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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잠재력
    2001-12-13 20:59:27   read : 1070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9월 9일
    요 14:6-18





    상한 갈대, 생각하는 갈대, 살아 있는 갈대




    인간의 삶을 가리켜서 때때로 갈대에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사색가 파스칼은 인간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갈대처럼 연약하고 흔들리지만 무엇인가 생각하며, 무엇인가 추구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입니다. 작가 펄벅 여사는 인간을 가리켜 "살아 있는 갈대" 라고 했습니다. 곧 부러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가지고 하나의 문화를 이루어 나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보면, 우리 인간을 가리켜서 "상한 갈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생각할 수 있고, 살아 움직이면서 만물의 영장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상한 갈대처럼 연약한 측면을 너무나도 많이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신으로 보아도 연약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금만 과로해도 피곤해 합니다. 조금만 굶어도 힘을 못 쓰고,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노쇠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질병으로 고통 당할 때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약한 측면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흔히 인간은 강한 의지와 신념과 인내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숱한 염려와 근심, 미움과 갈등으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며 갖가지 어려운 사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연약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뜻대로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을 사흘도 못 가서 허물어뜨리고 마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실망과 좌절에 빠진 제자들을 위로해 주시면서 예수님은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그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요14:16)"




    우리 인간들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시고 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는 생명에는 분명 잠재되어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잠재력을 개발하고 발휘하여야 합니다.




    역동적인 삶의 변화




    미국의 서남쪽에 가면 한낮의 기온이 섭씨 45도 내지 50도까지 올라가는 아주 뜨거운 사막 지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더운 곳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물어 보면, 그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 밑에 생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는 "생명(life)" 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요14:6)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서 "생명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생활 속에 역동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에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생명의 진리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한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진리가 내 삶을 변화시키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지성적, 논리적으로 인식하기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흔히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곧 지성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건실한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도 지성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말은 곧 말씀이 내 생활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변화시켜 생명 있는 종교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말씀이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생명의 역동성을 잃어버립니다. 깨달음에만 중점을 두게 되면 이성적이고 지성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지성이란 때때로 인간을 이중적으로 만듭니다. 확신이 없고 불안해집니다. 남이 지성적으로 보이니까 자신도 지성인인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지성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분열과 교만을 가져오고 불순종을 가져옵니다.




    성경은 "머리로 깨닫고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이 말씀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 있는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가 탯줄을 통해서 영양을 공급받다가 세상에 태어나면 폐로 숨을 쉬고 입으로 영양을 섭취하게 됩니다.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또 영적인 동물이므로 영적 분위기에 쉽게 변화되어야 할 텐데,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자연인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인간의 편견과 교만과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는 무기력한 신앙은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교회 문밖에 나가면 진리를 다 잃어버리고 마는 가증한 생활도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신앙의 새로운 변화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들이 전적으로 믿는 마음의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구절을 대하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팔레스틴의 지역적 환경과 문화적 제한 속에서 열두 제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 복음을 전하자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개발하여 지리적, 문화적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이지만 보다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 UCLA의 조사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의 능력은 배우면 배울수록 한없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백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가능성을 믿고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 할 수 없어. 나는 배우지도 못했어"라고 하며 자기의 잠재력을 믿지 않고 배워서 개발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파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절하하며 경멸하며 자신을 비하하며 멸시하는 사람, 적개심을 가진 사람, 의기소침한 사람,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시키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훈련시키고 믿게 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정신적 질병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고 파괴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지성인의 모습인 양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썩어지는 한 알의 밀 알에서 많은 결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아주 작은 겨자씨에게서 많은 열매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흰 바탕에 검은 잉크가 묻은 천이 있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르고 까만 점만 보고서 그것이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왜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릅니까? 그런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도 개발하지 못하고 항상 뒤떨어지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짧은 시간을 보지 마시고 긴 시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허리 매여 못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급하게 서둘러 생각하고 일을 하면 잘못되는 수가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는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7대접의 재앙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 짐승의 표시를 받은 자, 세속적인 권력과 돈과 우상 숭배에 지배되는 자들이 받는 무서운 형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무서운 마지막 하나님의 진노에서 제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 얻음에 대한 무한한 감격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에 지배당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것만을 보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자주적이지 못하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소망 가운데 날마다 개발하고 노력할 때에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믿는 대로 생활 속에 활용하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기도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옮길 때에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온전하고 건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① 이것이 참인가?


    ② 이것은 내가 믿고 행할 만한 것인가?


    ③ 내가 말하는 것이 내 행위와 일치되는 것인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삶 속에 활용하고 있는가를 항상 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동에 옮길 때에 깜짝 놀랄만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순종하는 일을 가정과 교회에서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서로 보살펴 주고 의지하고 사랑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되었을 때 서로 격려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도장이 가정과 교회입니다.




    흔히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주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말해 달라고 요청할 때, 더 이상 말할 게 없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고 숨으려 하고 소유하려 들며,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나가기를 꺼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요청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자유스럽게 그들과 나누어 가질 용기가 있으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우물, 사랑의 우물, 생명의 우물을 관대하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얼마나 그 지식의 우물, 사랑의 우물, 생명의 우물이 깊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미도 주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신 우리 성도들 안에는 생명의 잠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증식의 기적을 보라




    결핍 의식의 반대는 풍성함의 의식입니다. 풍성함의 의식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는 양식, 지식, 사랑 무엇이든 모든 사람이 갖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있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내어 주게 됩니다. 배곯은 사람을 보면 음식을 줍니다. 무식한 사람을 만나면 지식을 나누어줍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마주치면 우정과 애정과 관대함으로 대접하고 그들을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개합니다. 생명의 양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복음을 나누어줍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면, 우리는 양식, 지식, 사랑, 생명 등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 몇 배로 증식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도 또 많이 남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고 순종하면 축복하신다는 믿음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반쪽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활에 적용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형제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평범한 말이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부자(rich)는 다다름(reach)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누리는 사람입니다. 부자는 풍성함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10억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 있는 반면, 백 만원을 가진 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자로 살 것인지, 가난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합니다. 정말 우리가 무엇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을 사는 동안 그 무엇을 사용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사용하는 그것을 그만큼 잘 누리고 그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부자로 사는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참 자유합니다. 그것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은혜, 그것이 증식의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생명, 구원의 삶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그 생명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을 발휘하고 개발하여 남아있는 시간동안 여러분의 삶이 그 증식의 기적을 이루는 삶, 풍요의 의식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상의 것, 즉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빵과 생선, 그리고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그 이상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관대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가슴과 마음을 다하여 그리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관대함을 볼 수 있고 향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먼저 당신의 관대함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동안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 즉 생명, 그 풍성한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래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윌리엄 제임스가 한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관대함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찬송하기 때문에, 경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풍성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 세상은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 노력과 지혜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놀라운 가능성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강한 것 같지만 실상은 넘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뒤에서 도우시는 분이 계셔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뒤에서 보호해 주시는 부모님이 있을 때에 아이들의 잠재력이 개발되고 능력이 커지는 것처럼, 우리는 부족하지만 보혜사 성령이 뒤에서 지키실 때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이라는 말이 52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람 같은 성령, 불과 성령, 기름 같은 성령, 물과 같은 성령, 비둘기 같은 성령 등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평화롭게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무기력해졌을 때에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 곁에 계셔서 인도하시는 영으로, 확신을 주시는 영으로, 변화시키는 영으로 여러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생명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잇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신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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