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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사람을 입자
    2001-12-08 15:28:45   read : 798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4:25-32)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타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자기의 재산을 다 허비하고 난 다음에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아 회개하고 아버지를 향해 찾아갑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일 먼저 해 준 일은 옛날 입었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새 옷을 입혀준 것입니다.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긴 후, 잔치를 베풀어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마치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새 옷을 갈아입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과거의 나는 죽었고 다시 살아난 나요, 하나님께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다시 해주시는 가장 첫 번째 일은 과거의 더러워진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늘 읽은 말씀과 그 앞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믿은 당시 성도들과 우리들에게,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자고 말씀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옛 사람을 벗는 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먼저는 옛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벗어버리자고 했습니다. 옛 사람의 세상적인 욕심을 벗어버리자고 했습니다. 옛 사람의 나쁜 습관을 벗어버리자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벗는 목적은 입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목욕을 하고 나서도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지 않습니까? 그럴 때 정말 목욕한 기분이 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으면 이제는 옛사람의 행위를 벗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말씀에서 우리 새 사람이 입어야 할 영적인 옷 네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다음 시간에 나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새사람이 입어야 할 첫 번째 옷은 진실의 옷입니다.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거짓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옛 사람의 옷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얼마나 거짓의 옷을 많이 입었습니까?
    저는 예수 믿기 전에 제가 참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진실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기 전에도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되고 진실하려던 노력 자체가 거짓된 동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실되게 보이려 했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손해가 되고,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되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정말로 진실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바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 순간, 이제까지 나를 숨기고 감추던 옷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마치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문둥병 걸린 몸을 고치기 위해 걸친 옷을 다 벗고 요단강에 들어간 것처럼 나 자신을 완전히 벗어 하나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정말 내가 거짓된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를 믿고나니 그 때야 비로서 진실이 무엇인 줄 알게 되었고, 진실은 바로 사람들의 눈속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갖는 나의 자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 사람에게 속한 거짓을 버리고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자고 했습니다. 진실되게 말하고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여기 지체라는 말은 우리 몸의 각 부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지체들 간의 진실한 교통입니다. 몸의 지체들은 서로 속이거나 거짓되는 것이 없습니다.
    가령, 배가 고프면 위는 진실하게 배고픈 것을 머리에게 알립니다. 그래서 머리는 눈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게 하고, 눈이 보면 발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게 하며, 손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취하게 하고 입으로 하여금 먹게 합니다. 또한 혀로 하여금 맛을 느끼게 하고 치아로 하여금 씹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위에 들어가면 위가 이제는 됐다는 것을 머리에 보고합니다. 이런 모든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된 교통입니다. 조금도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 만일 어느 한 기관이라도 거짓되게 행하면 몸에 탈이 납니다. 그것이 병이 되고 몸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의 몸인 지체이기에 우리들끼리는 무엇보다 진실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주님의 몸된 교회가 튼튼히 세워지고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하는 성도들간에 진실한 교제가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령, 한 때 신앙생활하던 성도들에게 진실하게 얘기해줍니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이 어떤 사람과 불화하여 아주 사이가 안좋은데, 문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있냐고 물으면, 진실되게 그 사람의 문제점을 말해줍니까?
    우리는 이런 경우에 대부분 좋게 말해줍니다. 당신은 괜찮은데 그 사람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상대방이 와서 물으면 그 사람에게도 그렇게 대답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습관이 된 거짓말입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성도들의 교제가 진실하지 못해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고 제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실한 대화입니다.
    부부사이에 거짓된 것들이 끼어있으면 겉으로 잘해준다 해도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부부사이에는 무엇이든 얘기하고 용서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솔직하고 열린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대화만 잘 되면 많은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에게 진실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진실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공동체를 해치는 가장 잘못된 습관입니다.

    우리는 특히 이 거짓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거짓이 하나의 미덕으로까지 통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에 가서 밥먹었냐고 물으면 먹었어도 안먹었다고 대답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아프냐고 물어도 안 아프다고 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힘드냐고 물으면 힘안든다고 말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이것이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외국 사람들이나 혹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한국 사회에서 제일 힘든 것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서 어디까지 거짓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예스와 노가 분명하지 않아 대답을 들어도 이것이 진실한 대답인지 아니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살다보니 믿는 성도들도 이것에 동화되어 성도들간의 대화나, 가족들간의 대화에도 거짓된 것이 많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죠. 그러나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문화가 되어 많은 면에서 우릴 구속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것 까지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으면 무엇보다 거짓된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거짓은 모두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다 마귀의 조종을 받고 산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짓을 물먹듯 반복하면서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미덕과 문화인 줄 알고 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다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진실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진실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도 진실이 바탕이 되어 교제를 하며 우리의 전 삶이 진실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생활, 사회생활도 예수 믿는 사람은 뭔가 달라야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진실하다는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입어야 할 새사람의 옷입니다.


    두 번째로, 새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은 조절된 감정의 옷입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원문에는 "분을 내어라 그러나 죄를 짓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분을 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오히려 인간이면서 전혀 분을 내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 가운데는 죄 되는 분(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죄 되는 분(憤)이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자기 중심적인 분, 그러니까 자기 분(憤)에 이기지 못하여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잔재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자신이 상처를 입어서 혹은 자존심이 상해서, 또는 어떤 이해관계에 있어서 내가 손해를 보아서 혹은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화를 낸다면, 그것은 죄 된 분이며 아직 내가 벗어버리지 못한 옛 사람의 잔재입니다.

    그러면 바른 분(憤)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것을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어라고 하며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노하셨다고 했습니다.(막 3:5) 또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였을 때 어린이들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편견에 노하셨습니다.(막 10:14) 그리고는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묻혔을 때에도 무덤 앞에서 이 땅에 사망이 와서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있는 광경에 통분이 여기셨습니다.(요11:33) 또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란 일컬음을 받아야 할 성전에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을 때 주님은 분노하셔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짐승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것에 심히 노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때에는 분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일이 무시당할 때, 약한 사람들이 멸시를 받을 때, 또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경건이 더럽혀 질 때 당연히 분노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결코 무걸호인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부드럽다는 말, 마음이 좋다는 말로 만족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우리가 분을 낼 때는 내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제 부족한 점을 생각합니다. 가끔 성도들로부터 목사님은 부드러우시다,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목사님은 싫은 소리를 안하신다는 말도 듣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족하다는 말로 듣습니다. 목사는 화를 낼 줄 알고 잘못된 것을 고치고 야단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의 경건이 해를 입을 때마다 화를 낼 것입니다. 또 정의가 짓밟혀질 때는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사랑의 행위가 무시를 당할 때, 분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의 감정이 바르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서 말합니다. "화를 내어라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분을 내는 감정이 자칫하면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때에 죄를 짓게 됩니까?
    우리의 감정을 내 중심적으로 쓸 때가 있습니다. 분을 낼 때도 내가 손해본 것처럼 느껴지고, 내 이익에 손상이 가거나 체면이 깎이거나 위신이 떨어질 때 화를 내기 쉽습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분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올바른 분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분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내가 잘되면 기뻐하고 잘못되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되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면서, 기뻐하는 자들로 함께 기뻐하고 눈물 흘리는 자들과 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새사람이며 이런 옷을 입고 살아야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떻습니까?
    우리의 감정, 희노애락이 누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까? 다 나자신, 자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말하면 웃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안좋은 말을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내게 무슨 손해가 되면 화를 냅니다. 그러나 자신이 남에게 끼친 손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의나 정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있습니다. 이것은 다 죄짓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우리가 꼭 내야 할 분, 의분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해가 질 때까지 오래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해가 질 때까지는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해가 지는 5분 전까지는 화를 냈다가 해가 지면 그치란 뜻이 아니고, 아무리 우리가 화를 낼 일이 있어도 그것이 오래 가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오래 가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마귀가 틈을 타서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다면, 감정의 주인이 누구에게 있는가가 큰 차이입니다. 저는 예수 믿기 전에는 제 자신을 중심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며 화내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내 모든 감정 자체도 주님께 맞춰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면 기뻐하고, 주님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주님이 참으시면 나도 참고, 주님이 화를 내시면 나도 화를 내야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화를 내실 때 내도, 참을 때는 참으셨습니다. 항상 화를 내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도 노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면 새사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우리의 인격은 진실한 인격으로 바뀌어져야 하고 우리의 감정도 잘 조절된 감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못합니다. 화낼 때 내고 내지 말아야 할 때 내지 말아야 하는데, 반대로 내지 말아야 할 때는 화를 내고, 정말 화를 내야 할 때는 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약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옛사람일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화 낼 때 내야 합니다. 정의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날 때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잘 보면 그 분들이 자신을 잘 조절하면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감정을 잘 조절하며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하면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그것이 결국 마귀의 손에 들어가 얼굴에 독기가 가득하여 사회를 파괴시킵니다. 만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새사람이 아닌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훈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못되는 데도 화낼 줄 모르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야단도 치지않고 징계도 안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커서 무책임한 부모이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였는가 의심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초달을 차마 하지 못하는 자는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도 부모는 분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잘못해서 화를 내는데 화가 지나칩니다. 후에는 자녀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결국에는 자기 성에 못 이겨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다가 결국 그 자식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그 밖에도 새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이 더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제 새 사람으로서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먼저 거짓의 옷을 벗고 진실의 옷을 입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감정의 주인이 이제는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알아 분을 낼 때는 분을 내지만 죄를 짓도록 분을 내지 않기 위해 우리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령님께 맡겨서 예수님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하셨는가 생각하면서 감정처리를 잘 하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 속에 잘 새기면서 오는 한 주간도 새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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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열매 / 롬1:13-17
    인내의 열매 / 약5:11-17
    화평의 열매 / 요14:27
    기쁨의 열매 / 눅10:17-21
    사랑의 열매 / 갈5:22-23
    성령의 열매 / 갈5:16-26
    이제는 ‘열매’ 입니다. / 요15:1-8, 요15:16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大事) / 시126:1-6
    수련회로 부르시는 주님의 목적 / 막3:13-16
    보내심을 받은 자 / 마10:5-15
    세례의 의의
    잔치로의 초대
    영적 추수
    잃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벧엘로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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