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성령이 충만하여! 2001-12-14 10:47:26 read : 82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말씀 : 사도행전 4장 23-31절
촬스 피니라는 19세기 미국 교회에 대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위대한 목사는 성령 충만하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거짓된 생활, 특히 신앙 생활에 있어서 외식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2)숨기고 있는 죄, 다른 말로 하여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 사람입니다. 3)경박한 생활, 세상적이고, 육욕적인 생활에 빠져 신앙인의 품위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4)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 즉 성령을 거스르는 일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5)자기 사명에 태만한 것,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의 주장대로 살려는 사람들입니다. 6)성령 충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사모하는 자에게 풍성히 주시는 성령의 충만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7)성령을 소멸하는 행위, 즉 성령의 지시와 명령을 무시하는 것으로 네 번째의 경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8)성령 훼방 죄, 즉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라 성령에게 반항하기로 작정한 고집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9)목회자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전하는 말을 듣기보다는 비판하고 흠을 찾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촬스 피니가 정리한 교훈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충만함이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작은 그릇이기 때문에 넘치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라 차고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누구든지 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실 때에는 언제나 충만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성경은 자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도 충만이라고 하였고 4장에서 성도들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였을 때 성령이 임하심을 다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령 충만과 관계된 구절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 있는 말씀으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될,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촬스 피니 목사님은 성령 충만을 받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이 명령은 계속적인 명령입니다. 성령 충만은 한 번만 충만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속적이고 계속적인 명령입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성령에 충만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또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셋째 이 명령은 복수형으로 기록된 명령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이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명령입니다. 즉, 우리 중에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 분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이 필요하기에 모두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31절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누구나 다 받아야 하기에 받으라고 하셨고 누구나 다 받을 수 있기에 받으라고 하셨으며 누구에게나 다 주시기 때문에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현상과 술 취함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 사도행전 2장 13절에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도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술이 취하였다고 하는 것은 헬라어 원문에서는 한 두 모금 마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술에 흠뻑 젖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술에 흠뻑 젖은 사람들을 보셨습니까? 술로 인하여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이 완전히 마비되어 술기운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요? 술의 지배를 받아 술의 힘에 의해 움직여 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술 취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술 취함과 반대로 성령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그의 삶을 지배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이라는 개념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바울이 다른 곳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21절의 말씀과 내용적으로 평행을 이루는 부분이 골로새서 3장 16절 말씀입니다. 먼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3장 16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 성령의 충만이라는 표현과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는 것을 거의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오늘날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아서 어떤 특별한 일을 한다는 개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적으로 신자의 삶에 나타나야 할 삶과 인격의 변화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어떤 능력을 행할 것인가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인가, 즉 인격 변화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말씀의 지배를 받는 귀한 신앙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충만이라는 말의 충만은 '프레로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완한다. 채운다'라는 말인데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6절에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라고 하셨는데 여기 '붙인다'는 말씀으로 '프레로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이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하셨는데 여기 '채운다'는 의미로 '프레로마'라는 단어를 역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라는 말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채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채워 주시는가? 인생의 모든 연약함을 채우시고, 믿음을 채우시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채우시고, 은혜의 부족을 채우시고, 기쁨과 사랑을 채우시고, 새 생명으로 채우시고, 능력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하게 되어 천국에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령 충만의 증거를 오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상한 현상을 보았다거나, 아니면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는 것, 또는 이상한 느낌을 얻었다는 것 등으로 성령 충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또 그런 신비한 체험이 있거나 느낌이 있어야만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 충만은 인간의 오감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이시오 영이시기에 영적으로 그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오감을 이용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표준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성령 충만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토레이(R.A Torrey)목사님은 성령 충만을 위해 회개하고(행 2:38), 믿고(엡 4:30), 세례와 용서를 받고(행 2:3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 5:32), 강하게 사모하고(요 7:37-39), 간구하고(눅 11:13), 확신하라(막 11:24)고 말했습니다. 좀 더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극적으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죄를 범했다면 즉각적으로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 죄를 버려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방해하는 죄의 세력을 제거하면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영이신 성령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게 된 심령 속에 오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적극적으로는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갈구하며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고넬료의 가정에도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 충만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달아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성령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자들에게 분명히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사모하는 중 성령 충만함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수 받을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8장 16절과 17절에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하여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다고 하여 사도들이 성령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임재하십니다.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편협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먼저 하나님의 자녀됨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는 권세를 가진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에 속하게 되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영이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성령이 함께 하심을 늘 깨닫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여 언제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깨닫게 되고 이런 성령의 내재적 임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신앙, 언제나 변함 없는 신앙은 성령의 내주만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맡기지 못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성령은 단순한 거주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분이 지배자가 되어야 충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 집의 모든 방을 열고 성령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들어가실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그 집안의 모든 열쇠 뭉치를 그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손님으로가 아니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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