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교회 2001-12-13 21:10:16 read : 109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11월 18일
겔 47:1-12
등불 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km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습니다.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중환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굳은 땅도 비를 맞으면 부드러워지듯 완악한 인간의 마음도 은혜를 받으면 솜털같이 푸근하고 깃털같이 부드러워집니다. 비가 하늘로부터 쏟아지듯 은혜는 천상으로부터 내리고 비가 메마른 것을 윤택하게 만들고 죽은 것을 살리듯 은혜도 병든 것은 고치고 침체된 곳에 활력을 주어 새 사람 되게 만듭니다. 은혜는 생수 같아 마실수록 시원하고 받을수록 행복합니다. 은혜는 꿀과 같아 먹을수록 감미롭고 받을수록 새 힘을 얻습니다.
은혜는 카리스(charis)로서 눅1:30, 2:40, 요1:14의 말씀처럼 준다는 뜻입니다. ① 슬픈 자에게는 위로와 기쁨을 주시고 ② 고통 당하는 자에게는 안식과 평안을 주시고 ③추한 자에게 정결함과 아름다움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부터 약 2500여 년 전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잡혀온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영에 이끌려 환상을 본 기록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성전 문지방에서 본 것은 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큰 생수의 강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달라지고, 바꿔지고, 변화되는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 살리는 역사, 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생수의 강은 복음을 말씀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우리의 심령을 사로잡고, 왕성하게 우리의 가정으로 일터로 이웃에까지 만족하게 흘러 넘침으로 진정한 부흥의 역사, 살리는 역사를 맛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은혜의 강
생수의 강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에는 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령한 은혜의 강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전 전면의 문지방 밑에서부터 물이 나와 동으로 흘러간다고 했습니다. 동쪽은 하나님의 방향을 상징하는데, 그 물이 동으로 흐르다가 우편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린다고 했습니다. 남쪽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온 세상을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은 한 곳에 고이는 물이 아니라 흘러내려 점점 불어나는 물입니다. 물이 고여 멈추게 되면 악취가 나고 썩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혼자만 소유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해 받은 자, 하늘의 신령함을 깨달은 자는 다른 사람에게 이것이 끼치도록 해야 합니다. 나만으로 그치는 것은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 원리가 깨어지면 무너지는 것은 순간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린 물은 처음에는 발목에 미치다가 나중에는 무릎까지 올라오고 다음에는 허리, 그 다음에는 깊은 물이 되어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깊은 물은 건너는 게 아니라 헤엄쳐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가 발목까지만 차는 교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무릎까지만 잠겨서도 안 되고, 허리까지만 잠겨서도 안 되며, 은혜의 물결에 완전히 잠겨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은혜에 잠긴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은혜의 물결에 푹 잠겨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소견, 경험, 인간적인 것만을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비결은 숨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 숨쉬기가 꼭 필요하듯이 영적인 호흡 또한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늘 있을 때라야만 영적인 호흡, 생명 유지가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 생활의 중심이 성전입니다. 교회나 신앙이 삶의 한 부분이거나 악세사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의 생활이 앞서서 잘 되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생활의 균형이 잡히고 풍성한 축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 질서가 있고,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일 잘 되는 것 같아도 영적 원리가 깨어지면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영에 이끌려 따라간 그 사람이 돌아가 보니 강 좌우 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았습니다. 거기서 그때 그는 이상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의 내용이 8절부터 본문 마지막 절인 12절까지의 내용이며 이것이 오늘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핵심입니다. 전체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본다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흘러가면서 이르는 곳마다 모든 동식물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12절에는 강 좌우에는 여러 가지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그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며 심지어 그 잎사귀조차 약의 재료가 된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관한 이 환상은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그들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림으로 벌을 받아 하나님을 모르는 군인들에 의해 다 파괴되고 그들의 말 발굽아래 짓밟힌 다음 그냥 황폐해진 상태로 놓여 있었는데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새 성전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환상은 곧 유다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알려 주시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즉 생명의 물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설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 성전의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그 물을 마시면 모든 동식물이 행복하게 살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 진리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이 물은 우리가 보통 마시는 "물"(water)이 아니라 "진리"(truth)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라는 동네의 한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한 여인의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대화 중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나니 나의 주는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란 우리가 먹는 그러한 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곧 진리를 말하는 것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디에 정말 좋은 약수터가 있다고 들으면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 말이 기쁜 소식이듯이...
인간 이성을 예찬하면서 무한한 세계로 열심히 달려가고는 있지만 세상은 아무리 보아도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인간의 이성과 교육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리라 예상하였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어서 고민과 좌절에 빠져 있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곧 시원한 물이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진리이기에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곧 선포되는 말씀은 분명히 복음이며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새로운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하나님을 거부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가 보내신 자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믿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기는 하는데 왜 이렇게 나의 삶이 어려우냐? 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면 풍성한 삶이 되고, 달마다 과실이 열리고 한다는데 나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보면 너무 힘들고 암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하여 믿음의 삶을 시작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생의 모든 문제가 없어져서 약한 사람은 저절로 건강하게 되며 학생들은 저절로 공부 잘하게 되고 사업 자금도 저절로 다 해결되고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바로 그 날부터 이렇게 만병통치약처럼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란 이제까지 허무와 방황 속에 살던 사람이나 자기 중심적으로 교만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살던 사람이 하나님은 없다고 소리치며 인간 지상주의니 이성지상주의니 하며 살던 사람이 이제 겨우 바른 삶으로 들어간 것이며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에 그의 생명이 그의 영혼이 사망에서 영생으로 구원받은 것이지 그의 모든 현실에 항상 복을 주신다는 보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믿음의 현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마음에 모시기만 하면 성경 공부를 안 해도 성경을 저절로 다 알게 될 것처럼 착각하고 기도를 안 해도 저절로 다 이루어질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나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내 마음 속에 모시고 살지만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만 살아왔다면 그런 분은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누군가가 당신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열심히 기도 안 했는데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좋아졌다면 아내가 기도해 주었던지 남편이 기도해 주었든지 아니면 부모님이나 아니면 자식이 기도해 주었든지 아니면 친척이나 친구가 기도하여 주었든지 아니면 교회의 목회자나 교우들이 기도하여 주었든지 간에 누군가의 기도가 있었기에 여러분의 삶이 나아졌고 풍성하게 되었지 그냥 저절로 잘된 것이 아니란 점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중에 목발을 집고 다니는 분들은 아무 것도 없이 잘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목발을 집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제 일어서서 다녀볼까" 부러워하고, 침대에 누워서 팔이나 다리가 달아 매여서 꼼짝못하고 누워있는 사람들은 "나도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녀 봤으면" 하며 부러워하고, 또 온 몸이 다 마비되고 머리만 살아남아서 주는 밥 먹고 누워서 꼼짝못하는 전신불수인 사람은 그렇게 달아매고 있는 사람이라도 부러워하고,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식이 없는 사람의 가족들은 머리라도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내 가족은 언제 눈을 떠서 나와 눈을 맞추며 언제 나와 대화를 나눠볼까"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건강상태가 얼마나 사람마다 다르고 생명력이 얼마나 부러움이 되는가 하는 것을 그 이야기 가운데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생명력이 중요한 것 같이 영적인 생명력도 중요합니다. 영적인 생명력은 성령께서 우리 속 사람이 우리 가운데 형성될 때에 시작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속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 치유하고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시켜서 강건하게 하십니다.
속 사람의 쇠약
영적 생명력은 속 사람이 형성되면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속 사람도 영적 생명력도 쇠약해 질 수가 있고 우리 육신도 쇠약해 질 수 있습니다. 육체의 건강이라는 것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식사, 규칙적인 잠, 규칙적인 운동과 건전한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건강한 체력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게으르고 어리석어서 규칙적으로 식사하지 않고 게을러서 운동도 하지 않고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면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금방 병이 들고 생명력이 약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조금만 추워지면 금방 감기에 들고, 과로해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금방 몸살이 오고, 밥이라도 한 끼 안 먹으면 눈이 쑥 들어가고 허덕이게 되고, 어쩌다 하루 잠을 자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리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육신은 굉장히 연약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육신뿐만 아니라 속 사람, 영적인 상태도 연약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생활이나 말씀생활을 소홀히 한다든지 주일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한다든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면 속 사람이 금방 쇠약해집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태산을 옮길 확신을 가졌는데, 그만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면 마음 속에 회의가 들어가서 흔들흔들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따라서 혹은 교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시험 들어서 낙심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사람보고 시험 들어서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주위 환경에 쉽게 흔들리고 낙심해서 영적인 생명력이 약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되어서 신앙의 연조가 오래된 분은 특별히 더 영적인 생명력을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연조는 깊은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약해지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성령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영적인 생명력이 약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길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하지만, 그래서 외적인 모양은 갖추었으나 주님께로부터 멀어져서 그 속에 영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력이 없어진 채 사랑과 열정은 다 사라져 버리고 껍데기만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별다른 감동이 없고, 찬양을 해도 건성으로 하게 되고 기도를 해도 내가 지금 무슨 제목으로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기도하고, 신앙생활이 활기가 없어지고 맥빠진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고 영적인 생명력이 그 가운데에 빠져버리고 없어지면 영적인 식물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은 신앙생활 하면서 내 신앙생활이 타성에 빠져서 맥빠지고 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늘 점검해 봐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는 영적인 생명력이 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역사가 길어지면서 인간적인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게 되고 그 속에 영적 생명력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역사와 전통은 자랑할 만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와 전통 속에 영적인 생명력이 들어있어야 그것이 유용한 것입니다. 그저 역사와 전통만 있고 영적인 생명력이 없다면 백해무익한 것이 되고 맙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어떤 기관의 수명(Life Cycle)을 일반적으로 한 오십 년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도 이제 47년을 지나 50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처음 예수 믿고 세례를 받을 때의 그 감격과 열심, 처음으로 은혜를 체험했을 때의 각오와 다짐과 결심, 영성훈련을 받고 일생 처음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과 은총에 대한 결단과 헌신의 다짐, 그리고 장로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교회의 중요한 직책과 직분을 받을 때의 새로운 각오와 결단과 헌신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각오로 영적인 생명력이 왕성한 교회, 은혜로운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가 그 속에 영적인 생명력이 약해지고 죽어지게 되면 겉모습은 아무리 아름답고 탄탄해도 개인이나 그 교회는 식물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교회 속에 역사 하셔야 영적인 생명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든 교회를 치유하고 회복시키시고 영적인 부흥과 영적인 회복을 그 가운데에 허락하시며 영적으로 강건케 하십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여러분들의 속 사람을 치유하시고 여러분들 속에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시키시고 강건케 하심으로 인해서 영적인 생명력이 넘치는 성도들, 영적 생명력이 넘치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영암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는 말씀은 우리 영암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통하여 공급되는 생명의 물을 늘 마시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또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로운 교회생활을 이루어 가시며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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