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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감사지수
    2001-12-13 21:05:51   read : 111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10월 14일
    엡 5:20-21





    예전에는 그 사람의 특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지수로 IQ(지능지수)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IQ 하나만이 아닌 다차원적으로 접근해 개인의 특성과 행동양식을 보다 객관적으로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일고 있는데, 그 예로 EQ(감성지수)와 PQ(인성지수), MQ(도덕성지수), HQ(건강지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척도를 생각하면서 TQ(감사지수)는 어떠한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요즈음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다",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요즈음 나는 살맛이 납니다." 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지난주간에 구역지도자 수련회를 가지면서 설악산 한계령을 지나 주전골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계곡이 끝나는 길 끝에 가게에 나물류와 약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오미자라는 말려진 붉은 열매가 됫박에 담겨 있었습니다. [본초학]에서는 "껍질의 신 맛, 과육의 단 맛, 씨의 맵고 쓴 맛, 전체적으로 짠맛이 있어 다섯 가지 맛의 오미자라 한다"고 말합니다.




    맛에는 이런 것만 있지 않지요. 어떤 사람은 돈버는 맛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고통을 맛으로 알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사는지요? 진실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은혜 받는 맛으로, 은혜 받은 감사로 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무슨 맛으로 살고 있습니까?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은혜




    우리는 흔히 은혜는 특별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은혜는 모든 사람들이 받고 있습니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은혜를 깨닫는 자만이 "내가 은혜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사랑이요,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은혜는 창세 전부터 내게 임했으며 이 은혜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영원한 날까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헷세드"라는 말은 "하나님의 긍휼과 인애"라는 뜻인데 이것이 바로 구체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에서 흘러내리는 모든 행위가 다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된 그 큰 사랑이라고 말했으며,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가 곧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믿음으로 받고 사랑으로 풍성해지면 소망으로 결실한다고 말합니다. 믿음, 사랑, 소망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내가 사랑함으로 풍성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은혜를 날마다 고백하고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산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다면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온통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싸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은혜고 저것도 은혜구나!" 이렇게 고백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게 되면 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 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상적인 설렘을 가져다 주는 말




    사람들이 쓰는 말 가운데 환상적인 설렘을 가져다 주는 말이 있는데 다름 아닌 "행복"이란 단어입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좋아하고, 갖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없이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의 정체성을 바르게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란 말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그 정체성이 너무나도 여러 가지 내용과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 광야교회의 지도자 모세를 세상에서 부르기 직전에 그를 통해 자기 백성 여수룬(이스라엘)을 향하여 "행복자"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결코 지나가 버리는 예찬 정도나, 위로하고 달래주기 위한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여수룬이 받은 실제적 행복을 사실적으로 말해주는 무게 있고 내용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행복자라고 부르셨다면, 그 결과 이스라엘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받아 누리는 피조물




    사람들은 자주 자주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또 인간 자신이 행복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결코 행복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고, 또 인간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산물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행복이 우연의 산물일 수도 없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행복을 받아 누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인생 행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인생들이 받아 누린 행복의 법칙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생이 행복하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행복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컨대 영생의 행복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독생자 예수를 영접하는 믿음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람된 제일의 본분은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전 12:13).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은 부모를 공경하는 법칙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출 20:12). 물질 축복의 행복은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말 3:10). 부부간의 행복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을 향한 아내의 순종이라고 하였습니다(엡 5:22-26). 그러므로 결코 행복은 인생의 독자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에게 준비하신 축복입니다. 인생은 그것을 받아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행복수용의 법칙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산소를 마시는 호흡의 법칙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매우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 말씀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범사에"라는 말과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 앞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 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고 얼마든지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진지하게 이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 가는 아내를 쳐다보는 남편이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까요?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될 어린 장애아인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부모가 그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까요?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까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입장에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 말씀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이상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태도로 이 말씀을 넘겨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놓고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꼭 깨달아야 됩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왜 항상 감사하라고 하시는지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변명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한번 여러분 마음에 되새겨 보십시오.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저 무지하고 잔인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흘만에 그를 죽음에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은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기가 막힌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그 예수님을 우리는 마음에 모시고 삽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예수님 한 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이 나에게 없다 할 지라도 나에게 예수님이 계신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설혹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지라도 예수님 한 분만 소유하고 그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조건에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이 말씀이 나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밀치면 안됩니다. 만약 지금까지 예수님 때문에 범사에 항상 감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면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고쳐야 됩니다.




    우리나라에 송명희라는 영감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만히 음미를 해 보십시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중에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 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수준에까지 올라가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자기 뜻대로 다 소원성취 하는 사람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그와 같은 사람들 중에 진정한 감사를 하는 사람을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뒤따라 보내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 저는 못하겠는데요." "잔소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해. 내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줄께."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라." "어떻게 항상 감사합니까?" "할 수 있어. 내가 네게 능력을 준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명을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결론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만큼 믿습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옵니까? "하나님, 제 앞길 캄캄하지만 주님이 제 앞에 있는 구름을 걷어내고 어둠을 쫓아 주실 날이 올 줄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시니 이런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의 믿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큰 믿음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감사하는 것만큼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크고 넓은 집이나 아파트에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초라한 집이나 좁은 아파트에 살아도 눈만 뜨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그 입에서 찬송이 나올 정도로 주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을 가지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아갈 수 있습니까?




    은혜 받은 자는 바치게 됩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은혜를 받으면 바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어디에서 솟아오릅니까? 그것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빚진 자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시는 입장에서는 긍휼이요, 받는 우리는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거저 받으면 은혜를 헛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은혜 되게 받으려면 반드시 은혜를 빚으로 받아야 하고 은혜 받은 자는 빚진 자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빚이 되었다면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은혜를 참으로 받으면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라 내 일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대상29:9)




    예수 믿고 즐거움을 얻어야 됩니다. 즐거운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즐거워하면 주님께서 "야, 네가 나를 보고 즐거워하니 내가 행복하다. 너와 함께 영생하기를 원하노라." 하실 것입니다. 바치는 자만이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바치지 않고, 마음을 바치지 않고, 물질을 바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즐거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치는 사람입니다.




    즐겁게 사는 남편이 누구입니까? 아내에게 무엇인가 줄려고 하는 남편은 즐겁습니다. 즐겁게 사는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헌신하고 무엇인가 사랑으로 봉사하는 아내는 그 마음이 즐겁습니다. 회사에 가서 자기 마음을 바치면서 회사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갖지 않으면 직장생활이 즐겁지 않습니다. 자기의 마음과 몸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바치면서 헌신적인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하고 다릅니까? 세상 사람하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이 심합니다. 불평은 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계속 감사가 나옴으로써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감사가 없습니까? 그러면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강합니다.




    어느 천성적인 장애를 안고 나온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실 말이 아닐 것입니다. "복은 무슨 복인가?" 우리는 당장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애 때문에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모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 남편이 예수 믿고 돌아왔습니다. 아마 애가 저와 같이 되지 않았으면 아빠는 예수 안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애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만큼 강한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누가 이 사람을 꺾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꺾을 수 없습니다. 독 이슬 스며드는 잡초 속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반드시 우리는 행복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클로버가 아주 작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은 진실도 진실이고, 작은 행복도 행복이듯이 행복의 네 잎 클로버가 비록 작을지라도 우리는 그 클로버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비록 잡석(雜石)과 같을지라도 감사의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듬으면 시간이 벗겨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대리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좋아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 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세상 사람 앞에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돌아가셔서 의도적으로 감사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무조건 감사할 수 있어." 하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불평하던 것을 감사하면, 지금까지 남을 원망하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만족하지 못하던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날보고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나는 감사해야 돼.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돼." 하면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강해집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매력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런 멋있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걱정




    혹시 마음에 걱정이 있으신가요?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는지 또 작년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는지 돌아보면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작은 모래알로 시작해 산더미가 되어버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툭 털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장미와 가시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 가사 중에 "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우리는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서 진정한 감사가 우러나지 않는 까닭은 바로 마음을 비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매일 죽을 때 진정한 삶인 영생을 얻게 됩니다. 매일 욕망을 포기하는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욕망을 제거하고 비울 때 그 안에 천국이 깃들고,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게 되고, 평화와 사랑, 기쁨과 소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좀더 마음을 비워 밝아진 영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준비하는 삶, 그 나라를 지향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행복한 이유는 충분하고 확실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주의 발아래 앉아서 그 말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과 감사의 수중에 있을 때 확실해집니다. 그 감사지수가 높은 그리스도인일수록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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