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년 6월 17일 여호수아 3장 1-17 요단강을 건너려면 2001-08-20 01:07:21 read : 98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단강은 죽음의 강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요단강의 이미지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는 찬송가 가사 때문 에 죽음의 강으로 오해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을 들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장애물입니다.
따라서 요단강은 그들에게 성공의 목표를 실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최후의 장애물이고, 시련이며,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강입니다.
축복의 땅에 들어 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행진하던 중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요단강 건너가게 되었는가 그 기적의 비결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문제의 요단강을 건너는 비결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본문 3장 1-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요단강가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흥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40년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겠습니까?
이제 강만 건너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바로 건너가지 마고 요단강가에 사흘을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를 다녀온 두 정탐꾼의 보고는 우리가 들어가기만 하면 승리는 필연적이라고 말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였음을 확신하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바로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강변에 사흘 동안 진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꿈에 그리는 가나안 땅을 강 건너 바라보면서 사흘을 기다리는 것이 굉장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거너려면
1) 첫 번째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일찍이 일어나서'라는 1절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마음이 들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조급하게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적절한 때를 놓쳐 버리고 늦게 함으로 말미암아 중요한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릴 줄 알기도 하고, 일을 시행할 때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꺼비와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와 두꺼비의 차이는 개구리는 굉장히 빨리 갈 수 있고 두꺼비는 좀 느립니다.
어느날 개구리와 두꺼비가 논두렁 사이로 산보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아주 팔짝 뛰어가면서 옆에 있는 두꺼비 때문에 속이 터졌습니다.
"야! 두꺼비와 너 빨리 갈 수 없니? 왜 그렇게 느리게 가냐!"
그러자 두꺼비가 말합니다. "개구리야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라. 나는 천천히 가면서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새들도 보고, 꽃들도 보면서 가련다." 개구리가 먼저 급하게 뛰어 갔습니다.
논두렁길을 지나서 신작로에 이르렀을 때 앞서가던 개구리 빨리 간다고 팔짝 팔짝 뛰어 가다가 지나가던 자동차에 치어 죽었답니다.
개구리 죽은 시체를 보면서 두꺼비가 웃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은 너무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급하게 모든 것을 하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조건 빨리 간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급하게 간다고 잘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지하고 돌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갈 길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시간입니다.
살면서 정지한다고 시간을 손해보는 것은 아닙니다.
재수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갈 수 있다면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도약의 시간이 될 수 "거룩한 정지"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로를 달릴 때 무조 달려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이정표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운전은 잘 달리는 것보다 빨간 불이 나타 날 때 잘 정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빨간 불일 때는 아무리 가고 싶어도 정지하고 파란불이 나타 날때 까지 정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하나님이 가라고 해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우리 앞에 놓인 요단강의 문제를 건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 까지 간절히 또는 묵묵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명령을 가다리는 것은 실수 없이 모든 것을 잘하기 위함입니다.
사무엘하 2장 1절에서 다윗은
이제 사울왕이 죽었고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지 23년이 지났음으로 즉시 왕위에 오르고 싶었지만 그는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하나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올라가라"
다윗이 또 묻습니다. "어디로 가리이까" 말씀하시기를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은 성급하게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장래에 살아가야 할 갈 길을 하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무엇을 할 때에 꼭 하나님께 물어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그토록 오래 기다렸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서야 움직였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했을 까요 ?
오랫동안의 고난이 그를 이렇게 성숙하게 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순종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때로 고난도 유익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19편 67절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모진 고난을 당하고 나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어떤 일이든지 서두르면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늦어도 좋습니다.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 기다리지 못하고 몸종 하갈을 취해서 아들을 낳음으로서
얼마나 가정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겪습니까?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즉시 이루어 지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것들은 오랜 시간이 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 더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일들, 영원히 남을 일들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루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결코 늦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한 약속이 2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받으리라는 약속후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 졌습니다.
요단강 가에 삼일을 머문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먼저 앞장서서 가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요단강은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데 언약궤를 앞세우고 건너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려면 "언약궤의 신앙" 이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고 했을까요?
언약궤 속에는 1)십계명 두 돌판 2)만나 3)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어 있습니다.
1)))) 첫째 십계명의 두 돌판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갑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을 좇아 따라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는 언약궤 속에 만나가 들어있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줬던 하늘의 신령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농사도 짓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고, 수고도 아니하였는데 광야에서 입고, 먹고 마시며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만나의 약속이 있어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살리신다는 약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언약궤 속에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팡이는 아론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이것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인 것입니다.
말씀과 주님의 약속을 믿고 언약궤를 앞장 세우고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약궤를 앞장 세워야지 언약궤를 추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급한 마음에 주님을 제치고 먼저 달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우리가 서둔다고 우리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준비한 때가 되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면 카메라에 찍혀서 벌금 통지가 날라옵니다. 그러면 다음에 조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주님보다 빠르게 과속해서 달리면 위험 신호로 고난과 좌절과 실패라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아하! 이건 내가 너무 빨리 간다는 신호" 로구나 생각하고 잠시 정지하거나 서행을 하고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 자기 멋대로 과속하며 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3년간 정지시키고 난 후에 비로소 겸손히 주님의 뒤를 쫒아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문제 앞에서 섯불리 건너지 말고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1등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1등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의롭고 올바르게 달리는가를 보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에 얼마나 바쁜 일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급하고 바쁜 일이라고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 뜻대로 행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 요단강을 건너려면 먼저 성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가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할 일이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내일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기적을 행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서로를 성결케 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성결케하라'는 말은 이미 더러워져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성결케하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헤쳐 나오면서 더려워져 있는 것들을 깨끗케 하하라는 것입니다.
1)) 특별히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는 말씀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성결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는 의미는 지난날 광야생활에서 몸에 벤 더러운 것들은 모두 청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우상 수배를 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오면서 이런 저런 죄의 굴레를 이제 요단 강변에서 과거의 모든 죄를 청산하고 요단강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단강을 건너서 축복의 땅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끊고, 버리고, 포기하고, 청산해야 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을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생활이 복잡하면 잘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조건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깨끗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능해도 상관없고 부족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풍성한 생명과 축복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고자 원하는 그릇이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주님은 거룩한 것을 절대로 더러운 그릇에 담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2:20,21절 말씀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우리 주님은 나무 그릇도 귀하게 쓰십니다. 흙으로 만든 토기 그릇도 귀하게 쓰십니다.
그러나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리 금 그릇이라도 주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은그릇도 깨끗하지 않으면 결코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더 귀하고 더 큰그릇이 되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 그릇의 크기와 그릇의 재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깨끗한 그릇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깨끗하기만 하면 내 모습이 형편이 없고 작아도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가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과 재주와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거룩함과 성결입니다.
세 번재 :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행진을 명령하십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명령대로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가서 요단강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기자 요단강 물이 끝에서 끝까지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이 시기가 모맥(보리)을 거두는 시기로 이스라엘 지방에는 바로 우기에 접어든 때입니다.
하필이면 요단강 물이 불어서 많아질 때 가장 건너기 어려울 때 무조건 건너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이 갈라진 다음에 건너가라고 말씀하지 않고 요단강 물이 출렁이고 있는데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에 물이 잠기자 그제사 강물이 멈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람하는 강물 속에 발을 담갔을 것입니다.
출렁이는 요단 강물을 향해서 믿음의 첫발을 내딛고 물 속으로 들어 갈 때 그 순간 요단강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진입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 경영이 어려운 곳을 찾아서 새롭게 창업해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꽃가게를 경영하는 곳인데 하루 매상이 평균 2-3만원 정도로 도저히 운영이 안 되자 남편이 가스배달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만 가게 세가 몇 달 밀려 있고 각종 공과금을 낼 돈도 없는 아주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본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 그리고 인내심을 훈련시키는 것인데 이들 부부에게는 한강을 수영으로 건너가는 것이 선택되었습니다.
물론 둘다 수영을 할줄 모르기 때눔에 물에 빠지지 않는 특수한 수영복을 입고 수영합니다. 그들 부부는 이를 악물고 한강을 2시간 만에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건너 갔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는 방송 덕분에 가게가 잘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전혀 수영을 못하는 부부가 한강을 건널수 있었던 것은 물에 빠지지 않는 수영복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믿읍시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갑시다 찬양하며 갑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출렁이는 요단강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외치면서 믿음으로 나갈 때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교훈입니다.
성도여러분! 환상을 보셨습니까? 비젼이 가슴에서 살아 움직이십니까?
이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일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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