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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1년 7월 22일 기드론 시내를 건너자 요18:1-11
    2001-08-20 01:11:33   read : 101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람에게는 머리가 얼마나 똑똑한가를 알아보는 지능지수인 IQ가 있습니다.
    또한 그가 얼마나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감정 지수인 EQ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영성을 알수 있는 영성지수 SQ가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는 SQ를 측정하는 도구를 만들어 200을 기준으로 영성 지수를 삼았습니다.
    여러분의 영성지수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한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영성이 낮으면 실족하기 쉬운 위험한 사람입니다.

    첫 번째 가장 낮은 영성은 수치심입니다. 영성 지수 20:
    현재 자신의 삶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실족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바로 수치심입니다.
    즉 갑자기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을 알게 되고 수치심을 느끼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치심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하면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더구나 예수를 믿는 것도 수치스러워 합니다.

    두 번째 낮은 영성을 갖은 사람은 (지수 30) 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 죄의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자기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병에 걸리기도 하고 더 심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자기가 잘못하고도 눕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 번째 영성 지수 50: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 이 수준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징지어집니다.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이고 모든 것이 허무합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만나기를 꺼려합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을 썩이니까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포기할 때가 있었던 경우입니다.

    네 번째 낙심하고 슬픔에 젖은 사람입니다.
    / 이 상태는 슬픔, 상실, 낙담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경험을 하지만 항상 어떻 사람들은 후회와 우울함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삶을 슬픔으로 보기 때문에 과거의 후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인 것을 염두해 주십시오.

    다섯 번째 욕심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뜁니다. 믿음도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아야 한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만족이 없기 때문에 결국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욕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혈기 분노 미움에 차있는 사람
    여섯 번째 : 헛된 자존심 즉 교만에 빠져 있는 사람

    이제 자신에게 프러스되는 진취적인 영성을 갖고 있는 사람
    첫 번째 좋은 영성 지수의 사람은 : 용기있는 사람
    두 번째 좋은 영성 지수의 사람은 :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재 좋은 영성 지수의 사람은 : 사랑하는 사람
    네 번째 좋은 영성 지수의 사람은 : 화목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하기 두렵습니까? 힘드세요? 내 영성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영성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 영성이 성장하지 아니하고서는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성을 올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치감, 죄의식, 욕심, 무기력, 혈기 ,교만 을
    오늘 설교 제목인 기드론 시내에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성 동편에 있는데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 골짜기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감람산이요 그 안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

    기드론 시내란 뜻은 "물이 급히 흐르는 골짜기"라는 뜻을 가젔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드론 시내를 오가며 건너 다녔지만

    성경에는 오직 두 분에 대해서만 기드론시내가 기록되고 있는데
    한분은 다윗 왕이요 또 한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두분 다 기드론 시내를 건넜으나
    다윗 왕은 온 백성들의 통곡소리 속에서 좌절과 눈물로 기드론 시내를 건넜으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맡은 사명을 다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넌 것입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앞에 놓고 마지막 기도를 해 주신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밖으로 나 가셨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달빛을 밟아가며 예수님 과 제자들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있습니다.
    기드론 시내는 예 루살렘과 감람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개천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신 데는 매우 상징적인 메시지가 담 겨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은
    유월 절을 하루 앞둔,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 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뿐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 루살렘 성전으로 어린양을 끌고 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어린양에게 짊어 지우고는
    성전의 단위에서 양을 잡아 피를 흘려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어마어마한 행사입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한번에 25만 마리의 양이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숫자의 양을 잡았다는 것만 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양을 잡아서 흘리는 양의 피는 곧 바로 기드론 시내로 흘러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널 때쯤에는 아마 달빛에 검붉은 피가 섞인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해서 건너야 할 강이 있는 데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 입니다.
    그 보혈의 강물에서 죄와 허물로 더렵혀진 우리의 영혼을 목욕시켜 죄 사함을 얻으며 세상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 법궤'를 대신 짊어져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의 대 역사를 앞두고 지금 기드론 시내를 건너시는 것입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넌 다는 것은 이제까지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기드론시내를 건너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모든 죄악된 것을 기드론 시내에 버리고 건넘으로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에게나 인생에 건너야 할 기드론 시내가 있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문제 해결을 받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시련과 역경이 그치고 새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드론 계곡은 지표면으로부터 120m나 아래쪽에 위치한 상당히 깊은 계곡이었습니다.
    기드론 골짜기는 신비한 골짜기 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상을 본 곳이 바로 이 기드론 골짜기라는 것입니다.

    기드론 시내란 히브리 말의 뜻은 `백향목의 시내'란 의미입니다.
    실제로 기드론 골짜기는 평소에는 말라붙은 계곡이기에 백향목이 살래야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무덤이 가득찬 무덤의 골짜기일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골짜기를 `백향목의 시내'라 부르게 하신 것은
    이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 자에게
    그곳은 더 이상 죽음의 골짜기가 아니라 백향목의 시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백향목이란 당시 집을 짓는데 사용되던 최고의 목재로서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집은 영원하고 향기로운 진리의 백향목 집인 것입니다.

    바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아름다운 백향목에 사는 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셨기에 우리를 위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피신하였습니다(삼하15:23).
    그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서 천하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땅에 묻히고 만다는 것, 끝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그 이후로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생명의 법도를 따르므로
    결국 다윗이 피신할 때 울며 건넜던 그 죽음의 계곡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때에는 이미 백향목의 계곡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에 때로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고서는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1) 첫 번째 기드론 시내를 건너다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흘리면서 멘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의 권세를 포기했습니다.

    여러분도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드론 골짜기에 여러분의 가장 주요한 세상 것을 버려야 합니다.

    미국의 노벨 문학상을 탄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이 쓴 글 가운데, "진주"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는 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가는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가끔 바다 속에 들어가서 진주를 채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기 드문 대단히 큰 아주 값비싼 진주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이제 가난이 끝나고 행복한 삶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아주 비싼 큰 진주를 찾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값진 진주를 구경하기 위하여 늘 키노의 오두막집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부부가 병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이전에는 그들의 아이가 전갈에 물렸을 때,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던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과잉친절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몇 번씩이고 키노의 오두막집을 찾아오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병을 낫게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병이 더 오래 가도록 처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주가 탐이 났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진주 장사들은 키노의 비싼 진주를 헐값에 사기 위해서 온갖 농간을 부리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그들 부부를 협박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밤중에는 강도가 침입하기도 했고 키노는 진주를 지키기 위해서 격투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진주가 그들의 삶에 행복을 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진주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비산 진주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주를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진주를 포기하자 그제사 행복을 되찮았고
    진주가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소중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행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 내가 물질의 소유가 많아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신앙이 없이 돈이 많으면 죄짖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일류대학을 나와오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서 돌아오면 행복할 것 같아도 오히려 사람이 교만해지고 그 학벌이 그를 망하게 만드는 요인도 될수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미모가 뒤어나면 행복할 것 같아도 미인 박명이라고 얼굴이 예쁘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복잡하고 힘든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으나 오히려 그 삶이 하나님과 먼 동떨어진 추한 인생을 살기 쉽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 심령이 기드론 골자기를 건넘으로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드론이란 죽음의 골짜기를 건넌다는 것은 내가 죽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내가 온전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무덤의 골짜기를 건너야 백향목의 시내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고향에 아버님 추도식을 앞두고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묘소에 들어있는 죽은 육신이야 벗어 논 옷처럼 별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효도하는 마음으로 산소를 찾아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산소 옆에 저의 가족 모두 가묘를 해 놓았는데 제가 들어갈 가묘 앞에 서면 생각이 묘해 집니다.
    내 영혼 하나님이 받아 주시겠지만 내 육신이 언젠가 이 가묘속에 뭍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삶이 진지해집니다.
    뭐 짧은 인생인데 아득 바득 살 것있는가?
    좀더 겸손해 지고 욕심 없이 다다익선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주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오르신 곳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수난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본격적인 길목입니다.
    이제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 가야 할 곳은 겟세마네 동산 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성화'의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성을 벗으시고 신성으로 변하여 삶의 결단과 소원을 삼으신 장소입니다

    기드론 시내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입니다.
    기드론 시내를 지나서 겟세마네 동산까지 올라가는 것은
    내 안에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버리고 게세마네 동산까지 올라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1)첫 번째 겟세마네 올라가서 영적인 사람이되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겟세마네'라는 말은 원래 '기름 틀'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곳에 감람유를 짜는 기름 집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기름틀 속에 들어간 올리브 열매가 으깨지는 것 같은 것은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본문의 2절과 3절 사이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나 누가복음 22장 4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세 번이나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 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 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 라”
    그런데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이 기도하실때에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3번씩이나 깨웠 건만 잠든 제자들에게 예수님 안타까움에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시간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게세마네 동산은 기도의 동산입니다.
    예수님은 눅22:44에 보면
    "힘쓰 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매 피 방울 처럼 되었더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기도 하셨건만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서 능력얻고 새힘얻고 참으로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26:38-46)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했습니다. 정신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늘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교제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사단의 공작 은 틈을 타게 됩니다.

    그런데 개중에 기도하지 않음으로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잠으로서 실패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기 보다 자신을 과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전 제자 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흩어지리라"고 했을 때 베 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자신의 나약 함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너무 의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닭 울기전 3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 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해야 하겠건만 베드로는 자신을 과신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깨닫고 늘 나를 바로 볼줄 알아 야 하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믿는자는 미련한자라"(잠28:26)고 했습 니다.

    여러분 우리는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배우자를 만나거나 무엇을 하든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면 결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1)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2) 기도가 부족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3) 아직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맡기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불안한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거나 결정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러한 때는 서두르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조용히 엎드려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진실한 기도가 없습니다.

    식사할 때 기도는 합니다. 또 교회에 나와 앉으면 기도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엎드리는 진실한 기도가 없습니다.

    약4:2절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자기의 구한 대로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안되면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안되면 금방 그만 둡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끝까지 기도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간증 거리가 많습니다.

    2))) 두 번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잔, 그리고 고난의 잔 까지도 감사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셨습니다.
    11절 하반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무리 그 잔이 쓰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예수님은 기꺼이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당할 고통을 생각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렇게 말은 잘합니다. 그러나 막상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당할 육체적이고 경제적인 손실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그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 겟세마네 동산은 은혜로운 장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 동산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줍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위기는 다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정에도 어김없이 위기는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일터에도 위기는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시련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도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사를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 뒤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도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은 이것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서 너무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벗겨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십자가를 그대로 지고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흔히 간질병이라고 합니다 그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응답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족한 은혜 즉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자고하지 못하도록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에 바울은 더 이상 육체의 가시가 괴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자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그는 기도함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작게 만든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에 내 힘으로 해결하려면 위험하고 힘이 듭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서 은혜의 강물이 넘치면 문제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전자의 방밥을 사용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룟 유다가 죽음의 사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붙들러 나온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던 베드로는 은혜를 받지 못한 아직은 육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혈기를 부려서 칼로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육적인 사람의 무지한 행동으로 사탄의 방해공작을 도와준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검을 집에 꽂으라"고 책망 받은 것입니다.
    그의 방법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삶에 위기가 있다면 그 위기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기요,
    그 위기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족한 은혜가 있고,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마지막으로 게세마네 동산에서 배워야 될것은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서 작은 냇가를 노저어 갑니다.
    그런데 앞에 보니까 큰 바위가 떠내려 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는데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강물을 계속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려서 가서 직접 큰 바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힘들고 위험한 방법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늦더라도 비가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큰 비가 오도록 함으로서 시냇물이 넘쳐나게 하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물이 철철 넘쳐 흐르면 바위는 그대로 있어도 배는 그 바위 위로 지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군인은 훈련을 통해서 더 강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무엇을 통해서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까?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강해지고 인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순수하고, 강하게 해서 우리의 인내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편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큰 물결이 쳤습니다. 물이 배에 부딪혀서 뱃속으로 물이 들어와 배가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다! 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왜 우리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이 깨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 한 마디에 바다가 고요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딱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왜 제자들이 풍랑이라는 시험 앞에서 야단법석을 떨었습니까? 한 마디로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도 이미 준비된 구속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삶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하는 삶에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내 방법에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잘못된 방법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많은 것과 싸우게 됩니다.
    열악한 삶에 환경, 질병 ,가난 , 불행 같은 것들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련은 절대 우리를 실패로 몰아넣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어떤 위기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너무 동요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온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르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건너야 할 기드론 시내가 있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넌다는 것은 탐욕과 권세와 아집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고 해결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겠지만
    다윗과 예수님께서도 건너신 기드론 시내를 우리가 건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앞에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와 시련과 고통을 기드론 시내를 건너므로 해결의 은혜를 입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황당한 일이 닥쳤을 때 낙심만 하지 말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다섯 번만 읽으면 거기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시편 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어두운 내 발에 등불을 비쳐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당한 일을 만났을 때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근심하지만 말고 미워하지만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으세요.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이켜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받은 사랑은 엄청나건만, 사랑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사랑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주기보다는 빼앗기만을 원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나의 부족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는 마음을 비우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웃으면서 대할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테레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셔서 저 사람 앞에서도 제가 미소를 띄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나서 억지로라도 그 사람 앞에서 웃으면서 모든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테레사는 늘 이런 말을 즐겨했습니다.
    "I am nothing(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 그는 연설 가운데서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I am nothing(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I am nothing(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잘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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