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안해 하는가! 10월 21일 2001-12-10 18:55:22 read : 881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왜 불안해 하는가! 시 42:1-5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1-5>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가지는 앞으로 한 세기가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한편에서는 모든 면에서 불확실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도로 발달하는 과학기술로 인하여 획기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21세기를 밝게 전망하는 측에서는 생명공학(生命工學)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인간의 유전인자(遺傳因子)까지 바꿔서 질병을 없애고, 장수(長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21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부터 예측하지 못했던 전쟁의 공포 속에서 전전긍긍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21세기는 테러와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감히 미국 본토의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회관이 그렇게 무참하게 무너질 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겠습니까?
1. 지금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점점 더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모두 미래를 낙관하기 보다는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 안에서도 만족해하는 사람보다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① 직업을 잃은 사람들, ② 미래의 대책이 서지 않은 사람들, ③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 ④ 질병 속에서 고통 하는 사람들, 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 ⑥ 입시를 앞둔 부모들, 모두가 걱정과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의 요소들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삶의 터전이 불안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게 보면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쟁 중에 있는 나라들이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들 속에서 사는 사람들, 어느 나라든지 불안은 다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라고 그렇게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미국으로, 미국으로 불안한 한국을 떠나 이민으로 나갔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미국 본토는 한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인가? 미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떻습니까?
미국이라고 절대 안전지대는 아닌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은 흰색 가루에 모두 떨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미국 뿐이겠습니까?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도 불안이 없는 곳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도 테러의 대상이 되었기에 모두 불안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막강한 화력의 첨단 무기와 이에 맞서는 작은 균이란 것에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벌레 앞에 도리어 막강한 화력이 불안해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이 전쟁은 하루 이틀 사이에 끝이 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무차별 무력의 힘으로 끝낼 싸움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사항전(決死抗戰)이기 때문입니다.
결사항전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두 죽기를 각오한 전쟁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이 폭탄이 되었고, 사람이 무기가 되었단 말입니다.
죽기를 각오한 종교적 신앙의 싸움이기 때문에 총칼로 정복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종교의 갈등으로 이어진다면 주님 다시 재림하는 날까지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재림의 주님만의 권능으로만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2. 그러면 오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① 돈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재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은행도 5천만원 밖에는 보증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은행도 안전한 곳은 못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은행이라면 절대 안전하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은행도 믿을 수 없게 되었으니 돈 가지고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도리어 돈 관리하느라 더 불안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②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을 술이나 마약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술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 해결책은 아닙니다.
술이 깨면 더 깊은 좌절과 근심과 불안을 낳게 할 뿐입니다.
③ 또 그렇다고 불안한 생각을 무력의 힘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무력의 힘은 파괴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안전하게 인도해 갈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지금 보면 모두 과학의 지식과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쪽에서는 지하 수십미터 깊이의 벙커까지 꿰뚫을 수 있는 폭탄으로 퍼붓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기술로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을 가지고 맞대응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마음의 근심과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데는 돈으로도, 술로도, 무력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 서입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 바란다는 말은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불안이 엄습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소망을 걸고 있는 자들을 실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많은 기적을 행할 때마다 무엇이라고 하였습니다.
① 네 믿음이 크도다.
② 내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③ 네 믿음대로 되라... 등등 모두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사람을 의식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보다, 사람의 생각들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이고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할 때, 그런 마음에는 불안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크게 보는 한 불안은 상존합니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담과 같은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코에서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당일에 그 도모가 헛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산(山)이 요동치 않음같이 영원토록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3. 그러므로 불안한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사는 동안 제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고 해도 악한 자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을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불신자들은 항상 호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조롱과 멸시와 그리고 박해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럴 때 성도들이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
시편 18:29절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뛰어 넘어야 할 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담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부터 입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 온갖 가로막는 <난관의 담>들이 있습니다.
좀 바르게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조롱하고, 모함하는 경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불안하고 낙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과 그의 도움을 의지하는 결단일 뿐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북군의 총사령관이었고, 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8년간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유리세스 그란트(Ulysses S. Grant,1822-1885)씨는 미국 역사상 위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을 지내고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재산을 모아둔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은퇴할 당시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당시 뉴욕 금융가에서 활동하던 친구에게 맡겼었는데 몽땅 사기를 당하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목이 불편하여 진찰을 받았더니 악성 암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수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에게 남겨줄 유산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쯤 되면 모두 약해지고, 불안해져 자포자기하는 경우들이 많지만 그란트씨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자기를 지켜주신 하나님, 그 많은 죽음의 골짜기들을 지날 때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지켜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침착하게 자기 남은 생의 기간을 회고록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8개월 후 그란트는 세상을 떠났으나 두 권의 책을 남기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죽은 후에 출판된 그의 회고록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당시 50만 달러의 수입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제 가족들은 그것으로 생애의 안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우리가 명심해 두어야 할 말은, '크리스천에게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불안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현실의 생활에서 낙심되는 일을 맞이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의 말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역경과 절망의 담을 뛰어 넘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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