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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2월 17일 이사야 40:1-11 내 백성을 위로하라
    2001-08-20 00:42:31   read : 1755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700년대에 아주 뛰어난 음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

    그는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들여 음악회를 열었는데, 계속해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인기를 끌

    지 못하였기에 그만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56세가 되었을 때에는 몸 한 쪽에

    마비 증상까지 오는 불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많은 빚쟁이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실의와 좌절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 친구가 실망에 찬 음악가에게 한 책

    을 건네주면서 "이 책을 읽고 한번 작곡을 해보게 이 책을 지은이가 자네를 다시 일으켜

    줄 것일세"라고 말했습니다.

    그 음악가는 그 책속에서 위로의 부분을 읽고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침식을 잊은채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전해준 책은 바로 성경책이었으며

    그가 작곡한 곡은 헨델의 "메시야"라는 불후의 명작이엇습니다.

    헨델은 메시야 곡의 처음 시작을 바로 우리가 읽은 이사야 40장 1절에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

    이 두 번씩이나 위로하라는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살

    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

    씀을 전하라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너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근심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이하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

    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요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위로자로 오셔서 우리의 상처와 절망을 치유하여 주셨습

    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심으로

    그 가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위로자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는 특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이 어렵고 우리도 힘겹고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세상에 힘들고 어려운 가족과 형제와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될 사명을 받은자 들입니다.



    성도와 교회의 책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와 교회는 이 땅에서 병들고 소외되고 절망에 처해있는 자들에게 소

    망과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면 우

    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육체적인 질병을 고칠 때 먼저 영혼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질병을 고쳐주시면서 꼭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하였습니다.



    병중에 가장 큰 병은 영혼이 병든 것입다.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병들었거나 영혼이 건강치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특히 우리는 영혼이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거룩한 교회에서 위로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죄에서 질병에서 구원하고 정신적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주님은 교회에서 우리를 기다리

    고 계신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도 삶에 지치고 상처받고 답답한 가슴 안고 찾아오신 여러분은

    여러분은 위로의 주님을 모두 만나 보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고 아픈 상처를 치료해 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마음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부간의 갈등, 자녀로 인한 불안, 사업의 실패, 직장의 스트레스, 믿었던 자의 배신,

    사랑하는 자의 오해, 등등 마음에 오는 상처를 치료받지 않으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고

    비관하여 결국 목숨을 끊는 비극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현대 인간의 모습은 상처투성이의 인간에 모습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셔서부터 상처를 받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불평등의 상처를 받고 부모와 형제로 로부터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수없이

    많은 수모로 정신적인 상처를 받으며 자라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억압과 불평등을 받았고 심지어는 나쁜 사람

    들로부터 스많은 수모를 받아 오면서 자랐기 누구나 영적인 치유와 위로를 통하여 상처

    받은 심령이 새롭게 回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온전히 치료받지 못하면 그것이 정신적인 질환으로 또한 육체의 질병이

    찾아와서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



    여러분! 고통과 슬픔을 당하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임마누엘 하십니

    다.



    구주 예수님 그는 가난한자를 위하여 어리 아기로 구유에 오셨고, 땀흘려 일하셨고 외로

    운자와 함께 우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저가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

    을 입은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경우에 임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고통이 지나 가면 또 하나의 고통이 찾아오고, 한 종류의 고통이 지나 가면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주변에 함께 문제를 털어 놓고 살아가는 인생에 좋은 동반자들이 있

    어야 합니다.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인생의 장에서

    아무리 폭풍우가 요란해도 당신은 그 폭풍우를 뚫고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배우자와 더불어 마음이 통할 수가 있다면

    당신의 아내, 당신의 남편과 더불어 속 마음을 털어 놓을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면 여러

    분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함게 살면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진정한 위로자요 상담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애정의 관계를 갖고 살면서도 진정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사는 경

    우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자신의 문제를 털어 놓을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갖기 바랍니다,

    만약에 없다면 여러분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는 교회입니다.

    신앙안에서 정말 마음이 통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고 함께 인생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신앙의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미국에 한마을에 살던 친구 두 사람이 전쟁에 징집되었습니다. 그래

    서 같이 훈련을 받고 공교롭게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도 전투에서 친구 하나가 최전방에 참호에 나갔다가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

    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친구가 포탄이 날아 오는데도 불구하고 중대장이 막는데도 불구하고

    친구가 고립된 곳을 향해 기어 가기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고립된 친구에게 접근해서 그

    친구를 붙들고 들쳐 업고 그는 다시 참호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친구를 참호로 데리고 왔을 때 이미 친구는 숨을 거둔 후였습니다.

    중대장은 야단을 칩니다. 이런 바보같은 놈아 네 친구는 이미 죽었고 너도 상처를 받아

    서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이때 그 병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대장님 제 친구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십니까?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그러고 그는 죽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동반자는 어려울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형편이 좋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였던 퀴리 부인은 역경에 처할 때 우리들은 진정한 친구들의 숫자를 세어

    볼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친구가 많은 것 같지마는 내가 고통을 당할 때, 역경을 만날 때 비로소 내 진짜 친구가

    몇명이냐? 진정한 친구를 우리는 세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장례식은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입니다. 사람들이 없어요.

    그 분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찾지 않는 사람이예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한 사랑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은 사람,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둔감했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나중에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의 위로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때 거기에는 항상 한계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로할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 말을 나누지만 결과

    적으로는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위로하는 기술이 없어서 우리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내가 남들에

    게 상처를 입히기도하도 또 남들이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들도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실례가 바로 욥의 친구들의 경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위로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상처를 더해 주었습니다. 이럴 때 어떻할까요? 이럴 때 어디로 갈까요? 이럴 때

    누구를 의지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새벽기도회에서 아모스서를 강해했는데 어께 토요일 아침 마지막 9장을 끝으로

    아모스서를 끝냇습니다.

    9장 8절과 9절에 말씀입니다.

    (9: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

    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9)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

    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사치와 범죄와 타락과 부정과 핍박

    을 책망하면서 그들이 어디에 숨을 찌라도 찾아내서 꼭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 징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주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단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단서가 붙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변 사람들과 함게 어울려 있더라도 하나님이 끝까지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잘 놀고 있으면 부모가 주목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자동차가

    다니는 위험한길에 서 있을 때 부모는 어린아이를 주목하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시는가? 너희 무리중에는 알갱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체질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체라는 것은 추수할 때 알곡과 부스러기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체는 흙먼지라든지 부스러기는 밑으로 떨어지게 하고 알곡은 체 위에 남게 합니다.

    하나님은 추수 때 무가치한 것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같이 죄인들은 다 멸하시지만,

    그러나 알곡들, 의인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알갱이 된 자는 아무리 체질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한 알갱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

    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체질을 할 때에 흔들림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체질을 해야 나쁜 것을 걸러냅니

    다.

    알갱이냐, 부스러기냐, 혹은 알곡이냐, 쭉정이냐는 것은 체질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

    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성도는 체질과 키질 같은 환난을 통해서 오히려 밝히 드러나게 되

    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알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창고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곡식같지만 바람에 나는 겨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판날에 견딜 수 없습니다. 결국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양권의 문화는 체면문화이기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홀로 겪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은 공개되어야 치료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체험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홀로 서는 것. 아무도 나의 문제를 털어 놓을 사람이 없을 때에 우리는 항상

    언제나 그 분 앞에 기도함으로 1대1로 대면자가 되어서 설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우정. 하나님을 나의 친구로

    삼는 것. 그리고 그 분 앞에 내 마음을 쏟아 놓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도 하나님과 단둘의 문제라 지만 혼자만이 신앙 생활은 때로 힘이 드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생활을 통해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을나누는 가운데 더욱 힘을 얻는 것입

    니다.



    미국 직장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은 먹고 싶은 김치도 잘 안 먹는답니다.

    김치를 먹은 후에 양치질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김치 먹은 후 아무리 입을 닦아

    도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난답니다.

    그 마늘이 땀구멍을 타고 냄새가 번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아무리 가려도 예수님의 냄새가 새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서로 어울리고 또한 이웃에게 접촉을 할 때에 우리의 신아이 은근히 그

    들에게 베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강한 냄새가 나는 마늘을 먹고 김치를 먹어서 이웃에게 땀방울로

    라도 냄새가 나가듯이

    우리의 신앙이 강해서 예수 사랑의 냄새가 우리의 땀방울을 통하여 전해지도록 강하고

    확실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좋은 성도를 만날 때에 자연히 소망의 냄새, 사랑의 냄새, 기쁨의 냄새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4절에 "골짜기마다 돋우어 지며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평탄한 평지가 된다고 하였습니

    다. "

    온유하고 겸손한 평탄한 사람이 되려면

    골짜기와 같이 움푹 패인 곳을 돋우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려면 작은 산이 낮아져야 합니다.-

    산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만하여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작은 산으로 보

    이는 것입니다. 이 작은 교만이라도 버릴 때에 온유하고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고르지 않은 땅은 울퉁불퉁한 곳으로 변덕이 많은 상태를 말합니다.



    험한 곳은 모든 사람이 불편해하는 생활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해하는 생활을 할수 있도

    록 하기 위하여 내가 온유하고 겸손함으로서 평탄해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

    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무슨 말씀입니까?

    한마디로 모든 육체는 가짜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영광은 꽃과 같아서 시들어 버린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부귀 영화는 인생의 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속히 시들어 버립니다.

    명예와 권력은 인생의 꽃과 향기 같지만 작은 비바람에도 떨어지는 가짜와 같다는 것입

    니다.



    명예 성공하는 것, 아름다운 외모, 화려한 지식, 튼튼한 몸도 다 인생의 꽃처럼 보입니

    다. 그러나 금방 시들고 떨어지게 되어있으며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임시 일회용 모조품과

    같기 때문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 축복은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

    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얻는 모든 영광은 꽃처럼 곧 시들고 떨어지지만 하나님이 허락하

    시는 영광은 영원토록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라 함은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지는 구체적

    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고난 속에 있는 자녀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그

    모든 행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비와 위로를 베푸시도

    록 한 것입니다.



    쥐와 원숭이의 실험결과, 사람의 사랑을 받는 동물은 오래 산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쥐의 수명이 약 750일이라고 했는데 쥐의 실험결과,

    쥐가 사람의 사랑과 위로를 많이 받으면 950일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소외되어 자란 쥐는 남을 미워하고 오래 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쥐는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동물의 몸에 들어가 성장호르몬을 생성하는

    인자를 자극해서 결국 세포가 왕성하고 횔발하게 활동을 함으로 사랑을 많이 받는 세포는

    암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사랑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랑이 넘치게 공급되어진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절망하며 주저앉아 있어서만은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텍사스 주에는 미국 프로 미식축구에서 두 번씩이나 우승한 유명한 달라스 카우보이 팀

    이 있습니다.

    달라스 카우보이 팀은 미국최고 챔피온 결정전 인 수퍼볼에서 두 번씩이나 우승을 함으

    로 최강팀으로서의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달라스 카우보이 팀이 처음부터 막강팀이 된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승하기 직전까지도 이 팀은 미식축구에서 가장 약한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코치가 바로 이 무명의 나약한 팀을 무적의 막강한 팀으로 바꿔놓았습

    니다. 그 코치의 이름은 아메리칸 풋볼 역사상 불멸의 신화를 남긴 '지미 존슨'입니다.



    지미 존슨, 그는 평범한 크리스찬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최고의 보물(가치)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사실을

    체험한 성도입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인생의 소중한 진리 (형제를 사랑하는 법, 자신을 희생하는 법, 인

    격, 인생)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가 한 일은 선수들에게 진실한 인생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경기에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땀 흘리는 법을 가르칩니다.

    존슨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하지 말아라'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는 '실수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하지 않고 대신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노력하면

    해낼수 있다. 능력주시는 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잘 해낼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최선을 다한 정당한 패배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하면 실수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을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

    니다. 그 결과 선수들은 패배한 경기를 빨리 잊어버릴수 있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얼른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경기에 대해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합니

    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최선을 다한 정당한 패배에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고 중요한 것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똑같은 인생을 살더라도 불평불만으로 살지말고, 위로와 기쁨과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인생의 법칙이요, 믿음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평 불만의 울퉁불퉁한 길을 가는 사람과 감사로 평탄한길을 살아가는 사랍입

    니다.



    바로 주님의 길은 감사와 기쁨의 평탄한 길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형식보다는 진실입니다.

    신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위선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되시는 예 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죄의 모습을 벗어야 합니다.

    내게 붙어있는 위선, 가식, 거짓, 죄악, 빈껍데기 신앙생활, 습관적 종교생활 등 옛 누더

    기 옷을 되도록 많이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예수님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순수하고 맑은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이 사막과 같은 절망의 인생에,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시온의 대로를 건설

    할 수 있습니다.



    9절에 먼저 높은 산에 오르라고 말씀합니다.

    높은 산이라고 할때 그것은 지리적으로 높은 곳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영성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신앙이 좀더 성숙해져야 한다

    는 말씀입니다. 깊은 영적인 분별력으로 이 시대와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말씀을 상고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2. 다음으로 힘써 소리 높여 외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힘써 외치기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소식, 곧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리라는 은혜의 소식이여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시는 복음을 통한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 생명의 복음을 우

    리는 있는 힘을 다 하여 힘써 소리 높여외쳐야 합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에게 많은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지금 뭐 고민이 많아서 못 살겠습니다고 하면

    "그러면 왜 아직도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 질문하면 그 말에 이유를 댑니다 자녀들

    때문에, 가정, 부자로 잘 살고 싶어서 ,덩덩거리며 자랑 하고 싶어서, 남부럽지 않게, 행

    복하게 명예,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또 신앙 때문에……,이유를 들기 시작하면

    바로 거기서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라고 바로 거기에 목표를 두고 살라고 말하는 것입

    니다.



    유명한 소설가 토마스 하디의 소설 중에 그런 '환상의 여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내용

    중에는 바로 이것을 주제로 합니다. 어떤 여인이 시를 읽었는데, 그 시인을, 그 시를 쓴

    시인을 사모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그러나 한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뭐 아

    무 관계도 없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 시를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시인을

    마음속에 그리워하게 됩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깐 그 시인 닮은 아이를 낳아 놓았어요.

    남편으로부터 오해를 받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으면 우리도 주님을 닮게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에 나를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소망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11절에는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메시야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잘 말씀해 주

    고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아기로 오셨다고 할 때에 우리는 그 아기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는 어린 아기를 볼 때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어린 아기를 볼 때 꿈이 있는 미

    래를 보게 됩니다. 아기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나 어른들의 마음은 언제나 이 아이가 커서

    훌륭한 아들이요 훌륭한 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기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이 아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오셨습니다.

    아기를 볼 때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의 전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의 표현은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순수한 아기의 모습이며 아름다운 그 모습 속에서 우리

    는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를 보면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대망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

    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 대망하는 마음 속에 주의 사랑으로 충만케 채워주실 것입니

    다. 갓난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부모처럼 우리는 아기를 안은 부모처럼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경배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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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0월15일 본문:욥기23:10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000년 10월 8일 갈라디아서 2:20, 믿음안에서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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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8월20일 본문: 창세기 45:1-15 "내 잘못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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