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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하나 강하다/ 고후12:2-10
    2009-06-30 11:01:24   read : 623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약하나 강하다/ 고후12:2-10

    (12:2-10)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사야선지가 말했습니다.
    (사 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렇게 높은 하나님의 생각과 역사를 사람의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하늘을 땅 아래로 끌어 내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전하는 진리가 사람의 생각과 길을 벗어나 엉뚱한 말처럼 보이는 수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6:9-10)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무명과 유명, 죽음과 삶, 근심과 기쁨, 가난과 부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무명해도 유명한 자요, 죽어도 사는 자요, 근심해도 기뻐하는 자요, 가난해도 부요한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말과 이치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27) [26]...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이 역설의 신비를 바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도 세상이 말하는 이치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은혜를 받은 바울의 간증이요,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피는 가운데 바울이 체험한 은총의 신비를 깨닫고, 그와 같은 은혜 누리기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이 체험한 은혜의 역설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삼층천에 오른 영의 영광과 찌르는 가시로 말미암은 육체의 고통 사이의 역설입니다.

    바울은 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선교하는 중에 만난 이방인들도 그랬지만, 처음에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그의 사도성에 의구심을 갖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에 대한 그 사람들의 평가가 이랬습니다.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편지를 봤을 때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별 게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약하다고 했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볼품이 없었습니다.
    전해오는 기록(the Acts of Paul and Thecla)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작고, 머리숱이 없고, 안짱다리에, 눈썹은 서로 붙어 있고, 코는 매부리코였다고 합니다.

    또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바울 스스로 말합니다.
    [7] ....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사소한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찔러대는 가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병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안질이라고도 하고, 간질이라고도 합니다.
    바울은 사단의 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인하여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또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을 잘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도 되겠습니다만,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면 다른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이 어땠습니까?
    한 마디로 영적인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으나 정작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이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은사는 넘치는데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사를 자랑하는 말들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나는 방언, 나는 예언, 나는 신유, 나는 환상, 나는 입신의 은사를 받았노라고 자랑하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실제로 그랬습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러면 바울은 어땠습니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사람입니다.
    삼층천 곧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 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이것만이 아닙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은 이 큰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흉보고 트집 잡는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숨기고 싶은 것을 오히려 자랑한 것입니다.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이런 사람, 삼층천에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울입니다.
    크게 소리 내어 자랑할 만한 일이요, 아름다운 말로 간증해 마땅한 일이었지만 마치 남의 말 하듯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신령한 은사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 육체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의 참된 은혜를 받은 자들은 나를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의 능력과 권세를 자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사람 중에 어느 사이엔가 은혜의 주이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의 모습만 남아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영적인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치고 끝이 좋은 사람을 보는 경우가 드뭅니다.
    아무리 큰 은사를 지녔어도 사람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질그릇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질그릇의 쓰임과 귀천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자신의 영적인 영광 곧 강함을 자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가 선물이 아닌 상급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은혜가 온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광스러운 체험보다는 남들이 흉보고 멸시하는 것 -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약한 그 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9] ...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하게 하십니다.
    내가 엎드릴 때 주님이 일으켜 주십니다.
    내가 죽을 때 주께서 내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깨달아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로 다시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간절히 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뻐하는 역설입니다.

    바울도 사람입니다.
    때로 사람이 생각하는 이치로 생각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답답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육체를 찔러대는 가시를 느낄 때에, 이것만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이 병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다고 했습니다.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의외였습니다.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대로가 좋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고 구했는데, 건강한 몸이 되어 육체의 정욕을 쫓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주를 위해 더욱 힘쓰려고 했는데, 그렇게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로 온다.
    첫째는, 구하는 대로 즉시 허락하신다.
    둘째는, 구하는 대로 주시지만 천천히 임한다.
    셋째는, 구하는 대로 임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사람들은 구하는 대로 곧장 허락하시는 것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더디 임하는 것도 견디지 못해 합니다.
    더구나 다른 방법으로 응답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절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거절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생각과 다르게 응답하시는 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여기저기 암초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암초에 걸려 배는 뒤집어지고, 물에 빠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암초를 피해 갈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살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서 배를 돌이켜 갈 수도 없었습니다.
    간신히 배를 물가에 대고 궁리를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배를 젓던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앞에 암초를 없애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을까?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겁을 했습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암초를 없애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아주 물에 빠뜨려 죽이시려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비가 멈추고 하늘이 개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도를 멈추고 하늘을 탓하던 그 사람이 다시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암초들이 전부 물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배가 지나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바위를 없애 달라고 했는데, 바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비를 내려 강물이 불어나게 함으로 바위를 잠기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던 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응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에 반드시 응답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믿고 기다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장은 거절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도, 주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의 간구에 주님이 그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간절히 구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다시 더욱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세 번이라고 말함은 할 수 있는 대로 다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요?
    그렇게 꼭 집어서 말씀하셨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사람의 말로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결과 그렇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낫게 해 달라는 간구에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는 중에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간구가 무엇입니까?
    나의 소원과 필요를 따라 주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말없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간구가 주께 말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주로부터 듣는 일입니다.

    바울의 세 번에 걸친 간구는 기도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말없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영의 귀로 들은 것입니다.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강한 것을 들어 더 강하게 하지 않으시고, 굳이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령한 은사를 크게 체험한 바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랑하는 그 어떤 은사보다도 큰 은사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자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랑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약함을 드러내서 유일하고 참된 자랑인 십자가를 자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 없으심 가운데 하나님의 큰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너의 강함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능력을 자랑하는 자가 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육신의 강건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약함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는 사단의 사자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10] ...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에게나 우리에게나 일반입니다.
    능욕과 핍박을 제외하면 바울의 약한 것들이 곧 우리의 약한 것들입니다.
    질병과 궁핍과 곤란이 그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궁핍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일이 풀리지 않아 곤란한 사람도 많습니다.

    주께 간구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병을 고치시는 주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주의 풍성하심에 기대시기를 바랍니다.
    형통케 하시고, 창대케 하시는 주의 은혜에 갈급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랑이 되시는 주께서 응답해 주시리라 믿고 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실망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겔 12:22-23) [22]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2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설령 응답이 없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구해도 응답이 없거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간구하는 입을 다물고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주께서 예비하고 계신 더 좋은 길을 찾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자랑이라는 말이 아흔두 번 나타납니다.
    그 중 절반을 넘는 마흔일곱 번이 바울의 편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속에 얼마나 자랑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랑하고 또 자랑해도 여전히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바로 주께 간구했으나 응답이 없었을 때 깨달은 자랑거리였습니다.
    약한 것이 자랑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인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하신다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응답 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부끄러움이 오히려 네 자랑이 되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야 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게 역사하시는 주의 은혜의 신비를 깨닫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질병과 궁핍과 곤란이 가시가 되어 찌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어, 우리를 풍성하신 주의 은택(恩澤)으로 인도하는 물꼬가 되리라, 믿고 사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시 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박성규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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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으로 여는 축복의 길 (신 30:8-29)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행복을 느끼며, 누리며 항상 기뻐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늘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삶에 기쁨이 있으십니까? 삶에 감사가 넘치십니까? 하시는 모든 일이 형통하십니까? 뭔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십니까? 아니면 뭔가 답답하고 우울하고 찜찜하고 꼬이고 컴컴하십니까? 대부분 우리의 삶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형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인지 아시겠습니까? 삶이 그렇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혹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안다면, 길을 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행복하게 잘 사는데도 법이 있고 식이 있고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옛날 동양의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서양의 선조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동양의 선조들이 닦던 도가 바로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었고, 서양의 선조들이 하였던 철학은 행복하게 잘 사는 식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였는데 진리가 바로 삶의 이치를 뜻하는 것으로 즉 다시 말해 행복하게 잘 사는 삶의 이치와 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길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훌륭한 일이었으나 그 길을 찾으려고 한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길은 본시 찾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누구도 길을 묻지 않고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곳을 가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길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찾아 오는 것입니다.

    길을 물을 때 우리는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묻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일까요?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길을 만든 사람일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게 길을 가려면 그 길을 만든 분에게 묻고 그 분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생을 창조하셨으니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부터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져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똑 같은 인생관과 철학을 갖고 있었으나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한 이후부터 우리의 인생관과 철학이 하나님과 달라져서 전혀 하나님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됨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본성적으로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불행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켜 버린 불신앙인들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입니다. 잠시는 길이 넓어지는 것도 같고, 열리는 것도 같고, 그 때문에 잠시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그 길은 풀의 형통함과 같아서 조금만 지나면 마르고 스러지게 됩니다. 결국은 언제나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세상과 인생의 길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가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신앙인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불신앙인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고 하거나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묻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신앙인들은 삶의 길을 하나님께 물으며 그 길을 따라 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전자는 망해야 하고 후자는 늘 형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고 늘 행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 같이 그저 그렇고, 답답하고, 꼬이고, 묵직하고, 컴컴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길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순종하여 갔는데도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된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길이신 것은 틀림없는데, 그 길을 따라 살았다면 말씀대로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하고 형통하고 행복했을 터인데 듣기는 하고도 순종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도 인정하실겁니다. 우리가 듣기는 하면서도 순종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불순종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불순종에 있습니다. 우리가 듣기는 하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길을 찾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상과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불순종의 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 불순종의 영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교사 강습회에 강사로 갔었습니다. 교사들이 많이 오셔서 첫날 집회 때에는 뒤에 서서 설교를 들은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둘째 날 집회에 총무 되시는 분께서 집회 시작 전에 앞에 나오셔서 뒤에 앉아 계시는 교사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앉아 달라고, 늦게 오시는 교사들을 위하여 뒤에 자리를 비워 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여 광고를 하여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교사들을 보면서 저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불순종의 영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요즘 열매나눔재단 후원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이제 한 두 주 정도 되었습니다. 재단이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재단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단은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성공 이상의 성공을 이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가 지원하는 예산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재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재단과 재단의 사역을 설명하고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후원을 약속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을 이야기하고 그것으로 열매나눔 재단을 세우고, 열매나눔재단에서 탈북자를 위한 공장을 세우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공장이 성공적으로 흑자 전환을 하여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다 감동하고 박수를 칩니다. 설교 시간에 박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설교하는 저도 흥분하여 소리가 조금 높아 지기도하고 말이 좀 빨라지기도 합니다. 분위기가 그 쯤 되면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후원자가 되어 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많았을 때가 30% 정도 됩니다. 보통은 2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거의 100%의 교인들이 공감하고 공감을 넘어 감동하고 설교 시간에 박수까지 치며 우리 교회와 재단이 하는 일에 동의하였지만 한 달에 만 원이라도 회비를 내면서 함께 참여하자는 부탁에는 정작 2 - 30% 정도 밖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재미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정하신 분들의 20% 정도는 우리 직원들이 작정하신 카드를 보고 전화를 할 때 후원 회원 될 것을 사양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동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름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종 연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연습하기 위하여 도구로 삼아 연습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광고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제가 만일 그때 그 강습회에 참석한 교사였다면 거의 틀림없이 총무의 광고에 움직였을 것입니다. 앞자리부터 앉아 달라고 하였으면 앞자리고 나갔을 것이고 한 자리에 일 곱 명씩 앉아 달라고 부탁하였으면 내 앞 자리에 몇 명이 앉았는가를 세어 보았을 것입니다. 둘째, 모금과 헌금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제가 만일 우리 교회의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운동과 열매나눔재단 사역과 특별히 기적으로 성공하게 된 박스 공장 이야기를 들었다면 줄을 서서라도 후원서를 작정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실제로 거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원서를 거의 작정하기 때문에 매달 제 통장에서 온라인으로 빠져 나가는 돈이 수 백 만원이 됩니다.

    그런데 사는데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 돈이 늘어 날 수록 제 생활은 점점 더 물질적으로도 넉넉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감사한 것은 그 넉넉해짐이 물질적인데서 끝나지 않고 영적인데 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교통 신호등에 순종하는 연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연습을 하기 위하여 저는 빨간 불이면 서고 파란 불이면 가는 연습을 실제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생각 없이 어기게 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순중하는 습관이 될까 싶어서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순종을 연습하다가 순종이 조금씩, 조금씩 몸에 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 부담스럽고 이해가 안 될 때에도 그냥 순종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제 삶에서 답답하고 꼬이고 바닥이 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일이든, 가정의 일이든, 자녀의 일이든 경제적인 일이든 모든 일이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제 힘과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성공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침에 눈만뜨면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거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쉬지 않고 기도한다면 혹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 제가 새벽기도파도 아니고 철야기도파도 아니라는 것을 교인들의 대부분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상태인 것은 거의 틀림없습니다. 제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거의 한 시간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모든 생각과 의식과 판단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상태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의 길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로 순종하여 가면 생명과 복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 하리라> (신30: 15-20) 아멘.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순종으로 여는 축복의 길>일라고 정하였습니다. 순종은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하여 제 설교를 들으시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순종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에는 연습하지도 길들여져 있는 불순종이 배어 있습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영을 가진 우리들에게 순종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처럼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불순종의 영이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거운 것이다. 힘든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망하고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속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도 가지고 와서 우링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1-14) 아멘.

    순종하기 전까지는 어렵지만 막상 순종을 결심하고 순종해보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힘들게 순종해 보면 반드시 그 순종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그 순종에 약속된 축복의 맛을 보게 되면 점점 더 순종의 길은 쉬워 집니다. 찬송가 중에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저는 이 찬송의 가사가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이 가사가 이해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순종이 축복을 여는 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과거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받고 있는 복을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식을 고집하다가 세상 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하기도 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와 같은 생각과 결정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보시고 성경에 약속하신 생명과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을 연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고에도 순종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운 이런저런 헌금과 모금에도 순종해 보시고, 하다못해 교통신호등까지도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연습을 통하여 우리 몸 속에 숨어 배어 있는 불순종의 영을 쫓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도 늘 순종하는 삶을 살아 오늘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축복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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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대의 현실 /사사기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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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살이의 삶 (1) / 누가복음 14: 25-27 /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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