.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자.
이런 삶이 없는 예배는 공허한 공연일 뿐이고 평화로운 삶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신앙인들의 교회는 사교 클럽에 불과하다. 더 이상 예배당에 나와 반복해서 하나님께 값싼 은혜를 구걸하지 말자. 불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화해하기 전에는 주일 예배 출석을 포기하고서라도 우선 그와 화해하기 위해 노력하자. 가족 중에 가정불화로 이혼 위기에 놓인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생업을 잠시 접고라도 화해를 시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하자.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갈등과 불화가 생기면, 공중 예배를 무기한 연기하고 먼저 공동체의 평화를 만들고 나서 다시 모두 함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자.
예배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평화를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요, 교회는 평화의 공동체임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정적이고 보기에 아름다운 예배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평화롭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예배는 죽은 예배다.
그러나 소수의 무리가 드리는 예배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불화와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나 자매가 화해하고, 예배를 통해 분쟁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세워질 수 있을 때, 이 예배는 살아 있는 예배다. 자기의 몸을 찢어서 모든 담을 허물고 평화를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과 분쟁 속에서도 평화를 만드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경험하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자.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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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조건
신통(神通)해야 됩니다
이창돈
교단 총회 참관기에 나타난 모습이나 성추행 목사 및 그 결과 처리 과정 등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주류 한국교회는 일반 사회보다도 더 세속적임을 의심하게 됩니다. 또한 모이는 예배는 왕성하나, 흩어진 생활 예배로까지는 발전되지 못하므로, 오히려 예배의 형식화 문제가 심각함을 느낍니다.
열매는 부족하고 잎사귀만 무성한 것이지요. 집단적 정신 병리 현상으로 고착된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의존 대상이며, 불안에 대한 방어 행동으로 선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직면해서 근본적인 건강한 삶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위로적 기능만 감당하는 종교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서는 주전539~516년 스룹바벨 왕의 지도하에 유다로 돌아온 바벨론 포로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첫 귀환과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후 에스라와 함께 돌아오는 두 번째 귀환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 개신 교회의 건강하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에스라서를 묵상하였습니다. 에스라의 마음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에스라처럼 대안적, 혁신적 인생을 사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대안적 삶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에스라서를 통해 부흥의 유일한 조건, 혁신에 대해 배우고자 합니다.
1. 신통(神通)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깨달음과 새로움의 원천입니다. 수백 만 년 동안 돌을 깨트려 쓰다가 돌을 갈아 쓸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지금까지 없었던 디지털 스마트 세상이 출현하게 된 것은 하나님 안에 잠재적 형태로만 있었던 것이 신통한 사람들을 통해서 대중에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신통한 영감(靈感)이 있을 때 일과 조직, 물질과 정신, 사회와 역사가 발달합니다. 이제까지 모르던 새로운 깨달음과 생각이 나와야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새 삶과 역사의 지평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역사적 예수는 신통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높여졌습니다. 사도 요한은 역사적 예수를 아예 태초부터 하나님과 통했던 도(道) 자체가 인격화된 존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는 도통한 참사람, 살아있는 참신이었습니다. 에스라도 그 시대의 신통한 참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통하기 위하여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스 7:12) 그가 드린 눈물의 기도는 백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스 10:1)
저는 에스라의 탁월한 말씀 이해와 눈물의 기도 앞에서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진리에 투신하며, 눈물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통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통해야 합니다. 신통하려면 영(soul)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은 성경 말씀은 물론, 동서양의 고전이나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공급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창고 안에 있었던 것이며, 앞으로 나타날 것들도 하나님의 창고 안에 있습니다. 신통한 자라면,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옛것들과 새것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
오늘 한국 개신 교회의 주류적 흐름도 신통한 인물들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 상황도 하나님 자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에 이르지 못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허무한 데 굴복할 것인가, 다시 한번 소망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개신 교회는 자본주의라는 세상 질서를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질서를 이기지 못한 것은 기독교 이천 년 역사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이천 년 역사는 폭력의 역사이며, 세속적 소유와 힘을 숭배한 역사였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자유령,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국교령 이후, 기독교는 전쟁과 정복,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800년대 샤를마뉴 대제의 폭력적 선교, 독일의 30년 전쟁, 잔 다르크를 탄생시킨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참히 내팽개친 역사의 단면입니다.
결국, 오늘의 기독교 대세는 휴머니즘, 과학주의, 동양적 신비주의의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종교로 전락해 있다고 평가되는 것입니다. 신통(神通)한 하나님의 딸·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공동체의 동질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신통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스 7:10) 저도 결단한 사람입니다. 예수 가르침을 겨자씨 나라 식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준행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라서 묵상을 통해 에스라의 결단에 미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에스라의 결단은 그야말로 결사적이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삶의 태도가 결사대 수준에 이른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매우 미흡합니다. 다시 주 앞에 섭니다. 말씀 앞에 섭니다. 참된 성령의 부흥은 준비된 결사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겨자씨 나라 모임은 작지만, 준비된 결사대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흥의 겨자씨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동질성 확립이 확보된 원인은 외부적으로는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관용 정책입니다만, 내부적으로는 말씀의 부흥이었습니다. 에스라, 학개, 스가랴 등 하나님의 결사적 서기관 및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동질성이 확립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은 창조의 권능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이 선포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떨었습니다. (스 9:4) 말씀의 거울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참모습을 찾고 싶은 공동체적 열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스 10:1~17)
3. 혁신의 원천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사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부흥의 조건은 혁신입니다. 그리고 혁신의 원천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적으로 혁신의 기회가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사(페르시아)왕의 관용 정책이었으나 이는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해석됩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괴로움을 없애고 우리의 즐거움이 되셨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한편, 혁신의 원천은 외부적 환경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준비된 능력이기도 한데, 내면의 혁신 능력은 하나님의 은사로만 가능하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한국 신자들의 혁신되어야 할 신앙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존재를 시인해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주관적으로는 시인되지 않는 예수 신앙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붙잡을 때, 그것은 다른 예수입니다. 다른 영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천 년 전에 오셨던 고유 명사 예수만을 찾지 않고, 지금 내 안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보편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고자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시인한다는 말의 바른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대상화하고, 예배당 안에서 숭배만 하는 신앙, 역사적 예수를 찾기만 하고, 닮지 못하는 신앙, 닮으려고 하지만 성령의 지배는 인정하지 않는 자아(ego)중심적 신앙, 이런 신앙은 혁신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혁신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사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 8:22)
"겨자씨 나라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 결사대의 신앙을 주소서. 신통(神通)의 복을 주소서. 예수 가르침을 통한 겨자씨 나라의 동질성을 더욱더 세워 나가게 하소서. 혁신의 원천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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