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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범적인 기도
    2001-12-08 15:21:00   read : 83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3:14-21)

    (엡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엡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에는 세 번에 걸쳐 바울의 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우리가 본 바로, 1:15-23까지 그의 기도가 나오고 있고, 두 번째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며, 세 번째 기도가 에베소서 맨 마지막 6:23,24에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그의 축원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짧은 6장의 편지 속에 기도를 세 번씩이나 포함시킨 것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잘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만큼 우리 사랑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하나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의 기도의 모범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의 대상에 대해서입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바울은 본문에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지금 본 14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족속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뒤에 20절에 보면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구하거나 마음에 바라거나 심지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더 넘치도록 해 주실 수 있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약 1:5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또 약 1:17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눅 6:38에 보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안겨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마 7:11)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우리의 근원이고 기도하면 응답하시되 가장 풍성한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 믿고 드리는 기도가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기도할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기도가 메마르고 닫혀있는 것은 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로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 아버지로 생각하더라도 한 달란트를 맡은 종처럼 굳은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풍성히 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바울의 기도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의 기도는 서서 하는 기도였습니다(막 11:25, 눅 18:11).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서서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또는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겸손함과 간절함의 표시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한 예가 자주 나옵니다.
    에스라가 기가 막힌 상황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스 9:5). 솔로몬(왕상 8:54, 대하 6:13), 다니엘(단 6:10), 스데반(행 7:60)도 간절히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눅 22:41). 주님이 스스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게 내려 앉으시고 간절히 기도했던 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다면 오늘 우리들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고자세입니까? 우리는 좀더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도가 간절한 기도인가 생각해봅시다.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자세로도 나타나야 하겠지만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겸손함과 간절함으로 드려지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오호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무릎을 꿇읍시다. 겉으로 무릎을 꿇는 모양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간절한 자세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의 기도의 내용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다분히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며 현세적인 기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우리의 기도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무엇을 구했습니까?

    1) 속 사람이 강건해 지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16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절)

    여기 '속 사람'이란 '겉 사람'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겉 사람은 우리의 육체를 말한다면 속 사람은 우리의 영혼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먼저 그들의 속 사람 곧 영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이 건강하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과연 속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까? 속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겉사람의 건강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건강해진다고 하면 다 몰려들고, 우리 대화 중 많은 내용이 건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건강에 대한 강좌를 하면 인기가 많고 책과 잡지도 많이 나왔습니다. 또 물건을 팔려는 얄팍한 상인들은 '건강식품'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만큼 우리가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믿는 성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건강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고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보면 건강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만큼 속사람의 건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보면 그들의 겉사람의 기도 전에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이 겉사람의 건강을 이루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삼서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영혼이 잘되기를 ,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기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겉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기도할 것이 속사람의 건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사람의 건강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돈이나 약, 이 세상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히 붙잡으심으로 속사람이 강건하여, 이처럼 겉사람도 건강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7절)

    영적 건강은 우리 마음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마음 속에 늘 예수님이 계시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왜 영적으로 나약합니까? 왜 시험에 잘 넘어집니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우리 마음 문을 열었을 때, 분명히 예수님이 우리 맘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고 해서 우리 안에 온전히 계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결혼하면 제 아내가 저와 같이 사는 집에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에게 관심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식사도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낼 때 참된 결혼생활이 됩니다. 이 때에 진정한 부부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했다고 해서, 한 지붕 안에 같이 있다고 해서 다 결혼생활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는 가정에서 남편들이 가정에 대해 관심이 없고,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 돈벌이에 신경을 쓰고, 자기 성취에만 관심이 있고, 아내와 살림이나 자녀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은 있어도 가족은 없고, 또 가족이 있어도, 가정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결혼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수님과 대화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 두었지만 귀퉁이에 밀어넣고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속사람은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피폐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 삶은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에게 하듯 이렇게 배우자에게 한다면 당장에 이혼 감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와 이혼은 안 하십니다. 그러나 슬퍼하고 근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싫다고 떠나려 해도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생활이 아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로 하여금 그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를 위해 간구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관심을 기울이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유명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들 마음 속에 온전히 예수님이 거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기도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온전히 계시기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8-19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우리 마음 속에 계속 모시지 못할까요? 왜 우리가 늘 영적으로 연약한 삶을 삽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식적으로 피상적으로 압니다. 그러나 정말 그 주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알면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길고 높은지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는 어떻습니까? 그 사랑은 온 세상을 감싸고도 남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고작해야 자기 식구들밖에 또 그밖에 몇 사람만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다 품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또 그 사랑의 길이는 어떻습니까?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잇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높이는 하나님이 계신 보좌로까지 올리기에 충분합니다. 그 사랑의 깊이는 예수님께서 음부에까지 내려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자리에까지라도 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길러 보아도 자녀들이 왜 가정을 등지고 빗나갑니까? 그것은 부모들의 사랑을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후에 자녀가 커서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면 부모 곁으로 옵니다.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압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철이 없을 때는 그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가정에서 떠나려하고, 부모에게서 멀어지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알게 되면 주님께 가까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좋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강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모든 성도와 함께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함께 그 사랑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랑을 알아 우리들이 그 사랑을 같이 나누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알았으면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함께 알았으면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들 안에서부터, 더 나아가서 우리 이웃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알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전도이고 선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 그 사랑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또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여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내 한 사람으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끼리 잘 되는 것에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세계에 선교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울에게서 배웁니다.

    4) 바울의 기도에는 찬양이 있습니다.(20-21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0-21절)

    이 말씀은 3장까지의 교리 부분을 마감하면서 드린 송영이기도 하나, 바울의 기도 가운데 마지막으로 드린 찬양 부분이기도 합니다.
    보통 기도에는 네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찬양과 고백과 감사와 간구입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찬양과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이나 그의 성호를 높여 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시고, 이미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인의 기도 가운데는 중요한 요소가 간과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무조건 달라는 내용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향하여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협박까지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의 기도를 담아 오라고 천사들에게 바구니를 둘씩 주셨습니다. 하나에는 간구하는 기도를 담고 또 하나에는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를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보니까 달라고 하는 간구 기도의 바구니에는 넘치도록 찼는데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의 바구니는 텅텅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 우리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새벽 기도 때 드리는 기도라든지,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를 생각해보면, 발등에 불을 끄듯이'주시옵소서'하는 말로 가득 찼는데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라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만 바울의 기도를 보면 간구의 기도와 함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달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주신 것들, 구하는 것에 넘치게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가 어떤 상태인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좋으신 아버지 앞에 나가고 있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를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기도할 때 진정으로 무릎을 꿇는 간절함과 겸손함이 있습니까?
    또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혹시 기도의 내용이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며 현세적인 자기 중심의 기도로 차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좀더 기도의 내용을 영적인 것, 하늘나라의 것, 내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기도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찬양이 될 수 있는 모범적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할 것이 많은 이 때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더 모범적인 기도를 하고, 기도의 삶을 살것인가,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해 우리 기도의 자세가 다시 바로 잡아지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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