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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의 단을 거두기 위하여
    2001-12-11 22:32:27   read : 956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26:1-5



    1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大事)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다소간의 굴곡이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한 두 가지 행복했던 경험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에 쓰라린 기억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라서 인생에 굴곡이 없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굴곡에 대해 어떤 시야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살이" 시야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없습니다. 미래도 물론 없고요. 오늘뿐입니다. 지금뿐이에요. 지금 내 환경이 좀 좋으면 즐거운 것이고, 환경이 나쁘면 낙담하고 한숨짓습니다. 하루살이에게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루살이에게 미래가 존재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냄비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양은으로 만든 냄비를 보셨지요? 거기에 물을 끓여 보셨나요? 불에 올려놓으면 그 냄비에 있는 물은 금방 끓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불에서 내리면 그 끓던 것이 금방 멈춰버려요. 그런데 두께가 있는 솥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웃다가도 조금 어려우면 금방 한숨을 쉽니다. 금방 끓고 금방 식는 인생! 이것이 냄비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에 굴곡을 없도록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한결같은 기쁨을 소유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이 정점에 처했을 때나, 저 낮은 골짜기에 처했을 때나 아무 때나 상관없이, 어떻게 내 인생에 한결같이 평안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앞에 다가올 인생의 수많은 굴곡들을,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유유히 지나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저 훗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을 돌아보며, "주님! 우리가 기쁨의 단을 이렇게 추수했습니다" 라고, 아름다운 열매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 이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시편 126편의 배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기간에서 돌아온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쓰여진 시편입니다.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백성들의 기쁨을, 오늘 시편 기자는 이 시편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1,2년도 아니고, 70년 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36년 간의 일제시대에서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을 두고두고 얘기합니다. 저희 집안에서도 그 날은 축제일이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일본의 신사참배를 반대하시다가 3년 간의 옥고를 치르시고 너무나 약해지셨는데, 운명하기 얼마 전 8.15해방을 맞이하여 옥에서 풀려 나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셔서 2년 동안 요양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누린 것이 어디 우리 집안뿐이겠습니까? 한민족 전체에게 그 날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기쁨의 날이요, 감격의 날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30년도 아닌 70년입니다. 그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 그래서 시편기자는 126장 1절에서 그 기쁨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말로 표현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 시편에서 한 단어를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바로 "포로"라는 단어입니다. 4절에도 "포로를 돌리소서"가 나옵니다. 이것은 정말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운명을 돌리실 때에" "우리의 운명을 돌리시옵소서"로, "포로"라고 하지 않고 "운명"으로 번역했어요. 그렇다면 히브리 원어는 뭘까요? 시로 썼기 때문에 히브리 원어로 보면 이 두 단어 모두 아니에요.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돌이킴(turnings)을 돌리실 때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켜 그 땅을 침략해서 그들을 포로로 잡아갔어요. 그 순간, 그들의 운명에 "돌이킴"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들은 돌이켜졌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70년 후에 기적을 일으키셔서 이들의 포로 된 상태를 원위치로 돌이켰다는 거예요.
    "시온의 돌이킴을 돌이키실 때에" "시온의 운명을 돌이키실 때에" 둘 다 맞아요.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요즘 이런 얘기하지요?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면 "이게 꿈이냐? 생시냐?" 라고요. 얼마나 기뻤던지 그들은 한사람도 빼 놓지 않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된 것이 독립운동으로 말미암아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야! 우리 나라에서 데모가 일어나는 걸 보니까 3년 후에는 해방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혀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들의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게 하시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던 겁니다.
    그 사실을 역대하 36장22-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포로생활에서 돌아 왔나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자신들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 왕국이 바사 왕국에게 망했습니다. 바사 왕 가운데 고레스라는 사람이 왕으로 즉위하고 천하를 평정하더니, 이스라엘의 포로 된 자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아는데 너희는 너희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 고 말했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명했어요. 이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이 독립운동 하나 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므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 어떻게 했습니까? 2절을 보세요.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도저히 입을 다물래야 다물 수가 없었어요)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할렐루야!"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방 사람들도 말하기를, "저것은 하나님이 하신 거야!" 라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어요.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기뻐하며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더 표현할 길이 없어 3절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大事)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우리는 기쁘도다! 굉장한 강조 용법을 쓴 겁니다. 현실적인 기쁨을 얘기한 거예요. 하나님이 너무나도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그런데 4절부터는 이 시편의 장면이 바뀝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다 돌려주었는데 무엇을 또 돌려달라는 걸까요? 왜 이런 기도를 하는 걸까요? 시편 126편의 배경을 잘 알아야만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들이 이렇게 기쁘게 돌아왔는데, 그 기쁨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기쁨이 계속되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참으로 기쁘게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굴곡이 있듯이, 이들에게도 큰 기쁨 위에 고난이 찾아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고난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에스라서와 여러 성경을 읽어볼 때, 그 고난은 몇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고향집에 왔어요. 허겁지겁 찾아왔어요. 바벨론 포로로 세 번에 걸쳐 잡혀갔으니까, 어떤 사람은 70년 전에 잡혀가서 나이 80이 되어 10살 때를 기억했고, 어떤 사람은 서른 살에 잡혀가서 청년 때를 고향에서 보냈고, 어떤 사람은 더 늦게 잡혀가 자기의 인생의 반을 고향에서 보냈어요. 몇 십 년이 지난 다음 그들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겠습니까? 소가 한가로이 여물을 뜯고, 뒤뜰에서 닭이 뛰어 놀고, 새가 날던 아름다운 봄날의 고향을 연상하며, 입에 웃음이 가득하고 너무나 기쁘게 고향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들이 살던 집은 다 불타서 없어졌어요. 동네는 황폐해지고, 성은 무너져 내렸어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것을 꿈꾸며 왔는데 예배당 성전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어요. 너무 기뻐 고향에 돌아왔건만 눈앞에 기다리는 것은 굶주림과 폐허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느꼈던 실망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돌아올 때는 너무 기뻐서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도 몰랐어요. 돌아가라고 해 놓고 또 붙잡으면 어떻게 하나? 애굽의 바로 왕 같이 고레스 왕의 마음이 변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돌아와 보따리를 풀고 보니, 다 돌아온 것이 아니었어요. 사촌 누나도 못 왔고, 육촌 형님도 못 왔고, 아저씨도 못 왔고, 식구가 많은 열남이가 있는 집에는 구남이가 빠졌어요.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거예요. 다시 바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남북이 갈리듯이 가족 간에 이별의 아픔이 그들을 엄습합니다. 기쁨 후에 온 고난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돌아와 성전 건축을 하려고 보니, 앗시리아 사람들, 그 나라 땅에 살게 했던 이방인들이 성전 건축을 못하게 방해하며, 조롱합니다. 고난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성전 건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데 신세대들은 너무 좋았어요. 옛날의 성전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야! 이 폐허 가운데서 우리가 성전을 이만큼 세웠다!"하며 너무 기뻐했는데,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옛날의 성전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지어 놓은 성전을 보며 너무나 낙담했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지은 성전은 과거의 성전과 비교해 보니 초가집 같았거든요.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란 말이냐?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칠 성전이란 말인가! 과거의 성전은 너무나 멋있었는데..." 완공되어 가는 성전을 바라보며 나이 든 사람들은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이들의 고난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이 그들의 낙심이었습니다. 너무 기뻐 고향에 돌아왔건만 기쁨의 순간도 잠간이요,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는 너무나 심한 낙심이 찾아 왔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땅을 치며 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인생 아닙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죄에서 사해 주신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하나님을 처음 만난 날,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천국을 발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기뻤습니까? 그러나 그 기쁨이 계속 되던가요? 세월이 지나면서 죄에서 해방된 줄 알았는데 내 작은 마음의 죄를 내가 다스리지 못합니다. 나쁜 습관 하나도 내 의지대로 끊어버리지 못합니다. 죄의 노예가 됩니다. 내 자식이 쓰러지고, 내 남편이 죄에 쓰러지고, 내가 죄에 쓰러질 때 우리 마음 안에 낙심이 찾아오는 겁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어려움이 오면 그것은 별 것 아닙니다. 그러나 삶을 평안하게 살던 사람, 행복에 겨워하던 사람이 불행을 당하게 되면 그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지난 2주전에,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한 형제가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상담을 원했습니다. 자기의 결혼한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1년 전에 결혼했는데,(그가 결혼한 얘기를 들으니 저도 다시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축복 속에 결혼을 했더라고요)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혼 서류를 꾸미고 있었어요. 너무너무 갈등이 되어 저에게 전화했어요. 이것이 인생 아닙니까?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날 때, 그 신혼부부는 얼마나 행복에 겨워합니까? 입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너무 기쁩니다.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삶이 계속 되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 가정생활에는 굴곡이 찾아옵니다. 어려움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인생에는 낙심의 골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골짜기를 만날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해 오셨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가지 잘못된 반응을 합니다. 그것은 집어치우는 거예요. 영어로 Quit! 모든 일을 그만 두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택한 길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보니, 땅이 너무나 황폐했고,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끊임없이 방해했고, 그들의 노력의 결과가 과거보다 못하고 초라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성전 공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중간에 때려치워 버렸어요. 그만두어 버렸어요. 너무나 실망이 컸기 때문에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해본들 무엇하랴! 큰 기쁨 위에 오는 낙심이었기에 그 낙심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단해 버렸어요. 이것이 혹 당신의 모습은 아닙니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려고 팔을 걷습니다. "교회 한번 나가 봐야지!" 석 달, 넉 달 지납니다.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성가대 해야지, 교사해야지, 열심을 가지고 할 때 기쁨이 이만큼 찼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계속 됩디까? 고난의 골짜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고난의 골짜기가 올 때 어떻게 합니까? 그만 두어 버립니다. 신앙생활을 중단해 버리고, 봉사를 중단해 버리고, 낙심의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기 쉬운 반응이에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잘못된 반응이에요. 인생에는 높은 정상에 오를 때가 있는 반면, 골짜기에 내려가는 고난이 찾아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반응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인생의 굴곡을 어떻게 올바르게 반응해야 합니까? 오늘 시편기자를 통해 하나님은, 세 가지 올바른 반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 세 가지 반응을 간단하게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인생의 굴곡을 지나 기쁨의 단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축복을 감사하라.

    1. 과거의 축복을 감사하라

    하루살이 시야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넘치는 축복이 계속되다가 잠간의 어려움이 오면, 과거의 축복을 새까맣게 다 까먹는 거예요. 그것이 하루살이 시야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언제 축복 받았나 싶죠? 그런데 금새 까맣게 잊어버려요. 그 사람이 정말 언제 구원받았는가? 구원에 대한 감사를 하고 봉사를 하겠다고 뛸 때는 언제고, 고난이 조금만 오면 저 사람이 언제 구원받았는가 싶을 정도로 잊어버려요.
    만일 암에 걸려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으로 살았다고 해 봅시다. 그 기쁨을 어디다 비기겠습니까? 다시 살아난 기쁨! 우리 교회 김 길신 성도님이 그렇죠? 동아대 병원에서 복부를 열었다가 닫아버렸어요. 암입니다. 그런데 서울 원자력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했더니, 암 비슷하지, 암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부산에 돌아와서, 안 나오던 교회를 나와서 "목사님, 제가 교회 화장실 청소라도 하고 싶습니다" 선장인 그분이 말했어요. 요즘도 열심히 나오고 있어요. 그 기쁨을 어디다 비기겠어요? 그런데 그 기쁨이 오래 갑니까? 여러분을 한번 관찰해 보세요. 암에서 살아났어요.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도 평생 기뻐해야 되는데, 조금만 몸이 또 아프면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제가 1부 예배에 왔다 가신 배 태익씨를 앉혀 놓고 얘기했습니다. 2년 반전, 그가 예수 믿지 않을 때 백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한 사람이 저를 심방 해 달라고 해서 가보니, 의사가 얘기합니다. "두 번째 배를 갈랐는데 가망이 없습니다. 암이 배 전체에 다 퍼져서 제가 대충 꿰맸습니다. 장은 십이지장이랑 바로 꿰맸으니까 집에 가십시오. 한두 달 넘기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했잖아요? 전 교인이 기도했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2년 반 동안 멀쩡히 살아있어요. 살도 쪘어요.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아팠어요. 그래서 교회에 못나왔어요. 그러다가 지난주부터 다시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어요. 지난 주일에 예배 끝나고 나가는데 제가 배 태익씨를 붙잡고 얘기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낙심되어 보이기에 "배 선생님, 기뻐하세요. 아프시죠? 그래도 기뻐하세요" "왜요?" "배 선생님은 지금 보너스로 사는 겁니다" 무엇으로 산다고요? 보너스! 지금 사는 것은 보너스 인생이에요. 그 순간,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오늘 기쁘게 교회에 나왔어요.
    한달 살 것을 2년 반 살려 줬으면 보너스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떤가 하면, 암에서 고침을 받았는데 잠시 내 몸이 불편하고 병이 오는가 하면, 원망하고 짜증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살이 시야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내가 너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건, 사업이 흔들리건, 무슨 일을 당했건 간에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해 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 주셨습니다. 하늘나라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질 여러분인데 구원받게 하셨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모든 사람들이 낙담해서 땅을 치고 있는 이때에, 시편기자 한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합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본 것입니다. 1,2,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大事)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3절 마지막, "기뻤도다"가 아니고 "지금 기쁘도다"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고 낙망해 있던 그 때에, 이 시편기자는 분연히 일어나,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포로에서 돌리신 그 은혜를 묵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회복되었어요. 우리가 과거에만 기뻤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기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 중에 계십니까?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고 계신가요? 과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축복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이 하루살이 시야가 아닌 천국 시야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인생에 굴곡이 찾아올 때 우리는 과거의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 시편기자가 4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2.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라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남방 시내"가 뭡니까? 남방(Y-셔츠)에다가 시내 무늬 새긴 겁니까?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요. "남방"이란 단어는 "네게브"라는 단어예요. 우리말로 하면 "광야"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 사막 기후를 가진 아주 거친 광야예요. 네게브의 시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건기에는 나무도 없고 풀도 별로 없으니까 바짝 말라 버려요. 맨땅 같아요. 그런데 비가 내리면 하룻밤 사이에, 보통 땅인 줄 알고 걸어다녔던 그 땅에 홍수의 강이 넘치는 겁니다. 풀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하룻밤 사이에 그 시내가 강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남방 시내의 특징입니다.

    지금 시편기자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겁니다. 그들은 지금 낙망해 있습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실망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기자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광야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 포로를, 우리의 운명을 (여기서는 운명이 맞는 것 같음) 남방 시내 돌리듯이 돌리시옵소서! 마른땅을 돌려 강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믿음이 뭔 줄 압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책임지시고, 미래에 반드시 우리를 축복하실 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갈수록 더 큰 축복을 받을 존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갈수록 더 큰 축복을 받을 존재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잖아요.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 그들의 힘으로 빠져 나왔나요?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나올 때 그들의 힘으로 나왔나요?

    낙망해 있는 백성들에게 시편기자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기다려라! 하나님께서 지금은 메마른 것 같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 메마른 땅바닥에 강을 만드실 것이야! 주여, 믿사오니 우리의 운명을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바꾸어 주옵소서!" 여러분, 고난의 시기에 이 기도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녀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내 남편의 운명을 바꾸어 주시고 내 가정의 운명을, 내 삶의 운명을 남방 시내같이, 홍수가 나듯이 큰 축복의 강을 쏟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어려움을 주시는가? 우리로 낙심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대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려움의 골짜기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랄 때입니다.
    인생의 굴곡을 어떻게 지나갈 수 있는가? 과거의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미래의 축복을 기대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방법은 현재의 축복을 투자하라는 겁니다.

    3. 현재의 축복을 투자하라

    5,6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어떻게 인생의 굴곡을 지날까요? 현재의 축복을 누리기보다 현재의 축복을 투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이 포로귀환을 하고 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많은 상상을 하며 읽어요. 때로 한 구절을 가지고 몇 시간을 묵상할 때가 있어요.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묵상해 보았어요.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있었겠어요? 고레스 왕이 쫓아보낸 것이 아니고 축복하며 보냈으니까 곡식을 한 자루씩은 다 들고 왔겠지요? 그 당시에 1톤 트럭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조금씩 짊어지고 왔을 것입니다. 어떤 집은 "야~ 고향 왔다~" 그러면서 밥 해먹고, 떡 해먹고, 죽 끓여먹고, 누룽지 끓여먹고, 다 해먹었어요. 그러나 어떤 집은, 고향 왔으니까 포로 시대에는 아이들이 밥을 재대로 못 먹다가 "아빠, 쌀 짊어지고 온 것 있잖아. 내가 짊어지고 온 것 있지? 밥 해줘~ 떡 해줘~" 하고 보챕니다. 지혜 있는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해달라는 대로 해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파 밥을 달라는 시절을 겪어 본적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유학 가서 그 시절을 겪어 봤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지혜 있는 아버지는 그 고비를 넘기는 거예요. 왜요? 이것 다 먹어 버리면 어떡합니까? 지혜 있는 아버지는 아이들과 자신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씨로 남겨 놓을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울며 씨를 뿌려야 다음에 더 배불리 먹을 수 있기에, 더 많이 추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앨먼 조라는 갑부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1940년대에 하루는 그 동네에 솜사탕 장수가 옵니다. 앨먼 조가 소년 시절에 아버지에게 쫓아갔어요. 솜사탕이 쿼터, 25센트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약 400원 정도입니다. 그것을 사먹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합니다. "아빠, 쿼터 좀 줘요" 그때 아빠가 거절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쿼터를 꺼내 주면서 묻습니다. 자기가 갑부가 된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얘야 이게 뭐지?" "아빠, 내가 바본 줄 알아요? 쿼터잖아요? 25센트요" 아빠가 한참 있더니 "그래 맞아. 분명히 25센트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 꼭 한가지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다. 이 쿼터는 곧 노동이다. 일이야 일! Work!" 그리고 설명을 해 주었어요.
    그 집은 감자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집이었는데 "너 농사지어 봐서 알지? 아빠 도와 봤잖아. 우리가 가을에 어떻게 했니?" "감자를 캐느라고 고생했죠. 감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저도 짊어지고 나서 어깨가 다 쑤셨는걸요" "그래. 그랬지? 그리고 겨울에 그 감자가 안 썩게 잘 보관했어.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팔아서 우리의 입을 것을 샀었지.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봄에 썩지 않은 좋은 것만 골라서 다 따로 놓았지?" "그럼요, 아버지 생각나요" "그리고 어떻게 했지?" "우리가 모두 나가 밭을 갈았죠. 그 밭을 얼마나 힘들게 갈았습니까?" 밭을 다 갈고 나면 일이 다 끝난 것입니까? 옛날 경상도 말로 "곰배"라고 하죠. 나무로 된 것인데, 덩어리 흙을 깨는데 사용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밭을 갑니다. 그 다음 감자를 오려서 심는 거예요.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다가, 뙤약볕에서 노동을 하고 가을에 다시 감자를 수확한 것을 설명해 줍니다. "이건 돈 25센트가 아니라 노동이란다"

    그 아이가 솜사탕을 사먹으러 뛰어 가다가 아버지가 그 돈이 노동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어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씁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다 솜사탕을 사먹는 그때, 집에 돌아와 그 돈을 저축했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라고요. 미국의 대 거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미래의 추수를 위해 현재의 축복을 투자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라고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이것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오늘을 즐기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라는 태도로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 맘대로 살자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들입니까? 이 세상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 아니잖아요. 30평에 사느냐, 50평에 사느냐, 티코를 모느냐 그랜저를 모느냐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까? 오늘 교회 안에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자들이 너무나 적어요. 한 푼을 아껴서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갈라디아 6장 7-9절을 기억하십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당신의 인생 중, 오늘의 작은 축복을 미래의 기쁨의 단을 위해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의 굴곡을 지나갈 때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과거를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현재의 내 작은 유익과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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