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의 후원자들 2001-12-13 21:01:35 read : 1076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9월 23일
롬 16:1-7
사소한 것의 진실
어떤 청년이 숲 속에서 애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나 애인이 보고 싶은지 못 견딜 정도로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때 한 난쟁이가 나타나서 그 청년에게 노란 조끼를 주면서 유혹했습니다. 이 조끼를 입고 단추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인이 빨리 보고 싶었던 그 청년은 얼씨구나 하고 그 조끼를 받아 입고는 "빨리 애인이 왔으면"하고 단추를 돌렸더니 애인이 바로 옆에 와 있었습니다. 청년은 너무나 신이 나서 "빨리 결혼을 했으면", "예쁜 딸아이를 하나 가졌으면"하고 계속 단추를 돌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단추를 더 돌리다 보니 어느새 이제 한 번만 더 돌렸다가는 자신이 늙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청년은 몇 번의 큰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만약, 단추를 왼쪽으로 돌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단추를 왼쪽으로 돌렸더니 숲 속에 옛날 청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아름다운 숲 속의 여러 나무들과 꽃들이 보이고 꽃향기와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신선한 공기를 느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가까운 내 주위에 얼마나 신기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느끼며 즐겁게 애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람의 사랑의 손길과 은혜와 기도와 성원과 격려가 있었고, 좋은 환경과 문화의 혜택을 입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요인들은 우리의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본 교단 총회가 한 주간 명성교회에서 진행되었는데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인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총회장에 선출된 청주의 최 목사님은 지금은 고인이 된 어머니의 은혜의 덕을 감사하면서 세 아들이 목사와 장로가 되어 함께 교단 총회에 참석하게 된 것과, 세상 길로만 향하던 장애이신 아버님을 위해 평생 기도하시던 중 감동을 받고 변화되어 교회에 들어오셔서 수십 년 동안 교회를 충성스럽게 장로로 섬길 수 있게 된 모든 일들과 자신이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하신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는데 그 어머니가 바로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인 것입니다.
좋은 후원자를 만나는 축복
밀레는 돈 때문에 누드화를 그려 팔았는데 그 일 때문에 항상 고민을 하다가 단단히 각오하고 누드화 그리기를 포기했고 그 일로 생활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그의 친구 루소가 그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밀레! 아는 친구가 그림을 사 달라고 3백 프랑을 주었네. 저 그림을 주게." 뜻밖의 일로 인해 밀레는 그 해 겨울철을 비교적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밀레는 루소의 집에서 우연히 3백 프랑에 판 자기 그림을 보게 됩니다. 밀레는 나중에 크게 성공한 후, 그때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조용한 후원은 한 사람의 성공의 문을 여는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좋은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농축해 놓은 책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로마서 16장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더불어 수고한 일꾼들입니다.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함께 수고했기에 저들의 이름은 사도 바울의 기억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이 세상적인 부와 명예가 있어서 바울이 마음을 준 것이 아닙니다. 16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탁월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16장을 통해서 한가지 더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다면 하나님의 일은 절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꾼이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아시아와 유럽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기 혼자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절대 혼자일 수 없습니다. 내 믿음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사람은 힘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함께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은 산을 옮길 수 있는 위대한 사람입니다(마18:19).
힘을 빼는 판단자, 힘을 주는 후원자
살면서 어떤 분은 판단하기를 좋아하지만, 어떤 분은 후원하기를 좋아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두 종류의 전혀 다른 형태의 교인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은 다른 교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훌륭한 교인입니다. 반면에 어떤 교인은 다른 교인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성도는 근심거리가 되기보다 남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낙심될 때 모세의 팔을 바쳐주던 아론과 훌과 같은 기도 후원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론과 훌처럼 양쪽 옆에서 기도하는 팔을 받쳐주기는커녕 기도하는 팔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오히려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힘을 빼는 판단자가 아니라 힘을 주는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진실한 사람입니까? 무엇보다 조용히 후원하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최선을 다해 돕는 분이 있습니다. 복된 태도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남을 밟고 희망을 쫓습니다. 타인을 조용히 후원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후원자 뵈뵈
오늘 본문이 나오는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의 진실한 후원자 명단이 나옵니다. 유명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보석과도 같은 귀한 이름들입니다. 위대한 사람을 보면 뒤에는 대개 이런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꼭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후원자 중에서 몇 사람만 살펴보고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이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 뵈뵈입니다. 얼마나 훌륭하면 바울의 아름다운 기억창고에서 그녀가 제일 처음 나오겠습니까? 그것을 보면 뵈뵈가 얼마나 사도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겐그레아 교회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지도자의 추천은 성공의 제일 요소입니다. "뵈뵈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바울의 이 한 마디로 뵈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영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원자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를 축복의 자리로 이끌어주십니다.
계속해서 2절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는 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보호자(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뵈뵈 집사는 비교적 부유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바쳐 바울의 선교를 돕고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쓴 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하는 역할도 한 헌신적인 여집사였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뵈뵈 집사는 기도하는 집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후원도 기도의 후원보다 효과적인 후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의 진정한 보호자다운 모습은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후원자는 어려운 순간에 그 어려움의 일부분이라도 맡으려고 합니다. 바로 그런 후원자의 태도가 어려운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작은 몸짓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고 구경하기보다는 문제를 떠맡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어려울 때 연약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을 지켜주는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었을까요?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뜻입니다. 왜 교회에 먼저 있게 하셨을까요? 나중에 온 사람을 돌보라는 사명인 줄 믿습니다. 왜 나에게 물질을 주셨을까요? 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왜 형이 되게 하셨을까요? 그것에는 동생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지켜주지 않고 시기하다가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못 살고, 조금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게 보면 우리는 다 한 가족 아니겠습니까? 누가 나보다 나으면 좀 어떻습니까? 그를 위해 십자가도 질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성도인데 시기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선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을 시기해서도 안되고,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앞선 사람들은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신앙의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행실로 배우자와 자녀를 인도하고, 나중에 등록한 교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쁜 신앙의 모델이 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을 조심하고 그들을 세워줄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따뜻한 말과 태도로 형제를 사랑하고 섬길 것을 원하십니다. 이제 나의 말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맙시다. 우리의 말 한마디의 후원이 사람에게 큰 힘을 주고 주님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약 100년 전 한 미술학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애를 드리기 위해서 신학교에 가게 됐고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돕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처음에 그가 섬기던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신학생으로서 처음 하는 설교를 두고 교인들은 설교가 어떻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한 비판적 얘기를 몇 번 듣고 그 젊은이는 결국 좌절하고 목회를 포기합니다. 그런 마음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그는 다시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가 나중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로를 잘 바꿨어!"라고 말했지만 고흐의 전기작가는 주장합니다. 고흐가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아서 그가 만약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면 인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를 잃었다고 주장합니다. 격려해주십시오. 그러한 격려를 먹은 사람이 힘을 얻고 내일을 개척하게 됩니다.
진정한 보호자가 되려면
그리고 뵈뵈처럼 진실한 보호자가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믿어 주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믿음을 주소서!"라고 기도만 하지말고 그를 믿어주십시오. 내가 믿어주면 반드시 그 사람은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사는 바로 굳건한 믿음을 가진 분입니다.
얼마 전 나온 책 중에 "CEO가 되는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잭 웰치 회장의 성공 비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말한 성공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아도 어머니만은 항상 그에게 믿음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반드시 잘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나는 믿는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후원할 때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야 합니다.
의심이 들면 채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채용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들면 결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물론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믿어주십시오. 의심하는 것은 사실 속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이고,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부모나 배우자나 동료가 되려면 정말 믿어주십시오.
행복한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계속해서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성경에 여러 번 이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항상 부부의 이름이 같이 나옵니다. 그만큼 부부가 협력해서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사역을 후원했다는 증거입니다.
원래 브리스길라는 귀족 출신 부잣집 딸이었고, 아굴라는 천민 출신 종이었습니다. 아마 아굴라의 듬직한 모습에 반해 우여곡절 끝에 둘이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들의 로마 추방 명령이 내려지자 브리스길라는 남편을 따라 이민을 작정하고 고린도에 정착했다가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복음을 위해 죽도록 헌신하는 부부가 됩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길래 이들을 이토록 고생의 길로 들어서게 만듭니까? 이 부부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고, 자신의 행복조차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 내버릴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4절). 그들은 행복을 포기했지만 실제적으로 그 부부는 가장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키고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결국 귀족 출신인 브리스길라의 인도로 천민 출신인 아굴라는 큰 인물이 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굴라는 초대교회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내들은 남편이 신앙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남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뭔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이 믿지 않는 남편에게 주님의 기쁨을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주 무뚝뚝한 남자였습니다. 거기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때문에 행복해요. 당신 만난 것이 정말 행복인 것 같아요." 그랬더니 남편이 "와카노 니 미쳤나?"라고 핀잔을 주더랍니다. 그래도 모른 척 하고 다음날에도 또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하고 결혼한 것을 어제 곰곰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앞으로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또 결혼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또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는 "여보! 사실은 나도 그래!"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 더 합니다. "잘 알았어, 앞으로 나도 교회가 나가 볼게"라고 말하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 믿어라 권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는데 말을 바꾸니까 통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정말 행복해요." 이 말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애교심을 가지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징징거리면서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당신과 결혼한 것이 역사적인 실수야!"라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내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 행복한 눈으로 보면 천국이 펼쳐지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나로 눈물 흘리게 하는 부모, 남편, 자녀도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사명에서도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부부는 마음도 함께 할 뿐 아니라 사명에서도 함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부부의 집에서 일년 반 동안 머물었는데 이 일은 부부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행18:2,3). 아무리 선교사라지만 어느 누가 자기 집을 1년 반 동안이나 제공하겠습니까?
또한 사도행전 18장 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떠날 때에 이들 부부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섬기는 교회를 따라 집까지 이사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부부가 사명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아내였던 브리스길라의 역할이 단연 컸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아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이 남성 중심의 사회인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 따라가는 경우도 많지만, 남편이 아내 따라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면 가정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습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를 여자가 조종합니다. 아내의 일이 남편의 일에 비해서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명성왕후 보십시오. 드러난 활동은 남자가 하지만 조종은 뒤에서 여자가 합니다. 일은 남자가 해서 돈을 벌면, 돈은 여자가 쥐고 있는 통장에 고스란히 입금됩니다. 명예는 남자 것이고, 실익은 여자 것이라는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아내의 힘이 큽니다. 그 큰 힘으로 남편을 영적 일꾼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이 부부는 자기 집을 가정 교회로 제공했습니다.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헌신한 것이지만 크게 보면 복이 넝쿨째 굴러오는 태도입니다. 흔히 인간관계를 하면서 아주 중요한 것은 마음 문을 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 문을 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 가정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내 가정을 예배 장소로 공개할 때 하나님은 그 가정에 더욱 축복을 예비해주실 것입니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여러분! 믿음의 형제를 집으로 많이 초청해 예배도 드리고, 기도와 교제도 하십시오. 내 가정이 한번이라도 더 예배처소가 되고 기도처소가 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목숨 걸고 헌신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아마 이 부분을 쓰면서 바울은 이 부부의 헌신을 생각하며 울먹였을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양은 목자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관계가 진정 복된 관계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로만 헌신하면 안됩니다. 진짜 헌신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 부부의 용기 있는 헌신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선교와 구제에 같이 헌신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서 힘껏 도와야 합니다. 도우면 내 인생에 손해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은 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출이 잘되면 국내 경제도 잘되고, 수출이 막히면 국내 경제도 어려워지는 것처럼 선교를 잘하면 영혼이 건강해지고, 선교를 하지 못하면 영혼이 침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도 선교하는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세계적 안목을 가진 훌륭한 자녀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며 선교비를 기쁨 마음으로 담당하시는 분들, 인재를 양성하는 일, 신학생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장학금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그 값진 헌신을 그 후손에게까지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 에배네도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신앙 열매였습니다. 처음 신앙 열매가 특별히 소중한 이유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장 충성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헌신을 아는 충성된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집니다.
일반적으로 충성을 판가름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오랫동안 함께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둘째, 작은 일에도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내려놓아도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 어려운 때에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충성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충성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먼저 절교 선언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복과 절교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리더가 나를 내치지 않는 한, 나는 리더를 붙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랫사람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아랫사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들어도 먼저 절교 선언을 하지 않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함과 인내와 충성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세 가지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좀 더 참을 걸" 하고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좀 더 참지 못해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참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후회는 "좀 더 베풀 걸" 하는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막상 죽을 때가 되고 보니 한평생 아등바등 하며 쌓아 놓은 것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갈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작 하나님 앞에 설 때 내게 남은 것은 나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쓴 것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하늘나라 문전에 서고 보니 하나님께 바친 것만 내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색하게 살지 말고 좀 넉넉하게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좀 더 소중한 삶을 살아볼 걸"하며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좀 더 생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남을 괴롭히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귀하고 소중한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막상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그것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있을 때 참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시간과 물질이 있을 때 봉사해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배우자나 여러분의 가족들에게도 더 큰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 옆에 앉아 계신 교우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일치시키는 사람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말하기를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은 바르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한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일치시키는 사람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는 사람이 복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못했을 때에도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때 더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 16장을 보면서 선교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바울과 목숨을 걸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했던 귀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선교하고, 또한 최선을 다해 선교사역을 후원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과 그의 후원자들을 동시에 축복하시고, 그들을 높여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용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되어 축복을 예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장기기증자의 유언
우리교회의 어느 장로님께서 참으로 감동스럽게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 글썽이며 읽은 시를 홈페이지에 올린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하직하게 될 어느 분이 하나님께 자기의 몸을 번제로 드리는 시 같습니다.
"나는 땅에 묻히지 않으렵니다.
흙에서 왔으나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렵니다.
혼돈의 공간에서 살아 숨쉬던 생의 세계로,
영의 세계로,
바람에 휘날리며 가렵니다.
나는 살아서도 죽지 않고,
죽어서도 죽지 않으렵니다.
죽음으로 이끄는 어둠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무릎 꿇지 않으렵니다.
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뛰었던 생의 기운을
이 세상에 남기렵니다.
한없는 울음과 함께 했던 심장은
가슴 아파 평생 뛰어보지 못한 심장병환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거기서 한없는 기쁨으로 마구 뛸 것입니다.
첫 사랑의 아픔에 눈물겨워 쏟아내던 내 눈은
어두움에 갇혀 빛을 갈망하는 맹인의
몫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밝고 빛날 것이 있다는 소망을
그이가 갖게 되기를 빕니다.
흙에 들어갔다면 반세기도 못되어 썩어 버리고 말 내 주검은
히포크라테스 화타를 꿈꾸는 의학도의 손에
맡겨질 것입니다.
그들이 할 맹세에 사랑과 진실과 인간애가
담기길 바랍니다.
이리 하여도 남겨질 내 몸 조각이 있거든
모아 모아 그 누군가가 태워 주길 바랍니다.
이생에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번제를
준비하렵니다.
주님, 하늘 높이 올릴 땅의 마지막 소산을
받으시렵니까."
성도 여러분! 극단의 이기주의의 삶을 사는 이 시대에도 세상의 소외된 자들을 위해 보호자가 되어 물질로 후원할 성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목숨까지라도 주님과 몸된 교회를 위해 드릴 수 있는 생사를 같이 하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집까지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그저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는 의미 없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각자의 맡겨 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신앙으로 다듬어 가는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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