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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2월18일 사무엘상18:1-16 질투의 죄
    2001-08-20 00:55:12   read : 558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본문 말씀은 '종말로'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데 '종말로'라는 단어는 '끝으로', '결론적으로'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노니 너희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자신이 감옥소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수고롭지 않고 기뻐하니 오히려 빌립보 교인에게 너희도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결론적으로 끝으로 말하다면서 4장 4절에서
    또 (빌4:4)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하고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두 번씩이나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같이 '기뻐하라'는 말을 자신이 거듭하게 되는 데 대해서 3장1절에서 변명을 합니다.

    (빌3:1)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같은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하는 것을 사람들이 지겨워하고 싫어할터이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옳은 진리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기뻐하라는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것이라고 했는데 안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가장 안전한 것은 교통법규를 생명의 말씀처럼 가장 잘 지키는 안전 운전입니다.
    오늘 기뻐하라는 말씀도 생명의 말씀처럼 잘 명심하고 잘 지켜야 인생살이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진리의 말씀은 우리를 사망의 법에서 안전하게 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안에 있을 때에 참 기쁨이 있고 안전한것입니다.
    세상에 어떤일을 하여도 그 일이 주안에서 일하는 거룩함이 있으면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세명의 석공이야기 입니다.
    성전에 장식할 성전에 돌을 다듬는 세명의 석공에게 무었 때문에 일하느냐 는 질문에
    첫 번째 사람은 "직업이라 마지 못해서"
    두 번째 사람은 "돈 벌기 위해서"
    세 번째 사람은 "내 솜씨가 하나님의 선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되는 기쁨으로" 한다 면서 즐겁게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세상 환경을 보면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주님 말씀 안에 현실을 승리할 수 있는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흑인 노예시대에 어느 소년이 노예 경매시장에 끌려 나왔습니다.
    지나가던 어느 신사가 그 소년을 불쌍히 여기고 사갔습니다.
    그 소년은 신사의 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얻어 먹고 새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자면서 그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이집 주인은 나를 동물처럼 부려 먹겠지" 생각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신사는 그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는 자유다 네 맘대로 나가라" 그 소년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눈믈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한때 우리는 악한 사단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예수를 만나 그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이며 참된 기쁨인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주님과 동행함으로 참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참된 기쁨이 없는 것은 나홀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감정에 의지하여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은혜를 받아야 한다,
    중생을 가듭남이 있어야 한다,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만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같은 특별한 감정을 못느끼면 아직도 우리의 신앙은 초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의 끊임없는 수고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을 감정적으로 믿으면 금방 식기 마련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처음에는 불같이 뜨거웠던 사람이 기뻐 뛰던 사람이 얼마후에 신앙이 식어서 기쁨도 살아지고 교회를 등한히 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로 의식하여 굳은 의지로 수고하며 나아가고 있을 때에 변함없는 신앙의 터전을 닦아 가는 것입니다.

    자식 사람도 귀엽다고 잘한다고 감정으로 기뻐서 멋대로 하다가 어느때는 못한다고 화를 내는 감정적인 양육은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자식 사랑도 감정을 억제하고 머리로 의지로 속마음로 기뻐하며 진정한 동반자의 심정으로 양육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는 기쁨은 영원한 소망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다릅니다.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뺏을 수도 없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을 따라서 조건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면 그 기쁨도 사라지고, 조건이 없어지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쁨,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기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주 안에서 기뻐해야하는 기쁨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기쁜 기쁨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나오는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우리들이 닥친 현실을 보면 어느것 하나 참된 즐거움이 만족함이 없습니다.
    모든게 불만스럽고 근심과 걱정입니다.

    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맡아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주님이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맏아 주십니다.
    심지어는 사망의 공포 조차도 맡아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을 만난 기쁨이 왜 크지 않겠습니까?

    영생의 구원을 얻은 우리가 너무나 크고 영원한 선물을 값없이 얻었음으로 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면 오늘 잠간 지나가는 이슬비 같은 현실의 어려움과 근심도 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이 있습니다. 이는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려 가신다 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에 오르사 우리 처소를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소망입니다.
    나그네 삶은 그가 사는 처자식에게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에라도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가 들어갈 영원 천국을 소망하면 우리에게 새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곳이요 주님 계신 곳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곳은 위로와 평강이 있으며 눈물이 없습니다.
    그 곳에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마귀가 없고 죄악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풍가는 아이가 그 전날에 좋아서 잠을 못 자듯이 우리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 즐거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생을 맛 보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믿는 이 미래에 대한 소망에 대한 기쁨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우리는 세상만 보게 될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의 삶은 우리를 여전히 피곤하게 할 것입니다.

    영생의 기쁨을 생각하면 새로운 힘이 나옵니다.
    기쁠 때에 우리 심령은 강건합니다. 기쁠 때에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쁨에서 화평도 있고 기쁠 때에 희생도 사랑도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참된 기쁨이 주 안에서 얻은 기쁨입니다.

    둘째로, 주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로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 안에 있음을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 속에 있을 때에 기뻐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 같이 우리들에게 있는 참된 기쁨은 주님과 함께 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데 염려하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는 이유는 아름다운가정을 꾸미는 것이 사랑하는 목적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은 당신의 위대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각자 받은 사명이요 삶에 목적입니다.

    저는 지난 한주간 서울 인천 부산 대구 지역을 돌면서 집회를 마쳤습니다.
    집회결과 주부신문에 주문이 약 50교회에서 15.000 부 정도 주문이 들어 왔습니다.
    부산 서면교회에서 집회에 갔을 때에 두분의 목사님과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한 목사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차를 몰고 전국을 다니시려면 힘들겠습니다"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즉각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기뻐서 일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사실 그것은 저의 본심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이 보람이요 소망이요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라면 비록 수고스러울 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은 기쁨으로 할수 있는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 였습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노동을 하든 상업을 하든 선생을 하든 아르바이트일을 하든 중요한 것은 그일에 진정한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최선을 하게되고 발전이 있고 보람을 느낌으로 수고를 해도 힘들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2절에 "네가 네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편하게 놀고 먹는 것은 죄악이요 자신의 손의 수고대로 먹는 것이 복되다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계를 위하여 수고한다고 하여도 그 소망과 목적이 분명히 거룩하고 위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동으로 비록 수고를 하지만 내 자식이 잘돼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자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수고는 별것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비록 시장에서 김밥 행상을 할지라도 이 수입에 십분에 일을 하나님께 바쳐서 귀한 성전이 유지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다면 그의 수고는 위대할 수가 잇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남대문 시장에서 김밥 장사를 하던 분이 건축 헌금으로 막대한 돈을 내 놓는 것을 보고 그들의 깊은 신앙심을 존경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수고가 하나님을 위하여 기쁘게 사용된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본 교회에 성전 커텐은 매일 새벽예배에 나오는 분이 헌금해서 장식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은 4단지에 20년을 넘게 살면서 아직도 아파트 마루를 온돌로 바꾸지 않고 차가운 나무 마루에서 살며 전자 제품하나라도 아주 못쓰게 되기 전에는 절대로 바꾸지 않는 검소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 일하여 모은 돈을 새벽 예배만 나오는 교회를 위하여 시시때때로 헌금을 하는 그 믿음을 보면서 그 분의 헌신의 수고가 담긴 성전에 커텐을 그분이 승낙이 아니면 바꾸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위대한 사명에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 안에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시는 은혜를 깨달을 때에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과 담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있는 우리교우들은 교통사고를 당해도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나의 길을 지켜주셨음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말은 너무나도 신비로운 말입니다. 바로 이 말이 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부정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변하지도 않는 절대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를 믿으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 역시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은 바로 이런 약속된 미래가 있었기에 그는 돌에 맞아서 순교를 하는 그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성령이 충만해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우편에 서신것을 보았고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바이얼리스트인 파가니니라는 사람이 '마니'를 연주했을때의 아인쉬타인은 이 연주를 듣고서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얼린을 연주 할때 그만 줄이 하나 끊어졌습니다. 그러자 파가니니는 나머지 줄을 가지고 연주를 했는데 또 하나의 줄이 끊어졌습니다.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그 나머지 줄을 가지고 연주를 계속했는데 또 한 줄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줄 하나로 마지막까지 훌륭한 연주를 했습니다.
    파가니니가 외줄로 끝까지 열심히 연주를 할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이 있었기에 그들을 믿었기에 끝까지 외줄로 연주를 할수 있었던것입니다.
    그래서 '파가니니의 외줄 바이얼린'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끊어진 바이올린 처럼 잃어버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재산을 잃어 버리고 가족을 잃어 버리고 심지어는 처자식을 잃어 버린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음악을 들으시는 청중과 같은 하나님이 있기에 우리는 파가니니처럼 열심히 인생을 연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끝까지 인생에 동반자로 우리의 인생 음악을 바라보시고 들으시는 분입니다.
    줄이 하나 남았으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어려운 환경속에서 열심히 살아갈 때에 격려와 수고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예수님의 평화를 느낄수 있는 평화의 미소를 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웃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즐거워서 웃는것이 아니라 웃어서 즐겁다}
    웃을수 있는 모든 상황이 마련되어 즐거운 것이 아니라 먼저 웃을때 즐거운 상황이 전개된다는것입니다.

    오늘 우리게 주신 말씀 "주안에서 기뻐하라" 다른 말로 바꾸면 "주안에서 행복하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물질이 많으면 아름다운집을 짖고 행복도 이에 비례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위와 권세와 물질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할 행복은 거기에 없음을 알고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또 미래에 행복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삽니다.
    [자녀들 대학, 대학원까지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내면 행복이 다가오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허무와 공허만이 자신 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천사들이 숨길 때를 연구하다가 사람의 가슴속에 숨겼다고 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예수 안에서 자신이 스스로 기뻐하고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배우로 마릴린 몬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 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도 겆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이유없이 불행합니다"
    그녀는 행복을 찾은 것 같지만 완전한 행복을 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참된 기쁨을 찾지 못하고 자살함으로 인생의 마감하였습니다.
    참된 기쁨은 소유나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내 인생에 주인으로 주님을 모시는데 있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대구로 올라 오는 길에 새벽에 물안개 이는 낙동강가를 차로 달리면서
    짖은 물안개에 시야가 안 좋아서 아침이지만 라이트를 켜고 애를 먹으면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어느덧 떠오로는 아침 태양 빛에 새벽 물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밝은 태양빛을 받으면서 새벽 아침 강가를 달리는 기분은 날아갈 듯이 기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길엔 시도 때도 없이 물안개가 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 태양 같은 주님을 모시고 살때에
    떠오른 아침에 태양은 우리의 인생에 그림자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즐거운 인생길을 달리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물안개 이는 우리의 인생길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을 주님과 동행하면서 기쁘게 달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참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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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설교
    2001년 2월18일 사무엘상18:1-16 질투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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