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7-13 빌라델피아 교인 2001-12-10 12:36:16 read : 119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는 늘 부족감에 시달리며 "이것 떄문에 안된다. 저것 때문에 안된다"는 식의 원망과 핑계와 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교회이며 열악한 환경에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 큰 칭찬을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크고 유명한 교회들이 모두 주님께 책망을 받은데 비해 적은 능력밖에 없었던 이 작은 교회는 오히려 최고의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능력과 더많은 물질 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큰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 처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라!"는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그러면 '열린 문의 축복'을 받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1) 9절에 보면 악한 사단과 원수들이 와서 굴복하고 절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 10절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3) 12절에 교회와 사회와 가정에 기둥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열린 문의 축복'을 받게 됩니까?
첫번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주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신앙의 보루라 할 만큼 믿음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지역에는 천 여명의 신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아주 믿음 잘 지키고 아주 흠모할 만한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7절을 보면 먼저 주님은 어떻분인가 주님의 모습을 봅시다
첫번째 주님은 '거룩하다'고 표현을 했고,
둘째 '진실하시고', 세번째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쇠를 가지신 주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라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 인생에 생사화복의 소원성취의 모든 열쇠를 주님이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부산에 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부산 동래 관광호텔에 숙소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볼일이 있어서 잠간 방문을 나왔더니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자동문이 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문인줄 알았으면 열쇠를 갖고 나오는 건데 할수 없이 카운타에 가서 문이 잠겼다고 했더니 안내원이 마스터 키를 갖고 가서 여는데 쉽게 열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안내원이 갖고 있는 마스터키 하나면 그 호텔에 모든 문을 열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은 우리의 삶에 모든 문제를 열수 있는 마스터 키를 갖고 계신것입니다.
8절을 보면 주님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든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내막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가정의 형편과 나의 마음 속 깊은 것까지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첫째로 8절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적은 능력"이란 말씀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불리한 조건에서, 가난한 처지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연약한 건강으로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많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같이 교인 숫자도 적고 별 볼일 없는 조그마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다 잘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능력을 갖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재력, 학벌, 권력, 신분, 출세
그렇지만 좋은 사회적 신분과 위치를 가지고는 주님 앞에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형편이 좋으면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가진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능력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습니다.
적은 능력,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그런 교회가 칭찬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명은 능력이 많다고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형편이 좋으면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편하고 약삭빠르게 신앙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오히려 형편이 나쁘고 능력이 적지만 주님에게 메달리고 열심으로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필아델피아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300년이나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박해가 계속되자 두려워 교회를 등지고 주님을 떠나고
이교도와 타협하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아예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 교인들은 힘과 권력도 재산도 명예도 가진것이 없지만, 적은 능력으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사단의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처절한 박해 때문에 예수를 배반하는 것보다
유혹이나 풍요대문에 예수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1) 거짖 입술로 배반하고 2) 이기적인 행동으로 배반하고 3) 생활로 배반하는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입술과 행위로 주님을 배반치 않고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될 때에
열린 문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라는 말씀대로 열린 문이 있었습니다.
'열린'이라는 말이 요즈음 유행하고 있어서 '열린 교육' '열린 음악회'도 있습니다. '열린 교회'도. '열린 예배'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릴때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합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못하면 예배가 하나님 앞에 흠향되지 못하고
예배가 은혜가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와서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올때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열어 놓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예배의 자세인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마음문이 닫혀있을까요 ?
1) 세상의 염려와 근심입니다. 우리는 염려와 근심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직장걱정, 사업걱정, 물질걱정, 자식걱정, 건강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 등 염려와 근심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한다고 염려와 근심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의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하셨던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근심걱정들이 우리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놓게 하는 원인인것입니다.
열린 문 축복은 성도들 가정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문이 다 열리게 됩니다
입시의 문, 취직의문, 결혼의문, 사업의문, 승진의문, 그리고 성공의 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열쇠로 열어주셔야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문들을 닫아걸면 그 누구도 문을 열 수 없는 것입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는 것이지만 주님께서 여시면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열린 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주님은 말하기를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요10:7,9).
오직 구원의 문은 하나밖에 없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이 구원의 열쇠, 생명의 열쇠, 영생의 열쇠,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시요,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주님의 일에는 어떤 사람도 그 하시는 일에 방해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열어 주시면 성공의 문도 열립니다.
기도의 문도 열립니다. 기도의 문이 열려야 기도할 마음이 생기고
기도함으로서 모든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닥치면 그대가 기도의 문이 열려질 때 입니다.
그때 기도하지 않으면 하늘 문을 열수가 없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주님은 권면을 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손에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다가 자기 손에 있는 것까지 놓치곤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 손에 쥐어 주신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도 주셨고, 자녀도 주셨고 , 가정도 주셨고, 가족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으니
건전한 복음적 신앙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쉽게 얻었지만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일제 핍박을 통하여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고 얻은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처음 복음이 이 땅에 떨어젔을 때에 이 신앙을 지키려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참으로 많은 교회가 세워 젔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빌라델피아 교회처럼 칭찬 받는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22절 본문은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굳게 잡지 못하면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굳게 잡지 않음으로 빼앗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1) 에서는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고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뺏기고 말았습니다.
2) 사울은 왕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왕위를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다윗에게 빼앗겼습니다.
3) 가룟 유다는 12사도 중 하나였지만 그만 돈에 눈이 어두워 주님을 배반하고 마침내 그 영광의 자리를 맛디아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건강, 가족, 재산, 능력, 직업, 사업체, 직위, 신분, 신앙등 모든 것을 것을 귀한 줄로 알고 굳게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빼았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빌리델피아 교인들이
1) 적은 능력과 환경에도 순종하고 2) 주님에게 배반하지 않고 3) 주님 이 주신 것을 꼭 잡았더니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세 가지 축복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시험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이 고통스럽지만 유익한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험을 통하여 연단 받고 점점 더 신앙이 단단해지고 순수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와도 그 어려움을 잘 치르고 승리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12절을 보면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긴다'는 말은 요한계시록에 많이 나옵니다.
이봉주선수가 브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이겼습니다. 세상은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것은 뭐지요?
믿음의 시련과 싸움을 인내로 굳게 지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라든지 어떤 어려움을 통과할 때 믿음을 포기해 버리면, 패잔병이 되는 것입니다.
12절 본문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주고, 새 이름을 주고, 새 도시의 이름을 주겠다'고 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천국의 약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 기둥이란 솔로몬 성전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데
성전에는 두개의 기둥이 성전을 떠받들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각각 야긴과 보아스입다..
야긴은 ="세우리라"즉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 능력이 있다."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세우시면 능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든든한 기둥 같은 일꾼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지역은 지진이 많은 지역입니다.
지난번에 터키에 지진이 일어나 4000명이 생명을 잃었다는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지난번 지진에서 사람들이 세운 집들은 모두 쓰러 젔으나 수천년전에 하나님이 세운 성전들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교회도 아무리 지진이 나도
하나님이 지키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가 있으면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기둥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기둥같은 인물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말없는 인물입니다.
무거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전진할 때에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내로써 말씀을 지키는 기둥 같은 인물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움직이지 않는 인물입니다. 기둥이 그 자리에서 움직이면 그 건물이 무너질 것입니다.
헤밍웨이의 걸작소설 「무기여 안녕」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를 산산조각으로 찢는다. 그러나 강한 사람은 찢긴 뒤에 생기며, 위대한 역사는 찢어진 비극 위에 이룩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식량부족에 질병까지 늘고 독일군의 폭격은 가중해졌다. 온 나라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직전 같았다. 그런데 이토록 약하고 이처럼 부서져가는 영국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기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윈스턴 처칠경이 기둥처럼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제스트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 어느 제철공업 마을의 교회였습니다.
제철업의 불경기로 수 많은 노동자가 실직한 상황에서 어려워진 가정이 많았습니다.
그때 예배 광고시간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모자 속에 5달러 지폐 백 장이 들었습니다. 이 모자를 돌릴테니 필요한 분은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고 가져가십시오."
모자를 돌렸더니 정말 여러 사람이 이 구호금을 가져 갔습니다. 그러나 한 바퀴 돌아온 모자 속에는 처음 5백달라 보다 많은 1천67달러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감격하여 "우리 교회는 가난하지만 기둥들이 많습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현대판 5병 2어의 기적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아 가정의 기둥, 교회의 기둥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절을 보니까 빌라델피아 교인에게 새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름이 참 중요합니다.
미국 텍사스주의 광활한 들판에 가면 수 많은 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모든 소의 엉덩이에는 주인의 이름의 이니셜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누구의 소인지를 알아 볼 수 있게 하고 혹 도둑이 훔쳐가도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름을 쓸까요?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666이라는 사탄 마귀의 이름이 기록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름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이름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사기꾼'이란 뜻인데 이름대로 형을 속이고 외삼촌을 속이는 사기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이 크리스천 또는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잘못하면 주님이 욕먹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를 욕먹히는 것처럼 우리가 잘못 행동했을 때에 우리의 교회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욕먹고 함게 믿는 교우들에게도 욕먹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신자들로부터 칭찬 받는 새로운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집사님이 믿는 예수라면 저런 집사님이 나가는 교회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칭찬 받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영광된 축복의 약속들이었습니다.
끝으로 13절에 말씀에 보면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있는 여러분은 살아계신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에 나왔습니다.
성령의 말씀을 들었으면서 우리의 자기신앙에 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 합니다.
도대체 내가 교회를 나오지만 나의 정체(identity)는 무엇인가
자신의 신분과 예수 믿는 목적의 정체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며 사는 목적이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아 함께 천국 가도록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의 삶은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주님 앞에서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책망대신 칭찬만 받은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
여러분 우리들의 작은 선행으로 빌라델피아 교회처럼 예수님이 칭찬받고 교회가 칭찬받고 우리들이 칭찬 받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1) 말씀을 지키고 2)주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3) 주님이 주신 것을 굳게 지키면 4)시험의 때가 와도
든든한 기둥처럼 쓰러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인도의 테레사 수녀에게 어떻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인이 되었습스니까? 라는 질문에
"밝은 미소, 정다운 태도, 단 한마디의 따뜻한 말이 지친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인간의 의지나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
하나님의 주권에 좌우됨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있지만 건강이나 자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밤까지 이리 저리 뛰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열린문에 축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열린 문은 기도의 문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과 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적은 능력뿐이고 시험의 때가 왔지만
빌라델피아 교인들 처럼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 주신 것을 잘 지키면
주님은 다윗의 만능 열쇠로 여러분의 모든 닫힌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모든일에 "열린 문"의 축복이 차고 넘침으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에 기둥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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