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21일 추수감사주일 : :11-19 감사는 축복의 근거 눅 17 2001-08-19 22:09:47 read : 1105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목회자가 제일 설교하기 거북한 내용이 감사와 헌금에 대하여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
런데 예전에 선임 목사님들을 보면 평소에는 안 하시다가도 추수감사절 때에는 꼭 하시더
라구요 그래서 저도 추수 감사절이 되어서 감사 생활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은혜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본문 설명
영국에서 110명의 기독교인 들이 카토릭의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미지의 땅 아메리카를 향하여 메이 풀라워라
는 배를 타고 새로운 미국 땅에 도착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곳은 인디안이 정착하고 있는 땅이어서 그들의 습격을 받아서 죽고 또한
추위와 질병으로 인하여 죽는등 약 반수가 죽고 남은 60여명은 그래도 살기 위하여 천박
한 땅을 갈아서 갖고온 옥수수,감자,호박등 씨았을 뿌리고 초조하게 열매가 열리기를 기
다렸습니다. 만약에 토양이 달라서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야말로 굶어
죽을 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니 드디어 가을이 되어서 수확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나 큰 기쁨에 열흘간 금식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때 한 농부의 제안으로 기도회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추수의 기쁨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년 추수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후일 링컨 대통령이 정식으로
11월 4째주를 추수감사절이란 국가적인 명절로 제정하여 큰 명절이 되었고 미국의 전국민
이 마치 한국의 추석처럼 들떠서 추수 감사절 맞아 멀리있는 부모를 찾아가는등 최대의
큰 국가적인 명절이 되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일제시대 조선 기독교 연맹에서 미국과 겹치지않게 하기 위하여 11월
셋째주를 추수감자절로 드리기로 하였고 그래서 저희 교회도 11월 셋째주 오늘을 추수 감
사절 예배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왜 감사를 하여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꼭 물질적으로 풍족하여서 감사하는 것이 아
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여도 포도나무가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가 소출이 없을
지라도 그리고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게 감사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
니다.
왜그래야 하나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둘중에 하나입니다.
예수 믿지 않음으로서 사단의 권세하에 사로 잡혀 사단의 소유로 있거나
아니면 예수 믿으로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단의 소유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결과는 사망이요 영원한 죽음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엔 사단의 자식이요 어둠의 진노에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속제물로 드리므로서 우리를 죄악의 소굴에
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으로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게 감사하
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종 관계
관계가 끊어졌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상태가 아닐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하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임하고 감사의 제목이 자꾸 생기지만
불평하면 불평의 조건이 자꾸만 생겨서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은 항상 감사보다 불평을 합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이 너무 싱겁다 또는 너무 짜다는등 아니면 맵다는등 또는 식탁이 지
저분 식하다 는등 물컵을 받아도 유심히 물컵을 보고서 물컵이 들 닦였다는등 항상 어디
를 가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에 모든 것이 불만입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 설교도 마음에 안들고
성도들의 모습도 마음에 안들고 가정에 가면 아내도 자식도 직장에 가면 직장에 모든게
항상 불평입니다.
모든게 불만이다 보니 그는 항상 만족함이 없는 "불평의 거리"만을 찾아다니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집사님이 살아가는 모든 것에 감사하여서 하늘도 감사하고 공기도 감사하고
나무에도 감사를 하고 교회에 가면 교회 모든 것에 감사를 하고 가정에도 직장에도 감사
하면서 "감사의 거리를 찾아다닌다면" 그의 인생은 만족함 속에서 참으로 행복하고 만족
스러운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똑같은 일을 당하여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불행이 될 수도 있고 감사가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메튜헨리라는 유명한 성경 신학자는 어느날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나서 돈도 털리고 얻어
맞고 옷도 찢어져서 집에 들어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인과 자녀들이 분해 하였지만
오히려 그는 하나님게 감사를 하였습니다.
1) 돈은 빼았겼지만 생명은 빼았기지 아니하였으니 감사하였습니다.
2) 지금까지 12년간을 수없이 그길을 다녔지만 그동안 지켜 주심을 감사하였습니다.
3) 세상에는 남을 헤치는 강도도 있는데 자신이 강도가 되지 않았으니 감사한다면서 그
강도를 위하여 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모든일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할까요 ?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넘치는 감사를 드릴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즐겁게 감사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음에 분량에 따라서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란 일종의 상대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고마움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주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음으로 그래서 주님이 계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내 교
회로 생각하는 주인의식이 있을 때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헌신의 마음이 생기고 더
욱 감사의 조건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참된 감사 이유는 무었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감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데서 출발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자기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감격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란 물질의 소유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감사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아서 많이 하는 것이 아니며 받은 물질이 적어서 적게 하
는 것이 아니라
감사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감동이 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문제는 믿음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문제는 물질의 소유가 문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없으면 오히려 물질이 타락의 계기가 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물질의 소유를 늘리는 것 보다 먼저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
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물질의 소유를 늘리렸다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그 마음에 감사와 만족이 없으면 항상 불평이요 불만이요 결국 불
행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없는 물질의 풍요는 오히려 그 부유가 죄짖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소유를 늘리기 보다 욕심을 줄이고 갖은 것에 만족을 할 줄 알고 하나님께 감
사할 줄을 알아야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식 공부를 위하여 소팔고 논팔아서 등록금을 대주고 장가들여 주어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자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TV 단막극에서 많이 나오듯이 자식이 부모를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부모는 자식
눈치보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식에게 먼저 감사할 줄 아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는 청년이 부흥회를 통하여 안수를 받고 병을 고
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기뻐한 목사님이 주보에 광고도 내고 주일날 간증을 시키려고
준비하였더니 주일날 그 청년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화가난 목사님이 저녁때 청년에게 전화를 해서 왜 교회에 안나왔냐 어디에 갔었
냐고 물어 보았더니 허리가 나아서 너무 기쁜 나머지 그 동안 못갔던 등산을 하려고 산에
갔더랍니다.
마치 오늘 읽은 9명의 문등병을 고친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가진것에 감사 할줄 모르는 사람은 그 마음에 매사에 불만이요 불평이요 자기가 가장 불
행한 사람이요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의 신세가 되어서 예수를 믿어도 그 마음에 어둡고
진정한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고 가진 물질 없더라도 하나님게서 지켜 주심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가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게 감사할 줄을 알면 그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이 기쁨이
요 은혜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래는 감사를 가르켜 "성숙한 크리스천의 열매요 표시" 라고 하였습니
다.
다시 말해서 감사를 모른 다면 그는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요 하나님의 임재를 못느
끼는 체험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 할줄 아는 성도는 하나님과 가차워 지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곳에 그의 마음도 함께 따라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웃집이라도 그집에 김치 또는 부침개라도 선물을 하고 나면 그집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이 열리고 사랑의 대로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하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열려지고 하나님과
더욱 가차워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어떻게 될까?
감사는 축복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웃집에 김치라도 선물을 하면 그집에서 고마움의 증거로 또 선물
이 오게 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도 인격체입니다. 우리의 극진한 감사를 받게 될 때에 하나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감사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을 보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문둥병을 나은 아홉은 제 갈길로 갔건만 유독 보잘 것 없는 사마리아인 이지만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를 표하니 하나님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
니라" 하면서 육신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영혼도 함께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고 떠난 아홉은 겨우 육신만 고침받고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
니다.
감사는 축복의 증거요 감사 생활 그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를 하여야 하는가?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저는 가끔 교회에 부흥 집회에 가면 성도분 집에 가서 식사 대접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부산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에 어느 집사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
데 마침 상을 당한 사람이 있어서 담임 목사님은 못가고 부목사님과 그 집엘 갔습니다.
집안에 들어서니 집이 너무 아릅답고 그 집의 식탁 위에 산해 진미가 가득히 차려저 있음
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를 맞이한 안주인의 마음에 어째 기쁨이 정성이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함께 와야 하는데 부목사가 왔으니 기분이 나쁘다는 투였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친절해 보였지만 속마음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 산해 진미가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 졌습니다.
왜그렇게 되었을 까요
대접하는 사람의 마음에 진정한 마음에 정성이 빠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과시하면서 많이 내는 부자의 예물보다 동전 두닢이라도 부끄러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과부를 칭찬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물의 양을 논하지 않습니다.진정으로 정성껏 드리는 마음을 보
시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 또는 억지로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라는 마음에서 신령과 진정
으로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감사는 몸이든 물질이든 표현되어야 합니다.
감사를 말로만 하여서도 안되며 마움속으로 있어서도 안된니다.
무엇으로든 겉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남녀간에 사랑을 한다하여도 표현되지 못하면 짝 사랑이 되어서 슬픈 이별이 되
는 것처럼 감사의 마음도 무엇으로든 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다면 몸으로라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는 주일학교 시절에 다른 친구들은 하나님께 헌금을 하
는데 자신은 돈이 없어서 헌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헌금할 돈이 없습니다. 대신 저의 생명과 몸을 하나님께 모두 드리겠습니
다." 그후 그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자원하여 가서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보냈습니다.
진젠돌프 백작이라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 밑에 "나는 너를 위하여 이와같이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었을 하였느냐?" 라는 글귀를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백작이라는 지위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
며 빈민 구제를 하면서 그의 몸을 하나님께 모두 바쳤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든 감사를 표현 하여야 합니다. 입으로도 표현 하여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사의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저의 외삼촌은 심장이 고르지 못하여서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병에 걸렸습니다.
심장병은 경각을 다투는 병이어서 심장이 멈추고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집도 병원 가차운데 살면서 여차하면 병원으로 빨리 달려갑니다.
하룻밤을 자도 불안해 하십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하룻밥을 자는 동안에 우리의 심장이 멈추지 아니하고 밤새도록 규
칙적으로 심장이 잘 뛰도록 펌푸질을 하여 주심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감사하여야 할 까요 누가 우리의 심장을 자고있는 동안에도 펌프질을 해 주었
을 까요?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공기가 없으면 단 5분도 못 버티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공기를 물처럼 사먹지도
않고 무료로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TV를 보면 하루도 빼지 않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건 사고로 불행한
일로 세상을 떠나는 뉴스를 보게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들일수 있음을 우리는 감사하여야 합니다.
세계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하여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에
게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게 감사
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하루를 평안히 잘수 있는 집을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이웃간에 화목을 주시고 우리는 감사할 제목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망의 길에 서성이던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
에 내 놓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우리
는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베드로에게 하였던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진정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그 증거를 보이라?
오늘도 우리는 진젠돌프 백작이 보았던 예수의 십자가 밑에 글귀를 보여 주십니다."나는
너를 위하여 이와같이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었을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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