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6일 본문: 마가복음 10:46-52 바디매오의 개척정신 2001-08-20 00:05:43 read : 122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지금은 없어진 것 같지만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행복 찾기" 라는 프로가 있었다.
여러분 행복은 우리가 잃어 버려서 찾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 정말로 우리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찾아야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열심히 찾아 다
녀야 할 것이며 아마 행복을 찾아 주는 회사도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행복을 찾
아 주는 회사가 없는 것을 보면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며
행복이란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개인별로 느끼는 주관적인 자기 만족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 인생에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행복이 삶에 목표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생은 실패작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 마지막은 이별이요 슬픔이요 외로움이요 질병이요 두려
움이요 눈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결론이 이별이요 질병의 고통이요 사망의 슬픔인데 무슨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
겠는가? 그래서 셩경에서 우리의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은 무슨 일에 공을 들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살 것인가?
우리 인생에 목표는 하늘 나라의 영광이요 그때까지 험한 세상 살 동안 끊임없이 닥치는
고난과 역경을 열심히 잘 극복하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시험의 고통과 좌절, 결혼과 직장생활의 여러 문제들, 경제적인 가난의 문제, 질병과 때
아닌 각종 사건 사고, 자녀와 가족간에 갈등과 마찰, 함께 살던 가족과의 이별, 자식에
대한 서운함과 노년의 외로움,
우리에게는 나이에 따라서 여러 문제들이 다가 올 때에 우리는 그때마다 새로운 인생에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들이닥친 여러 가지 문제와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심하고 포기한다면
인생에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바디매오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개척정신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귀감이 될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자신의 불우한 처지, 환경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는가 감동적인 장면을 보면
서 우리도 자신의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
다.
여기 질병의 고난을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믿음이 좋은 여 집사님이십니다.
여집사님에게는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으며 나름대로 큰 어려움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발에 종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발을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의사의 권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였습니
다.
그러자 이 여집사님은 자신이 한쪽 다리가 없는 불구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
었습니다. 믿음 좋은 집사로써 너무 부끄러운 일이요 창피해서 교회 나가는 것도 단념했
습니다.
병원 재활의학과에서 목발을 해주고 걷는 법을 익히라고 했지만 외면하고 매일 누워만
있으면서 낙심과 좌절과 한탄과 절망으로 살다보니 몸은 자꾸만 쇠약해 저 갔으며 결국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기에게 닥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굴 삶에 패배자가 된 것입
니다.
또 한 명은 불신자로서 자동차 사고로 인하여 목을 다쳤습니다.
병원에서 애쓴 보람으로 생명은 건질 수가 있었으나 식물인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낙심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으나 간호원의 끈질긴 권유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는 오늘 우리가 읽은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신앙의 힘으
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입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매일 매일 입으로 그림
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개척정신을 느꼈고 구족 화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서 실패한 인생이 되었으며
또한 사람은 닥친 불행을 바디매오처럼 신앙의 힘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바디배오가 어떻게 불우한 환경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을까?
첫째 그는 기회를 기다리고 기회가 왔을 때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좋은 소문 즉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서 예수님이 지나가신 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고 듣고만 것이 아
니라 들은 기쁜 소식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는 기회를 기다렸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에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기회란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며 기회를 위하여 미리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와 은혜를 담는 그릇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란 그릇이 적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와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바디매오는 믿음이란 그릇이 있었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들의 성공담을 보면 대부분 엑스트라로 수년간 빛도 없이 고생을 하
다가 어느날 주연 배우가 갑자기 건강이나 교통 사고등 여러 가지 이유로 출연을 못하게
될 때에 다급한 감독은 조연 배우중에서 한 명을 지목하고 기회를 줍니다.
이때 그가 일류 배우 못지 않게 준비된 실력을 발휘함으로서 감독에게 인정을 받게 되면
그는 스타덥에 오르고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준비가 덜된 배우는 좋은 기회가 와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
국 인정받지 못함으로서 다시 조연배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라는 이름은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결국 그는 이름도 없는 불행한 사
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길가 일터에서 예수님이 여리고성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 그는 길가에
서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구걸하는 직업이지만 자기의 일터를 지키고 있었기에 다행이 예수님이
온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기회란 어떤 일이든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히 하고 있을 때에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만
약에 그가 게을러서 집에 있었다면 예수님이 온다는 소문을 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잠언 28장 18절에 맡은 일에 "성실히 행하는 자에게 구원의" 기회와 축복이 있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얻으려면 땅의 것에도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서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것
입니다.
기회란 항상 관심을 갖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지나가는 기회를 붙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예수님이 지나신다는 소리를 듣자 바디매오는 재빨리 기다렸다는 듯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기회가 오면 빨라야 합니다. 신속하고 기민해야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은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라는 말처럼 존경의 의미가 없이 예수님을
그저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윗은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만일
메시야가 온다면 그는 다윗의 왕처럼 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
어있는 표현이요 기회를 기다리는 바디매오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두 번째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분은 메시야 일것이며 분명히 자기의 소경 됨
을 고쳐 주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일과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에 대하여 나름대로
확신과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새롭게 하는 일에 대하여 확신과 기대도 없이 시작하는 것
은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가 이루어 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고도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바로 앞장에 부자 청년도 그렇고 많은 바리새인들 역시 예수님을 만났
으나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기대와 확신이 없이 의미없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
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도 말씀과 예배에 기대와 확신이 없는 의미없는 신앙 생활은 수십년
을 교회 다녀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 만나서 변화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확신과 믿음이 분명하
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주일날이 그리워지고 토요일 날부터 설래는 마음으로 예배가 기다려지는 사람
들은 예배를 통하여 축복이 오고 삶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오늘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적인 자세보다
예배 전부터 예배에 대한 기대감과 태도가 축복 받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하여 기대와 확신이 분명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였기
에 그는 대단히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크게
소리를 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으려면 먼저 긍휼함을 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13절에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의 형식적인 예배와
제사가 아니라 너희가 나에게서 긍휼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로서 그분만이 나의 영육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으
로 인정하고 그분께 나의 모든 문제를 털어놓고
"주여 나는 부족한자이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긍휼을 구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느끼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원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환경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유는 그에게 원수가 될 수 있
으며 똑똑하기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다면 그것 역시 그에게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불우한 환경이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받는 조건이 된다면 궁핍하고 불우한 환경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축복인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육신의 눈 뿐 아
니라 영안이 열리는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그가 소리 지른 것
은 그의 간절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방해를 하고 조롱을 하고
비웃음을 받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를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신앙 생활은 외롭
고 고독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48절에 보니까 바디매오는 제지를 받자 오히려 더욱 심히 소리를 크게 질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디매오로 본받을 세 번째 신앙에 불굴의 용기와 의지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하였을 때에 그가 기가 죽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면 그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심히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두 번씩이나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는 드디어 예수님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잔칫날 아무리 시끄러움 속에서도 자신의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 우는소리는 금
방 들을 수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시끄러움 속에서도 그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것입니
다.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간절히 외칠 때에 누군가하고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린 지른
사람의 모습은 매우 불결하고 보잘 것 없는 앞못보는 거지 소경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으로 바빠서 그냥 지나칠 만
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모든 사람이 귀하지만 예수님은 특별히 그의 불쌍한 모습에 긍휼하심을 느
꼈습니다. 더구나 그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라는 그의 간
절한 믿음의 외침이요 약한 자의 외침이었기에 발걸음을 멈추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
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믿지만 그래도 입으로 시인할 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49절에 예수님은 그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저를 부르라"고 하시니 주변 사람들이 바디
매오에게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 안심하고 일어나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준비했다는 듯이 50절에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갔다고 하였습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팔레스타인지역에서 가난한 거지에게 겉옷은 밤중에는 이불의 역
할을 하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겉옷을 벗었다고 하였습니다.
겉옷이란 지금까지 바디매오의 거지와 같은 옛 사람의 삶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삶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날 세상적인 욕심, 지나친 탐욕, 쓸데없는 고집과 자존심, 내 신앙
생활에 장애가 있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잘못된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네 번째 바디매오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묻자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가장 중요한 것을 간단 명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돈 한푼 줍쇼 옷한벌 줍쇼화는 하는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라 인생 바꿀 만한
소중한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많은 성도분들이 기도할 때에 여러 가지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먹고살 양식도 구하고 자야될 장막도 구하고 삶에 부유를 구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알고 그것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우선 순위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시간과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나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전 미문 앞에 거지는 돈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디매오는 예
수님에게 돈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가장 근복적이고 중요한 것을 구한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추구하여 육신의 안일과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해 보지만 그러한 일들이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보다 중요한 영적인 일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지만 내 영혼이 잘못되면 매사가 불평이요 불만인 것입니
다.
오늘 바디매오도 육신의 눈이 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영안의 눈도 함께 떴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님이 이제 내가 사는 곳으로 가라고 하였지만 그는 자기의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시는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신앙이란 육신에 소욕을 즐겨 찾는 자기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께서 내 삶에 주인임을
인정하고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쫓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삶을 바꿔 놓을 위
대한 기적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소경이라면 저주받은 사람으로 취급받던 시절에 바디매오가 과감히 용기를
내고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바디매오를 통하여
1) 첫 번째 그는 기회를 기다리고 준비된 사람이며 기회가 왔을 때에 기회를 놓치지 않
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기회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의 것입니
다. 준비가 안된 사람은 기회가 와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바디매오는 예수님은 이땅에 구세주이며 그분은 분명히 자기의 환경을 바꾸
고 소경됨을 고쳐 주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예수님은 네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능력에 대하여 기대하고 확신하는 믿음
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세 번째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온갖 반대와 장애물에 대하여
인내하고 극복하는 신앙의 불굴의 용기와 의지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낙심시키려고 절망 가운데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열정으로 용감하게 나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객관적인 불굴의 의지와 또한 주관적인 열정의 감정이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4) 네번째 바디매오처럼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선 순위를 정하고 중요
한 것부터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찮은 세속적인 일에 시간과 수고를 낭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거지처럼 맨날 돈만 달라는 그러한 신앙인이 아니라 이제는 없어도 좋으니 내게
도 내 인생을 걸만한 뭔가 보람있고 중요한 것을 추구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연립 주택에 지하에 방 한 칸에 사는 어느 여집사님은 남편이 회사에 나가면 아무도 모
르게 밖에 나갔다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연히 아내가 계속 같은 시간에 집을 비운다는 사실은 알은 남편은 의아하게 생각하였
습니다. 돈벌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우리 아내가 왜 대낮에 저렇게 행선지도 밝히
지 않고 몰래 어디를 갔다 올까?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어야 음식들이 없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그 부인은 일주일에 세 번씩 장애인이 모여 사는
곳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주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
다.
그 사실을 알게된 남편은 자기 아내를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생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
작하여습니다. 그래서 술담배도 끊은 돈을 장애인 후원금으로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불신
자였던 남편은 결국 아내 따라서 교회를 나오고 시작하였으며 아이들도 우리 엄마는 훌륭
한 엄마라며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변하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겨우겨우 내 한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그렇게도 많이 하나님께 달라고 떼
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매일 체바귀 도는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이제 인생에 중요한 것을 찾아 새롭
게 개척하는 바디매오의 개척 정신을 소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에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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