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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3월 11일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2001-08-20 00:57:02   read : 43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33편 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말씀처럼 두 교회가 모여 연합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제가 본 교회에 부임한지 2년 되었습니다. 본 교회의 역사는 25년 되었지만 제가 2년 전에 처음 와서 첫 번째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도 없이 저는 우리 집사람과 단 둘이서 예배를 들였습니다.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에게 억지로 교회에 등록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저런 이유로 본교회를 가지 못하는 분이 저히 교회를 찾아 왔을 때에 그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교회 성장 측면에서 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목회를 했습니다. 그동안 한번도 전도하지도 않았고 우리 집사람은 이웃 교회에 나가는 분이 등록을 하려면 그 교회에 그냥 나가라면서 말리다보니 새벽교인은 2-30명씩 모이지만 교회 성장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은 아름다운 교회와 연합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두 교회 성도가 모여 한 교회를 이룬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가 양보하고 인내하고 서로 돕고 주인 의식을 갖고 내 일처럼 일하고 내 생각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어려울 것입니다. 목사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황금율이 무엇이냐 누가복음 6장 31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대접하고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신도시에 가면 목사님들이 요즘 성도는 교회 쇼핑하러 다닌다고 말을 합니다. 성도들이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평가를 합니다. 설교가 좋으니 나쁘니 판단합니다. 아주 불행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예배 시간은 내가 1대1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마땅히 경외함과 겸손함으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예배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지난 한 주간 동안 나와 동행하시며 내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기적인 탐심으로 물든 내 인격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내 삶에 태도가 내 능력이 변하고 내 삶에 목표가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습관속에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기도는 하지만 속마음에는 미움과 다툼이 끊임없이 살아역사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때로 은혜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만 한편으론 남을 미워하고 흉을 보고 편을 가르고 자기 유익을 위하여 남을 어렵게 만드는 사랍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느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가?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의원이 필요 없습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나듯이 우리의 형편이 좋을 때는 하나님과 멀리 있다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전을 찾게되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15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분 ! 사람이 있는 곳에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에겐 생노병사의 네가지 고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환난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유무식의 구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아무떼고 찾아 옵니다. 그러기에 옛말에 '고난은 눈썹에서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슬픈 일도 실패도 실직도 예고 없이 우리 앞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은 개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는 유난히 환난의 날이 많았습니다. 고구려 때에 수양제가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노해 오던 때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침략해 왔으며 이조 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으며 그리고 해방은 되었지만 38선이 가로막히고 또한 북한의 침략으로 6.25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후에도 거듭되는 혁명과 군사 쿠데타와 독재로 불안한 정국이 계속되다가 지금은 IMF 라는 경제적인 환난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환난의 날을 맞아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을 잃고 여러 가지 슬픔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은 술집입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닥친 환난을 잊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술을 마신다고 해서 환난이 잊어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면 '모든 것은 운명인데 우리 인간이 뭐 별수 있나? 그저 참고 견뎌야지 인간의 의지로 극복하려고 하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심리적으로 현실을 도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환난은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가 경계할 것은 환난을 당할 때 믿음이 약한 성도는 반항하기가 쉽습니다. 왜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있는가?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면 왜 이런 일을 막지 못하시는가? 이런 하나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면서 반항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회를 저주하며, 사장을 원망하고 가족을 미워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이미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욥이 큰 환난을 당해서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게 되고, 자녀가 다 죽어버리고, 자신의 몸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악창이 났습니다. 악창이 얼마나 심했는지 자리에 눕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가려워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욥의 아내가 "이래도 그냥 하나님 앞에서 옳은 생활하기를 힘쓰겠습니까? 그까짓 하나님 욕하고 죽어버리시오." 라고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환난의 날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환난날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환난날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른다'하는 말은 '찾으라'고 하는 뜻입니다. 환난 날에는 오직 하나님만 부르고 하나님만 찾아야 살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는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환난의 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2장23절 보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환난날에는 우리는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쌍하게 혼자된 여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계속해서 구하고 또 구할 때 불의한 재판관도 마지막에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택한 자들이 간절히 계속해서 기도할 때 이루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의 만났을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럴 시간있으면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두 번째 환난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의 의미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환난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환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아무리 어려운 환난이라도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를 향해서 배를 타고 갈 때 큰 풍랑이 일어나고 선원들에게 붙잡히는 환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당한 환난의 뜻은 하나님게서 요나에게 니느웨성으로 가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환난이 임한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이 아무리 아프고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환난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이얼린의 현과 같기도 합니다. 바이올린의 현이 축 늘어져 있으면 아름다운 음을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이얼린의 현이 팽팽하게 죄여있으면 아름다운 음색을 낼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이 턱없이 많고 그래서 편하고 등따스면 사람은 교만해지고 게을러지고 죄를 짖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환난은 우리 인생에 약이 될수가 있고 궁극적으로 기쁨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약1:2 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오히려 기뻐하라" 왜 기뻐하라고 했습니까? 롬5:3-4절에 의하면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환난을 통과하여 소망가운데 서는 것입니다. 나비가 고치 속에서 나올 때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차마 애처로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마침 어떤 아이가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보고 나비를 도와주려는 생각으로 일부러 고치를 깨주었습니다. 발버둥치던 나비는 아이의 도움으로 고치 속에서 쉽게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날지 못하고 곧바로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신의 힘으로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발버둥치다가 기어코 구멍을 뚫고 나오는 나비만이 하늘을 훨훨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고치에서 좁은 구멍을 통과 할 때에 강한 힘을 축적하게 되고 그 힘으로 세상을 나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쉽게 넒은 구멍으로 나오니까 축적됨 힘이 없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닥치는 환난은 바로 나비가 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연단을 통하여 강하게 되듯이 우리는 환난을 통하여 험한 세상을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너희 인생이 아무리 눈동자와 같이 캄캄하고 어두울 찌라도 그 어두움을 통하여 밝은 미래를 바라 볼수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신기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 눈동자의 흰자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 눈의 가운데 까만 눈동자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인생도 환난이란 어두움을 통하여 소망의 밝은빛을 바라보는것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불안과 공포,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 IMF로 우리 주변에는 직장에서 해고당할까봐 불안과 공포 속에 사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직 공포증 때문에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남성들의 자살도 증가하였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불안이라는 병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안을 물리치는 방법은 소망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빛은 함게 동거할 수가 없습니다. 소망의 빛이 비취면 어두움의 불안이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환난을 통하여 결국 부활의 몸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나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셧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시었음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내가 붙잡을 때에 우리도 세상을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우리는 환난을 당했을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14절의 내용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갚으며 라는 말은 환날을 벗어나기 위한 전제 조간으로서 바로 우리가 이행하여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중에는 자랑으로 자부심으로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 생활을 하면서 계산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동기와 태도를 보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찾아오고 헌금을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드리고 어떤 사람은 교회에 적선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교회가 자기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얼마나 열심히 드렸든지 제단 위에 번제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드리기는 하는데 그들은 많은 제물을 드리는 것을 뽑내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요구하시는 것이니 내가 제물을 열심히 드리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대신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더구나 내가 정한기한에 기도가 이루어 지기기를 하나님께 떼를 쓰고 요구합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정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in my time'이 아니라 그분의 시간 'in his time'에 그분의 전적인 주관하에 하나님의 은혜가 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시간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인내심이 없습니다. 빨리 빨리 축복이 없으면 의심을 하고 원망을 하고 좌절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교회를 위해서 얼마를 헌금하고 얼만큼 봉사를 했고 내가 교회 나와서 무엇을 했다는 자기 공덕을 생각하는 것은 감사생활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청년부 일을 하는 전도사님이 그 교회 헌금 제일 많이 하시고 충성하시는 장로님께 청년부의 애로 사항을 말하고 당회에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 말씀이 "전도사님 저와 가까우셔서 허물이 없음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 제가 교회에 헌금을 조금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회에 가급적 말을 안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든가, 헌금을 많이 하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해야지 헌금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어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려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열심히 치료를 해서 겨우 목숨을 살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의사한테 말하기를 "내가 이 병원에 온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나 같은 환자가 없으면 의사노릇 못해, 나 같은 중환자가 없으면 이 병원은 문닫어요" 이렇게 큰소리치면 되겠습니까?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환자가 잇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을 위하여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려은 취임사에서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가" 를 생각할 때에 우리모두 행복을 누릴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교회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겠지라고 바라기 보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 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만큼 가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감사는 자기 믿음 만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축복받는 체질과 저주받는 체질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축복받는 체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매사에 모든 사람과 상황에 대하여 감사할 줄 믿음의 사람은 축복받는 체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주받는 체질은 매사에 불평하고 의심하고 불안해 떠는 사람입니다. 본래 14절과 15절은 번역이 약간 잘못되어 있습니다. 14절 마지막에 서원을 "갚으라"는 말과 15절에 "부르라" 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명령법입니다. 명령법 다음에는 접속사 "그러면"이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 문법에서도 명령법 다음에 접속사 "(and)"가 나오면 "그러면"이라고 번역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14절과 15절 말씀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그러면) 네가 환란 날에 부르면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게 서원한 것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너희가 환난을 만나도 하나님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기 보다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어 것. 건강을 주신 것, 자녀를 주신 것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환난에 동참하시고 그 환난에서 건져 내신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 환난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환나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믿음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는 사람일지라도 환난중에 기도하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55:6절을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2)))) 고난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젊어서 환난 가운데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도 모자라서 때때로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에 하나님께서 제게 환난이 있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화난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찾고 매달리는 신앙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3))))) 우리는 환난을 통해 나의 할일이 무엇인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병을 고치는 것보다 새사람 되는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예수 믿고 변하여 새사람 되는 것은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화난을 받으면 믿음이 강해지고 온전해집니다. 화난을 통하여 성품이 변화되고 가치관의 변화가 오고 행복관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행복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겁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온 사람은 충성스럽고 훌륭한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환난을 주시는 것은 목적이 분명합니다. 히브리서 12장 9절에 의하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히 12:9).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손해보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다(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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