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8일 갈라디아서 2:20, 믿음안에서 사는 길 2001-08-20 00:34:37 read : 173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익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 분은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황해도 안악시장을 주름 잡는 아주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난폭했던지 사람들은 시장에 가면서 시장 길목에 있는 성황당에 가서 빌었다고
합니다. "제발 오늘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비나이다."
그런데 하루는 김익두가 안악시장에서 한 어린 아이가 전해주는 전도지 한 장을 받게 되
었습니다.
그 전도지에는 안악교회에서 미국의 선교사 스왈런 목사님이 사경회를 인도한다는 내용
이 적혀 있었습니다. 전도지를 보던 김익두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남몰래 슬그머니 가서 제일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스
왈런 선교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은 영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과, 사람
에 따라서는 생명의 부활도 있지만 심판의 부활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
으면서 김익두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
습니다.
그때부터 김익두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가 10개월 뒤에 세례를 받기까지 신·구약
성경을 모두 백 번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열 번을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일년에 한번 정도 읽는 것으로 목표를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김익두는 한 달에 열
번씩 읽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하면 김익두가 이렇게 말했
습니다.
"아니야. 나 지금 약 먹기 때문에 술 못 마셔."
그러자 친구가 묻습니다. "무슨 약을 먹는데?" "신약과 구약을 먹고 있다네."
하루는 김익두가 성경을 읽다가 오늘 읽은 갈라디아서 2: 20절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
니다.
"아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가 살고 내가 믿음 안에서 살수 있구나"
그래서 그는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발송했습니다.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아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엿습니다.
"그 사람이 성질은 있지만 그래도 인정도 많고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쉬워 하며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김익두의 집으로 문상을 왔습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김익두가 멀쩡히 집에서 사람들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이자 김익두가 말했습니다.
" 여러분 이제 예전에 깡패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고장을 돌린 것입니
다. 이제 내 안에는 예수가 나의 주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 갈것입니다."
깡패 김익두의 선언에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비숫한 이야기입니다.
윌치만 니 라는 유명한 목사님의 간증에 이런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죄에서 떠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날 본문을 읽다가 깨달음이 왓습니다.
"그래 맞다 내가 죽어야 죄에서 해방될수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죽자" 그러고
는 아랬층에 주방 아주머니에게 광고를 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윌치만 니 라는 사람이 죽은 것을 아세요 그 사람은 이제 죽었습니다" 이렇게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광고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윌치만 니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광고를 하고 나자 그때부터 그에게 정말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참된 믿음안에 사는 길은 먼저 내가 죽어야 합니
다. 내가 죽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믿음 안에서 살아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거듭난 삶 이라고 하는데, 거듭난 삶이란 옛사람은 죽고 새사
람으로 다시 사는 삶 을 의미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본문의 내용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혀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입니다. "
주인이 바뀐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뜻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세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내가 믿음안에서 살려면 먼저 옛 사람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마리아에게 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았다면 인류의 구원과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앗습
니다.
기독교는 역설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내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어야 내가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죽는 것부터 배워야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십자가에 죽어야 합니다.
그려면 우리의 무엇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가?
갈라디아서 5장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혈기, 옛사람의 습관, 옛사람의 정욕, 옛사람의 욕심,
옛사람의 고집, 옛사람의 자존심, 옛사람의 죄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로마서 6장 6절 말씀에,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
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①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② 유혹의 욕심을 좇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③ 옛사람의 나쁜 구습을 좇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십자가에서 죽어야 내안에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이 지금 이시간,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서 진정으로 죽이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는 말에서 회개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이 근본적으로 죽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회개를 하여도 또다시 죄를 짖고
또다시 회개를 하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본질적으로 죽어야 참된 회개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 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꺼번에 완전히 죽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 말씀에 날마다 내가 죽노라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위에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 모습은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이지만 내용은 여전히 옛사람의 정욕과 혈기와 탐심과
죄를 갖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예수 보다 자기를 믿고 세상 사람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다면서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산다고 말은 하면서도 알고보면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수호신이나 장식품
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근심과 걱
정으로 결국 믿음에서 따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세상의 것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
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욕심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예수를 믿다가 혹시나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아 하나님은 안 계신 모양
이나보다" 라고 낙심과 좌절로 결국 예수님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이 잘되고 성공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공을 해도 그 안에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요즘 일산에서 시끄러운 무슨 호텔만 다니는 사
람이 되면 무슨 소용입니까?
중요한 것은 죄에 대하여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을 박고 의에 있어서는
산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본문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박히고 나니 그런즉 어떻게 되었습니
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 신 것" 이라함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바울은 이제부터 사는 것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죽고나니 내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산다는 것은 내안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고집, 내 습관, 내 자존심, 내 욕심, 내 철학 내 생각으로 살아 왔는데 내
가 죽었으니 나는 간데 없고 내 안에 예수가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신앙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 번째 신앙의 문턱을 넘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내고집 내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고 옛 사람의 내가 십자가 상에서 죽지 아니함으
로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옛 사람의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종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만나자 그는 그 때까지 세상의 모든 것
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자 그의 삶이 송두리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 접 붙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접목의 방법은 돌배나무에 참 배나무에 가지를 접붙이는 것이 일반 원리입니
다. 그러나 감람나무는 참 감람 나무에 돌 감람 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돌 감람 나무로써 일단 돌감람 나무에서 절단되어서 죽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인 참 감람나무에 접이 붙을 때에 돌 가람 나무가 참 감람 나무
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이제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
였습니다. 우리는 죽어야 유익이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말보다도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은 깊은 의미
가 있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든든합니까? 세상
에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옛 사람의 구습과 악습을 포기하고 참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못박혔다는 것은 영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참
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는 다는 것은 옛 사람의 혈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옛사람의 나쁜 습관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의 정욕과 욕심을 포기하는 것이며 옛사람의 고집과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옛사람을 포기할 때에 비로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나를 지배하
고 나를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
고 영에 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니 이제부터 나는 육신에 소욕에 쫒아서 사는 사람이 아
니요 영에 속한 사람으로 경건하고 거룩함이 이르는 길에 들어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는 것은 김 아무개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
스도가 일하는 것이요 박 아무개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걸어가는 것으로 보
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옛 사람이 죽지 않음으로서 그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녔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고,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면 우리는 가가자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죄와 혈기와 이기심과 정욕과 모든 잘못된 성품이 못박혀있는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죄를 못박지 않고 깨끗하고 화려한 십자가를 좋아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강대상의 십자가는 장식용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진열합니다.
그런데 대전에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강대상에 십자가가 지저분해요 그래서 가차이
가 봤더니 예수님이 메고 갔을 만한 큰 통나무로 진짜 십자가를 만들어서서 벽에 아주 고
정되어 있는데 밑에는 망치와 못이 있어요 그래서 용도를 물어 보았더니 성도들이 자신의
죄와 허물과 잘못된 옛사람의 모든 구습을 종이에 적어서 여러번 접은 다음에 망치로 십
자가에 못을 박아 놓는 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많은 죄와 허물을 기록한 접은 종이가 못박혀 있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것이지만 의미를 주는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도 내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질함으로서 우리의 죄를 죽이고 이제 내 안에 새로운
예수의 성품이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세 번째 내가 믿음 안에서 사는 길은 본문에 내용대로.
하반절을 보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믿음 안에 사는 길이라고 하엿습니다.
무슨 믿음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을 때에 바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게 된다
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자신의 자녀들을 훈련시킬 때에 특별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어느정도 아이가 자라면 어느 깊은 밤에 자신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밀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사방이 깜감합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입니다. 거곳에서 아이에게 칼 한자루
만 주고 어린아이를 밀림의 깊은 곳에 혼자 놔두고 어른만 집으로 돌아 와 버립니다.
그 어린 아이는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사나운 맹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그 아이는 두려움에 눈물도 말라 버린체 그곳에서
긴긴 밤을 지내는 것입니다. 옆에서 바스락 소리만 깜짝 깜짝 놀라면서 원망과 눈물로 한
밤을 지내다 보면 어느덧 새벽이 옵니다. 사방이 서서히 밝아져서 좌우를 구분하게 될 때
에 이 어린아이는 깜작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멀지 않은 곳에 시커먼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완전 무장
을 한채로 밤새도록 자기자식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원망했던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함으로 밤세워 자기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버
지에 대한 사랑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에게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혹독한 고난의 훈련을 시켰지만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 감격하여 달려와 눈물을 짖는 것
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심각하게 방황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
만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못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의 믿음이 한단계 올라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 나갈 때에 사랑을 베풀지 않습니다. 내가 어렵고 좌절에 빠지고 모진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다면 지금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좋은 기회입니다.
산에서 케낸 금광석이 용광로의 연단을 통하여 정금으로 나오듯이 우리에게 닥친 험한
고난도 결국 축복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고난이란 연단을 통하여 우리를 강하고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중에도 하나님께 남겨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보아서
고난을 주신 그 깊으신 사랑을 깨달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참다운 믿음을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성도의 생활은 믿음의 생활입니다.
그 믿음이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사랑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내가 홀로 어두움에 있을 때에 나혼자 인줄 알았는데 하나
님이 옆에서 지켜 주시고 있었으며
나 홀로 비탈진 고난과 역경의 길을 가는 줄 알았더니 뒤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고난과 가난과 슬픈과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에도 주님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에 이제 부터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
노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나의 주인이 아닙니다,
인간의 역사는 그가 무엇을 뜨겁게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돈을 뜨겁게 사랑하면 수전노가 되는 것입니다.
술을 뜨겁게 사랑하면 술꾼이 되는 것입니다. 노름을 뜨겁게 사랑하면 노름꾼이 되는 것
입니다. 권력을 뜨겁게 사랑하면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뜨겁게 사랑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루살이같이 잠깐 살다갈 우리의 인생에 세상에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사는 길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소아 바비 증세를 갖고 있는 소프라노 가수가 예수 고난의 성가를 첫날 열심히 나
름대로 잘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으로부터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앗습니다. 그러
나 뭔가 허전했습니다.
지휘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물어 보았습니다.
실례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심을 믿습니까?
그녀는 엉겁결에 "예"라고 대답을 하였지만 뭔가 마음에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밤새워 주님에게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허전함과 슬픔이 있으면 주님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
시는 신호입니다.
이 소프라노 가수는 기도하였습니다."주님 내가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당신에 대한 사
랑이 없었음을 자백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세요 저는 소아마비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나이다. 그녀는 밤새워 기도하면서 주
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다 끝났는데도 박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놀래서 청중을 바라 보앗더니 모든 청중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노래도 예수님을 사랑을 체험하고 노래를 불럿을 때와 자기 욕심으로 노래를 불
렀을 때에 청주의 반응이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확신하고 살아 갈 때에 우
리는 기쁘고 힘찬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욕심으로 세상을 살아 갈 때에 그 느낌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本文에 내용 그대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확신이 없는 분이라도 이 말씀을 20번만 읽으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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