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깨워야 할 것들 2001-12-11 21:04:52 read : 100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드로후서 3:1-2
'사랑의 사도' 하면 우리는 사도 요한을 생각합니다. 요한은 예수님 품에 기댈 정도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도 또 그 사랑을 성도들에게 나누어 준 사도로, 베드로는 권세 있고 열심 있는 대단한 사도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베드로에게도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을 읽다가 사도 베드로에게서 사랑이 철철 흘러 넘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1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8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14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17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beloved'는 하나뿐인 사랑입니다. 자식에게는 'my dear son, my dear daughter.'라고 하지만, 하나뿐인 애인에게는 'my beloved'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도들을 부를 때 그런 사랑으로, 하나뿐인 애인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성도들을 부릅니다.
이 땅의 모든 목사님의 가슴에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또 성도들도 목회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고 아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꼴을 먹일까? 어디에 가야 좋은 시냇물, 좋은 샘물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양들이 포동포동하게 살찔까? 어떻게 해야 양들이 행복하게 꼴을 뜯을까? 어떻게 하면 이리가 가까이 오지 못하고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을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양은 목자를 잘 따라야 합니다.
만일 목자는 지팡이로 양을 때리고, 양은 뿔로 목자를 박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목자와 양의 모습이 아닙니다. 목자를 박는 것은 양이 아니라 염소입니다. 목자가 지팡이로 때리는 것도 양이 아니라 염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염소가 없기를 바랍니다. 흔히 양 몇 백 마리에는 염소 몇 마리가 있어야 양이 잘 된다고들 합니다. 양들은 서로 사랑해서 모여 있기를 좋아하니, 그것을 질투하여 그 무리를 휘저을 염소 몇 마리가 양들 사이에 있어야 양이 건강하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은혜만 있으면 염소가 없어도, 양들만 있어도 건강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염소가 없기를 바랍니다. 염소가 없어도 은혜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둘째 편지를 쓴다고 했는데, 첫째 편지는 베드로전서를, 둘째 편지는 베드로후서를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면서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기를 원한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를 쓰는 목적이 많지만, 그 목적 중의 큰 목적이 성도들의 진실함 마음을 일깨우기 원함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목사님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한 분이 한경직 목사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인들도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하지만,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정말 잘 보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보여 주신 분은 한경직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강단에서뿐 아니라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친구들의 모임에서나 그 어디에서나 말씀을 하시면 버릴 말씀이 한 마디도 없었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입의 말씀은 농담도 버릴 것이 없었답니다. 어디에서나 예수님 같은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저도 신학생 때 들었던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교인이 되세요. 교인이 되기 전에 훌륭한 사람이 되세요."
교인들만큼도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목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도 때로는 진실한데, 교인이 진실하지 못하면 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빛이 납니다.
보석은 닦을수록 빛을 발하듯이, 사람도 진실한 마음을 자꾸 일깨우면 빛이 납니다.
퇴계 이황에게 뇌물을 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분이 빛이 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준 뇌물 중에서 금 덩어리나 보석 같은 것은 그 사람에게 돌려주고, 그 사람이 부끄러워할까 봐 떡이나 붓 같은 것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하면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진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죄가 아무리 많아도, 전과가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그 날 우리의 죄는 사라집니다 50년, 40년 동안 지은 죄가 없어집니다. 이 행복을 시편 32편 1절에 예언하셨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허물이 많고 죄가 있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덮으시고 죄가 없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실하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오신 분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배 피로 씻어 주시고 덮어 주셔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깨끗한 마음을 그냥 두면 거기에 또 때가 묻습니다. 진실함은 성도의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진실함을 일깨우라. 자꾸 새롭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햇수가 거듭될수록 진실함도 더 커져야 합니다. 더 진실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실이 자꾸 커나가려면 자꾸 일깨워야 합니다.
모닥불을 보십시오. 그냥 두면 불이 자꾸 자꾸 약해지고 연기가 납니다. 불쏘시개로 일으켜 주어야 불이 확확 피어납니다.
우리의 진실함도 그냥 두면 연기가 나니,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약간 느슨해진 것을 조여 주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내 남편이 전 같지 않아.'하는 생각이 들면 무엇이 풀린 것이니, 일깨워야 합니다.
지지난 주와 지난 주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며칠을 서울에서 보냈는데, 그때 아들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방문이 비틀어져서 닫히지를 않았습니다. 요즈음에는 날씨가 얼마나 춥습니까? 문을 닫지 않고 자니 찬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드라이버를 갖고 와서 돌쩌귀의 나사를 조였습니다.
"여보, 뭐 하는 거요?"
"혹시 돌쩌귀의 나사를 죄면 문이 닫힐까 해서요."
"그러면 내가 해 볼게요."
"당신이 하신다구요?"
저는 저희 집에 있는 전구가 나가도 교환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내가 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성경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다고 하니 아내가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제가 아내의 손에서 드라이버를 빼앗아서 나사를 하나 하나 다 조였습니다. 모든 나사가 느슨하게 풀려 있었는데, 나사를 다 죄니 문이 닫혔습니다.
저는 방문이 닫히지 않아서 걱정했었습니다. 아들이 그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으니 남의 집이라 문을 대패로 깎을 수도 없고…. 그런데 나사로 죄니 잘 닫혔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닫히지 않는 문이 있으면 나사로 조여 보십시오. 나사가 풀어져서 닫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느슨하게 풀어진 우리의 마음을 죄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을 자꾸 추스르고 일깨워서 더 빛이 나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결할 때 요단강을 갈라 주셨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결하지 못하면 손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말씀하십니다.
『…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끼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방패와 축복과 모든 귀한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러우면 주지 못하십니다. 더러운 사람에게 복을 주시면 복이 더러워지고, 탁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면 은혜가 탁해지니 주지 못하시고 다시 거두시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시편 84편 11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자의 해가 되셔서 빛을 비춰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의 방패가 되셔서 적을 막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기쁘게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에게 영화를 주셔서 명예롭게 살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자, 의로운 자에게는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카네기는 대통령도 아니고 장관도 아닌데 사전에 나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앤드류 카네기-강철왕. 1835년에 출생해서 1919년에 사망. 대부호. 사상가.'
대통령이라도 사전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 많은데, 카네기는 사전에 나옵니다. 그가 대성한 인물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크게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하게 사는 앤드류 카네기의 가족에게 미국에 사는 그의 숙모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미국은 기회가 많은 나라이니 미국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카네기가 13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가기로 결단하고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는 여비 20프랑이 부족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염치를 무릅쓰고 친구인 핸더슨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가려고 하는데 20프랑이 모자라. 내가 미국에 가도 그것을 언제 갚을지 약속할 수도 없어. 그러나 그 돈을 빌려 줄 수 없겠니?"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20프랑을 빌려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른 준비나 잘 하도록 하렴."
그래서 카네기 가족은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삯바느질과 파출부 일을 하면서 20프랑을 갚기 위해 돈이 생길 때마다 돈을 모았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밖에서 돌아온 카네기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오늘이 내 생애에 최고로 기쁜 날이다. 오늘 하루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 이렇게 기쁠 수 없다."
"엄마, 왜 그렇게 기뻐요?"
"핸더슨 부인에게 빌린 20프랑을 갚게 되었다. 빚을 갚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냐? 핸더슨 부인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꼭 감사해라."
그때 그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아하, 우리 어머니는 정직하시구나. 우리 어머니는 감사할 줄 아는 분이시구나.'
그래서 카네기도 정직하게, 또 그에게 조그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도 감사하면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대성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악한 끝은 없고 선한 끝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면 우리도 잘 되고 자자손손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라. 진실한 마음을 그냥 두지 말고 자꾸 일깨워서 피어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진실한 마음의 두 번째 뜻은 이단의 사설이나 거짓 선생에게 유혹, 미혹 당하지 않고, 거짓 사설에 때묻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마음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단자, 거짓 선지자, 거짓 사도들이 많이 나타나서 "예수는 재림하시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재림하시지 않은 예수가 언제 재림하시겠느냐?"하는 잡된 사상들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그것은 신앙을 완전히 엎어 버리고 생명을 엎어버리는 무서운 것들이니 오염되면 안 된다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물들면 안 된다고, 진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지켜나간다는 말씀에는 이해력과 분별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분별해서, 만남을 조심해서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그노시스 이단자가 들어오니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옷도 입지 않은 벗은 몸으로 막 도망을 가더랍니다.
"이단자가 들어온다! 모두 나가자!"
왜입니까? 이단자와 같이 목욕하기 싫어서입니다.
요한이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한이서 1:10-11)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원수는 사랑해도 이단자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이제 자꾸 자유롭게 되고 타락하는 지도자도 나올 것입니다. 종교간의 평화라는 명목 아래 성전 봉헌식에 우상 숭배자를 불러 놓고 축사를 하게 할 사람도 나올지 모릅니다.
우리가 모든 우상 숭배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는 해야 하지만, 우리의 절개는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곧 자기가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갈 것을 알고, 성도들에게 분별력을 갖고 오염되지 말라고 간곡히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염되면 인생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배려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무너진 성을 세웠습니다. 그때 산발랏, 도비야 등 적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느 헤미야에게 '만나서 회담하자.'는 편지를 계속 보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느혜미야를 해치기 위해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별력이 있는 느헤미야는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큰 역사를 어떻게 중단하고 가느냐?"
만일 느헤미야가 나갔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산발랏과 도비야가 느헤미야의 동족 스마야에게 돈을 주어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총독님, 암살자가 당신을 죽이러 온대요. 당신 숙소에 있으면 죽어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숨어 있으세요. 아니면 죽어요."
그러나 분별력이 있는 느헤미야는 "어찌 나 혼자 살려고 성전에 들어가 숨어 있겠느냐? 나는 그런 짓은 하지 못한다."라고 해서 이겼습니다. 자기를 지켰습니다.
우리 앞길에도 우리를 미혹하는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분별력을 갖고 늘 우리의 순수함을 일깨워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본문 2절에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선지자의 말씀은 구약 성경이고, 사도들이 명한 말씀은 신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성경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몇 권뿐인데 한 권은 성전에 있었고, 그 성경도 두루마리이어서 얼마나 엄청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모든 성도들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그것을 암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성경이었습니다. 자기 성경은 자기 기억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은 금방 사라지지 않습니까? 자꾸 일깨우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신영옥 씨, 뉴욕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굉장한 성악가인 신영옥 씨는 자신이 암기해서 부른 노래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시 되새긴답니다. 수없이 부른 것이라도 한동안 덮어두면 기억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서 계속 일깨우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어릴 때 성경을 많이 암송하지 않았습니까? 어릴 때 외운 많은 요절을 지금 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는 암송했지만, 지금은 기억 못하지 않습니까?
저도 성경을 많이 암송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장은 달달달 외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낳고…낳고 …낳고 …』
그러나 요즈음에는 안 됩니다. 하다가 막힙니다. 자꾸 일깨우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에 기억된 말씀을 자꾸 일깨워 잊어버리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말씀을 자꾸 일깨우기도 해야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새롭게 일깨우며 읽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제 밤에 제가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있다가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네가 성경을 몇백 번 읽었다 해도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게 읽어라.'
그래서 오늘 아침에 성경을 읽을 때 평생 처음 보는 말씀이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었더니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릅니다. 새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몇백 번, 몇십 번 읽었다 해도 처음 읽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면서 성경 읽기를 일깨우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기를 일깨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디엘 무디의 비결을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디엘 무디가 거듭남을 체험하고 너무 기뻐서 흥분했습니다. 자신이 천사가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니 또 죄를 짓고 초라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정욕이 있었습니다. 그는 괴로워서 산에 올라가 특별 기도를 하다가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이젠 됐다. 이제는 승리하리라.'하며 내려왔는데, 아니었습니다. 몇 주 뒤에 또 영적인 시험에 들었고, 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복잡해지고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아, 어떻게 하나?'
부흥회에 참석하여 강사님을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천국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두 주가 지나니 부흥회 때 받은 은혜와 신비는 없어지고 또 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양심은 화인 맞은 것일까? 나는 버림 받은 사람인가?'
그때 하나님께서 성경을 찾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아하! 성경을 듣고 읽는 것이 최고구나.'
그때부터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사랑함으로 읽은 디엘 무디는 날마다 은혜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영력을 얻어 세계를 구원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챔피언은 될 수 없어도 진실함의 챔피언은 될 수 있고, 성경 읽기의 챔피언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으면 은혜 생활을 하게 되고, 믿음에 승리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자에게는 약속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을 지낸 워나 메이커씨는 백화점 왕으로 대단한 재벌입니다. 그는 십의 구조를 바쳤습니다. 십일조 바치기도 아까울 수 있는데 십의 구조를 바쳤습니다. 그는 통찰력이 있어서 어디에 투자를 하던지, 무슨 물건을 사던지 실패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신문 기자가 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워나 메이커씨, 당신은 통찰력이 있어서 늘 성공하는데, 당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귀한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열두 살 때 투자한 2불 50센트입니다. 그것이 생애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어디에 투자했습니까?"
"2불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습니다. 그 투자가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할렐루야!
베드로가 생각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세상이 아무리 탁하고 거짓 선지자가 아무리 많아도 진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일깨우고 신앙의 절개를 일깨우고 성경만 일깨우면 성도는 걱정이 없다. 얼마든지 승리하고 성공하고 복되게 살 수 있다.'
베드로가 이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가 베드로전서와 후서 이 둘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깨우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노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여기에서 스탑하지 말고 조금 더 확장해 나갑시다.
나의 진실한 마음, 내 신앙의 절개, 내 성경 읽기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 가정에서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교회에서 나의 충성, 회사에서 나의 맡은 일도 다시 일깨우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오늘 우리 삶의 모든 분야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화요일에 서울에서 중요한 일을 마친 후, 아내는 아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저는 창원으로 오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의 헤어짐이 얼마나 아쉽고 서러운지, 아내를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오려고 하니 마음이 참 안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혼자 오기 싫어서 아내가 탄 지하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창원에 와서 혼자 집에 들어서니 얼마나 허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계시면 아내가 있으나 없으나 행복해야 하는데, 허전해 해서 주님께 죄송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없으니 허전합니다.'
새벽 기도회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도 아내가 없으니 썰렁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아내에게 더 잘 하리라. 정말 아내에게 잘 하리라. 아내를 더 사랑하리라.'
아내가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 제가 자동차 문을 열어 주며 타라고 했더니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이 며칠 갈지 모르지만, 지금 제 마음은 끝까지 아내에게 그렇게 해 주고 싶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시 일깨우니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느슨했던 것을 일깨워서 잘 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아이 로제가 성탄절 전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성탄절 선물로 무엇을 줄 거야?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어."
아버지 어머니는 성탄절 선물로 장난감 한 세트를 이미 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자전거를 사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빨간 점토와 흰 점토로 예쁜 자전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카드를 써서 달아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자전거 가게의 문이 닫혀서 자전거를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자전거를 만들었다. 이 자전거는 나중에 진짜 자전거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성탄절 아침에 점토 자전거와 카드를 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진짜 자전거 필요 없어. 아빠가 만들어 준 자전거가 최고야. 진짜보다 더 좋아."
아버지가 잠을 자지 않고 4시간 동안 만든 자전거 때문에 아들이 감격한 것입니다. 또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너무 좋아서 세상에 있는 자전거를 다 사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금만 마음을 써도 아들이 감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딸에게 어느 정도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감격합니까?
자녀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일곱 살 먹은 아이가 워싱턴 주 법원의 판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판사님, 우리 아버지를 평생 감옥에 살게 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는 감옥에서 나오면 안 돼요. 우리를 너무 괴롭혀요.'
아버지 윌슨이 폭행을 해서 잡혀가자 아들이 판사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검사는 그 아버지에게 3년 6개월을 구형했는데, 편지를 읽은 재판장이 7년을 선고했습니다.
부모가 부모 노릇을 못하면 자식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러나 부모 노릇을 잘 하기 위해 조금만 애쓰면 자식이 감격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일깨워야 합니다. 성가대를 해도 일깨워야 합니다. 구역장을 해도 일깨워야 합니다. 헌금위원을 해도 일깨워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일깨워야 합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일깨우고 조금만 열심을 내면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쏘시개로 우리의 모든 분야를 일깨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활활 타오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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