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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교훈, 신앙의 교훈
    2001-12-13 21:00:18   read : 110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9월 16일
    출 17:8-16





    전쟁은 비극




    미국인들에게 지난 화요일 아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최초로 전해진 CNN방송의 이 뉴스꼭지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아니 차라리 영화의 한 장면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장면은 아마도 오랫동안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참 엄청난 충격이며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 세계 최강국의 심장부에 이런 어마어마한 테러를 가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지난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세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압도하는 현실의 지옥에, 경악과 공포를 넘어 악마적 전율이 온몸을 엄습했습니다. 그것은 문명에 대한 도전, 또는 붕괴를 암시하는 듯 불길했습니다. 거대한 빌딩의 심장부를 꿰뚫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비행테러가 텔레비전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그 날, 거대한 빌딩의 힘없는 함몰에 인간성도 여지없이 함께 추락했던 그 날 이후, 우리에게 과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강한 응징, 초강력 보복, 전쟁 불사 등 그 어느 말도 망연자실한 우리를 위로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증오에 가득 찬 말들에 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는 모두 경악에서 분노로 치솟는 감정과 함께 우선 보복, 그것도 아주 처절한 보복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복은 결국 또 다른 분노와 응징을 낳을 뿐이기에 심한 절망감과 허탈감을 느낍니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알기에 뭇 동물들과 다르게 도덕적이라 하지만, 어쩌면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잔인한 동물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어온,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의 가슴 속 어느 곳에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 테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미국이 테러범과 배후세력에 대한 강력한 응징과 보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번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테러공격에 책임이 있는 집단이나 국가를 응징하겠다고 말함으로서 단순한 군사적 대응을 넘어 전쟁까지 불사할 태세입니다. 한 조사에서는 미 국민 94%가 군사적 행동을 지지했으며 10명 중 8명 이상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더라도 군사적 행동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테러를 전쟁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해서 보복, 또한 전쟁수준의 응징을 할 것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행동으로 이미 옮기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미 국민들 80% 이상이 보복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어서 그 정당성과 지지를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목소리가 일어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말처럼 보복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보복의 뒤에 따르는 위험부담도 미국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보복이 또 다른 테러로 번질 것인가 하는 것은 미지수이지만 그 같은 테러가 이번 보복으로 인해서 완전히 없어질 것인가 하는 것 또한 미지수임을 미국은 알아야 합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도리를 못한 소수로 인해서 아무 죄 없는 대다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태러가 발생했을 당시, 그때에도 자신의 본업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일했을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다시 말해 우리의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우리도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은 철저한 수사와 정보를 바탕으로 보복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까지 보복을 내세워 학살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말처럼 보복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보복의 뒤에 따르는 위험부담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에 따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아서 예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보복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보복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러한 테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서운 전쟁은 왜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왜 이 세상에는 고통의 날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질병이 있고 실패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또 두 문제가 생기고 세상은 갈수록 난감하고 어둡기만 하고 벼랑에 선 것만 같은 위기를 체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 벤츠는 말하기를 "역사의 교훈"이라는 책에서 "인류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라고 하면서 "역사가 기록된 3,4천년동안 전쟁 없이 지난날은 불과 268년 밖에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도 "인간의 실존 가운데 싸움,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상황에 속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인간의 운명은 싸움과 함께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여기서 죽었습니다.




    전쟁은 비극입니다. 전쟁의 최대 비극은 존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이 생명, 이 사람의 생명이 전쟁을 통해서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가장 무서운 비극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또 죽이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쟁의 큰 비극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윤리가 사라져 버리고, 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제조차도 죽이도록 만드는 것이 전쟁인 것입니다. 유명한 톨스토이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전쟁은 인간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역사입니다. 전쟁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기도 하며 포로로 잡혀가거나 포로에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에 모세가 400여 년 간 종살이를 하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후 물과 먹을 것이 해결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을 아말렉 족속이 군대로서 완전한 무장을 하고 막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피난민과 같은 상황이라 전쟁에 대비한 어떤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면서 여호수아에게 "야전군 사령관으로 나아가 전투를 하라, 내가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높이 올리고 있는 동안에는 여호수아의 군사들이 아말렉 족속들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80이 넘은 모세의 팔은 점점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아말렉 군사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보다 못한 아론과 훌이 모세를 바위에 앉게 하고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하루 종일 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곳에 단을 세우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승리의 깃발을 드셨다 라고 그곳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최초로 공격한 자들이 바로 아말렉이었습니다. 그들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아마 시내 광야를 떠돌던 도적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에 공격을 해 왔습니다.




    신25:17-18"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당시 애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심판에 대하여 들었던 모든 민족들이 다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매우 피곤해 하고 있었습니다. 아말렉은 바로 그 순간을 노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지치고 곤한 그 때에 바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때 우리는 영적인 공격들을 많이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시험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 정신차리지 않으면 시험에 들어 회복하기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조용히 뒤에서부터 하나씩 해치기 시작했습니다.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갑자기 힘들어하고 낙오된 자들을 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대열은 점차로 흐트러지기 시작하였고 온 이스라엘의 마음에는 아말렉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본주의 정신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넘어뜨리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길에는 반드시 이러한 아말렉의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력이 있는 백성이 여호와 닛시가 되게 한다.




    공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하며, 군사력에 알맞은 경제력이 있어야 하며, 통치자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말렉 군대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한국전쟁과 비슷합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으로서 한 형제에서 나온 민족들입니다. 그리고 아말렉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잡신숭배를 하며 침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무신론, 침략적이라는 것과 비슷하며 동족끼리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었을 때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위에 새로운 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신력이며, 신앙의 힘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깨닫자




    본문에 아말렉과 싸워 이겼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기록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의 교훈을 깨닫는 백성이 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영토, 정치체제도 없고 언어도 없는 백성으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사상을 언제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2000년 간 방황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무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꾸밀 수 없는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뮌헨 근처에서는 아직도 유대인 학살의 수치스러운 장소를 잘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 곳을 독일의 어린 학생들로부터 대학생들까지 견학을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회개하고 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교훈을 바로 깨닫는 백성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울 때 그 전투를 기록하고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신앙의 교훈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패할 때 그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불순종과 우상숭배, 방탕과 도덕적 타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I.M.F.가 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회개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인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전투를 잘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기도의 힘이, 신앙의 능력이 따라야 만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프랑스가 독일 군에게 패한 뒤 영국이 29만 명의 군사들을 도버해협에 상륙시키는 작전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강한 저항 때문에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도버해협에서 큰 폭풍이 불어와서 영국군 29만 명이 무사히 상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세가 바뀌어 졌습니다.




    6·25동란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함으로 신앙으로 승리하게 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군사력과 무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지켜주실 때 여호와 닛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한 인도장교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포로시절 그는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읽고 들을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었는데 단지 파키스탄 신문과 라디오 방송만 접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파키스탄 방송과 신문은 인도가 지금 전방에서 패퇴하고 있으며 얼마 후 파키스탄이 완전 승리할 것이라는 내용을 계속 전합니다. 그 인도장교는 혼자서 늘 이 파키스탄 언론을 들으면서 인도가 지고 있는 소식을 접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도리어 인도가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습니다. 사실 그 군인이 믿었던 대로 인도가 승리하였습니다. 인도장교는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인도가 파키스탄을 무찌를 것이라는 사실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있는데 때로는 우리가 거짓 소식만을 접하면서 삽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 귀에 들려오는 그 소식을 믿고 그 소식으로 인해 절망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이 인도군인은 세상의 소식을 들은 자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확신의 소리를 듣고 끝내 승리의 대열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시면서 세상이 주는 거짓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확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 오셨습니까? 인도 장교는 패배의 뉴스를 들으면서도 늘 승리의 확신에 차있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가 실패자라고 더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Ford회사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타 본 차에 대해 좋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평균 두 사람에게 "그 차가 좋다"라고 말하는 반면 자기가 타 본 차에 대해 좋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평균 13명에게 그 차를 나쁘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2명 대 13명,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6.5배 더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결국 좋은 일이 6.5배, 나쁜 일 보다 많았어야지 겨우 "그저 그래.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라고 생각게 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에서 보면 인간은 성공보다는 실패의 소리를 더 많이 합니다. 아울러 실패의 소리를 더 많이 듣습니다. 우리 인간은 1년에 한두 번 있었던 나쁜 경험을 생각하면서 한 해를 실패로 가득한 해였다고 믿는 것이 바로 못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실패의 소리를 더욱 쉽게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악과 선을 척도할 수 있는 기준을 잃은 자입니다. 훨씬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곧 우리 인간은 마음 속 깊이 "우리는 실패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문제는 실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패자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본문내용의 특이한 메시지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 때 지던 싸움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손을 내리면 지고 또 손을 들면 이깁니다. 나중엔 아론과 훌이 양옆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주어서 끝내 완전히 승리하고야 합니다. 그리고는 모세는 여호와의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광야에 여호와의 깃발을 꽂은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는 늘 이스라엘 민족을 실패의 민족으로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간 광야의 방랑생활 없이 곧 바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이 보고하기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엔 네피림과 같은 거인 족속이 있어서 메뚜기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은 들어가면 모두 즉시로 죽임을 당할 것으로 보고합니다. 이에 일제히 이스라엘 민족은 통곡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내보냅니다. 광야에서 40년 간 메추라기와 만나를 보내어 먹여주십니다. 시시때때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여주십니다. 그러나 계속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바로 전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완악함을 인하여 모세가 화를 내면서 반석을 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는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실패의 민족인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만났습니다.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아니, 져야되는 아무 쓸모 없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마지막 희망을 하나님께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 여호와의 지팡이를 들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실패의 민족인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마땅히 져야 할 민족이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이에 너무도 감격한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보는 앞에서 단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곳을 "여호와깃발", "여호와닛시"로 명명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동안 "실패자의 눈"으로 보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뒤바뀌어진 것을 봅니다. 인간의 실패를 승리로 바꾸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은 승리의 민족임을 확신하며 여호와 깃발을 꽂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후로 실패와 절망 가운데서 늘 "여호와의 깃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실패를 딛고 다시금 승리하는 영광된 민족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동안 "실패자의 마음"으로, 실패자의 인생으로, 계속 오늘 이 시간까지 "지고있는 우리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패자의 마음"을 버리고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 때 지고 있던 우리의 삶은 승리로 돌변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 칼럼니스트의 말을 인용합니다. "증오심의 파국적 결말을 막기 위해 인류의 스승들은‘악을 이기는 길은 악이 아니라 선 ’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높고 먼 방법이다. 우선 당장에는 문명세계가 뜻을 모아 뉴욕의 테러범이든 하늘의 민간항공기 폭파범이든, 일체의 국제테러 원흉들을 전범재판의 피고인 석에서 엄중히 단죄하고 응징하는 길밖엔 없을 성싶다. 공산권 붕괴 후에 너무 안일해진 미국과 지구사회가‘21세기의 야만’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한번 분발해야 할 시점이다."




    기독교국가라는 자위와 자만에 길들여져 있고, 안일에 빠져있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엄청난 희생과 슬픔을 통해서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역사의 교훈과 신앙의 교훈을 새롭게 깨닫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바로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이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전투를 잘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 기도의 힘이, 신앙의 능력이 따라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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