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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의 직장생활
    2001-12-08 15:33:52   read : 799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6:5-9)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노사간의 문제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의 부흥도 노사간의 문제만 잘 해결되면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일인데, 노사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노사간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잘 해결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노사 어느 입장에 있든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앞을 보면, 성령충만함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는데, 성령충만한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몇 가지 증거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먼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되고, 또한 범사에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피차 복종하는 삶이 가정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피차 복종함이 직장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5월 달(가정의 달)에 이미 '성도의 부부생활', '성도의 부모공경', '성도의 자녀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성도의 직장생활'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이라고 하면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용인의 입장이고, 또 하나는 고용주의 입장입니다. 또한 직장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아래 위치한 사람이 있고 위의 상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종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종들은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는 약 6천만 명의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구의 1/3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해서 몸을 팔아 노예가 되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전쟁에 패해서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는 단순 노동자도 있었지만, 교육수준이나 문화수준이 높은 노예들, 예를 들면, 의사라든지, 법률가라든지, 교사라든지, 예술가의 일을 하는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경제는 대부분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종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를 믿어 성도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노예는 아닙니다. 노예시대에 살지 않는 다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직장에 가면 위로 상사도 있고 고용주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은 세 가지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이 시대에 고용인의 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상사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5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여기에 보면 '두려워하고 떨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사를 받드는 행동입니다. 상대방을 높이고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성실하다는 말은 영어로는 sincere 라고 번역했는데, 이 sincere 라는 말은 라틴어 sine cere 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 뜻은 '왁스가 없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도공들이 자기의 작품에 이 글을 쓰고 거기에 자기들의 인을 쳤는데, 그 의미는 이 작품에는 흠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도자기들은 쉽게 깨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깨진 곳에 왁스를 칠해서 그 흠을 가리곤 했는데, 그 도자기에 'sine cere' 라는 글이 있으면 그것은 왁스가 없다는, 다시 말해서 가려진 흠이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나 고용주에게 높이며 존경하는 마음을 보여주는데,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더 이런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사실 우리 한국에서는 상사나 높은 사람들에게 어떤 면으로는 너무 지나치게 공경을 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손님들을 맞으러 공항에 나가보면 뉴욕 지사에 근무하는 분들이 나와서 자기들의 상사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한번은 서로 다른 상사에서 근무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공항에서 만나 이야기하는데, 한 사람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하니까 대답 대신에 손을 비비는 시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손을 비비면서 자기도 그것 하러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뜻인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한국에서 높은 분이 와서 인사하러 왔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이 바쁜 때에 뭐하러 비행장까지 나옵니까? 사무실에서 다 만날텐데..." 그러자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이걸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높은 분이 오면 아무리 바빠도 나와서 손을 비벼야 그 때부터 장래가 잘 풀리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얼마나 상사나 고용주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높이고 공경하며, 허리를 굽힙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욕하고 흉보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직장생활을 할 때, 직장의 상사나 고용주를 대할 때 겉으로만 그렇게 높이고 존경할 뿐 아니라 속마음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당시 종으로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상사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육체의 상전이 있는데, 하나님은 육체의 상전들에게도 하나님께 하듯이 똑같이 대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잘났든 못났든, 내게 잘해주든 못해주든, 또 그들의 인격이 훌륭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우리는 그들을 높이고 존경하고 높이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도 진실하게 같이 존경해주는 것이 직장에서 상사에게 보여줄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실히 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6절을 읽어봅시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우리가 상사나 고용주가 맡겨준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눈가림으로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보는 데서는 열심히 하지만 안 보면 안 하는 그런 식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마음으로 그 일에 충성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 노동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길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당 55.1시간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도함으로, 요즈음 나오는 주5일 근무제를 합당하게 주장하는 근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통계를 듣고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일하고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근로를 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그만한 성과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생산성에 있어서도 우리 나라가 일등인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직장에 머물러 일하는 데도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간은 많이 보냈지만 질적으로 일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직장에서 시간만 보냈지, 생산적인 일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직장생활 하는 것을 보면 상사가 나오기 전에 빨리 와서 자리에 앉아 있고, 상사가 나가지 않으면 버티고 자리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이 없어도 앉아 있는 것이 일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볼 때는 일하지만, 보지 않을 때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직장에서 이렇게 눈가림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보든지 안보든지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어느 영국 사람이 토인들을 시켜 물건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일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토인들이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감독이 보면 일하지만, 돌아서면 일을 놓고 노는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한 양의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꾸 차질이 생깁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자신이 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그 사람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토인들이 이것이 뭔지 몰라서, 뭐냐고 물을 때에 이것이 자신의 눈이라 떼면 안보이고, 끼면 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토인들은 이것을 곧이 곧대로 믿었습니다. 정말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것도 못보다가 안경을 끼면 다 보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가 현장을 떠나면서 그의 안경을 벗어서 나무 그루터기에 걸어놓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없는데도 주인의 눈이 있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됐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가보니 또 일을 안하고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안경이 있는데 가보니 주인의 눈이 보지 못하도록 모자로 안경을 가리워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일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있을 때에도 충성했습니다.
    노예에게는 노예들의 근성이 있습니다. 시키면 안하고 안시키면 안하고, 보면 하고 보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 노예근성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기에 보든지 안보든지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가정의 총무로 삼았고, 나중에는 감옥에 갇혀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에는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 눈가림으로만 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 대신에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단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7절에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기 '단 마음'이라는 것은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가림으로 일하지는 않지만, 기쁨으로 하지 않고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할 수 없어 하는 것과 기쁨으로 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억지로 사람에게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하듯 기쁨으로 일해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갔을 때, 참 어리석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훈련을 받을 때, 돈주고 훈련에 빠지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 때가 12월이었는데, 가장 추운 때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군대생활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나 자취생활을 하니, 제대로 먹기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군대에 가니 하루 세끼 정량 음식이 시간을 어기지 않고 나옵니다. 비록 꽁보리밥이고 남들은 냄새가 나서 못먹겠다고 하는데, 저는 아주 잘 먹고 걱정이 없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아침에 자꾸 깨워서 일으키니 잠자리를 가지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군대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잠자는 시간이 4-5시간 밖에 안됐습니다. 매일 새벽 4시면 새벽기도회 가느라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군대에서는 10시면 취침시키고 아침 6시까지 일어나지 못하게 하니 실컷 잡니다. 그리고 아침에도 더 일찍 눈이 떠지면 일어나지 못해도 누워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먹는 것과 자는 것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대 가기 전에도 여행을 좋아해서 무전여행하고, 캠핑도 하면서 군인들이 하는 생활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러니 군대에서 실제로 총을 들고 쏴고, 탄피도 차보고, 뛰기도 하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겨울 추운 때에 훈련받으면 운동이 됩니다. 가장 힘든 것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교육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훈련하고 뛰는 것이 싫어서 돈을 주고 빠져서 추운 겨울날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합니다. 저렇게 추울 때, 같이 뛰면 춥지 않지, 왜 혼자 떨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제가 느낀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기쁨으로 하면 유익이 됩니다.
    일 안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일하는 것이 복이고, 일을 하면 몸과 정신에 좋고, 돈을 버니 좋은데 사람들이 일 자체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그러면 공동묘지에 누워있는 사람이 가장 상팔자입니다.
    그러므로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내가 무엇이든지 일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면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을 고용한 사람에게도 보탬이 되고, 사회와 나라에 기여하며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8절에 보니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로 앎이니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일하면 그것이 내게 돌아옵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직장에서 남의 밑에 있는 사람, 고용인의 입장에 사람은 윗 사람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눈가림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충성스럽게 일을 하며, 일을 하는 데에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직장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상전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상전들, 고용주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즉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너희도 이와 같이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종의 신분이나 상전의 신분에 있는 사람이나 원리는 같다는 것입니다.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도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면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상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똑같이 복종하는 원리 속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위에 있고 주인의 위치에 있으면 나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9절 말씀 뒷부분에 보면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상전이라 해도 그 위에 또 상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상전, 즉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사람의 중심까지 보시는 상전이 계시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복종하는 자세로 다스리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높은 위치에 있으면 자기 위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지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다든지 통치자가 되면 자기가 제일 위에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롭고 신앙이 있고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기 위의 진정한 상전을 늘 모시고 삽니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진정한 자기 위의 상전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성령충만입니다. 이것만 알면 다 해결됩니다. 이것을 알면 비록 자기 밑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특히 말씀에서 공갈을 그치라고 했습니다. 당시 주인들은 일하기 싫은 노예근성이 있는 종들에게 일시키기 위해 공갈을 합니다. 일안하면 밥안준다고 하고, 묶어서 때린다고 하고, 죽인다고 협박합니다. 지금은 사주나 고용주들이 말로 협박하거나 봉급이나 승진을 갖고 공갈 협박을 합니다.
    사주나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이것은 마땅히 줘야 하고 그 사람의 것입니다. 월급을 주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주들에게는 사주들의 권리가 있지만 고용인은 고용인대로의 권리가 있되, 다 하나님 아래 있는 것으로 알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상전을 생각해야 합니다. 종의 위치에 있어도 상전인 사람만 볼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상전인 하나님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겠는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상전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자기보다 높은 상전인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생각하며,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 서지 않도록 늘 두렵고 떨림으로 부하나 아랫사람을 다스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대통령의 아들이 내 부하직원으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직원을 사람되게 훈련도 시키고 봉급도 주고, 잘못하면 야단도 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그 사람을 함부로 못합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내 지시를 받아 일하고, 내 돈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인격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내 밑에 있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혼납니다. 특히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의 아버지가 이 땅의 대통령이나 왕보다 높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내 위의 상전을 의식하면서 직장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성도의 직장생활이고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비록 우리들이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주부라 할지라도 가정에서도 똑같은 원리입니다. 또 이미 직장에서 은퇴를 했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비슷합니다. 언제나 우리 위에 사람이 있고, 아래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이 다 비슷합니다. 우리가 이런 원리로 사회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또 그리스도가 증거되며 자신에게도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남서울교회 성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되어 성경적인 직장생활을 해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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