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1999년 11월 28일 본문:요한복음 14:6 : 길,진리, 생명 2001-08-19 22:11:32 read : 1017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희말리야 산을 오르는데는 꼭 현지에 사는 많은 등산 안내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등산 안내원중에는 아주 능숙하고 오래된 노인 안내원이 있는데 그의 별명이 "내
가 길이다"라는 안내원이 있답니다.
이 노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등산객을 안내 하던중 그중에 기독교인중에서 얻어 들
은 복음 즉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외고 있답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
요 생명이니라"
그래서 등산객들이 길이 없는 험난한 산을 오르다가 그에게 어디가 길입니까? 물으면 그
는 이렇게 대답한답니다. "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곧 길입니다" 또 기후나 준비물이나 등
산 일정등 그가 의견을 내 놓았을 때에 사람들이 당신 말이 맞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내말이 진리입니다" 라고 대답을 한답니다.
때로 비바람으로 위급 상황이 됐을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살수가 있습니까? 물으면
그는 "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생명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의심 많은 도마가 주님에게 우리가 사는 길이 어디입니까?
이땅에 참된 진리가 어디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합니까? 질문을 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여러분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학문을 배우지만 참된 진리가 무었인지 모
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기위하여 보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지만 참된 생명의 길이 무었인
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길을 찾아 이리 가보고 저리 가보지만 참된 삶에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의심 많은 자들아 왜 그리 방황하는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미국 프린슨톤에서 어느날 밤에 사이좋은 두 청년이 술을 먹으로 마을 중심을 향하여 길
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옆 어느 교회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라는 부흥회 간판을 보았
습니다. 그래서 두 청년이 가는 길에 의견 충돌이 생겼습니다.
결국 두 청년중 한 청년은 그냘 술을 먹으러 마을길로 가게 돼었고 한 청년은 부흥회를
들으러 교회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부흥회를 향하여 교회의 길을 찾은 청년 클리브란트는 미
국의 22대 대통령이 돼었고 마을에 술집을 향하여 걸어간 청년은 무기 징역의 죄수가 되
어서 차거운 감옥에서 죄수복을 입고 예전에 작기와 길을 달리하였던 클리브란트가 대통
령이 돼었다는 신문 호외를 읽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와같이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수많은 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어느
길로 가야 할까?
동쪽으로 가는 길도 있고 서쪽으로 가느 길도 있고 지동차길도 있고 뱃길도 있고 기차길
도 있으며 서울가는 길도 있고 지방가는 길도 있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의 길도 있고 고속
도로 길도 있고 진흙탕 길도 있고 스승이 가는 길도 있고 제자가 가는 길도 있고 행복에
길도 있고 불행의 길도 있고 어머니의 길도 있고 아버지의 길도 있고 딸의 길도 있고 아
들의 길도 있고 평탄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고 화려한길도 있고 올라가는길도 있고
내리막리도 있고 공무원의 길도 있고 선생의 길도 있고 사업의 길도 있고 장사하는 사람
에게는 상도의 길도 있고 신사에게는 신사도의 길도 있고 편하고 큰길 길도 있고 좁고 험
한 길도 있고 성공에 길도 있고 실패의 길도 있고 진리의 길도 있고 길을 잃어 버린 사람
도 있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헛되고 죄악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바른
정도를 가는 사람도 있으니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
람의 인생인가 봄니다.
여러분의 지금까지 인생의 길은 어떠하였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하여 나름대로 할말이 있을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성공적인 행복한 길 이었습니까?
아니면 불만과 실패와 고난의 허무한 길이 었습니까?
살아온 인생길이 즐겁고 기쁜길 이었습니까?
아니면 눈물과 회한의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슬픔의 인생길 이었습니까?
지금까지 올바른 정도의 길을 걸어 왔습니까?
아니면 죄로 인하여 챙피스러운 길이 었습니까?
고난의 길을 걸어 오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이제 바른길을 찾았습니까?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길을 걸어 왔지만 아직도 어떤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길을 선택하여야 하고 또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길이든 목표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이요
어느 길이든 만족스러운 성공의 길도 있고 아니면 불만과 실패의 길도 있다는 사실입니
다.
때로 사람들 중에는 성공을 못하고 어려운 길을 걸어 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능력이나
소질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길을 잘못 택해서 어려운 길을 걸어온 억울한 사람들도 있습
니다.
그러니 인생은 한번 뿐이니 선택하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우리는 섯불리 자신의 걸어온 길을 후회하고 실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인생에 평가는 살아 있을 때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요 끝까지 가봐야 안다
는 것입니다. 즉 관에 못이 박힌 후에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밑에서 어느 나무가 큰지 눈짐작 해 봐야 잘 모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서로 대봐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하고 너무 일찍 단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생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로 봐서 인제 나는 틀렸다고요 천만입니다.
현재 각광 받고 있는 반도체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한 사람은 그의 나이가 환갑이
지나서 이제 집에서 손자를 봐야할 나이에 김향수라는 사람이 아남산업이라는 반도체 회
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반도체가 무엇인지 모를 때에 그리고 자신의 나이가 60이 넘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을 하고 지금 재벌의 대열에 올려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온 세월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바른길을 찾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 처럼 스스로 다 할수 있는것 같아서 자기 마음대로 해보지만 결국 얼
마 안가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잘못 선택했음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람들을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양은 어디로 가야 먹을 풀이 있는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는 미련한 동물이며 자기가
왔던 길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며 더구나 양들은 고집이 강해서 자기 생각대로만 길을
가려고 한담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습이 하도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이 양 같아서 우리를 양이라고 표
현을 한 것입니다.
625 전쟁에서 고집 때문에 포로가 된 미국의 장군이 있었답니다.
그의 이름은 미 육군 소장 딘 소장으로서 그의 부대는 어찌 됐는지 대구를 눈 앞에 두고
적에게 포위가 돼었답니다
대구를 지나 낙동강을 건너가면 살수 있는데 대구가 적의 수중에 들어 갔으니 어디로 가
야 하는지 당황스럽게 돼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길 안내원이 동쪽으로 가면 동해안이 나오니 그리로 가면 부산쪽으로 갈수
가 있어서 살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미유군 딘 소장은 그말을 믿지 못하고 거꾸로 서쪽
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육군의 장병들이 서쪽으로 30일간을 헤메다가 지쳐서 전라북도 무주에서
모두 포로가 돼었답니다.
사람은 남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집이 강해서 멋대로 갔거늘 결국
은 후회요 실패요 좌절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와 스승의 말을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인생길은 마치 등산과 같으니 먼저 산을 올라 갔다온 경험자에게서 어디로 가야 쉽게 정
상에 오를수 있는지 체험담을 들어 봐야 하는데 고집이 강해서 자기 생각대로 가는 경우
가 많이 있습니다.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 나는 아버지 돌아가 실때까지 기다릴수
가 없습니다, 내가 받을 유산의 몫을 미리 나눠주십시오" 그래서 자기 몫을 챙긴 작은
아들이 세상에 나가서 자기 멋대로 살아 봅니다. 결국 거지가 돼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
매를 먹는 신세가 되고 맘니다 그리고 고는 자기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를 일꾼으로 써
주십시오" 아들이 아버지에게 품꾼으로 써달라고 하니 이것이 미련한 인간의 모습인 것입
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진로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느길을 가야할까?
많은 사람들처럼 넒은 길 화려한길 성공의 길 출세의 길 뽐내고 자랑스러운 길을 선택할
지 모르지만 그 길이 바로 실패와 좌절의 허망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동굴속에 어린 박쥐가 이제 나도 넒은 세상을 마음대로 날고 싶지만 그의 인생에 한계를
모르고 그저 어린 마음에 이상과 꿈만 가지고 세상을 날아 보지만 결국은 실패요 사망의
길임을 께닫게 될 때는 이미 늦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길을 선택할 때에 두가지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없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속에서 평탄하고 안락함을 위하여 오직 출세가 최고의 목표로 살아가
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성공을 위하여 남보다 앞서기 위하여 남을 밀쳐 내야 합니
다. 때로 비리도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어야 합니다.
이 길을 주님은 넓은 길이라고 하면서 너희는 넒은 길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길
은 사망의 길이요 허랑 방탕한 길이요 실패의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육
강식의 험난한 길이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주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요 좁은 길이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릴케가 말하기를 인생은 어느 길이든 고난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길은 하나님이 다 세고 있는 길입니다.
욥기 31장 4절에 보면(함께 찾음)
"그가 네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우리가 하루동안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 보시면서 우리가 하룻 동안에 어
디를 다니며 몇걸음 걸었는지 우리의 걸음 거리를 세고 결산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집사는 쓸데 없는 곳을 많이 걸어 다녔구나 공연히 쇼핑하는데 왜 그렇게 많이
걸어 다녔느냐 오늘 신집사는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 많은 수고를 하였구나 참으로 네 발
을 아름다운 발이구나 이 군은 왜 오늘 술집과 오락실을 많이 돌아 다녔느냐?"고 우리의
걸음을 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목표가 분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도로를 나가면 고속도로든 모든 길 옆에는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붙어 있어서 차를
몰 때에도 이정표를 보면서 가게 됩니다.
길을 갈 때에 목적지가 있듯이 우리의 인생 길도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지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주 전주 세광에서 전도 실습을 나갔는데 어느 집에 가니까?
할아버지 한 분이 퉁명스럽게 말하였습니다.
"당신 네는 당신네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내 길이 있으니 상관 마시오"
그래서 공손하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가는 길이 이딘지 좀 가르쳐 줄수 있습니까?"
그분이 할 말을 잊고 그냥 내 뱆는 말이 "내가 가는길 나도 모르지"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아내 되시는 할머니가 뇌를 다쳐서 의식이 불명인체 안방에서 누
워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겨우 기도만 하고 왔지만 우리는 대부분 자기의 길을 모르
고 세상의 편하게 살길만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남들과 다르더라도 좁은 길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뜨류 대학교 정문에는 "Take Hard Way"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 라는 현판이 갈
려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군중들이 가는 길은 쉽고 넓으며 편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너죽고 나 살자는 강한
자 만이 살아 남는 험난하고 아비귀환의 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가 가신 주님의 길은 유별나고 예외적인 길입니다.
남들과 어울릴 때에 술자리에서 콜라를 먹는 유별남이 있어야 하고 담배를 주어도 나는
못핍니다 하고 예외적이어야 하다 보니 친구와 친척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발길을 세시고 주님이 동행하고 있는 영광의 길인 것입니다.
양이 사는 길은 목자를 따라 가야 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영원히 살아가는 길은 오
직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남시에 가면 기도원이 있는데 함께 산기도를 간 한집사님이 행방불명이 돼었습니다.
산속에서 길을 잏어 버린것입니다. 무려 5시간 후에야 어뚱하게 남한산성에 까지 가서 거
기서 차를 타고 다시 기도원에 오개 돼었습니다.
이와같이 길을 한번 잘못들면 우리는 많은 고생을 하고 세월을 낭비하게 됩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 버렸을 때에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만 찾아갑니다.
산속에서는 방향 감각이 없어서 마을로 나가는것 같지만 사실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 버리면 오히려 밑으로 내려 가지 말고 산위로 올라가여 사는 것입니
다. 그래서 산정상에 올라 가서 산밑을 보변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마을이 나오는지 먼저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가는 목표를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보았듯이 우리 스스로는 잘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세상을 내려다 보시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소년이 산에 올라 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
다. 너무나 밤이 어둡고 눈이 많이 와서 찾지를 못하고 다음날 날씨가 개어서 산에 올라
가 보니 그 소년이 죽어 있는데 그 소년의 바로 옆에 큰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년은 침착하게 찾았을수도 있었던길을 당황하여서 바로 옆에 길을 두고도 못찾은
것입니다.
사람들도 어려움에 당하면 주님 앞으로 돌아와 참된길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도 허망한꿈
에 젖어서 방황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술과 향락에 쫒아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라고 다 바른길은 아닙니다 옳은 길이 있고 틀린 길이 있습니다.
옳은 길을 정도라고 하고 틀린 길을 사도라고 합니다
자동차나 배 기차가 모두 자기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가는 길을 벗어나고 배가
뱃길을 벗어나고 기차가 기차길을 벗어나면 사고가 납니다.
지하철이나 길가에 가면 보도 블록중에 노란색을 칠한 울뚱 불뚱한 보도 블록을 보게 됩
니다. 그것은 맹인들을 위한 점자 길입니다, 그래서 신호등을 앞을 알게 돼고 자기가 타
야될 전철 호수를 알게 됍니다
맹인들은 그 울퉁 불퉁한 보도 불록을 따라 가야 사는 것입니다.
사람도 모두가 자기가 가야할 자기의 길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생의 길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길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길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꾸려 가는 어머니의 길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길이 있습니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바른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간섭이 돼고 그래서 귀찮은 부모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교회에도 모두 자기가 맡은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의 길을 후륭하게 책임 완수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길을 가든지 혼자서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동행해 주셨습니다 라고 간증할수 있도록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길이
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길이 막혔다고 생각돼도 아직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어려운일이 있을 지리도 모두 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운 우리의 걸음을 감찰하시고 세고 계신 것입니
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내어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살길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빠질 지경이 돼자 제자들이 주님께 외 쳤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돼었나이다 우리에게 살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 때 주무시던 주님이 살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주여 내가 죽게 돼었나이다. 살길을 보여 주시옵소서" 라고 부르짖을 때
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동양 사상의 진리는 "道(도)"라고 합니다.
길 자체가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세상의 진리는 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연구해 낸 대학의 학문이 진리가 아니요 그것은 그저 인간이 연구해낸 인
간의 학문이지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참 진리는 어디 있는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것이 참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보약을 먹고 양국에서 약을 사먹고 병원에 입원합니
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뿐이지 영생이 아닙니다.
진시왕은 신하를 풀어서 전국을 다니며 불노초를 얻으려고 하였지만 결국 얻지를 못하였
습니다.
우리가 영생하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고 내안에 품기만 하면 우리는 바로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품었느냐에 따라서 그의 종말이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불신자로서 악한 사단을 품었다면 그가 가는 목적지는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마음에 품었다면 그의 삶은 생명의 길이요 영생
의 부활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두는 종류가 참 많이 있습니다.
군반두 찐 만두 교자 만두 야채 만두 고기 만두 튀김 만두 부추 만두 물만두
그런데 만두집 아줌마는 만두속을 무었을 넣느냐 에 따라서 만두를 분류합니다.
어떻것은 만두 솥에 뜨겁게 들어가 있어야 하고 어느 것은 그냥 진열장에 넣어 두어도
좋습니다.
바로 만두속에 고기를 넣으면 고기 만두가 되고 야채를 넣으면 야채가 만두가 되듯이 인
간은 누구를 품었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YMCA 월남 이상재 선생과 처칠수상
(100세를살겠다)(나는 영원히 사는길을 알고 있다네)
홍해 바다를 통과하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길입니다. 애
굽의 군대는 그 길을 통과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은 누구나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만이
가는 것입니다.
독자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