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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아침 거기서
    2001-12-11 22:26:23   read : 1030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데살로니가전서 4:13-18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미국의 한 설문 조사 기관에서 천 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만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이 죽음이었어요. 때로 나의 죽음을 걱정하고, 때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그 슬픔, 그것들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죽음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줄 뿐만 아니라, 많은 질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도대체 죽은 자는 어디로 갈까? 어떻게 될까? 죽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알까? 내 마음의 생각들을 알 수 있을까?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앞으로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등등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잃어본 사람은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많은 종교에서는 애를 썼습니다. 사실, 유교는 내세관이 없지만 우리는 조상들을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어요. 불교는 윤회설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답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많은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불과 1년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 박해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어버린, 즉 성도들의 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굉장히 궁금해했어요. 우리 앞서 죽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하나님은 친절하게 사도 바울을 통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오늘 제가 4장 13절에서 18절 말씀만 읽었습니다만, 5장 11절까지 상당히 긴 단락을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 두 섹션은 사실 굉장히 비슷하면서 다른 사건을 얘기하지만 총체적인 주제는 한 가지입니다. 특별히 13절을 보십시오.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데,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알아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5장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알아야 되는 것,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알고 나면 무엇을 알아야 되는가? 결론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4장 17절 마지막에,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5장 10절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사셨느니라

    주와 함께 있다, 주님과 함께 산다라는 같은 진리를 가르치고 있어요. 오늘 특별히, 죽은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단어가 굉장히 많은 오해와 다른 해석들을 낳아 왔습니다. 이 단어를 근거로 해서, 어떤 이단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소멸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잠을 자거나, 무의식 상태 속에 있다고 이 단어를 인용하여 주장했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 욥기서에 나와 있는 말을 인용한 거예요. 그러나 과연 이 단어가 그런 의미들을 내포할까요?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의 영혼이 잠을 잘까요? 완전히 없어질까요? 이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면서도 정확하게 알기를 원치 않아요. 오늘 이 시간, 죽음 이후의 세계,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돌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삶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미래가 오늘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렇게 제 설교를 결론 맺을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청사진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이러한 청사진과 계획 속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 설교의 두 기둥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 잠자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 보면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양쪽에 강도가 있었어요. 한 강도가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더니, 주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셔서 사람이 죽으면 낙원에 가는구나라고 오해했어요. 그러나 거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이란 것은 직역하면 이런 곳이에요. 축복스러운 곳! 말로 다할 수 없는 굉장히 축복스러운 곳에, 네가 10년, 100년 후가 아니라 오늘, 바로 지금 나와 함께 갈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갈 것인데 너도 같이 그곳에 갈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사도 바울에게 소원이 있었는데, 자기가 몸을 떠나는 거예요. 내 영혼이 몸을 떠나면 어디로 가는가? 잠자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거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스데반을 잘 알죠?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는 마지막에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내 영혼을 받아 달라는 거예요. 이러한 모든 말씀을 종합해볼 때, 우리가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몸은 이 땅에서 썩지만, 영혼은 우리가 죽자마자 곧바로 천국, 즉 주님 곁에 가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예요.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전혀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잠잔다고 표현했는가?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대화할 수 없고, 교제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영원히 교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언젠가 다시 만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먼저 잠을 자요. 저희 집사람은 저보다 약간 늦게 자요. 요즘 새벽기도회에 나오기 위해, 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좀 일찍 잡니다. 그런데 아주 무서운 소리를 해요. 이전에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코고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코고는 사람하고는 절대 같이 못 잡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여보, 당신한테 요즘 변화가 생겼어" "뭔데?" "당신 요즘 코 골아. 코고는 사람 저주하더니 닮았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고, 아내와 남편이 한 침대에서 자지만, 깊이 잠든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교제를 할 수 없어요.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처럼 슬퍼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남편이 잠들었다고, 나와 대화를 못한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철철 우는 사람 봤어요? 그러지 않죠? 왜냐하면 그 다음날 아침에 깨면 다시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죽음을 이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분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었다고 슬퍼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슬픔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 보내면 우리가 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낙심해서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잠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잠자는 것인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은 다시 만날 죽음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 얘기를 한 거예요.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어떻게 만납니까? 자! 제가 차례를 두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 몸은 여기에 남고 영혼은 주님께로 갑니다. 그 영혼은 의식이 있어요. 죽은 사람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나사로가 천국에 가서 부자의 행태를 다 보았어요.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죽으면 몸은 여기에 남고 영혼은 주님께로 갑니다. 의식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영혼으로 천국에서 살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주님이 언젠가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을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 혼자 오시는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죽어서 주님 곁에 먼저 가 있던 영혼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4절을 보세요.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데리고 오실 것을 믿으시는가요?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믿기가 쉬운 말씀이 아니에요. 그래서 14절에서,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라고 하셨어요. 이 말씀을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 분이 부활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그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 앞서 죽은 사람들이, 아니 우리가 내 자녀보다 먼저 죽는다면,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영혼이 그곳에 가 있다가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올 것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 이후에 대해 성경이 이렇게 밝히 가르치는 것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고 살아갑니다. 머리로만 그저 알고 살아가요. 그래서 삶에 변화가 없어요.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데리고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때가 되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16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무슨 얘기입니까? 몸이 일어나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요. 영혼이 잠자다가 일어나는 것을 얘기합니까? 아니요! 주님이 강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영혼이 주님과 함께 같이 있다가 주님과 함께 강림합니다. 무엇이 일어납니까? 그 다음에 우리의 몸이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부활에 대해 얘기하는 겁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기하게도, 교회에 나오면서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어요. 우리의 몸은 썩고 영혼만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지식이에요.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천국에 가서 사는 것은 잠시동안이에요.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영혼이 내려와서 놀라운 일이 생기는데, 우리가 다시 몸을 부여받게 될 거라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놀라운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세요? 지금 우리의 이 몸이 어떤 몸입니까? 병에 약해요. 조그만 세균이 들어와도 그 강하던 사람들이 병들고 죽습니다. 아무리 올림픽에서 우승을 해도 늙으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강건해 보세요.

    오늘 저희 아버님이 교회를 못 나오셨어요. 85세이신데, 1년 만에 뵌 아버님이 얼마나 둔해지셨는지, 요즘 같이 모시고 사는 제 마음이 하루에 몇 번씩 쓰려요. 새벽 2시쯤에 혼자 침대에서 주무시다가 떨어지셨어요. 그래서 치아가 입술 깊숙이 들어가서 입술이 다 찢어졌어요. 저희들에게 방해될까봐 깨우지도 않고 혼자 지혈을 하셨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입술이 퉁퉁 붓고 많이 찢어졌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의사 선생님께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의사가 상태를 잘 듣더니 꿰매는 것보다 그냥 두는 것이 더 낫다고 해요. 우리 신체 가운데서 가장 빨리 낫는 곳이 입술이랍니다.

    저희 아버님이 기골이 얼마나 장대하셨던지 옛날엔 장사로 소문 나셨어요. 환갑 때 저희 아들들과 팔씨름해서 다 넘기신 분입니다. 얼마나 튼튼하셨는지 몰라요. 그런데 세월 앞에는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요즘 마음이 얼마나 울적한지 몰라요. 아버님의 걸음걸이도 자유롭지 못하고, 차에 타시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거의 모든 것에 둔하세요. 여러분, 이것이 몸이에요. 아무리 튼튼한 몸이라도,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늙으면 소용없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굉장히 놀라운 복음 한 가지를 얘기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만 다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죽어서 주님과 함께 지내다가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우리의 영혼도 땅에 내려옵니다. 주님이 내려오시고 나서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생기는가? 우리가 다시 우리가 가졌던 그 얼굴, 그 몸,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바로 부활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서 잘못 생각합니다. 부활이 뭐냐고 물어보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거라고 합니다. 나사로도 부활했다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부'자도 모르는 거예요. 나사로가 부활했나요? 아니요. 나사로는 소생했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요. 그 다음 다시 죽었어요. 그건 부활이 아니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우리가 몸을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놀랍게! 그러나 그 몸은 어떤 몸인가? 다시는 병들지 않습니다. 세균의 공격에도 끄떡없고, 늙지도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몸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이 왜 놀랍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0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우주 역사에 부활한 분은 지금까지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 없어요. 그는 첫 열매예요. 왜 첫 열매가 되나요? 나사로도 살아났는데? 그러나 부활은 다른 것이란 말입니다. 다시 죽을 몸으로 몸을 받는 게 아니라, 완벽한 몸으로, 병들지 않고 늙지 않는 몸을 다시 받을 줄로 믿습니다.

    일반적으로 농부는 첫 열매가 맺히면 따서 내버려요. 왜냐하면 나무가 더 자라야 되니까 지혜로운 농부는 첫 열매는 먹지 않아요. 그런데 첫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고 농부들이 기뻐해요. 왜 그렇습니까? 첫 열매가 열린 것을 보니 내년에도 열매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우리가 알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부활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부활을 믿으면서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우리가 완벽한 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받습니까? 16절을 다시 보세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여기 세 가지 소리가 나옵니다. "주의 호령", 여기서 '호령'이 뭘까요? 이 호령은 알기 쉬운 말로 하면 "명령"이에요. 예수님은 이미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한 사람을 다시 살리셨어요. 무엇으로 살리셨죠? 호령으로요. 요한복음 11장을 기억하십니까?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일부러 지체하십니다. 살아있을 때 가야 살리는데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더 지체하셨어요. 그리고 죽은 지 나흘 되었을 때,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절벽에 동굴을 파서 그 안의 돌 위에 시신을 눕히고 밖에 큰 돌로 막아 둡니다. 예수님이 가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저 돌을 굴려 치워라!" 주위 사람들이 "예수님, 저 돌을 치워서 뭐 하시려고요? 날씨는 뜨뜻하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안 하시니까 "아! 치워야 되겠구나!" 해서 돌을 치웁니다. 예수님께서 잔잔하게 호령하셨어요.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게 전부였어요. 명령하셨어요.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렇게 말씀 하신 후 어떻게 되었나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썩어서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다시 일어나 소생하여 나왔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주님이 장차 다시 한 번 호령하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해, 아니 여러분이 먼저 떠났다면 바로 당신을 향해, 이렇게 주님은 언젠가 호령하실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떤 소리가 있나요? "천사장의 소리"가 있어요. 주님이 악을 쓰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보통 장군은 속삭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소리치는 대장이 어떻게 합니까? "일동 쉬어!" 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리치는 사람은 목청이 좋아야 돼요. 제식 훈련 받아 보셨죠? 이렇게 크게 소리치는 사람이 천사장이에요. 누굴까요? 성경에서 천사장으로 표기된 단 한사람은 미가엘 밖에 없습니다. 가브리엘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는 천사장이 아니었어요. 천사장은 미가엘 밖에 없습니다. 미가엘이 소리치는 거예요. "나오너라!"고 소리치죠. 그와 동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팔소리가 쫘악 울립니다.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영혼만 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먼저 죽었던,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혼만 내려왔던 사람들이 완벽한 몸을 다 받게 되는 거예요.

    어떤 몸을 받을까요? 대머리는 대머리 받고 틀니는 틀니 받을까요?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몸은 30대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대표자이시고 첫 열매십니다. 33세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신학자들은 아마 33세의 여러분의 모습으로 부활하지 않을까 하고 믿습니다. 그 때는 완벽한 몸을 우리가 받게 되는 거예요. 오늘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할까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다시 증언해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뜻을 잘 묵상하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주위를 끄는 거예요. 너무 중요한 말을 하니까)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죽지 않고 남아 있는 우리는 홀연히 변화하리라.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영혼으로 천국에 갔던 사람들이 이미 흙에 묻혀 다 썩었든지, 사자 밥이 되었든지, 불에 타 죽었든지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옛날에 있던 아름다운 완벽한 몸으로,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병들지 않고 늙지 않는 완벽한 몸으로 순식간에 다시 살고, 그 다음 죽지 않고 이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죽지 않고 이 땅에 남아 예수를 믿는 우리는 홀연히 변화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우리의 몸이 완벽하게 부활의 광채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데리고 오신 몸을 받은 성도들, 그분들과 변화된 우리의 몸이 끌려 올라갑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이 땅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어 공중으로 끌어 올려질 것에 대해 책도 나오고 영화도 나왔어요. 뭐라고 하죠? '휴거'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사도 바울의 철학이 아니라, 주님께서 청사진을 보여주신 거예요. 우리의 미래는 이렇게 확증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몸이 병든 것에 대해 너무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몸이 늙음도 한탄하지 마세요. 언젠가 새 몸을 받을 거니까. 그 몸에다가 너무 많은 돈들이지 마세요. 여기 한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적당히 사 드세요. 몸에다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새 몸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 몸은 썩을 몸이란 말이죠. 놀라운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주님이 데려온 사람들이 다 부활하고 우리도 변화되어 올라가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공중에서 7년 동안 주님이 대잔치를 여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4장 18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엄마가 먼저 떠났다고, 남편이 먼저 떠났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시 도킹할거니까,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 아! 이 얘기를 듣고 보니 여러분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납니까?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언제 만날까? 주님, 그 때가 언제입니까? 그 때가!" 그래서 5장 1절부터 11절까지 그 대답을 해 주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강림할 시기에 대해서 두 가지 비유를 들어 사용해 주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오시는가? 첫 번째, 좀 흉악한 비유를 들어 주셨어요.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어요. 두 번째는 임신한 여인에 비유하셨어요. 어떤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들었을까요?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그 때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오세요. 내일 오실 수도 있고, 열흘 후에 오실 수도 있고, 1년 후, 100년 후, 200년 후에 오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주님의 재림을 대하는 신자의 태도를 한 단어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파루시아! 이 말은 외우면 좋겠어요. '마라나타'는 부활하셨다, 주님이 살아 나셨다는 뜻이고, '파루시아' 이것도 성경의 중요한 사상이에요.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500년 후에 오실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으라는 겁니다. 우리 주님은 도적같이 오세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제 오실 지 몰라요. 내가 상상하는 때와 전혀 상관없이 주님이 오실 수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내일일수도 있고 한 달 후일수도 있어요. 파루시아! 여러분, 이 신앙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 신앙이 있어야 돼요. "주님이 곧 오신다! 곧 오신다!" 는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아십니까? 이 믿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경각심을 갖게 하는지 아십니까? 이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울 줄 믿습니다.

    또 임신한 여인에 비유하셨어요. 아기를 잉태했으면 반드시 낳는 거예요. 아기를 잉태한 여자는 어때요? 요즘은 임신한 지 몇 주라고 하면 언제 출산할 지 다 알죠. 열달 있으면 나온다고.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당시에는 초음파도 없었고 X-Ray도 없었어요.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때예요. 애가 언제 나올지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든 거예요. 출산 예정일은 모르지만 뭘 알 수 있어요? 배가 불러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징조가 있을 거라는 얘기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부터 자신이 오시기 전의 징조를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싸우고, 가정이 파괴되고, 도처에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러한 수많은 징조를 너희가 보거든 내가 올 때가 가까움을 알라! 배가 불러오는 여자가 애 낳을 것을 알 듯이!" 그러나 그 정확한 시점은 아무도 몰라요. 배가 아무리 불러도, 의사가 오늘내일 점을 쳐주어도 애가 나오는 시간은 정말 몰라요. 우리 집사람이나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 전날까지 음식을 잘 먹고 웃기도 해요. 어떤 사람은 막 웃다가 "으으아아악~" 진통이 오는 사람도 있어요. 언제 진통이 올 줄 아나요? 자다가 진통이 오고, 밥 먹다가도 진통이 와요.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서 진통이 와서 난리고, 차 타고 가다가 진통이 오기도 하고, 비행기 타고 가다가 진통이 와요. 그렇듯 주님이 언제 오실 지 몰라요. 그러나 징조는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먼저 죽은 자들이 이 땅에 와서 우리를 만날 것이고, 우리도 홀연히 변화될 것인데, 그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임박했다고 믿고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매일매일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음 이후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청사진을 가지고 살게 되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면 어떤 태도로 앞으로 남아 있는 이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를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1. 깨어 있으라

    첫 번째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삶의 올바른 태도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장 6절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여기서 '깨어 있다'는 말을 직역하면 취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지 말라, 취하지 말라. 취한 상태로 있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 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술 취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디에 취하지 말라는 건가요? 이 말씀은 세상에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땅의 삶에 너무 취해 살지 말라는 거예요. 땅의 삶에 취해서 하늘의 삶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활을 믿고, 내세를 믿고, 주님이 다시 오심을 믿는다면, 이 땅의 삶에 너무 취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성공에 너무 취하지 마십시오. 돈에 너무 취하지 마십시오. 오늘 저는 돈에 취한 수많은 교인들을 봅니다. 왜 기쁜지 보면, 돈이 생기면 기쁘고, 왜 슬픈가? 돈이 없으면 슬퍼해요. 돈! 돈! 돈!! 돈에 취해 사는 거예요. 사실은 돈이 그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이에요. 왜 불안한가? 돈을 잃을까 불안합니다. 이것은 재림을 믿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쾌락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음욕을 품고 이성과 불륜의 관계를 저지를까를 생각하며, 쾌락을 쫓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도 잘못된 자세입니다. 취미 생활에 너무 취해도 안돼요. 취미는 적당하게 해야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취미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취미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취미에 취해서 살아요. 예를 들면 낚시! 낚시에 푹 빠져서 마누라, 자식 다 소용없어요. 고도리! 고도리가 취미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취미에 포함된다고 봅니다만. 고도리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적당히 하면 좋아요. 거기다 돈을 걸고 밤을 새니까 문제죠. 테니스 시합에 100만원씩 돈을 걸면 고도리와 다를 게 있나요? "테니스는 운동이고 고도리는 운동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최근의 통계를 보면 고도리 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적답니다. 머리 돌리고, 손 쓰고, 팔 돌리니까 운동이 된다고 해요. 골프! 골프가 나쁜가요? 아니요. 저는 골프 치는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나도 한국에서 목사만 아니었으면 늘씬하게 쳤을 텐데. 레슨 받은 것 써 먹지도 못하고 한국에 와서 이러고 있지만, 골프가 나쁜 건 아니에요. 문제는 거기에 취해서 살기 때문이죠. 어떤 취미 생활이든 취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것은 다 부활의 신앙을 믿지 않는 거예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이 아니에요. 깨어 살라고 말씀합니다. 직장에 너무 취하지 마십시오.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사업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업이 priority No.1이에요. 사업에 취해 사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은 부탁하십니다. "너희가 정말로 내가 다시 올 것을 믿느냐? 너희가 부활할 것을 믿느냐? 너희가 새롭게 완벽한 몸을 받을 것을 믿느냐? 정말 그런 신앙을 가졌다면 오늘 너희의 삶을 바꾸라! 세상에 취하지 말고 깨어 지내라!"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근신하며 살라


    두 번째, 우리가 깨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조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믿음, 소망, 사랑을 얘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근신해야 해요. 우리가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분야가 믿음, 소망, 사랑이더라고요. 이렇게 설교하는 저도, 깨어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믿음 없이 내 머리로 살더라고요. 어느 순간 깨어보면 제가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어느 새 형제를 비판하고 욕하며 미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근신하여 살아야 합니다. 소망! 땅을 바라지 하늘을 바라고 살지 않아요. 왜 좌절하는가? 어느 날 공원에 가서 낙심이 되어 깊이 내 안을 들여다봤어요. "네가 고민하고 좌절하는 이유가 뭐냐?" 하나, 둘, 셋, 넷 따져보니 결국 내가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소망 없이 살더라고요. 이 일에 우리가 근신하라고 얘기합니다.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깨어 살아야 합니다.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라

    마지막 세 번째,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부활을 믿는다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읽었습니다만, 4장 18절에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서로 서로 위로해야 돼요. 서로 서로 이 믿음을 격려해야 돼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소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찾아가 격려하고 위로해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낙심한 사람이 있으면 이 말씀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나 혼자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형제 자매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면류관을 받고 칭찬 받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깨어 살고 재림의 주를 기다리며 살 때에 어떤 일이 있는가? 마지막 성경 한 구절을 살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찾아봅시다. 16장 15절. 제가 도전 받고 너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누가 복이 있어요? 부동산 사 놨더니 100배 올라서 100억 손에 쥔 사람이 복이 있어요? 건강해서 백수 누린 사람이 복이 있어요? 아니요. 그것은 잠깐 동안 이 땅에서만 누릴 복이에요. 참 복은 그게 아니에요. 누가 복있는 사람인지 아세요?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셨을 때 수영 팬티 바람으로, 옷 하나 안 걸치고 알몸으로 주님을 만나지 않는 자! 예복을 입고 파티에 나타난 자가 참으로 복된 줄로 믿습니다. 그 복은 뭡니까? 그 옷은 뭡니까? 깨어 사는 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땅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자, 이 땅을 바라보기 보다 상급을 바라보는 자, 근신하는 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사는 자의 옷! 그 옷이 바로 양복이고, 드레스이며, 파티복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모두가 양복 입고 있는데, 구원은 받았으나 옷이 없어서 손으로 몸을 가리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이 자리가 바로 그 파티장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두 가지 질문을 드리며 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만일 오늘 오후에 주님이 오신다면, 당신은 부활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구원 받으셨나요? 내가 저 동물들과 다른 존재임이, 내 안에는 영이 있고 하나님이 나를 직접 만드셔서, 영과 혼과 몸을 주셨는데,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멸망당할 것을 원치 않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내가 달려야 할 그 십자가에 내 대신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어요.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다고 부활할 수 있는가? 아니에요. 집사 되었다고 부활할 수 있는가? 아니에요. 또한 성경공부를 얼마나 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 구원 받으셨습니까?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부활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셔야 합니다.

    또 하나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자들에게 저는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이 만일 오늘 오후 다섯 시에 오신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어떻게 맞으시겠습니까? 혹 이런 모습은 아닌가요? "어~ 주님 안 돼요, 안 돼. 오늘은 안 돼요! 한달 만 더 주세요!" 아니면, 오늘 오후 다섯 시에 기쁜 마음으로 나가 "주님, 저는 기쁨으로 당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 제가 예복을 입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성도의 깨끗한 행실로 성도다운 치장을 하고, 오늘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깨우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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