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4-9) 2001-12-08 16:57:44 read : 89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수기 21장 4∼9절)
설교 개요
A.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1. 바라보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
2. 본문 배경 설명
B.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1.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원망, 불평(민 21:4-5)
2.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많은지라 - 불뱀, 심판(민 21:6)
3. 우리가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떠나게 하소서 - 회개, 기도(민 21:7)
4.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신앙, 순종 /
불신앙, 불순종(민 21:8-9)
C.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하여 범죄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자
A.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1. 바라보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느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보아야지 나쁜 것을 보면 그만큼 손해가 큽니다.
어느 젊은이가 골동품 가게에 취직을 했습니다. 골동품 가게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 젊은이는 처음부터 가짜를 가려내는 법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가짜를 골라내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고, 6개월 동안 진품만 잔뜩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은 가짜를 하나 가져와서 점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을 보자마자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짜만 보니 가짜를 알겠더라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눈앞에 무엇이 있느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눈에는 항상 책이 보여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교사의 눈에는 제자가, 의사의 눈에는 환자가, 목사의 눈에는 성도가, 기업가의 눈에는 근로자가 보여야 합니다. 또한 정치가의 눈에는 국가의 장래가, 어머니의 눈에는 가정의 행복이 보여야 합니다. 올바로 보기만 하면 우리는 성공하고 승리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특히 성도들이 보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 17:15). 주의 긍휼 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 123:2). 위의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골 3:1).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1:26).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하나님의 날이 임할 것을 바라보고(벧후 3:12),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벧후 3:13). 올바른 것만 보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TV와 라디오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TV와 라디오 중 어느 것이 더 영향력이 큽니까? 라디오는 청취하는 동안 시각이 자유롭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TV는 시청하는 동안 시각적으로 매이게 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독서 시간도 빼앗기고 사고의 기회도 줄어듭니다. 불건전한 생활 양식에 빠지게 됩니다. 욕구불만이 생깁니다. 저질 TV문화에 길들여져 저질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단적인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는 것이 주는 영향력은 매우 막대합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때리고 싸우고 죽이는 폭력적인 만화나 게임에 빠지게 되면 포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TV를 보더라도 좋은 프로그램을 보아야지, 나쁜 프로그램을 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에 해를 미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 37절에는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하려는 사람은 성공을 바라보아야 하고, 행복하게 살기 원하는 사람은 행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하심을 바라보고 한 걸음, 두 걸음 전진해 나아갈 때, 우리는 마침내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므로 형통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절망과 고통, 어려움과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불평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면 우리도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본문 말씀 민수기 21장 4∼9절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한 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겼던 일입니다.
그들은 에돔 땅을 통과해야 했지만, 에돔 왕이 허락하지 않아서 에돔 땅 남쪽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삭막한 광야로 돌아가게 되자, 그만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땅속에서 불뱀이 나오게 하셔서 원망·불평하던 자들을 다 물어 죽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뒤늦게 죄를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찾아와 하나님 앞에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모세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말대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원망·불평하며 땅만 쳐다본 사람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바라볼 것을 바라본 사람, 순종한 사람은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모세의 말에 순종하고,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삽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사람은 그 불순종으로 인해 죄를 짓고, 또한 그 죄 값으로 인해 병들고, 망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고통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과거의 축복과 사랑은 다 잊어버린 채, 현실만 보고 원망과 불평에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원망과 불평은 뱀을 불러들이고 뱀은 결국 우리를 물어 죽게 만듭니다. 불신과 원망과 불평은 우리 몸에 독이 퍼지게 해 건강을 잃고 병들게 만듭니다. 기쁨을 잃고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불신앙에 빠져 하나님의 축복의 반열에서 서서히 떠나게 만듭니다. 가난과 저주와 질병으로 멸망하고 죽음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많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우리가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떠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B.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1.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 원망, 불평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進行)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怨望)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引導)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薄)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 21:4∼5)
대개 원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빨리 가면 좋겠지만, 매사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지름길로 가지 않고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시간이 걸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서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원망’이라는 것은 대항하고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먼저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은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게 하시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의 일은 내다보지 않고 당장에 죽을 것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살리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어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굶어 죽은 사람도, 목말라 죽은 사람도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죽을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만나 때문에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에는 감사치 않고 오히려 ‘박한 식물이 싫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은총도 ‘싫다’고 말하므로써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의 말을 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상한 상태로만 그냥 있었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입술로 원망, 불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곧 회개하면 되지만, 일단 말로 표현해 버리면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죄가 마음에 있을 때 물리쳐야지 입술로 나오게 되면 더 큰 죄를 범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3절에서는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버트 휴즈는 현대사회를 가리켜 ‘불평의 문화(Culture of Complaints)’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불평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부유한 사람이 더 불평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현대인들은 욕망과 욕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욕구대로 되지 않으니까 스스로를 피해자로 생각하고 원망과 불평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나보다 잘산다, 저 사람은 나보다 낫다”고 하며 비교의식에 빠져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는 30년, 50년 전보다도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욕심 때문에,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도 감사할 수 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시편 37편 7∼9절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승리합니까? 감사하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학교에서도 부모님께 감사하는 학생,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부모님께도 불평하고, 선생님께도 불평하고, 학교에 대해서도 불평하고, 늘 불평이 많습니다.
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실패한 사람들이 불평이 더 많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자신의 인생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도 망칩니다. 그러나 감사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앞으로 전진하여 성공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와서 은혜 받고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며 원망하는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 한 후에 작은 오퍼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만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사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 회사에 기계류를 납품했는데, 한번은 그 회사에서 기계를 3일간 사용해 보더니 반품을 요구했습니다. 반품을 받으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는 화가 났지만, 그래도 환난과 시험이 닥쳐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흔쾌히 반품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무슨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 같다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돼서 정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반품을 요구했던 회사에서 더 큰 기계를 구입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의 사업은 날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물질을 통해서도 감사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먼저 이익금을 계산하여 미리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어음이 부도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십일조를 50만 원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100만 원, 150만 원으로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200만 원이 넘는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청년이 반품이 들어왔다고 해서 원망하고 불평했더라면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더 좋은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많은지라 - 불뱀, 심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6)
원망과 불평은 뱀을 불러들이고, 뱀은 우리를 물어서 몸에 독이 퍼지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원망과 불평은 우리 몸에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것입니다.
‘불뱀’은 중동 지역에 많던 독사의 한 종류입니다. 이 뱀은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데다가, 독성이 강해서 사람이 한번 물리면 온몸에 독이 퍼져서 불같이 뜨거운 열을 내다가 죽게 만들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니까 불평과 원망은 몸에 열이 펄펄 나게 해서 우리를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물과 불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기도 하고, 지진이 터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쟁이 나기도 하고, 전염병이 돌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민수기 14장 29∼30절에는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원망하는 자는 약속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불평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르짖고 기도를 해도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하며, 따라서 응답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 9절에서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병원에 한 임산부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었기 때문에 복도에도, 병실에도 예수님의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그 임산부는 액자를 보고 이유 없이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 간호사를 불러서 그 액자를 좀 떼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는 “저는 그 액자를 떼어 낼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자는 화가 나서 자기 남편이 누군 줄 아느냐며 원장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장 역시 그 액자를 떼어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그 액자를 떼 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내가 직접 떼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임산부는 무거운 몸으로 의자에 올라가서 그 액자를 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절대로 저 사진을 보지 못하게 할겁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그 여자는 출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말했던 대로 그 여자의 아이는 영원히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님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 기독교에 대항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심판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람, 감사치 못하는 사람, 그래서 가난과 질병,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원망, 불평하는 죄에 빠지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 우리가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떠나게 하소서 - 회개, 기도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怨望)하므로 범죄(犯罪)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祈禱)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민 21:7)
이스라엘 백성은 뱀에 물려 독이 퍼져 죽게 되자, 비로소 회개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얻어맞아야 회개를 합니다. 오늘날도 병들어 죽어가고, 아주 망해 버려야 회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한 것도 죄가 되고, 모세를 원망한 것도 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뱀에 물려 죽어 가면서 모세를 찾아갔고, 모세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뒤늦게나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에서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외과의사 다글라스 박사는 환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신의 뼈를 부식하게 만들어서 골다공증에 걸리지만,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뼈가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을 비교해 보면 대개 누가 더 긍정적입니까? 건강한 사람이 더 긍정적입니다. 늘 몸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록 병들어서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감사하고 기뻐하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질병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늘 감사하는 긍정적인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서 축복하십니다. 회개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비록 감사치 못한 죄, 원망하고 불평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지금 병들고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더 깊은 죄악과 저주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죄라도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저주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주님께서 나를 박대하시면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나의 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큰 죄, 작은 죄, 다 주께서 용서하시고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는 『참회록』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그 마음속에 용서와 평안과 기쁨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아서 한평생 슬픔과 고통과 불안 속에서 떠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남자가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트럭이 나타나서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밟았는데 차가 돌아 그만 옆의 차를 받아 버렸습니다. 수리비를 계산하니까 700만 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험 기간이 만료되어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자니, 그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사고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700만 원이 나가는데 뭐가 감사해?”
“당신이 트럭에 치었으면 내가 과부가 되었을 텐데, 이렇게 무사하니 얼마나 감사해요?”
아내는 남편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도 그랬습니다. 돈만 없앴기에 망정이지 몸이 다쳤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그래서 자기도 뒤늦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게 하시고 생명을 보존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순간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원망할 때는 기쁨과 평강이 사라지고 잠도 안 왔는데, 감사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원망·불평하지 마시고, 원망·불평한 죄가 있다면 회개하시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금강산 기도회’를 다녔왔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북한 땅에 가보니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곳곳에 군인들이 서 있었는데, 고작해야 16, 17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었습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군복을 입고 뙤약볕에 서 있는 것을 보니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자기 집에 감나무가 있어도 감을 못 따먹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국유화되어 있기 때문에, 따먹는 날에는 반동으로 몰린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산에는 새도 없고 칡도 없습니다. 다 잡아먹고 캐 먹어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돗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시냇물로 목욕하고 빨래하고 식수로도 사용하는데, 그나마 요즘은 비가 오지 않아서 황사 현상이 일어나면 먼지 구덩이에서 생활합니다.
일행 중 어떤 사람은 만물상을 갔다 내려오는데, 한 제복 입은 사람이 다가오더니 코를 풀었으니 벌금 100불을 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콧물이 저절로 떨어진 것이니 깎아 달라고 해서 50불을 주고 겨우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 것으로라도 돈을 벌려는 것을 보니, 참 불쌍했습니다.
남한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남한의 노조원들, 데모 하는 학생들, 초등학교 학생들 할 것 없이 다 북한에 다녀올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한 번 갔다오면 다 애국자가 될 겁니다. 원망, 불평할 것도 있지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남한에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원망 죄를 짓지 말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한순간, 작은 것이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께 감사하고, 자녀들은 집에서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앞날을 바라보고 ‘하나님, 대한민국을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남·북한이 하나되어 정치·경제가 뭉치면,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잘사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통일이 되는데 3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0을 빼고 3년 만에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불가능도 가능케 될 것을 믿습니다.
4.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신앙, 순종 / 불신앙, 불순종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8∼9)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놋을 녹여서 불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놋뱀을 쳐다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말에 순종해서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해독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불순종하며 땅만 쳐다보고 원망, 불평한 사람들은 서서히 독이 퍼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걸리는 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순종의 병입니다. 이 병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병 중에서도 아주 심각한 병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면 불행해집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불순종하면 공부를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의 교만과 완악함이 다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최상급의 인생을 살게 하시고, 상급 받는 인생을 살게 하시고,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쳐들어 왔을 때, 역대하 20장 12절에 나와 있는 대로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을 치게 하셔서 유다 백성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다의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38장 14절과 같이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여호와 하나님만 앙망하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죽을병에서 살려 주시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3장 말씀을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도 지나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4∼5절에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3장 6∼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므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의 종을 바라보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마음을 보시고 기적과 치료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로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동욱이라는 학생의 간증입니다. 동욱이네는 할머니, 어머니, 동생, 동욱이, 이렇게 4식구가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어머니가 술집 주방에서 일한 돈으로 살다보니 너무 가난했습니다.
할머니는 방이 너무 좁아 늘 라면박스 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쩔 때는 동욱이의 도시락도 싸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살 바에는 같이 죽어버리자고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동욱이가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부활절이라 교회에 갔더니 계란을 주었습니다. 동욱이는 얼마나 기쁜지 몰랐습니다. 계란 두 개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하나는 할머니, 하나는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대.”
“우리가 9원 가지고 어떻게 살겠니? 그래도 50만 원은 있어야지….”
어머니는 당장 전세금 50만 원이 없으면 그 집에서도 쫓겨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욱이는 그때부터 학교에 오가며 교회에 들러 50만 원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우리 집에 50만 원 주세요. 50만 원만 생기면 우리 엄마가 교회에 나온대요.’
그런데 마침, 담임 선생님께서 덕수궁에서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있다면서 동욱이에게 대표로 나가보라고 하셨습니다. 동욱이는 아버지와 꽃가게를 하면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 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글을 썼는데 일등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욱이의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글짓기 대회 때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동화작가 할아버지가 물어, 물어 동욱이의 집을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동욱이의 어머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셨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하며 자신이 지은 동화책을 한 권을 두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책 속에는 흰 봉투에 10만 원짜리 수표 5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참 고마우신 분이시라고 하자 동욱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엄마. 그 돈은 할아버지가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거예요.”
“그래. 예수님이 50만 원을 주셨으니, 내가 교회에 나가마.”
그 후로 동욱이네는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축복받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학생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아내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하여 범죄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자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역경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갑절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 계셔서 약속하신 대로 말씀을 성취하시며, 우리가 믿은 대로 축복하시고, 기도한 대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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