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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성장
    2001-12-08 15:27:05   read : 816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4:13-16)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는 핏덩이였던 것이, 엄마 젖을 먹고 우유를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서 여기 저기 기어다니다가 마침내 일어서서 걸음마를 시작할 때, 엄마 아빠들은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들, 온 식구가 탄성을 지릅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나서 유치원에 입학하는 감격, 그리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갈 때, 그러다가 그 아이들이 짝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볼 때, 부모는 언제 저 아이가 이렇게 컸는가 생각하면서 세월의 빠름을 인식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느낍니다.

    그런데 자라야 하는 것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지적으로도 자라나야 하고 정서적으로도 자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육체적으로는 잘 자랐는데,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잘 자라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헌금하여 세운 밀알학교에 가보면 겉으로 육체적으로는 잘 자랐는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자라지 못해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란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자라야 합니다. 영적으로 잘 자랄 때, 우리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적으로, 지적, 정서적으로 잘 자랐으나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큰 부담과 고통을 주는 것이며, 또한 영적 지도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육체적, 지적, 정서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자라나야 하겠는데,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영적 성장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을 보면 바울은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라고 했습니다. 몸이 하나인 것 같이 교회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인 교회에 여러 지체들이 있는데, 그들은 여러 종류의 은사와 직분을 가지고 몸을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몸이 자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몸의 지체가 된 성도가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까?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이제부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라지 않으면 어린아이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8:3)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솔직함과 순수함, 겸손함, 신뢰, 그리고 무사기함 등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고전 14:20에 보면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하면서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행하되 어린아이가 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부족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별력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은 남이 말하는 것을 무조건 잘 받아들입니다. 선과 악을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속기도 잘 하고 유괴도 잘 당합니다. 여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잘 속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지 잘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무엇이 진리인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에게 좋은 말하면 그리로 끌립니다. 그러다가 이단사설에 빠지기도 하고 신앙 다 팔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13,14에 보면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했습니다. 젖을 먹는 수준(곧 귀에 듣기 좋은 말만 듣는 수준)에서 자라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수준(곧 의의 말씀을 듣고 선악을 분변하는 수준)에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각을 사용해야 합니다.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지각을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말씀공부입니다. 또 우리교회에서 강조하는 GT(QT)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QT를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말씀공부를 통해서 진리를 바로 아는, 그래서 선악을 스스로 분변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넘어갑니다. 요즈음 아이들을 유괴하는 일 얼마나 많습니까? 육체적으로만 유괴하는 일이 있는 것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괴하는 일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유혹하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라나야 합니다. 스스로 말씀을 경험하고 선악을 분변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가서 사람들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에게는 안정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자꾸 움직이고 그냥 있지를 못합니다. 한 군데 있지를 못합니다. 좋아하는 것도 자꾸 바뀝니다.
    제가 예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스크림 집에 갑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나왔습니다만 31 아이스크림이 있지 않습니까?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해서 31 아이스크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만 고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은 욕심이 나서 두 가지만 고르면 안되냐고 해서, 안된다고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힘들게 머리를 굴립니다. 이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저거"라고 할 때, 점원이 퍼서 주려 하면 아니라고 또 옆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 퍼주려면 또 다시 다른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안된다고 빨리 고르라고 하면 아무거나 골라놓고 받아들고는 후회를 합니다. 처음에 고른 것을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잘못 골랐다고 아빠 것과 바꿔 먹자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도 어리면 좋은 것을 분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좋은 것을 바로 간직하지 못합니다. 교회도 여기 저기 옮겨 다닙니다. 말씀공부도 꾸준히 하지 못합니다. 훈련을 받다가는 뛰쳐나갑니다. 이런 것이 다 영적으로 어린 증거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약 1:7에 보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 같다고 하며 주님께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바람에 밀려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니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어리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야 합니다. 몸과 지식, 정서적으로 자라야 하지만 무엇보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영적으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 해야 할 것,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는 각각 믿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믿습니다. 또 아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압니다. 그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고 또 우리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시켜 주는 것을 압니다.
    바로 이런 믿음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나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들이 있습니다.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다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입니다. 그 직분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을 따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했습니다. 그 때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질서가 잘 잡히지 않은 때지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가르침에 맞춰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하나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에 보면 믿는 것이 하나되지 못한 성도가 있습니다. 그들은 목사가 가르치는 것과 다른 신앙을 가졌습니다. 말하자면 제멋대로 믿습니다. 목사가 가르쳐 주어도 틀렸다고 하면서 자기 고집대로 믿습니다.
    여러분, 목사의 가르침은 절대 자기 개인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사람 있다면 진정한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는 소정의 신학의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 지도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내려온 바른 신앙을 신학적으로 잘 분별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믿는 것과 아는 것의 기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이 중요합니다. 신학도 제대로 안하고 목사일을 하는 사람은 목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아가는데 어떻게 그냥 얼렁뚱땅해서 신자들의 신앙을 이끌어갈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우리 교회 목사님들은 이 신학의 훈련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좀 부족해도 신학적으로는 바로 서 있습니다. 이런 목사님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이 사람 저 사람, 젖을 먹고 자라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엄마 젖을 먹습니다. 심지어 우유를 먹이는 어머니들도 이것 저것 바꿔 먹이면 탈나니까 제일 좋은 한 종류의 우유를 먹입니다. 그래야 아이가 탈 없이 자라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저의 가르침에 하나가 되십시오. 저의 젖으로 만족하시고 여러분의 신앙을 맞추십시오. 그리고 속히 자라나서 이제 여러분 스스로 선한 말씀을 바로 분변하는 장성한 분량에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은 영적 성장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초가 다 되었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기초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아는 대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어린 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아이들도 보십시오. 잘 먹고 공부만 한다고 잘 자라던가요? 아닙니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또 공부한 것은 실천을 할 때에 제일 잘 남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먹기만 하지 운동을 안 합니다. 집에서 일을 안 시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체격은 늘었습니다. 옛날보다 키도 크고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막상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힘을 못쓰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비만한 아이들도 생깁니다. 아이들은 먹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일을 시키고 운동을 시켜야 합니다. 또 공부만 시켜서 머리만 크게 하면 안 됩니다. 공부한 것을 실천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머리가 발달해 지식은 많으나 이 지식을 잘 실천하지 못해 삶의 지혜는 수준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앞으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걱정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환히 알고 온 세계 정보는 다 가지고 오는데, 정말 사는 법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에 옮기는 데는 약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믿고 아는 것으로 다 된 것 아닙니다. 믿고 알았으면 이제는 그 믿고 아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랄 수 있습니다.
    요즈음 신자들을 보면 믿음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삶의 실천은 약합니다. 믿는 대로 살지 않아요. 아는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다음에 이제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봅시다. 예수님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믿음을 말로만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지식을 가지고 무슨 지식 강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믿는대로 행하시고 아는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진정 성숙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도 그렇게 자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서 성경 귀절만 달달달 암송하고 들은 것이 많아 귀만 커지고, 또 기도는 열심히 해서 마음은 뜨겁습니다. 들은 것은 많고 마음은 뜨거운데 행함이 없습니다.
    저는 요즘 젊은이들을 볼 때, 놀랍니다. 성경지식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때는 목사님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성경에 대해서 말하면 아주 훤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합니까? 소리내서 기도할 때 보면 얼마나 간절하고, 또 찬양할 때 보면 온 세상을 다 안고 사랑하는 것처럼 뜨겁게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가서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는 믿음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학부 시절에는 잘 지켰는데 직장에 가서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제가 전에 미국에서도 보니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교회에서 청년부 시절을 보내고 장로님 아들, 목사님 아들이라고 굉장히 집안으로 튼튼하다는 아이들이 유학와서 생활하는 것은 왜 그렇게 약한지 많이 넘어집니다. 굉장한 것 같지만 실천이 없고 행함이 없으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한 영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후 믿고 아는 참된 것을 사랑 안에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잘 자라려면 바른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몸을 보십시오. 몸의 지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절대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몸에 잘 붙어 있고 몸의 다른 지체와 잘 연합되어 있을 때 전체적으로 자랍니다. 그래서 여기 16절의 말씀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는 간혹 나 혼자만 자라려고 애쓰는 것을 봅니다. 혼자서 기도 많이 하고, 혼자서 성경 열심히 읽으며, 혼자서 밖에 나가서 좋은 일 많이 합니다. 물론 안하는 것 보다 낫겠지만 신앙 성장이란 그렇게 혼자서 하는 것 아닙니다.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도움을 입어야 합니다.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전체가 다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놓고 볼 때 개교회적으로는 자란 경우 많습니다. 그래서 대 교회들이 생겨나지 않았어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교파마다 우리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나라 교회들을 보면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처음 돌아와서 저의 신학교 동창들의 모임에 갔습니다. 한국에서 목회를 2,30년들 했으니 교회들이 웬만큼 컸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를 들으니까 의외로 그렇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별히 시골 농어촌의 교회들은 아직도 교회 유지 자체가 힘든 현실이었고 앞으로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다 우리 남서울교회 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미국에 오신 목사님들 만나보고 그들이 거기 와서 돈 쓰고 큰 소리 하면서 다니는 것 보고 한국 교회가 굉장히 성장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현실은 달랐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교회들이 서로 따로따로 논 것입니다. 내 교회만 자라면 된다는 생각으로 개교회주의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교회들은 몇몇 개 생겼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 교회 성장에 대한 소문은 많이 났지만 한국 사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고 더 못하면 못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비리가 터지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된 것을 보는 것입니다. 몇 몇 교회를 보면 성장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니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지 않고 이 사회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신앙 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무슨 성장입니까? 우리는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 교회가 성장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숫자적으로, 외면적으로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가 거품 경제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의 성장도 거품성장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성장하면 되는 줄 알고 나만 키우고 우리 교회만 자라게 하면서 전체적인 유대관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전체적으로 자꾸 약해집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잃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성도들 보면 매우 아름답게 잘 자라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같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좀더 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 혼자 잘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전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나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언제부터인가 전체적인 성장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많이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나혼자만 잘하려고 합니다. 나혼자만 성장하고, 나혼자만 은혜받고 나혼자만 바로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맹점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몸가운데서 손가락 하나가 답답하다고 나혼자만 크겠다고 삐죽 튀어나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면 기형입니다. 같이 자라야 됩니다. 몸이 자라면서 같이 자라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지난 주일에 26주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변하지 못하고 자립적인 신앙을 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영적인 어린아이 신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교회에서 가르쳐준 말씀으로 돌아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고 믿고 아는 것을 이제는 실천하는 행동을 훈련하면서 나혼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자라나는 일에 협조해서 우리 남서울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함으로 우리 모두가 성장하여 한국교회에 모범적인 아름다운 성장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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