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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5월2 요 21장 15절-22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01-08-19 21:48:37   read : 108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폴란드의 센키비치라는 사람이 "쿠오바디스 도미네" 라는 소설을 섰습니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쿠오바디스 도니네
    라는 말은 라틴어인데 쿠오라는 말은 "어디로"라는 의문사이고 "바디스"는 가십니까?라는 말이며 도미네는 "주여"라는 말로써 쿠오바디스 도 미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한후에 로마에 네로 황제는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기독교인을
    학대합니다 그대 "기리아"라는 기독교인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배고픔에 사 람을 잡아 먹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들소들이 들어가 있는
    원형 경기장에 들여 보냅니다 이 기리아의 노예였던 "우르서스"가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들소의 머리를 비틀어 기리아 를 구출 합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기리아와 우르서스는 지하 교회에 숨어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한시 바삐 죽음의 도시 로마를 탈출할 것을 종요합니다 할수없이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로마를 빠져나와 들판을 가고 있는데 멀리서 한줄기 빛이 다가 오면서 사람의 형체를 띄고 있는데 가차이 가보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어 봅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이 슬픈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지기 싫어서 벗어놓은 십자가에 다시 한번 더 매달리기 위해서 저 로마로 가노 라"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마음속에 찔림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로마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로마 군병에게 붙잡히고 말 았으며 오늘
    우리가 읽은 18절에 예수님이 예언한 것처럼 띠띠고 두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메달렸 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로마 군병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거꾸로 메달아 주시 오"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메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당시 초대
    교인들에게 순교한 다는 것은 가장 성스러운 거룩하고 영광의 길이엇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인들에게 가장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은 장로가 되어서
    대우받는 것이라고 하니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후 제자들은 모두 낙심하여 예전에 하던 고기잡이 어부로
    돌아 가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데 그곳에 주님이 나타 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이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많은 고기를
    잡고 그들과 함께 생선과 떡을 떼면 서 아침을 드신후 갑자기 베드로를 향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5절에 주님이 베드로에게 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을 까요? 주님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 게바 즉 베드로 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베드로 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으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날 밤에 현장에서 어느 계집 종이 그를 가리키며 "저
    사람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지적을 하자 "아니요 나는 예루를 몰라요"라고 세 번식이나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 하였던
    부끄러운 행위를 생각하며 베드로라는 이름대신 처음 자연인의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을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의 처음 대답은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나왔다 "사랑하냐구요? 그야 물론 당연히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들은척도 아니하시고 한번더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두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약간 당황해서 조금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물론 사랑하지요"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세 번째 질문은 베드로의 심령을 내려치는 한줄기의 검과도 같이 날카롭게 질
    문을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풀이 죽어서 약간은 짜증을 내면서 목멘 대답합니다 "주님이 다
    아시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의 모습은 투명체입니다 속이 원히 들여다 보이 는 것입니다. 물고기 중에는 속이 원히 들여다
    보이는 물고기 있더라구요 몸안에 내장이 다 보이는 것 입니다. 인간도 그렇게 내장이 다보인 다면 병들었을 때에 쉽게 고칠수가 있겠다고 생각 해
    보았습니다만 하여간 주님은 베드로의 속을 훤히 꿰뚫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 볼 때에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 다. 여러분 이 자리에서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동희야 너는 나를사랑하느냐 왕복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효자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 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무었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정답은 마지막에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번식이나 질문을 하였을 까요? 그것은 인간에게는 세가지의
    본성 즉 인간에게는 세가지 껍질이 있기 때문에 세 번씩이 나 질문한 것으로 봅니다. 첫 번쩨는 감정의 껍질입니다 영어로 feeling입니다
    인간은 외부의 질문이나 변화에 즉각적으로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있으니 이것을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질문에 갑정적으로
    가볍게 대답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냐구요? 물론 이지요 우리 주변에는 첫번째 베드로의 반응처럼 감정적인 신앙인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에게
    이런 신앙인이 있습니다 곙배와 찬양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믿음을 고백하던 여학생이 대학교애 들어 가 더니 교회를 잘 안나와요. 여름
    수양회에 헌신을 다짐하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대학에 들어가 군대를 갔다오더니 아예 교회를 멀리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을 감정적으로만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감정적인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에 진정한 눈물은 감정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 체험에 의한 성령 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쉽게 즉각 일어나는 대신 또한 즉각 쉽게 도망 가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감정적으로
    믿어서는 얼마 못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가 감정적인 신앙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쩨 질문은 지성의 판단에 의하여
    논리적인 믿음입니다 영어로 intellect 입니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지식을 쌓고 지적이 되었습니다 논리적입니다 그래서 지식으로
    신앙을 제고 논리적으로 신앙을 믿습니다 즉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을 논리적인 판단에 의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은 판단에 의하여 믿 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교회에 나가자니까 교회 나가서 손해 볼 것 없으니까? 남편이 예수를 믿으니 안믿자니
    가정이 시끄러울 것같고 하니까? 또 교회를 안나가면 공연히 무슨 벌을 받지 않을까 염려 때문에? 예수 믿으면 돈을 많이 벌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도 남들처럼 잘살아 보자! 내가 믿으면 우리 자식도 믿겠고 그리고 자식들도 잘 되겠지 이러한 논리적인고 인과응보적인 신앙은 대부분 중년의
    나이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인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교회 안나옵니다 아니 예수를 믿었서 복을 받기는커녕 어려움만 있잖아 예수가
    있다면 왜 나에개 이러한 어려움을 준단 말인가? 예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는 교회 나오기를 거절 합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삶에 고통과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많은 신자들이 주님에게 따지고 목회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도 열심히 나왔고 헌금도 열심히 하였으며
    예배도 열심히 참석하였는데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주십니까? 여러분 먼저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맘대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값주고 사시려고 십자가에 매달려 희생을 치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자신의 양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종에 신분과 같은 것입니다 종은 이름도 없고 자기 소유도 없고 모두 주인의 것이며 생명도 주인의 것입니다. 우리 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비록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이 땅에서 내 맘대로 살라고 하셨지만 때로 우리가 주 님을
    잊어버리고 살거나 아니면 위험한 길로 가려고 할 때면 주님은 우리에게 경고를 하 시고 그래도 듣지 아니하시면 징계를 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하면 돌아서라고 부르면서 주의를 주지만 그래도 말을 듣지 아니하 면 강제로 뒤돌아 서게
    하거나 번쩍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 는 억울한지 막 떼를 쓰며 웁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억울한 일이요
    환난이요 고난이라고 생각것과 같은 것입니 다. 히브리서 12장 8절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 징계가 전혀 없었다면 우리는 사생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찾아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를 하심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양자로 삼으셨음을 확인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 자신의 계획을 다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주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 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뜻대로 내 욕심의 소욕대로 살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는게 아닙니다 숫하게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그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대 로 되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욕의 뜻대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원하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만 이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댓가를 바라고 주님을 믿는 논리적 인 지성적인 신앙인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지성이나 논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손해 보아도 주님이 이득이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쩨 주님이 질문한 것은 인간의 속마음
    의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영어로will 입니다 의지는 인간의 본성 중에 제일속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결단이 나오고 헌신과 희생의 각오가 나오고
    진정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결 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에도 세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사랑에 상대를 만났을 때에 그저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낍니다 마치 신혼 여행의 기쁨과 같습니다 두 번째 사랑으로 들어가면 서로 공평합니다 그래서 서로 돕고 서로 유익을 구합니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짐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평하게 되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인 됩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보고 그리고 한쪽이 고집을
    부리고 상호간에 돕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 피해를 입게 될 때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에 진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위하여
    끝까지 수고를 하고 헌신을 하고 희생을 합니다 결혼한 얼마 안된 신혼주부가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그 남편을 위하여 20년 동안 을 먹여
    살리는 주부를 텔레비젼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내는 불구의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집을 나가 버리는 겨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희생이라도 각오를 하는 마음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예수님이 천하를
    통일하여서 예수님이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면 자기는 최소한 장관을 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모든게 헛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낙심을
    하고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를 잡는 어부로 돌어간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질문을 한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 나를 위하여 죽을 각요라도 되어 있는냐 ? 그때 베드로는 마지막 헌신과 희생을 각오한 자기 의지를 보여 줍니다 "네
    주님 그러하외다" 그래서 그는 쿠오바디스 도미네의 영화처럼 십자가에 순교를 기꺼이 받음으로서 천국에 면류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신앙인 입니까? 설마 감정적으로 믿는 신앙인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판단을 하고 보답을 바라고 믿는 신앙인은 아니 겠지요 우리는
    세 번쩨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는 나의 희생도 각오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 많은 의사들이 사회적인 직위와 세상에
    부귀 영화를 다 버리고 아프리카에 나 가서 헌신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 미개한 아프리카에 가서 그러한
    고생을 하고 있을 까요? 그것은 진정 주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신앙심 때문도 있지만 성령에 역사 하심에 의한 사랑에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도 성령에 은사입니다 사랑이란 내 의지로 하는 것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하여 이루어 질 때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십자가를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의 동기 목사중에 한 사람은 천안에서 부랑아 지체 부자유자들을 돌보면서 목회를 하 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더러움과 냄새와 불쌍함과 측은함을 느끼는데 그곳에서 자진해 서 그러한 수고를 하는 목사 내외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것은 성령에 감동이 아니면
    저렇 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목회를 할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주님을 이웃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여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주님에
    사랑은 내 감정이 아니라 성령에 힘에 의하여 성령에 역사하심에 의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성령에 역사하시는 사랑에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 니다. 그때에 성령이 주시는 참된 사랑의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우리는 사랑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에 내용에 보면 (찾아봄)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최목사님 전화국번이 419 (마태복음 419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낚는 어부 가 되게 하리라" 우리가
    주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 마음이 없다면 주님에 이름으로 감수하여야할 많은 고 난과 사단의 방해와 이웃의 시기심을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단어를 말하라고 하면 그 단어는 "사랑"이라는 두글자 입니다 사랑은 수직적인 사랑이 있고 수평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수직적인 사랑은 하나님과 맺어지는 즉 대신적인 사랑의 관계이며 수평적인 사랑은 인간 과 인간끼리 맺어지는 대인 관계에 의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 원리가 있습니다 수평적인 대인관계에 의한 사랑을 잘 이루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사랑이 잘 진 실하게 맺어져야 수평적인 사랑을
    잘 이룰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원만한 사랑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머지 않아 우리는 주님과
    한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여러분 을 향하여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였느냐" "00아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미리 정답을 가르쳐 드릴 터이니 그때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주님이 여러분을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물으시면 공연히 머뭇거리거나 거짖말하셔서는 안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투명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
    우리가 읽은 대로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말에 떳떳하여야 합니다 제가 주님 흉내를 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미리 연습한번 하시다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아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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