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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돈 (3)
    2001-12-11 07:30:18   read : 86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복음 6:19-34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중에 요즘은 '너희를 위하여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과 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첫날 우리는 '돈은 축복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돈도 혹 축복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의미에서 복은 절대로 궁극적인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돈으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축복인 줄 알고 돈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사탄에게 속는 일입니다. 그 돈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그 욕심 때문에 죄를 짓고 사는 일은 참으로 우리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어리석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돈을 우스운 것이나 하찮은 것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기독교적인 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을 하였습니다.
    청빈(淸貧)은 훌륭한 것이나 반드시 가난해야만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무통장 무소유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말씀은 무조건 저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축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로 요셉의 꿈 해몽 이야기와 잠언 6장의 개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사인 저도 나름대로 저축을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설교가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파장이 컸습니다. 나름대로 깨끗하고 반듯하게 사는 줄 알았던 김동호 목사가 저축을 한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아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글들을 보면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돈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아주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돈을 무조건 복 인줄 알고 미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돈을 저축하는 것에 대하여 죄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떳떳하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돈을 무조건 축복이라고 믿고 돈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돈에 대하여 지나친 부담감을 가지고 그것이 지나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는 가를 생각해 봄으로 돈에 대한 기독교적인 생각을 정립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지난주간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성경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얼마나 써야 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써야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하여 과연 나는 어느 정도 돈을 쓸 수 있고 또 어느 정도까지 저축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지난 한 주 성경을 생각하며 찾아낸 기준과 원칙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돈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헌금과 구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과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름대로 발견한 것은 하나님은 헌금과 구제에 대하여 maximum으로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minimum으로 요구하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열의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하나님의 기준이 있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제2의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신명기 14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 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8-2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 년마다 십일조를 내고 남은 것의 십분의 일을 또 떼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구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제2의 십일조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가끔 부자들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그렇게 말씀하셨고 모든 사람에게 재산을 팔아 다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제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제시하신 기준이 바로 제2의 십일조입니다.
    제2의 십일조는 삼 년에 한번씩 하는 것이었음으로 그것은 계산하면 삼십 분의 일조가 되었고 그것을 매달 수입이 있는 사람의 경우로 환산하여 이야기하면 매달 수입 중 하루 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난한자를 위하여 떼라고 말씀하시는 구제의 기준은 한 달 수입에 하루 몫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달에 하루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한 달에 하루 몫을 구제하고 살면 나머지 수입에 대하여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악하고 바르지 못한 일에 쓰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 나머지를 자기와 가족을 위하여 쓰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어떠한 정죄와 비판도 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십일조 헌금과 한 달에 하루 분의 구제는 우리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으나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유로이 판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자유로운 돈으로 땅을 더 살수도 있었고 저축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그 어디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희년의 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바와 같이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왔습니다. 50년 희년이 될 때 모든 땅이 다시 원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종들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크게 이야기해서 희년과 희년 사이에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빈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땅을 팔아먹었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땅을 사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50년 희년이 될 때 다시 사람들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으로 돈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자유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그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가 쓴 '크리스천 스타트'라는 책에서 이미 밝힌 적이 있는데 오늘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이 소유에 대하여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동시에 전체적인 희년을 선포한다는 것은 아마 예수님 오실 때까지 불가능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동시에 희년을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 희년의 정신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 정직한 십일조와 어려운 이웃을 위한 구제를 하면서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 돈을 관리하면서 살아가다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갈 때에 그것을 하나님과 세상에 환원을 시키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이 바로 희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가난한 사람이 있는 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저들에게 주어야 하고 자신은 무통장 무소유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희년을 해마다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희년을 해마다 지키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50년에 한번씩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희년이 해마다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같이 희년은 50년 정도에 한번씩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미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저의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은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신식이라고도 할 수 있고 편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제 나름대로는 제 생각이 더 성서적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돈을 번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도 좀 이상한 느낌이 드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직업인이고 저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번 돈이라고 그것이 다 제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 집에는 여섯 식구가 있습니다. 여섯 식구가 제가 벌어 온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돈을 저희 식구들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월급으로 받은 돈이라고 그것이 다 제 돈이 아닙니다. 제 돈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 중에 육 분의 일입니다. 가족은 누가 돈을 벌었든 그것이 다 내 돈이 아니라 우리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벌었다고 그것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가족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이 내 돈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돈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벌기는 제가 벌었지만 돈은 공동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자녀와 가족의 권세라고 생각합니다.
    꼭 두부 모 자르듯이 돈을 그렇게 구분하여 쓰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는 좀 더 쓰고 누구는 그보다 좀 못쓰고 하지만 몫을 지어 이야기하라면 육 분의 일씩의 몫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육 분의 일을 생각했지만 어느 날부터 그 몫을 칠 분의 일씩으로 바꾸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당연히 식구의 몫이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버는 돈 중에 최소한 칠 분의 일 만큼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몫을 하나님께 드리며 삽니다만 최소한 하나님의 몫이 그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준은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칠 분의 일 만큼의 몫을 주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유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산이란 내 것을 아이에게 주는 것인데 칠 분의 일의 몫을 아이에게 주는 것은 내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을 아이가 가져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몫을 나누어주고 저와 제 아내는 우리 몫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그러다가 늙어 하나님 앞에 가게 될 때 그것은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얼마가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유산 안 남기기 운동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 자기 자녀들의 몫을 나누어주고 또 세상을 떠날 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간다면 넓은 의미에서 그것이 곧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는 80이 넘으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셔서 아직 당신 혼자서 전철과 버스를 타시고 교회를 다니십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 우리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가실 분입니다. 팔십이 넘으신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미 당신 수의를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작년에는 사진까지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동안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어머니 몫의 재산입니다. 저는 그 준비를 다 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제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이 우리 집에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시작만 되면 그것을 계속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정말 그것만 실천할 수 있다면 돈에 대하여 반듯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저축을 욕심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말 말씀 한 것과 같이 늙어서 남에게 폐 안 끼칠 정도의 저축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십일조와 하나님이 정하신 최소한 구제를 지킬 것입니다. 가능하면 그 이상의 헌금과 구제를 하면서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생각한대로 유산 안 남기기를 실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저는 물질에 대하여 자유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가능한 한 더 많은 헌금과 더 많은 구제를 위하여 노력하겠지만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면 먹겠습니다. 좋은 삶의 환경과 여건도 지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즐기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좋은 음식과 좋은 삶의 환경을 즐기는 여유를 일부러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음식을 탐하지는 않겠지만 금욕주의자가 되어 평생 험한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삼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일부러 자초하며 남에게 그것을 청빈이라고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가난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가난한 것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정직한 십일조와 한 달에 하루 몫의 구제 그리고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돈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도 많은 생각을 해 온 사람입니다. 돈에 대하여 반듯하지 못하면 신앙과 삶에 대하여 반듯하지 못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성경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사상과 믿음에 극좌와 극우가 있듯 돈에 대해서도 극우와 극좌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상과 믿음에 있어서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사람되기를 원하시지만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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