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4일 :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 삼하 6 : 11-19 2001-08-20 01:08:23 read : 106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다윗은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마음에 있는 두가지 큰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가 머무는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법궤를 머물게 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려고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를 모았습니다
왜냐하면 법궤가 있는 아비나답의 집은 불레셋과 접경 지역에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불레셋 군대와 싸움이 붙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삼하 6:1). 그리고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으로 전 이스라엘 백성이 대동단결한 장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궤를 소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몰고 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실로 법궤를 불레셋 사람들에게 빼았긴지 70년 만의 일이었기에 참으로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지난날 광야에서 헤멜 때에, 요단강을 거널 때에, 여리고성을 돌면서 무너뜨릴 때에 제일 앞장 섯던 하나님의 법궤가 불레셋 사람들에게 빼았긴지 70년만에 다시 찾아오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축제의 현장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수레를 끌고가던 소들이 갑자기 뛰므로 수레 위에 실린 법궤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를 몰고가던 웃사가 손을 펴서 흔들리는 궤를 붙들었습니다.
민수기 4:15절의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는 경고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모든 악기 소리는 중단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황하고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하나님의 율례(법)대로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법궤 운반 방법은 (민 4:15).
레위 지파 중에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하나님의 법궤를 이방민족 블레셋이 하는 방식대로 편하게 불손하게 소 달구지에 옮기려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에 불레셋 사람들이 소달구지로 법궤 옮기는 것을 보고 배운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손쉽게 하려고 이방민족이 처럼 불신앙적인 방법으로
힘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소달구지로 옮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죽는 큰 징계를 당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세상 방법으로 손쉽게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스라엘 잘못은 하나님의 일은 쉽고 편하게 하려다가 실패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무엇이든지 손쉽게 수고하지 아니하고 열매를 얻고 성공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해서 생명을 걸고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세상 방법으로 손쉽게 하려고 해서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잘못 실패하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정성과 희생과 헌신과 수고의 땀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내가 움직인 만큼 하나님도 움직이십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저는 생활전도란 책을 쓰기 위해서 책을 150권을 1년 만에 읽었습니다.
2년 동안 책을 쓰기 위하여 컴퓨터를 얼마나 두드렸는지 검지 손가락에 생이 손이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책을 20판 찍어서 3만권 정도 팔렸으며 여의도 순복음 신학교에서 전도학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매달 출판사에서 50만원 정도 입금이 들어옵니다.
자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얻으려면 그만한 수고와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저께 잠실 운동장에서 세계적인 쓰리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지휘자 선생님이 코리아 심포니 연주 단원으로 단위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니 더욱 기뻣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바로티가 노년의 나이에도 최선을 다하여 부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 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고등하교 다닐 때에 실수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을 끼고 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표가 잘 안나지만 자신은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얼마나 낙심하고 좌절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학생은 좌절하지 아니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던지 사장의 마음에 들어서 사장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신혼 여행을 갔다 오면서 신랑이 신부에게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쪽 눈이 없는 데도 결혼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신부가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신랑이 자기가 한쪽 눈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랑에게 따젔습니다.
그때 신랑이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에게 나는 한뽁눈 밖에 없다고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언제 그랬냐니까 신랑이 내가 보낸 편지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부가 신랑이 보낸 편지를 보니 편지마다 서두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한눈에 반했습니다"
봐라 나는 한눈 밖에 없다고 하잖았는냐, 그러나 이 청년은 열심히 해서 회사를 더욱 크게발전시키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웃사의 즉사 사건으로 다윗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사고난 근처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석달 동안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법궤가 머무는 석 달 동안에 오벧에돔의 집에 축복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왜그랬을 까요?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행동을 통해서 당신에 대한 무엄함과 불경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웃사가 법궤를 경홀히 대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법궤를 오래도록 자기 집에 모시는 동안 친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수양이 덜된 사람들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경홀히 여기고,
수양이 잘된 사람은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조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 오래 나오고 하나님과 친숙해질수록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그 말씀을 하찮게 여겨 거역하하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해지면 친숙해질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귀히 여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비나답은 20년간 법궤를 모셨지만 바르게 진정으로 모시지 않음으로서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웃사는 경거망동하게 하나님의 운반하려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경건하게 하나님의 법궤를 모심으로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법궤 때문에 웃사가 현장에서 죽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다들 법궤를 두려워하고 법궤를 놔두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남들이 내 팽켜처진 법궤를 자기집에 모신 것입니다.
웃사가 법궤 때문에 죽은 것을 알면서도
오벳에돔은 자기 집으로 그 법궤를 기꺼이 영접하고 경건하게 모셨습니다.
그의 이와같은 신앙의 용기와 섬기는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내린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직업은 성전에 문지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안이 좁고 간나했으며 법궤를 둘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벳에돔 법궤를 집안에 정성껏 모십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신앙에 모습도 마차가지 입니다.
우리는 내 형편이 안좋아도 예수님을 정성껏 모시고 남들이 싫어해도 내가 정성껏 모실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20년을 예수 믿어도 헌신과 수고와 희생이 없이 건성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지 3개월 밖에 안되었어도 비록 형편이 여의치 않아도 교회 봉사하기를 하나님 섬기기를 최선을 다 할 때에 오벧에돔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임하는 것입니다.
아미나답은 20년간 법궤를 모셨지만 바르게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만 건성으로 기쁨이 없이 타성에 젖어서 신앙 생활하면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도 아무런 은혜와 축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벳에돔 처럼 단 3개월을 모시어도 진실로 모시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년수가 자랑이 아니요 믿음과 감사의 경건한 모습이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법궤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십자가를 경건히 모실 때에 우리에게도 오벳에돔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건하게 모시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민족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사랑의 대명사요, 용서의 대명사요, 영생의 대명사요, 구원의 대명사요, 복음의 대명사요, 축복과 승리의 대명사 입니다.
오벧에돔이 복 받은 비결은 그 가정에 하나님이 머문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에 복받는 비결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가정에 주인으로 머무는 것이 바로 축복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집이 하나님의 궤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은 비밀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 소문이 다윗에게까지 들리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다윗이 이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큰 뜻을 갖고 어떤 일을 의욕 있게 추진을 하다가 한번 실패를 하면 낙심이 되어 일을 다음에는 일 하기가 두렵다.
실패가 곧 마음의 깊은 상처가 되어 또 실패를 할까 겁이 난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이것이 왜 실패를 했는지 원인을 찾고 잘못을 고쳐 새롭게 하면 된다.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생각을 하는 것이 지혜다.
다윗왕은 지난번 법궤를 옮겨올 때 무엇이 잘못된 일이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법궤는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궤는 순청 보자기를 덮은 후에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레위인들은 거룩한 기구를 만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덮고 싸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고 운반할 때는 레위인 중에 고핫 자손이 메야 했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려면 양어깨로 메고, 4사람이 균형을 맞추고 힘을 합하여야 합니다.
법궤를 운반하려면 어깨에는 굳은살이 박히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드디어 또다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서 주악을 울리면서
고핫자손들이 어깨에 법궤를 메고 여섯걸음을 옮겼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하게 법궤를 바라보던 다윗은 한걸음 한걸은 고핫 자손들의 발거름이 여섯걸음을 옮겼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제사 다윗의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없어지고 용서받은 것입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 뜨린 능력의 법궤가 드디어 70년만에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14절에 왕의 의복을 벗고 대신 평민복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힘껏 춤을 추었습니다.
참으로 다윗은 진실로 기뻣고 그래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멘 살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러자 마침 그 모습을 본 미갈이 찬 물을 끼었는 말을 하였습니다.
16절에 다윗의 아내 미갈이 남편 다윗이 춤을 추는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심중에서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마음으로 비웃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집에 들어 왔을 때에 뭐라고 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공동 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다윗이 자기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돌아 오자 사울의 딸 미갈이 나가 다윗을 맞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시다니." (삼하 6:20)"
1)우리는 다른 사람을 심중으로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합니다.
심리학자들 말에 의하면 "스스로 결함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업신여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약점을 찾아 비웃기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시기심이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미갈이라는 여인도 교만했습니다.
미갈이 볼 때에 자신이 과거 왕의 딸인 공주였을 때에 다윗은 이름없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업신 연긴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마음이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옷을 벗고 겸손하게 베옷의 평민 복장을 하고 진실로 기뻐서 하나님 앞에서 온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14).
다윗은 하나님 앞이므로 체면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14,16).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갈은 자존심과 체면만 생각했습니다.
미갈이 비난하는 것은 다윗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생각해서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남이 하는 일을 보면서 비난보다는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면서 서로를 세워 주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이나 약점은 사랑으로 서로 덮어주고, 절대로 조롱하거나 비웃지는 말아야 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욥의 아내는 남편을 비난했기에 결국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용의 아내처럼 미갈처럼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서 칭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보면 그를 축복하며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모처럼 100점을 받아 왔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보자마자
"너 누구 것 컨닝했냐?"라고 말한다면 아이의 모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로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한다하여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토머스 칼라일의 부인은 참으로 남편을 존경했으며
칼라일 역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그 아내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칭찬 한마디를 말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칼라일은 평생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칭찬할 줄 몰랐습니다.
일설에 그 아내는 외로움에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후일 칼라일은 아내의 일기를 보았는데 이렇게 썼습니다.
"남편은 한번도 나에게 따듯한 말로 칭찬한 적이 없다. 아무런 말도 없으면 그것이 끝이다."
부인이 죽은 후 칼리일은 부인의 일기를 읽고
그제서야 따뜻한 말 하마디의 칭찬 소리를 듣고 싶어 기다렸던 아내를 생각하고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 앞에 놓고 후회해 보았자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 보다 먼저 원하는
아내의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의 격려의 말입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발명왕 에디슨은 모두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꾸중과 비판과 질책이 있었지만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인정과 신뢰와 칭찬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끊임없는 신뢰와 결려가 있었기에 세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다른 과목은 잘 못하는데 국어는 늘 100점을 받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100점을 맞은 국어 시험지는 벽에 붙이고 10점짜리 시험지는 찟어버렸다. 그것을 기억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잘하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늘 칭찬해 주었다. "100점이구나, 참 잘했다. 너는 어쩜 이렇게 공부를 잘하니? 나중에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
아이를 잘 기르는 방법은 단순하다.
좋은 점, 잘하는 점은 칭찬해 주고 못하는 것은 덮어주고 잊어버려야 한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칭찬에 용기를 얻어 나중에는 수학도 영어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이 행복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부부간에 서로 잘하는 것만 바라보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음식 잘하면 음식, 마음씨가 고우면 마음씨, 잘하는 것만 보아야 한다.
못하는 것은 다 묻어 버리고 장점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 하나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 서로가 행복한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인정해주는 사랑의 격려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인정하는데서 아름다움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박한상군이라고 한약상 부부 살해한 그는 13년 동안 부모로부터 칭찬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약점을 찾아 닥달만 하고 스트레스만 주면 결국 매사에 의욕을 잃고 소외감을 느끼고 급기야 위험한 생각으로 세상을 포기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살자가 참으로 주변에 많습니다.
대부분이 그를 인정해주고 위로와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의 직원이 갑자기 회사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조사에 나섰는데 표면상으로는 자살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휴지통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 회사에는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앞날이 막힌 무능한 존재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니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2. 칭찬하지 못하고 비난한 결과는 무엇입니까?(23)
23절에 미갈에게 징벌이 내렸습니다.
미갈은 남편의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여인,
애기못낳는 징계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남편을 칭찬하거나 축복하지 못하고
대신 업신여기고 비웃다 당한 결과입니다.
본문에서 미갈을 표현 할 때에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사울의 딸이라고 본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갈은 아버지 사울의 시기와 질투와 업신여기는 것을 닮았기 때문에 사울의 딸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미갈은 얼마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사울의 가문이 망해서 방황 할 때에 다윗은 특별히 그를 찾아 내어 다시 자기 아내로 삼 았습니다. 그런데 미갈은 그 남편의 은혜를 잊고 남편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결코 업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격려하고 칭찬해 줍시다.
격려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삶에 의욕을 갖도록 말로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격려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격려를 받은 사람은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매사가 긍적적이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용기를 잃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해주는 격려와 사람이 줄 수 있는 용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는 근원적인 격려가 필요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히브리서 12장2절에 말씀때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슴니까?"
주변에 사람들을 바라보는 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을 얻고 위로를 받고 근원적으로 격려를 받을 분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조심 할 일은 "심중으로 주변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무엇입니까?
실직입니까? 돈이 마음대로 잘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서 있는 자리는 하늘의 천사들이 강림하여 왕래하는 천국 문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살게 될 천국은 슬픔이 없고 고난과 아픔이 없는 오직 소망과 기쁨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평안이요 격려입니다.
이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봄"으로서
오늘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며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위로와 칭찬과 격려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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