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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자
    2001-12-08 15:27:59   read : 93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4:17-24)

    (엡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엡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언젠가 대도 조세형씨가 석방되어서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신앙 간증을 했었는데, 일본에 가서 다시 좀도둑 노릇을 하다가 체포되고 투옥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범적인 생활을 살아 특사로 풀려났을 때, 한국교회가 그를 귀하게 여겨 간증집회를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또 다시 좀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히게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간증을 들으면 그는 분명히 감옥에서 예수님을 믿었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사람의 삶을 사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법에 걸리지 않아서 그렇지 조세형씨처럼 창피당하고 구속당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후 5:17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새사람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되지만, 새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평생이 걸리고, 많은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우리의 큰 숙제입니다.
    우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에베소서가 쓰였던 당시 에베소 교회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새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4장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는데 제일 먼저 교회 생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속했으며 우리의 모임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후에는 바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은 옛 사람을 벗는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다음 주일에는 새 사람을 입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기 위해 헌 옷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옷 이야기가 나오니까 말입니다만,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군대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회에서 입었던 옷을 다 벗어버리고 군복으로 갈아입는 일입니다. 저도 처음 훈련소에 가니, 옷을 벗으라고 해서 다 벗었는데, 마지막 하나는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관이 호통을 치면서 다 벗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머뭇거리니 몽둥이를 가져와서 다들 놀라서 다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옷을 다 통에 넣으라고 한 후, 새 옷인 훈련복을 주는 것입니다. 정말 완전히 다 벗어버리고 속옷부터 다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것입니다. 그것을 입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정말 내가 군인이 되었구나, 훈련에 들어간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군대 간 아들이 "어머니!"하고 들어올 것만 같은데, 소포로 아들 옷이 집에 오자, 아들이 정말 군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새사람을 입지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실패하고 새사람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새사람을 입고 새사람의 삶을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보면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옛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17절 말씀을 봅시다.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옛 사람의 마음은 허망하다고 했습니다.
    여기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 없다''목표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기 전에는 다 이렇게 마음의 방향이, 목표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무엇이 우리 삶의 목적인지 전혀 방향감각, 목적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8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총명도 어두워졌고 무지하게 되었으며 마음이 완고하여져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는 떠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예수님을 알고 변화되어 허망한 마음 속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뚜렷한 목적과 방향의식을 알게 되고, 총명이 밝아져 하나님을 알게 되고, 무지함으로부터 깨어나며, 완고한 마음이 부드러워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에 가졌던 생각과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직 우리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빈집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으므로 전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도 비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귀신이 틈타서 우리가 전에 예수 믿기 전에 총명이 어두워졌고 무지하게 되었으며 완고하게 되었던 때보다 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을 믿는데도 하나님 뜻에 맞추지 못하고, 완고하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있어 교회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교회가 아주 힘듭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데, 세상 사람들보다 더 고집부리고, 말도 안되는 말을 합니다. 그분 말을 들으면 믿음은 분명하고 기도도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 안믿을 때 마음보다 더 완악하고 고집스럽고 힘이 든가 생각해보면 그것이 예수님을 안믿을 때의 성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고도 그 마음과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해 더 나쁘게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은 생각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 믿기 전의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완전히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벗어버릴 것을 벗어버리지 않고 예수님 믿는 좋은 것을 잔뜩 갖다가 입혀놓으니 후에는 엉뚱한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습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마음, 어두운 생각, 완고한 마음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까? 나의 생각이 정말 거듭난 마음인가? 혹시 내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 심하게 말하면 대부분이 예수 믿기 전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거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두드려 맞춥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니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진화론을 가졌는데, 성경의 창조론을 보면 이해가 안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성경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원래 마음이 좁고 사람들을 의심하여 잘 믿지 못했던 마음이 그대로 있어 예수를 믿은 후에도 성경을 볼 때나 사람을 대할 때 그런 모습으로 대합니다. 아직도 옛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옛 사람의 욕심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19절, 20절에 보니,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방향감각을 잃었고,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하게 되고 완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욕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욕심입니까? 요한일서 2:15의 말씀대로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몸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눈이 보기 좋은 대로 좇아가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그대로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니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다른 거룩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욕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이런 거룩한 마음, 하나님에 의해 이끌리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것은 우리 속에 거룩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데, 이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남아 있어 하나님의 마음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런 노력마저 다 무너져 버리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 없는 경험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씨가 잘 자랍니다. 그러나 가시떨기를 놔두고 그냥 씨를 뿌렸기 때문에 가시떨기가 더 왕성하게 자라나서 결국은 씨를 질식시켜 열매맺지 못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옛 사람의 욕심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면 언젠가 세상적인 욕심이 왕성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교회 생활 다 집어치우게 됩니다. 전에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하고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모습은 전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모습대로 되어버린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의 욕심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롯 유다가 그런 사람 아닙니까? 그는 절대 우리 보다 신앙이 부족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제자들 가운데서도 총명이 뛰어나 돈궤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가 벗어야 할 것을 벗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 이생의 자랑, 이런 것을 그냥 가진 채 예수님을 따르다 보니 세상 욕심이 그를 사로잡아, 예수님께로부터 들었던 말씀, 예수님을 좇아 바로 살려 했던 모습을 질식시키고 예수님을 팔아먹게 된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우리보다 굉장히 못된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욕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심을 벗어버리십시오.
    갈라디아서 5:24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서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욕심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이 욕심에 대해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죽은 사람이 무슨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바램이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이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라 살 사람임을 늘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발견되는 옛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 이것 봐라, 내가 이렇게 돈을 좋아하는구나" 이 때마다 이것은 이미 내가 벗어버린 것이고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문득 정욕이 일어날 때도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해야 합니다.
    옛사람의 정욕은 한 벗 벗어버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날마다 죽노라"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나는 죽었다고 다짐하면서 옛사람의 일을 벗어버리는 일, 이것이 없이는 절대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옛 사람의 습관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22절을 봅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구습', 옛날의 습관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의 습관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습관대로 말하고 습관대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좋아하는 것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도 좋은 습관이 있다면 감사하게 여기고 잘 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기 전에 우리에게 나타났던 못된 습관들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 옛 습관이 다시 우리를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김유신 장군이 습관적으로 들르던 술집이 있었습니다. 그 술집에 이제는 안가겠다고 다짐을 했거만 그가 조는 틈에 말이 습관적으로 술집에 간 것입니다. 그래서 김유신 장군이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칼로 베어 죽이면서 자신의 나쁜 습관을 해결했던 이야기를 압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못되니 습관을 놔두고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던 대도 조세형씨, 그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훔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습관을 완전히 뿌리뽑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간증하고 돌아다니니 남의 이목이 있어습관이 잘 절제가 되다가 일본에서는 무의식중에 습관이 나온 것입니다. 대도라는 분이 좀도둑 노릇을 하다가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것만 습관이 아닙니다. 게으름도 습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나서도 믿기 전의 게으름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도 늦고 성경공부 시간이나 구역모임 시간에 항상 늦는 사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습관 버리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진전이 생기지 않습니다.
    거짓말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고 나서도 입만 뻥끗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 있습니다. 거짓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남들이 다 아는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 흉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있습니다. 앉았다 하면 남 흉보는 것입니다.
    또 자기 자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있습니다. 말만 나오면 자기 자랑하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자기 자랑하는 사람, 그것도 습관이예요.
    습관이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술 담배가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도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포르노에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불건전한 성행위에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 없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사람의 습관인데, 이것을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아주 신중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습관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 습관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습관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도 예수 믿은 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이었나 하면, 예수 믿기 전부터 담배피던 습관을 끊지 못해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는데 습관이 끊어지지 않으니 뭔가 진전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배 피는 습관은 사실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비교적 영적인 것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면 미국 목사님들 가운데 담배피는 분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존경받는 선교사님이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한국에 선교사로 나왔을 때는 담배를 안피웠는데, 선교사 일을 마치고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자기가 좋아하던 담배 파이프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목사님들이 유학가서 그분의 서재에 들어가보니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그러자 허허 웃으시면서 "목사님은 극장 가십니까?" 되묻습니다. "저희가 극장은 가죠." 그러자 선교사님이 "저는 파이프는 물어도 극장은 안갑니다. 담배가 우리 몸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쁜 영화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더 나쁜 영향을 줍니다. 저는 극장에는 안가지만 담배 파이프는 뭅니다." 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담배피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만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저의 경건생활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결국은 그 습관을 끊고 난 후에 드디어 새사람으로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담배피는 이 작은 습관마저도 옛사람의 습관임을 알고 버릴 때, 새사람의 삶이 가능했다는 것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여러분들이 제가 앞에서 나열한 못된 습관들, 우리의 몸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영혼과 모든 삶을 파괴하는 습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예수 믿기 전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면 버리십시오. 과감히 청산하십시오. 그것을 벗어야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생기는 것입니다.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마음만 있으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우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은 미쁘시사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벗어버릴 수 없는 옛사람의 마음이나 욕심이나 습관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려고 하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꾸준히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나아간다면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새사람이 되었는데, 새사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내가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여 벗어버릴 것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새옷을 입고 새출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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