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희 목사 “교회와 식당의 성장이치 똑같다” / 손기철 장로, 승리주의 위험성 주의해야 2009-03-27 10:17:11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곽선희 목사
곽선희 목사 “교회와 식당의 성장이치 똑같다”
좋은설교연구소 ‘완성도 높은 설교 컨퍼런스’···이동원 목사 등 강연
정윤석 unique44@paran.com
완성도 높은 설교 컨퍼런스’ 두번째 날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는 ‘명쾌한
논리가 설교 완성도를 높인다’는 주제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강연을 전하면서, 자신의 목회 경험을 통해 좋은 설교 전하는 방법들을 설명했다.
그는 “설교를 쉬지 말아야 한다”며 “설교를 통해 상대방이 알아듣고 결단한 이후 모든 것까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곽 목사는 “책임지지 못한다면 이는 설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력하게 말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한국, 수직적·성전적
교회 필요
곽선희 목사는 설교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그가 생각하는 교회성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교회성장에 있어 교회의
‘인상’(이미지)과 목회자의 ‘설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경영적인 목회는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 자신이 목회했던
소망교회에서는 예배를 위한 버스운행도 없었다는 사실을 들어 “복음을 맛본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온다”며 설교의 권위를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교회 교인 쟁탈전이 심각한데, 개교회의 특성을 갖고 다양한 목회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날 교회는 ‘회당’적
이미지의 교회와 ‘성전’ 이미지의 교회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밖에 없었고 그곳이 만민이 기도하는 처소가 됐다”며 “현재의
한국교회들은 교인들과의 만남과 수평적 기능을 갖는 회당적 교회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말씀 선포와 기도 응답이 이뤄지는 수직적
기능을 담당하는 성전적 교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성전적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의 경건지수는 높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곽선희 목사는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므로, 교인들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며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응답이 이뤄지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설교에 있어 치유역사 등
영적 역사가 일어나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전하면서,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설교의 조건 몇 가지를 풀어 설명했다.
훌륭한 설교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곽선희 목사는 “훌륭한 설교를 전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영감이 있는, 복음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니, 목회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처럼 들려오면,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
자체가 생명력 있게 된다.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설교를 위해) 성경본문을 무릎꿇고 경건한 자세로
소리 내서 50번은 읽어보라”며 “성경을 영적으로 읽어나가면, 전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특히 곽 목사는 “보는 것이
많아지면 듣는 것이 약해지고, 듣는 것이 많아지면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진다”며 “성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고 은은한 분위기 가운데
하나님과 내가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예배 시간 전에는 조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설교자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그를 위해 성경을 많이 봐야 한다”고 말하고, 복음지향적인 설교에 대해 강조하면서 “목회자의 가치관과 생각이
완전히 복음적이어야 하며, 진리로 충만하고 확신에 가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번째로 곽선희 목사는 “훌륭한 설교를 전하기 위해
‘효과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며 “교인들이 잘 아는 말(언어, 그들의 문화)로 설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때문에 곽 목사
스스로도 교인들의 취미생활을 연구하고, 목회적으로 TV를 시청하는 등을 교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며 “현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설교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책을 많이 읽어서 적어도 베스트셀러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덧붙여 전했다.
세번째로
곽선희 목사는 훌륭한 설교를 전하기 위해 검증된 진리를 통해 신뢰를 얻을 것을 강조했다. 그는 “군대 다녀와 본 목회자가 군인들에게 설교할 수
있다”며 목회에 있어서 삶과 생활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교회는 영적 권세도 있어야 하겠지만, 생활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 목사는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며 행동적, 사건적, 역사적,
삶의 현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히브리식 설교’를 지향하라고 목회자들에게 촉구했다.
곽 목사는 마지막으로 “설교를 할 때 결론을
내지 말고, 듣는 교인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설교자의 결론이 길어지면 ‘잔소리’로 들린다”며 “서로
뻔히 다 아는 이야기인데 설교의 ‘부록’이 너무 길면 안된다. 설교를 통해 듣는 이들을 결론으로 유도하되, 결론은 각자 스스로 맺도록 만들라”고
말했다.
바울과 같은 십자가 중심의 설교가 진짜 설교
곽선희 목사는 가장 중요한 설교의 요건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했다. 그는 “설교는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윤리 도덕 강연도 아니다”라며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잘 설명할 때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 은혜에 감격해 세상을 밝게 만든다.
십자가 중심의 설교가 진짜 설교”라고 강조했다. 반면
“제일 큰 죄가 윤리적 설교, 다시 말하면 율법적인 설교”라며 “도덕 강연처럼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설교는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근본적인 것은 복음으로, 복음 안에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선희 목사는 훌륭한 설교자의 좋은 예로
바울을 소개하고, 바울처럼 ‘십자가 중심의 설교’를 전할 것을 강조했다. 곽 목사는 “한국교회에 구약설교가 많은데, 될 수 있으면 구약설교는
적게 하고 복음서 설교에 집중하면 좋겠다”며 “십자가 중심의 설교를 전할 때 설교자에게 권세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곽 목사는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큰 섭리로 바라보면서 불평불만을 갖지 않았던 점을 설명하면서 “목회자는 불평의 마음을 품지
말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영적 성찰과 통찰력, 하나님의 큰 섭리로 성경과 세상, 사건을 바라보는 훌륭한 설교자가
되라”고 요청했다.
이외에도 곽선희 목사는 “설교를 할 때 원고를 읽어서는 안 된다”며 “설교는 복음의 연출이다. 말로 음성으로
얼굴 표정으로 몸짓으로 연출하라”고 전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설교하라
또 곽선희 목사는 “긍정적인 사고 만이 복음은
아니다”라며 “십자가 안에 소망이 있는 것이지, ‘긍정’만을 추구하지 말라”고 한국교회 내에 만연한 성장주의, 기복신앙 등을 우려했다. 특히
참석자들에게 “교회성장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곽 목사는 마지막으로 “설교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는
것으로,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마치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설교하고
새벽기도를 이끌지 말라”며 “목회자가 목회를 노동으로 생각하면 은혜가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 신사동엔 유명한 설렁탕 집이 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한 끼 식사를 위해 그곳에 간다. 그곳은 늘 문전성시다. 이유가 있다. 뭔가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곽선희
목사(예수소망교회)가 <완성도 높은 설교컨퍼런스>에서 ‘명쾌한 논리가 설교 완성도를 높인다’는 주제로 강연하며 “교회성장과 식당성장의
이치가 똑같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곽 목사는 2009년 3월 23일부터 24일까지 국민일보와 좋은설교연구소(박영재 목사)가
주최한 행사에서 주강사로 나와 “잘되는 식당은 같은 음식을 해도 맛이 다르든지, 양념이 다르든지 반드시 이유가 있다”며 “현대 목회는 비빔밥이나
잡탕으로 승부해서는 안 되고 목회자와 교회가 고유한 ‘speciality’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목사는 특히
목회자의 ‘스페셜리티’는 설교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이유의 99%가 설교 때문이다”며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사람이고,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목사는 설교를 잘하는
세 가지 비결을 제시했다. 첫째로 확신있고 영감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의 핵심은 목사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를 잘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불신앙이다. 목사는 설교를 하기 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런 감사와 감격에 빠지려면 성경 읽는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설교를 위해 성경 본문을 택했으면 50번을
읽으라. 파자마 바람에 츄리닝 입고 읽지 말고 무릎 꿇고 정장을 입고 경건한 자세로 소리 내어 읽어보라. 마음으로 감동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감동과 감격을 갖고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들어야 한다. 머리에서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 가슴에서 불꽃이 튀길 때 그때 설교해야 감동있는
설교가 된다.”
둘째로 곽 목사는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인들의 언어에 익숙해야 한다.
그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알아야 소통이 된다. 설교할 때 내가 일부러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골프를 치는 게
아니다. 서울 강남에 교회가 위치했다는 특수성 때문에 성도들과 소통을 해야 했다. 일부러 골프 책을 몇 권 사서 골프용어를 익혔다. 어느 날
설교를 하면서 ‘골프를 잘하는 비결’을 설명했다.
내가 교인들의 언어에 관심을 갖자 교인들이 내 설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드라마도 열심히 봐야 한다. 교인들이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 설교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베스트셀러를 놓쳐서는 안된다.”
셋째로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라는 것이다.
“구약 본문보다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설교에서 많이 전하라. 핵심은 복음서에 두는 것이 좋다. 설교의 초점은 십자가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십자가가 곧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 속엔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려는 경륜적 신앙고백이 있다. 이것을 잘 설명할 때 위대한
설교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설교를 하다보면 적잖은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곽 목사는 자신이 평생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쪽지 하나가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사람 하나가 예배에 와서 내 설교를 들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그가 메모를
써서 내게 줬다. ‘내가 20년 동안 기도해오던 게 있는데, 목사님 통해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멋지지 않은가? 목회는 이
재미로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다. 자살하려고 했다가 설교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가
많다.”
설교와 관련한 곽선희 목사의 주요 멘트
- 운전을 쉬면 운전이 어색해진다. 목회자는 설교를 쉬면
안된다. - <곽선희 목사로부터 배우는 설교>를 정독 3번 하라. 그러면 목회가 달라진다. -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이유의 99%가 설교 때문이다. - 버스 운행을 하지 말고 교인들이 복음 때문에 스스로 교회를 찾아오도록 하라 - 난 45년간
새벽기도회를 개근했다. - 새벽기도회에 교인들보다 1시간 먼저 나가고, 기도회 끝나고도 1시간 나중에 나가라. - 원고를 보면서
설교하면 안 된다. 눈은 항상 교인들을 보면서 해야 한다. - 설교를 다 외워라. 그렇게 3년만 하면 도가 튼다. 이건 필수다.
- 오는 사람 환영하고 가는 사람 붙들진 말라. 코드가 안 맞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성도들 다 붙들려고 하면 다 놓친다. -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 얼굴 자체에 빛이 있어야 한다. 목사의 얼굴에 미소가 있어야 한다(이건 은혜가 있을 때 가능하다). - 설교도
심방도 목회도 모두 즐겁게 하라. 이걸 노동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목회자의 운명은 결정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한국 코미디계의
원로 구봉서(83·기독연예인선교회 회장. 사진 오른쪽)장로가 뇌졸중으로 스러져 뇌수술을 받았다. 구 장로는 지난 1월 중순 서울 잠원동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으나 서울 영동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의식을 되찾아 입원 40여일만인 지난 17일 퇴원했다.
구 장로는 22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조용히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려고 했는데 알려졌다”며 “교회 장로와 기독연예인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다 보니 기도해 주는 분들이 많아 빨리 회복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며 “남은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텐테…”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건강이
쇠약해진 지금에서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달았다면서 더 젊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했다. 구 장로는
“다리에 힘이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며 “재활 치료를 더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젊은 시절 '쓴소리' 잘하기로 유명했던
구 장로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쓴 소리를 빼 놓지 않았다.
그는 "생사에 갈림길에 있다보니 더욱 더 크리스천의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됐다"면서 "성도들이 주일에만 크리스천이 되지 말고 일주일 내내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기독교계도 이제 개혁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역에서 물러나 수천회의 간증 집회를 다닌 구 장로는 후배 기독 코미디언들이 복음을 알리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적극 나서
주길 바란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구 장로는 동갑내기 배삼룡(사진 왼쪽)과 콤비를 이뤄 1970∼8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주름잡았으며 최근에는
기독연예인선교회 회장을 맡는 등 기독교계 활동에 주력해왔다.
---------------------------------------- 육군병장 제대를 자부심으로 삼는 목사
수석이 아니라 반석을 추구하는 목사
일산에 가면 육군병장제대를 최대의 자부심으로 삼는 목사가 있다. 그는 몸도
약하고 학벌도 없고, 자식도 없으며 다른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는 목사이다. 육군병장제대만이 그의 자랑거리이다. 몸이 약한 그가 병장으로
군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건강한 방위출신들을 보면 그는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설교 때는 군대와 관련한 얘기를 자주 한다.
필자의 군대에 대한 시각과는 전혀 다르다. 필자는 82년도부터 30단과 대통령경호실 55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거여동 3공수에서
공수교육도 받고 낙하산도 많이 탔다.
청와대 정문 M60사수이기도 했다. 전두환대통령이 외부로 출타할 때는 외국에서는 주로
장례식때 사용하는 검정의 리무진 자가용차가 여러대 함께 운행되는 것을 보곤하였다. 필자의 임무는 차량이 청와대로 무분별하게 진입하면 방카에서
공습차량을 M60기관총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군대에 있으면서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전두환 대통령 세뇌교육과 독재정권의
찬양, 전두환대통령의 산책시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암기를 하지 않으면 밤새 잠을 재우지 않는 것, 폭동진압, 얼차려, 구타당한 것, 수도경비사
노래("남산과 북악을 지키는 수도경비사"), 겨울에 상의를 벗고 경복궁을 매일 구보한 것만 떠올려져 그곳을 보면서 소변도 안보는 입장이다.
수경사 30단 진입교육에서는 거의 얼차려 교육이고 반고문식이다. 그래서 군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공수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공수교육이지 거의 기압을 주는 것이다. 훈련생들을 사람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목사는 육군병장제대에 대해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일산 일암교회(http://www.ilam.or.kr/)의 김성일
목사이다. 그가 시무하는 교회는 조립식으로 지었고, 신도들은 약 700여명이 교회당에 출석하고있다. 예배는 1.2.3부 드린다고 한다. 교회가
비좁아 이사를 계획하고 약 2,000여평되는 부지를 확보했다. 어느정도 자립은 충분히 한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김목사는 응암교회
출신으로서 교회에서 일부 지원하고 일부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1994년도에 28평의 상가교회로 시작하여 지금은 대형교회로 성장하였다. 교회건물
중 일부는 시민들을 위해 어린이 도서실을 개방하기도 한다.
김목사의 목회 비결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프로그램이 없다. 셀교육, 빈야드, 제자훈련, G-12, D-12 안간데가 없다. 교회를 성장시킬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면 모조리 쫓아다녔다.
그러나 김목사는 배운 프로그램을 하나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주일마다 거의 단순한 설교 20분 정도하고 만다. 현란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유머로스 하지도 않다. 유머를 줄려고 노력하는데 사람들이 잘 웃지도 않는다. 설교는 박력도 없고 홀리보이스도 없고,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김목사는 예배 설교에서도 밝혔듯이, 자신은 체력이 쫓아가지를 않아 매주마다 설교하나 하는 것도 벅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도
겨우 할 정도라는 것. 또한 자신은 숫기가 없어서 남앞에서는 것 조차도 버겁다는 것이다. 목사가 왜 되었는지 모를 정도이다.
김목사가 주로 하는 운동은 숨쉬기이며, 집에서 런닝머신 정도이다. 몸이 약해서인지 아이도 없다. 자신의 몸하나 지탱하기도 벅찰
정도이다. 그렇다고해서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김목사가 현역병장으로 제대한 것은 자랑할만하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보다 건강하고 몸집이 큰 청년이 방위출신(국민역)이면 늘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는 몸이 약해서인지 목회자로서의 후덕함도
보이지를 않는다. 자신의 말대로 설교시간에 환한 모습도 없고 인상을 자주 쓴다. 얼핏보면 말라서 베트남사람 같기도 하다. 말도 표준말이 아닌
경상도 부산사투리이다. 학력도 지방신학교 출신이며 목회연구원에서 공부한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매년 박사출신 목사나 교수들이 그를 찾아간다.
건강한 신체도 없고, 뚜렷한 학벌도 없고, 영적 카리스마도 없고, 잘 난 외모도 없고, 재정도 풍부하지도 않으며, 토끼같은 자녀도
없고, 신도들앞에 서기도 버거워 하며, 현란한 설교도 하지 못하는 김목사의 교회가 부흥하며, 후배 목사들이 그를 매년 찾아가고, 그가 지도했던
청년회 회원들이 결혼을 하여 그의 교회에서 여전히 봉사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김목사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서 풍겨나오는
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는 진실, 헌신, 겸손, 나눠줌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내면이 그의 외면을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장소를 잘 선정한 외향적인 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그의 목회 성장비결이었다.
김목사의
교회성장비결은 첫째로 먼저 당시 아파트 입주할 무렵 상가교회로 들어가서 개발붐을 탄데 힘입은 바 있다. 만일 그렇다면 김목사가 지혜롭게
교회성장지역을 잘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일산아파트에 개척교회를 시작한 교회들이 모두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아무리 밀집지역이라
해도 교회성장이 안되는 교회도 많이 있다.
두번째 그의 목회 성장비결은 힘을 빼는 목회이다. 자신은 체력도 약하고 재정도 열악하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그가
좋아하는 성서구절이다. 자신은 학벌이나 체력, 재정, 외모도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강한 하나님의 힘을 매일 의존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그의 성장비결은 진실함에 있다. 김목사는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며, 진실 그자체이다. 그래서 후배 목사들이 김목사를
매주 찾아가는 것은 김목사의 진실성 때문이다. 허름한 옷차림과 밝지 않은 외모이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진실함이 풍겨나오기 때문에 그를 찾는다.
네번째, 김목사의 목회 성장비결은 사랑에 있다. 그는 잔정이 많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신도들한테 선물을 받은 것이 있으면 부교역자한테 나눠준다. 그는 부교역자들한테도 꼬박 존대말이며 함부로 다루지를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목사의 설교에 있다.
김목사는 원고설교를 하지 않고 성경의 본문의 내용에 집중하여 다른 예화나 세상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성서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재현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갖고서 설교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신은 설교를 잘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 잘 할려고 늘 안간힘을 쓴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설교의 영적 매력이다.
그래서 그의 설교에 영적 감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힘을 빼고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실, 사랑, 봉사,
나눠줌, 영성의 설교를 통해 목회를 한다. 성장의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의 목회를 하고 있다. 부목사시절 응암교회 황칠수 목사가
금년부터는 수석목사를 역임하라고 하자, 그는 수석은 안하고 반석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최고의 교회가 되는 수석교회보다 바람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교회를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김목사는 신도들이나 부교역자들을
대상이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보는 목적에 의한 목회를 하고 있다.
결국 김목사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의존하는 자세, 사람에
대해서는 진실함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준 본질, 목적의 목회를 통해서 교회를 성장시킨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들이 많을 때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김목사는 지금도 최고가 되는 수석목회보다는 본질을 중요시하는 반석목회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김목사를 통해서 반석목회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 손기철
장로, 승리주의 위험성 주의해야
치유
사역과 성령 사역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선 그 사역이 성경적으로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이다. 또한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가,
지난 2000년간 교회사를 통해 검증된 중요한 신학적 유산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이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 교회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수많은 능력 사역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부작용을 야기하였다. 그러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여
소멸되거나 사라져버린 치유 사역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최근 새롭게 등장한 손기철 장로의 치유 사역을 조명해 볼 필요가 제기되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 사역은 이미 개인 사역 차원을 넘어서 한국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손기철 장로 치유 사역의
건강성에 대하여 기복주의, 승리주의와의 관계, 각종 윤리성, 신학적 건강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고찰해보고자 한다.
1. 기복주의의
함정
기복주의란 하나님에게 복 받는 것을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하나님을 달래는 종교적 요건 충족을 위해서는
열심을 내면서도 인격의 변화와 삶의 열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기독교 신앙의 한 조류이다. 인격의 변화와 삶의 열매가 강조된다해도 그래야
현세적인 복을 더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현세적인 축복을 더 많이, 더 오래 누리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
신앙은 여전히 기복주의의 틀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달래어 자신이 원하는 축복을 받게 해주는 종교적 열심 중 단연 으뜸은
헌금과 기도이다. 기복신앙에서는 헌금과 기도를 무척이나 강조하는데, 헌금과 기도 본연의 가치가 드러나기 보다는, 자신의 현실적인 필요를
하나님에게 해결 받으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변질이 발견된다.
신명기 28장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선물이다.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에도 축복은 포함될 수 있지만, 초점과 중심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고 말씀 안에서의 올바른 삶에 맞춰 있어야 한다.
치유 사역도 기복주의 입장에서 진행될 수 있는데, 손기철
장로의 치유 사역은 하나님나라 신학의 틀 안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며, 치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치유를 계기로 치유 대상자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인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복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
승리주의(Triumphantalism)의 함정
승리주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그리스도의 성육신, 겸손, 고난, 십자가의
죽음보다 부활하고 승천하여 온 천하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영광과 권세에 더욱 주목하는 기독교 신앙의 한 조류이다. 승리주의 신앙은 예수님의
성육신, 고난, 자기 비움을 과거형으로 처리하거나 약식 처리한다. 현재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리하고 다스리는 분이시며, 교회는 현재의
그리스도에게 비중 있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리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두 축 가운데 십자가라는 축을
약화시키고 부활이라는 축을 강화시켰다. 십자가를 강조해도 십자가의 공로를 강조할 뿐, 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지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승리주의 신앙은 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부활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은 기독교
신앙의 또 다른 조류와 대조를 이룬다. 미국에서 일어나 한국으로 수입되어 온 치유 사역과 성령 사역이 승리주의 신앙 노선에 근거하여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던지는 기본적인 질문은 이렇다.
대답은 자명한 것 같지만, 질문의
설정 자체가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처음부터 빗나가 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과 새롭게 취해야 할 것들과
변화되어야 할 것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 최종 목표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건강과 풍요와 행복은 성경이
강조하는 초점이 아닌데도, 신자들의 관심을 그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빗나가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중간기를 살고 있는 교회는 부활의 영광을 선취하여 간직하고 있기는 하나 십자가의 고난도 항상 동시에 간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성령님의 모든 충만과 활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회에게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 동시에 현존하거나 교차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광과 수욕, 부요함과 빈곤함, 건강과 질병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자족하기를 배워야한다. 교회가 어떤
영적 원리를 개발하여 영광·부요·건강만을 누리고, 비참·가난·질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 한다면, 그 노력 자체는 다른 이유로 얼마든지 환영할
만하지만, 성경적으로는 빗나갔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한다.
믿음이 좋고 기도를 잘해도 외관상 비참함과 질병, 그리고 빈곤으로부터
면제받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승리주의 신앙에서는 그런 일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님 주권으로 간혹 예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아니면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있는 어떤 부정적인 이유로 믿음 좋고 기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일종의 죄의 결과로 고난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도바울 자신이 가난과 질병과 위험에 시달리고 싸우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는 사실과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중에 가난하게 사셨다는 사실을 승리주의자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손기철 장로는 예수님은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말한 근거는 예수님은 소유하지는 않으셨으나, 필요한 것은 풍족하게 마음껏 누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기철 장로의 이 같은 견해는 두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는, 통상적으로 부자인가 가난한가는 재산 크기와
소비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예수님은 단지 충분히 누리셨기 때문에 부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부자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은 부동산을 비롯한 유형고정자산을 소유하지 않으셨다. 아파트도 없고 에쿠스도 없었다. 팔레스틴 지역을 걸어 다니면서 복음 사역을 하셨다.
당시 문명 수준으로도 부자라면 훨씬 더 편리한 수단인 말이나 마차나 종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분명 가난하셨다. 예수님이 가난했던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바울은 설명하였다. 바울의 설명이 옳다면 그리스도는
가난하게 살았지 부자로 살지 않았다.
둘째는 예수님은 필요한 것을 마음껏 누리지 아니하셨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의도적으로
선택한 가난한 삶이었다. 예수님의 내면과 존재가 가난한 적은 없었지만, 예수님의 소비수준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이었거나 조금 상회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때로는 잔치에 참여하기도 하고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겨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셨지만, 필요한 것을 마음껏 누리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한 자들과 어울려 친구가 되셨다. 예수님의 소비수준은 주로 어울린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만난 가난한 자들에게 빵을 만들어 먹여준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을 다소
상회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손기철 장로는 많이 받아서 많이 흘려보내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풍성과 충만에 물질적인
것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그 우선순위는 영적인 풍성과 충만에 비해 확실히 뒤로 밀려나는 게 맞다. 물질적인 부요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해도 가장
위험한 선물(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이어서 신약성경은 성도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는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부자인 자들에게 그 부를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만났으니, 부자가 될 준비를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신약성경이 신자가
부자가 되는 것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 뜻에 위반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이 같은
분위기를 무시하고, 예수님이 그의 성도들을 부자로 만들기를 매우 원하시는 것처럼 강조한다면 그것은 신약성경 전반적인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다.
가난과 부는 각각 하나님 백성들에게 서로 다른 고통과 과제를 안겨준다. 그래서 잠언은 적절한 수준에서 부에 대한 추구를 멈추라고 권면했다.
그럼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서 당대 최고의 부자들을 소개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으면서도 거부가 되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열어 둔다. 그러나 성경이 아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정의롭고 거룩한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산 결과 번영이 은총과 축복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적 번영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체하는 마력이 있어서 번영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마음은 즐겁기보다는 조심스럽고 씁쓰름하기조차 하다.
하나님의 씁쓰름함에 대한 최고의 해답은
하나님 백성들이 철저하게 청지기 사상으로 중무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번영을 송구스러워하고 덜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뜻을 받들어 관리하고
사용하는 길 뿐이다. 청지기 사상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번영을 조화시키는 단 하나의 좁은 길이다. 그래서 청지기 직분에는
언제나 배반의 유혹과 배반하지 않으려는 결단 사이의 긴장이 감돈다.
더 많이 받아서 더 많이 흘려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견해에는, 청지기 직분이라는 좁은 길에서의 긴장과 고뇌와 위험성에 대한 각성이 생략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긴장과 고뇌와 조심이 약화된 청지기
직분은 자칫 천박한 물질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손기철 장로의 물질관에는 신명기서가 보여주는 긴장과 고뇌와 두려움 같은 것이 없어 보이며,
때문에 다소 위험해 보인다.
필자는 <뉴스앤조이>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손기철 장로의 예수 이해와 물질 이해에서
승리주의 신학의 냄새를 감지하였다. 손기철 장로는 하나님나라 신학의 틀 안에서 치유 사역을 진행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승리주의 신학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인상을 준다. 필자는 손기철 장로에게 승리주의의 위험에 대하여 더 많이 주의할 것과 하나님나라 신학 자체에 더 많이 묵상하고
연구해볼 것을 조언하고 싶다.
3. 성령 사역과 치유 사역자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들
(1) 재정의 함정
한국 교회에는 치유 사역을 통해 들어오는 거액의 헌금을 사적으로 전용하여 바람직하지 않게 사용하다가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버림받고
심판받은 치유 사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손기철 장로의 사역이 현재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치유 사역의 대선배들이 거의 예외 없이 빠져서
힘들어 했던 함정인 만큼, 가볍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헌금을 받기 시작했다 하니, 재정 문제에는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잘나가는 치유 사역자에게는 거액의 헌금이 몰려온다. 능력 치유의 현장에서는, 중병환자들의 절박함과 천문학적인
병원비가 배경이 되어, 하나님의 치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보려고 더 많은 헌금을 하려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거액으로 축적된 헌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치유 사역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HTM 사역 팀이 재정 운영 원칙을 확립하고, 수입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정리하여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아 그 결과를 공개하면, 재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잉여 헌금을
사회적 약자나 어려운 교회에 지원하고, HTM 사역자체를 확장하기 보다는 사회적 정의와 인자를 실천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HTM 사역은 이전의
그 어떤 사역보다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HTM이 한국 교회 전체를 오래오래 섬기는 기관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필수적으로 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2) 독단의 함정
하나님께서 치유 사역자를 통해 강하게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치유 사역자는 자기가
하나님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독단에 빠지기 쉽다. 한국 교회에는 그간 독단적으로 치유 사역을 진행하거나 팀을 운영하다가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았다.
독단에는 신학적 독단과 리더십의 독단이 있는데 둘 다 위험하다. 신학적인 독단은 결국에는 이단으로
정죄받고 전체 교회로부터는 단절되고, 소수의 추종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게토로 전락하게 만들며, 리더십의 독단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주의하지
않고 전횡하다가 내우외환을 맞이하여 초라하게 소멸되도록 만든다.
신학적인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저명한 신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정기적으로 신학적 자문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 치유 사역과 성령 사역을 잘 이해하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할 수 있는
신학자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리더십의 독단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공인된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HTM 운영에 대한 컨설팅을 받도록 권하고 싶다. 하나님의 직접 인도를 받기 때문에 전문 컨설팅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이미 위험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경고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과 직접 대화했던 모세도 이드로의 컨설팅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윤리적 함정
한국 교회 치유 사역자들은 아주 질이 나쁜
윤리적인 문제들을 종종 일으켰다. 하나님의 치유를 조작하거나, 헌금을 미리 받고 치유를 거래하거나, 치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미한 사건들을 은폐
조작하거나 하는 것 등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치유 사역과 성령 사역은 반드시 비극적으로 끝난다.
또한, 치유 집회에 자주
나오는 신도들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도모하면서 기존 교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기존 교회에서 치유가 잘 안 일어나도 그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존귀와 신부로서의 존엄을 갖고 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이 가장 분노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몸과 신부인 교회가
손상당하는 것이다.
HTM 사역은 치유가 활발하지 않은 기존 교회들과의 갈등에 반드시 직면하게 된다. 이때 기존 교회와 마찰을
최소로 만들며 화목하게 덕을 세워갈 전략과 전술을 세밀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들과의 문제 때문에 결국에는 커다란 상처를 입고 기존
다수 교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봉쇄당하게 된다.
4, 최면술과 양태론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믿음을 강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최면술이나 마인드 컨트롤과 비슷한 점이 발견될 수 있다. 최면술이나 마인드 컨트롤과 비슷하다고 해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최면술이나 마인드 컨트롤과 혼동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믿음에 대하여 강조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혼동
가능성에 대하여 주의하면서 차이점을 세밀하게 분별하여 제시할 필요는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 자체를 변질시켰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보다 최면술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비판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양태론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신론의 하나로,
정통 기독교 신학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설명하고 있는 변종 삼위일체론 중의 하나이다. 양태론은 성부·성자·성령을 하나의 실체가
갖는 세 가지 얼굴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쉬운 비유는 한 남자가 직장에서는 과장인데,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남편이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한 분 하나님이 구원 사역에서는 성자로 나타나고 교회의 성화와 선교에서는 성령으로 나타나고, 창조 섭리에서는
성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양태론이 좀 더 역동적으로 변형된 것은 성부 하나님을 태양으로, 성자 예수님을 그 빛으로 성령 하나님을
그 빛이 쬐일 때의 열기로 비유하는 설명법이다. 이것을 역동적 양태론이라고 한다. 양태론은 한국 교회에 상당이 광범하게 퍼져 신봉되고 있으나,
정통 기독교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이단에 해당한다.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각각 개별 위격을
갖는다. 각각 완전한 신성을 갖는 하나님으로서 상호침투, 상호현존, 상호협력의 방식으로 일체를 구성한다. 세 분 하나님은 각각 구분되는 위격을
갖지만, 역동적인 그리고 완전한 친교를 통하여 일체를 이루고 계신다.
이 같은 삼위일체론을 본체론적 삼위일체론, 사회적
삼위일체론이라 하며, 현대 정통 기독교가 광범하게 인정하는 올바른 삼위일체론이다. 만약에 손기철 장로 치유 사역 중에 성령님을 설명하면서
양태론적으로 설명하였다면, 신학적 오류이며 시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필자는 손기철 장로에게 정통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공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성령의 나타남과 지성적 세련미의 결합이 손기철 장로 치유 사역의 가장 중요한 외관상 특징이다.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대화하고 수용하려는 자세 역시 학문에서 통용되는 방법을 성령 사역과 치유 사역에 접목시킨 것으로 보이며,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 교회에 등장했던 수많은 부흥 강사들과 그들이 수행한 치유·성령 사역에 공로 못지않은 부작용이
많았다는 점에서, 최근 새롭게 등장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손기철 장로 치유 사역에 관심 갖고 몇 가지 조언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기철
장로의 치유·성령 사역이 성경적으로 건강하게 오래가며 한국 교회 전체를 화평하게 섬기고 전체 교회에 환영받는 사역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한다. 최은상 / 주님의나라교회 목사 · 공의정치실천연대 사무처장
--------------------------------------------- "부산시교육청의 뇌교육 프로그램
SEED 철회하라"
교계 "두뇌개발을 빙자한 미신프로젝트"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관내 백 82개 초.중.고교에서 뇌교육 프로그램을 시범 실시하기로 했는데요.
교계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두뇌개발을 빙자한 미신프로젝트"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부산CBS 이강현 기자의 보도]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SEED(Student Emotional Enhancement Design) 즉 두뇌 기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 하기로 하면서 유.초.중
연구학교 3곳을 선정하고 각 학교별로 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학생 감성 강화를 위한 두뇌기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적용하고 연구학교 운영으로 새로운 인성교육의 점진적 추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지역 기독교계는
부산시교육청이 실시하려는 뇌교육 프로그램 SEED는 단월드와 선불교의 설립자인 이승헌 대선사의 영향으로 구축된 것으로 두뇌개발을 빙자한
미신프로젝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SEED는 단월드 연계 기관인 국학원의 프로그램 '뇌교육 집중력반', '명상의 시간'등으로
풍수지리와 무속신앙 등 미신적 요소가 가미된 단학의 수련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부산성시화운동본 임원진들은 설동근
부산시교육감과 면담을 갖고 뇌파진동을 비롯한 뇌교육에 대해 위험성을 경고하며 뇌교육 프로그램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부산성시화운동본부장>
뇌교육은 정부 차원의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부산시교육청이
교육예산을 지원하며 학생들에게 뇌교육을 실시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시교육청은 SEED가 종교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관계 전문가들이 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자아정체감과 자신감을 형성해 줄 것이라며 계속해서 추진
의사를 밝혀 당분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전라북도 완주군 교육청이 초등학생 60여명을
단월드에 위탁해 뇌호흡을 가르칠 예정이었으나 그 일정을 돌연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moonriver@cbs.co.kr
-------------------------------------------- “엄마~버스타고 천국 가서 아빠
데려오면 되잖아” 홀사모,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개척 5개월만에 간암 말기로 떠난 남편, 화장실서 눈물 삼키며 산
10년
Ⅰ. 홀로 남겨진 사모, 빛을 잃다 Ⅱ. 인터뷰 : “900원 차비가 없어서…”-홀사모의 힘겨운 하루 Ⅲ.
거리로 나앉는 홀사모, 교단 후생대책 없나
한 달 수입 66만원. 아침 7시에 나가 해가 지도록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메이커 운동화가 갖고 싶다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녀석의 투정을 외면해야하고 한창 갖고 싶은 것도 많을 사춘기, 그런 내색 한 번 않는 중학생 딸아이에게 옷 한 벌 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미어진다. 그래도 양진희 사모(가명)는 세 식구 배곯지 않도록 매월 수입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교단지원 전혀…" 상처 안고 교회 떠나
큰 아이 7살, 작은 아이가 5살 때 남편은 세상을 등졌다. 그 때 나이
32살. 교회개척 5개월만에 하나님은 남편을 데려가셨다. 사유는 간암. 병원에 갔을 땐 이미 말기로 손 쓸 수 없었고 그렇게 병상에 누운 지
1달 반만에 남편은 가족의 곁을 떠났다.
한영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협성대에 편입한 남편은 결혼 후 9년 동안 학업을 병행했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하루라도 빨리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으로 목사 안수를 받기도 전 남편은 99년 2월, 교회를 개척했다.
“모아뒀던 돈은 모두 교회건축에 들어간 상태였어요. 당시 저희의 관심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앞일을 어떻게 아나요. 그래도
지금 와 돌이켜보면 병상에 있던 1달 반 동안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신게 참 감사해요.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어린 두 아이의 충격과 상처도 컸다. 평소 아빠를 잘 따르던 딸은 며칠 동안 아빠가 보이지 않자 울면서 아빠는 어디 갔냐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빠는 천국 가셔서 이제 우리한테 못 오신다고 그랬더니 그럼 버스타고 천국 가서 아빠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면서
울더라구요.”
하루 아침에 가장이 돼버린 양진희 사모는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단에선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고 연회에서 마련해준 200만원 정도의 위로금이 전부였다. 세상 물정 몰랐던 양 사모는 당시 연회와 교단 내
아는 사람들에게 의지해 일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빚만 떠안고 깊은 상처만 남았다.
양 사모는 이후 교회를 떠나 교단을 옮겼고
사모라는 직분을 숨긴 채 평신도로 조용히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피아노 강사, 공부방 선생님으로 생활비 마련
더
이상 주저앉아 울 시간은 없었다. 양진희 사모는 피아노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회 성도의 추천으로 틈틈이 배워뒀던
피아노 실력이 이렇게 쓰임 받을 진 몰랐다.
그렇게 5년 동안 피아노강사로 일하다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공부방이 있다는걸 알게 된 양 사모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제공사업인 자활근로로 공부방 선생님이 돼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부방 시간이 늦게까지 이어지다보니 동사무소 퇴근 시간에 지장을 줘 그만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고 양진희
사모는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일을 찾지 못한 채 막막하던 양 사모는 하나님 앞에 진실로 나가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양 사모는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회개했다.
3일 내내 눈물만 나더라는 양진희 사모는
그 때 비로소 마음 속에 맺혀있던 원망과 미움, 상처가 치료되며 회복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없인 살 수 없다는걸 다시
깨닫고 기도로 나아가던 양 사모는 교회 공부방 공간을 허락받아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5년 동안
공부방 선생님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양 사모는 지난해 11월, 그곳에서마저 일하지 못하게 되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2달 동안 구직활동을 해 현재
장애인통합교육보조원에서 일하게 된 지 2주가 됐다.
양 사모는 첫 출근 후 집에 돌아와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장애인의 손과 발이 돼야하니까 몸도 너무 고되고. 제가 안 벌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처지도 서럽고
이런저런 생각에 복받쳐서 아이들이 있는데도 펑펑 울었어요. 엄마 너무 힘들다고. 그랬더니 아들 녀석도 펑펑 울더라구요. 저도 얼마나 그 안에
쌓인게 많겠어요. 둘이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기초생활수급자로 국가지원, 안정된 직장 절실
국가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금과 아이들의 학교 급식비를 면제받고 있지만 돈 내고 급식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양 사모.
헌금을 내고 남은 것으론 세 식구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수입, 아이들 학원을 보내는건
꿈도 못 꾼다.
그래도 몇 년 전 예자회를 알게 돼 예자회에서 매달 5만원, 10만원씩 장학금을 보내줘 너무 감사하다는 양진희
사모는 교단과 교회의 지원, 홀사모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은 정말 우리에겐 제일 필요한 절실한 문제라며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저는 조금이긴하지만 수입이 있잖아요. 교단에서 나오는 지원금 15만원으로 1달을 사시는 사모님들도 있어요. 홀사모들에게 교단에서
최소한의 연금이라도 지원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일자리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교회 내에 기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나 일손이
필요하신 분들을 알선해서 연결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진희 사모 역시 지금 일하는 곳은 올해 12월까지가
계약 만료다. 꽃피는 3월, 따뜻한 봄바람에 설레이는 사람들 틈에서 양 사모는 금새 다가올 내년 1월을 걱정하며 여전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 복서이자 세계챔피언 김주희(23)에게는 '천재 복서' '악바리
복서' '얼짱 복서'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면서도 잘 불리지 않는 수식어가 있다. '천사 복서'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과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선행을 펼치기 때문이다.
김주희는 27일에도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장애인 자활시설
삼덕원을 찾는다. 평소처럼 30여명의 가족 치수에 맞는 옷과 신발 등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2004년 세계챔피언이 된 뒤 나름대로 뜻을
갖고 꾸준히 해온 선행이다. 또 몇몇 소년소녀 가장들과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돕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복싱 선수들을 돕는 일에도 누구보다
앞장선다. 얼마 전, 전남 완도의 수산고 복싱부에 용품과 의류, 신발 등을 사 보냈다.
솔직히 김주희의 선행은 자신의 처지에 비해
다소 무리다. 2개의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흥행이 안 되다 보니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주위로부터 "네 형편도
어려운데 굳이 그렇게 남을 챙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곧잘 듣는다. 그러면 그의 입에선 여지없이 "제가 어려우니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마음이
생기죠"라는 답이 나온다.
김주희는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다. 일찌감치 소녀 가장이 된 그는 처절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투정도 많이 부렸다. 그러다 우연히 스승인 정문호(52) 스피리스 체육관장을 만나 복싱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물
만난 고기였다. 2003년 국내 플라이급 챔피언에 이어 2004년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올라 세 차례나
방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가락 골수염'이라는 질병이 그를 괴롭혔다. 엄지발가락 뼈의 일부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하고 챔피언 벨트를 반납했다.
그러나 그대로 묻힐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재기에 나섰다. 죽기 살기로 기도하며 운동했다. 결국 2007년 WBA 챔피언에
등극한데 이어 지난해엔 WIBA 챔피언 벨트까지 땄다. 그에게 사각의 링은 가난과 질병, 죽음까지도 녹이는 삶의 용광로였다. 신앙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연단시켰다.
김주희는 서울 대림동 영동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릴 땐 아무 생각 없이 다녔지만 성장하면서 절대자
하나님의 실존을 확인했다. 특히 시련 속에서 그분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느꼈다. 그래서 그는 "시련에 감사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경기 전후 링에서 꼭 기도를 드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중부대 엔터테인먼트학과에 재학 중인 김주희는 "하나님과 함께하면 두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주희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과 강인한 정신력은 그의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용산 재개발지역 참사’로 재개발지역 입주민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비영리사업자로 등록돼 있는 재개발지역
상가임대교회들은 실질적인 보상이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 서울 신당동 신일교회(담임 이광선 목사)에서 열린
신도시·재개발지역 전국교회연합(이하 전국교회연합) 주최 세미나에서 발제한 변창흠 교수(세종대)는 “토지보상법에는 종교시설과 건축물에 대한 별도
보상규정은 없다”며 “사업자등록증상 비영리법인이라고 적혀있는 사업자는 영업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진단했다.
토지 및 건물을
소유한 경우에는 관계법령에 의해 토지수용에 대한 보상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지만, 임차를 한 경우에는 사업시행자인 재개발조합이 선심을 써 주지
않는 한 아무런 법적 보상이 없다는 논리다.
상가임대교회 사택에 거주하는 목회자들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19조 제1항 제4호 및 제4의2호에서 도시정비법에 의한 주택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을 특별 공급할 수
있으나, 강행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재건축 또는 재개발 조합의 자의적 판단에 달려있다는 내용의 질의 회신을 국토해양부로부터 받았다고 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그러므로 종교관련 건축물 보상기준은 이전에 필요한 비용을 보상하되 건축물 등의 이전이 어렵거나 그 이전으로
건축물 등을 종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와 건축물 등의 이전비가 그 물건 가격을 넘는 경우 당해 물건가격으로 보상하고, 종교건축물과
별도로 사용하고 있거나 설치된 물건(사택 등)에 대해서는 이전비를 평가해 보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4월 8일
택지개발촉진법·재개발관계법 폐지촉구 국민대회 개최
택지개발사업 과정에서 교회를 포함한 종교시설에 대한 보상문제의 경우에도
종교시설이 부지를 소유한 경우 협의매수를 통해 매수하거나 수용방식을 통해 토지를 취득할 수 있으나,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임대종교시설의 경우에는
별도 평가방안이나 보상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가교회들이 임대사용 중임을 감안하면 사용하던 건물이 재개발에 들어갈 경우 보상이
힘들어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보상의 유무를 떠나 종교시설 운영자 및 법인은 인적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네트워크가 근본적으로 파괴될 뿐 아니라, 평균 5년 이상이 소요되는 기간 동안 대체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종교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일 공식 출범한 전국교회연합은 오는 4월 8일
서울역 앞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택지개발촉진법과 재개발관계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해 자신들의 뜻을 알리기로 했다.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전국교회연합 고문)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관련단체들과
연대하고자 한다”며 “폭력적인 방식은 지양하되, 우리의 뜻이 전달될 수 있도록 강력한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최측은 5천명 참석을
목표로 신도시와 재개발지역, 뉴타운 등의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를 홍보해 나가기로 했다.
---------------------------------------------- 매일 호떡과 팝콘 나눠주며 영혼
구원
인천 온제자교회…개척 4년만에 백여명 출석
인천지역의 한 개척교회가 매일 호떡과 팝콘을 주민들에게 나눠 주며 전도를 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개척 4년만에 10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해 전도하는 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곽영식 기자의 보도] 전도에
나선 목사님과 교인들이 기도를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합니다.
이들은 이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지나 다니는 길에서 호떡을 구워
주민들에게 나눠 주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학교 앞에서 팝콘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주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 김순애 집사/ 인천 온제자교회> "우리 주위에는 가난하고 포로되고 또
눈 멀고 눌린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그래서 저희는 매일 쉬지 않고 복음을 통하여 주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 개척한 인천 온제자교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전도에 힘을 쏟아 10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 박상철 목사/인천 온제자교회 > "우리 교회는 매일 1시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오듯 눈이 오듯
상관없이 지금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가 전도하는데 방학이 없는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매일 새벽
5시와 밤 9시에 전도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한달에 두 차례 정도 전도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이 교회는 2500만 원을 들여
호떡과 팝콘을 만들 수 있는 차량을 구입해 호떡과 팝콘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 주며 전도를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 고예진 집사/인천 온제자교회 > "팝콘 나눠 주면서 이렇게 하다 보니까 굉장히 반응이 좋으세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할것 없이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다와서 접근하기가 쉽고요. 일단 말을 건네기가 쉬워서 너무 좋아요"
또 전도지는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매달 새롭게 만들고 팝콘 봉지와 종이컵에도 교회를 알리는 문구를 새겨 놓았습니다.
'전도에는 방학이
없다'라는 책을 낸 박상철 목사는 전국 교회의 전도집회를 인도하면서 복음전파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라며 매일 전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의미를
아십니까?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한 탐구
버림 당한 예수 이야기, 마지막 말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바크다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는 마지막으로 다윗의 시를 인용해
말했다. 그는 시편 22편 1절 다윗의 기도를 자신이 죽기 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용하며 숨을 거둔다. 이 구절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음역
때문에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만이 쓰고 있다.
즉 '다윗의 시'로 나타난 히브리어 문장 중 예수는 시편 22편 1절을
히브리어 그대로 발음했던 것이다. 윗 문장은 히브리어를 읽는 헬라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Father'를 한국식으로
말하면 '파더'라고 하듯 'Father'를 한국식 발음 '파더'라고 복음서 기자는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책을
편집하다 한 전화를 받았다. 저를 위해 늘 기도해주시는 안양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한 아주머님이었다. 나는 늘 그분을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
어머님은 늘 나의 신앙 상태를 체크하고 "기도를 더 해보세요!", "하루에 세 번씩 예배를 드리세요"라고 맑은 목소리로 충고했고 그때 마다 나는
그 말을 실천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분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은 미국 보스턴대학교에 생물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학과에서 톱이 되었다. 연일 주목 받는 마른 체격의 꼬마 아이에게 뿜어져 나오는 맑은 두뇌와 영혼은 그 어머님과 무척 닮았다. 교만이라고는 전혀
없이 늘 겸손함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삶을 즐기는 그녀에게는 딸을 대하듯 나를 아들처럼 좋아해주시고 전화한다. 그래서 늘 고맙다.
미국에서 늘 통화하던 그 작은 딸이 엄마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엄마! 혹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자 어머님은 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고 한다. 보스턴에 있는 딸아이는 "예수가 한 말이 버림을 받았다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목사님이랑 전도사님도 그 의미를 진정 알지 못해요"라고 말했다고 그 어머님은 내게 전했다. 난
불현듯 그 꼬마 숙녀의 안타깝고 가냘픈 목소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혹시 그 구절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려 줄 수
있어요?"라고 어머님은 내게 물었다. 나도 그러한 과제로 과거 10대, 20대에 끊임없이 고민했으나 늘 제자리였고 헛수고했다. 누구 하나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 있는 그 꼬마 숙녀 역시 나와 같은 번민에 쌓여 있던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어머님에게 "시편
22편에 대해 읽어 보시면 대답을 찾을 것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다시 전화 한 결과, 시편 22편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했고 미국에 있는 꼬마 숙녀에게 편지를 다시 보냈다고 했다.
사실 그에 대한 정확한 해설을 하는 곳은 전무했다고
해야 할까? 불과 얼마 전 나 역시 그 문제로 성경 복음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주석과 다양한 경로로 그 의미를 추적하기도 했다. 보다 정확한
주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의문이 많았던 대학교 시절에는 주석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고 그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정확한 의미를 말하는 곳은
없었다.
이러한 대학생 시절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난 과거를 생각하며 해답을 다시 찾았다. 과거의 의문점을
시작으로 단서를 찾는 탐정처럼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었다. 적어도 내게 있는 단지 몇몇 주석에서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실로 예수의 이러한 부르짖음은 가장 필요한 시간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데 대한 절대 고독감과 심각한 위기적
심경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가 당할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 호크마 주석의 '마
27:46' 일부분 -
"마가는 십자가 위에서 외치는 일곱 마디 말씀 중 오직 한 마디 말씀만 기록해 놓았다. 이 외침은 예수가
단순히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도 아니다. 예수의 부르짖음은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법적인 의미에서 버림을 받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호크마 주석의 '막 15: 34' 일부분-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모든 조롱과
멸시와 침 뱉음을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시편 22:6절은 조롱 받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 그레이스 종합 주석의 '마가복음 제 28강' 일부분 -
마가는 이 장면을 써 넣으면서
다음 구절에 넣을 다양한 자들의 반응을 생각한 듯하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를 부른다"(막 15:35)고 말하고 다른 자는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 끝에 꿰어 마시게 하려고 했다. 그만큼 십자가의 높이는 갈대를 올려야 할 정도로, 땅에서 2~3피트 위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들의 행위를 막고 제동을 걸며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는지 보자"라고 예수의 구원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큰 소리를 지르고 돌아가셨다. 마태복음 저자는 "그의 영혼이 떠나시니라"(마 27:50)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수가 죽자
바로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인 '성소'가 둘로 쪼개지는 이적이 나타나고 백부장 역시 이러한 기이한 일을 지켜보다가 예수의 사건에 심히 두려워하여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말이다. 성소뿐만 아니라 당시 무덤들이 열렸고 잔다고 표현하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니 두려울 수밖에.
이렇게 당시 예수의 죽음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복음서의 저자처럼 오늘날 예수의 말 한마디에 다양한
의미와 목마름이 존재한다. 그의 마지막 말을 놓고 그를 '실패했다는 인간 중에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반대로 그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오히려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는 진정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마음속에 그가 진정 구약에서 말한 '메시아'이며 '인자'임은 부인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러한 외침은 예수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의 신음 소리를 마치 하나님이 그를 버린 듯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응답이 없다는 것은 곧 기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고, 오히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점은 버림을 받았다는 의미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 앞 십자가의 예수는 죽었다. 이
사건을 바라본 유대인들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했다.
예수를 본 자들은 다 그를 비웃었으며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건져주실 것 아닌가?"(시 22:8)라는 비웃음으로 일관했다. 예수가 죽어가면서 그렇게 말하는 대목은 자신의 전
'삶'과 '여생'을 시편 22편의 문장들 속에 담아 두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참된 의미를 전달하고자 예수의 버림에 대한 문장이 시편
22편에 담겨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어났다.
예수를 미워하는 자들이 피를 빼버리는 드라큘라처럼 혹은 입을 벌려 달려드는
사자처럼, 그에게 달려들어 무언가를 노리기 시작한다. 결국 그의 피와 물은 땅 아래로 흡수되었고 예수의 마음이 밀랍 인형 같이 녹아버리며 혀가
입천장에 떡하니 붙어 말 한마디 못하는 그의 심정을 표현한 문장이 시편 22편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시 22:15) 혹은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 22:19)라고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과 동일하게 여기기에, 그 시편 22장 1절을 인용하였다고 확신한다. 시편 기자와 예수
모두 하나님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주 철저히 말이다. 사실은 예수가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올바른 바이다.
그래야만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우리가 그를 찬송할 수 있다. 십자가 죽음을 회피하여 그가 버림받지 않았다면 이사야의 예언은 결코
성취되지 못 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지 못할 뻔 했다. 그가 죽었기에 우리는 살았고
그가 자신의 길을 피해갔다면 우리는 진정 죽은 목숨이다.
다른 주석들처럼 만약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예수가 우리 안에 결코
존재하지 못할 근거가 제공되는 셈이다. 시편 22편 저자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하나님께 하소연 한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품에서
자랐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이미 조상들의 구원의 은총을 힘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버리기 시작한다.
구약의 유대인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예언자들처럼, 예수도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 그것이 하나님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내버려 두어야 했다. 그
하나님은 얼마나 아파하였을까? 버리고 싶은 자식 하나 없듯이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데가 없다. 세상을 임대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라
명령하였거늘 이들은 자기 잇속만 채우며 하나님을 등졌고 그 결과 하나님은 최후의 수단인 자신의 아들을 땅 아래로 보내는 것을 허락해야 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아들을 버리지 않으면 세상을 자신의 품으로 돌이키지 못함을 아시고 자신의 아들까지 버려야 했다.
이는
가슴 아픈 일이다. 부모의 심정처럼 버리고 싶지 않은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가슴을 저민다.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예수가 구약의 예언을
모두 이루었고 성취하였기에 우리가 존재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버리는 대신 연약하고 두 마음을 품은 우리를 받아 들였다. 또한 그로
인해 역할을 완수하고 돌아온 예수 자신의 아들도 다시 얻는다.
역사가 시작되면서 하나님도 우리를 받아들이기 싫은 적이 많았다.
구약을 보면 늘 방탕한 나그네처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 이방신을 섬기고 본래의 아버지를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본래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다. 다만 이방신과 여호와 하나님 두 신을 동시에 섬기는 교활한 자로 전락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땅 위에 살고 있기에 잠시 발을 담그는 것은 용납할 수도 있다는 두 마음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둘로 쪼개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고 이내 우리를
향해 화를 버럭 내신다 해고 별로 나쁠 것 없다. 그런 적도 한두 번 아니다.
그럼에도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선사하듯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는 구약의 '예언과 언약'과 '저주와 핍박'을 동시에 바라보게 하였다. 그 결과 시편 22편을 지은 저자의 마지막 구절에
도달하면서 그러한 '저주와 버림'에 관련한 사실들은 뒤엎고 반전을 거듭한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 22:27~28) 이 말이 참 내게
가슴으로 와 닿는다. 시편 저자는 버림받았던 과거의 씻을 수 없는 기억의 상처를 덮어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나라 백성들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예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상상으로 이제 시편의 저자는 세상이 풍요롭고, 걱정과 근심 없이 살아가는 최고의 모습을 본 듯하다.
이 마음을 예수는 보았을 것이다. 그는 미래를 볼 줄 알았다. 자신이 이룩하고자 했던 목표도 알고 있었다. 예수가 이룩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라는 시편의 마음과 동일하다. 그가 이룩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 마음이었기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땅에서의 이룩함'이 동일시되어 기도 제목이 이루어진다.
시편 저자는 그의 나라를 이룩하고자 야곱의 모든 자손들에게 "하나님께 찬송하고 그를 경외하자"고 부탁한다. 그에게 영광을 돌리자고
격려한다. 그 이룩하려는 목표의 희생양이 바로 시편의 저자가 언급한 여호와를 향한 마음이다.
그는 희생양으로 세상을 이길 한
인자를 지목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 22:24)는 고백처럼 예수는 이제 울부짖었고, 자신의 일을 마치자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신 결과,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을 따를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그래서 시편 22편 마지막 대목에서는 이제 완성을 나타낸다. 저자는 누군가가 이 땅
위에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하였고, 이윽고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라며 십자가의 완성을 이룩하였다는 것을 '예수의 삶과 부활'에서
엿볼 수 있다.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실수 하는 것은 인간이고, 용서 하는 것은
신이다) - Alexander Pope (알렉산더 퍼프, 1688~1744,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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