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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룩을 가진 교회
    2001-12-13 20:55:13   read : 1050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8월 5일
    마 13:33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피조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 성장과 함께 쇠퇴와 몰락을 반복해왔습니다. 국가와 문화와 문명의 흥망성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꾸준히 성장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생태계를 살펴볼 때도 새롭게 생성된 생물도 있지만 멸종된 생물도 많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건강할 때 반드시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그 자라는 것이 인간의 눈에 직접 보이는 것도 있지만 좀처럼 그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아무리 빨리 피는 꽃이라고 해도 피어나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아주 느리게 진행하기 때문에 꽃이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아도 진행하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디 갔다가 와보면 어느 사이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식물 가운데 죽순이라는 것이 빨리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순도 그 자리에서 지켜보면 언제나 그 타령이고,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나절만 다녀오면 벌써 자라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자라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자란 후에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에 주신 말씀은 천국 비유의 하나로, 누룩의 비유입니다. 헬라어로 누룩을 "주메"라고 하는데 효모, 또는 누룩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제외하고는 이 누룩을 그렇게 잘 사용하는 민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만드는 빵이 세계적으로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나 다른 책들을 보면 누룩이라는 말 대신에 흔히 빵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트와 누룩은 다릅니다. 이스트는 빵을 부풀게 하지만, 사실 누룩은 살아있는 균이며 깨끗하고 신선하고 위생에도 좋으며 맛도 조금은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 들어가 밀가루를 변질시키고, 전체를 누룩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 들어가 발효되어 반죽을 부드럽게 해주고, 부풀어오르게 하고, 소화도 잘 시켜주고, 맛을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누룩은 좋은 의미에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주로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사람인 사두개인의 교훈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면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겸손하고 진실하던 사람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본받아 외식하고, 교만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누룩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누룩이 주는 인상은 주로 나쁜 것으로 보았습니다. 유대교를 믿다가 이방인들이 믿는 우상 숭배에 빠지면 "누룩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발효되는 것을 부패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누룩이 있는 곳에는 부패가 따른다고 하여 누룩을 좋지 않게 본 것입니다.




    그러나 누룩은 좋은 의미에서 사용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본문이 바로 오늘 읽어드린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아주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여자가 가루 세 말을 가져다가 그 속에 누룩을 넣어 발효를 시켜서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말은 13리터이고, 서 말이면 39리터 약 40리터인데 이 세 말을 반죽하여 빵을 만들어 놓으면 약 100명이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누룩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룩이 들어가서 어떤 작용을 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룩은 변화시킵니다


    돈이 있으나 건강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은 있으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정은 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딤후3:5). 교회는 다니나 소속감이 없습니다. 몸은 커졌으나 철이 없습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형태를 바꿉니다. 부풀어오르게 합니다. 맛없는 밀가루를 변화시켜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줍니다. 누룩은 변화의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변화의 주체입니다. 그에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오직 예수입니다. 그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우리 존재의 중심에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내적인 변화는 더디지만 유기적이고 영속적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내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총체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예수는 질을 바꾸어줍니다. 변화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구원이 있는 곳에 변화가 있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을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나의 슬픔을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쓸모 없는 인간을 쓸모 있는 인간으로 바꿉니다. 마음이 바뀌면 얼굴도 변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이 변합니다. 내가 변해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내가 달라지지 않고는 누구도 바꾸지 못합니다. 여러분 모두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간 누룩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빗나간 삶을 청산하고 참된 삶으로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를 만남으로 삶의 궤도를 수정한 사람이 많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누룩을 가진 사람은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내가 변했듯이 저 삶도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를 연구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행동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은 믿는 우리를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키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것, 시각적인 것에 매여 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시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이 더 큰 힘이 있는 것들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은 쉽게 느낄 수가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미움, 분노와 증오, 상처 또는 사랑의 감정 등은 쉽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파장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있으며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삶의 방향과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내면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 앞에 더욱 신실한 삶을 영위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여러 사람을 챙겨가면서 살려면 건강은 필수적입니다. 요즈음 너무 더워서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사람이 자주 짜증을 낼까요?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주 짜증을 내는 이유는 영육 간에 건강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처럼 건강이 부족할 때 무엇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쉼이 필요합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쉬고, 생각도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소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주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삶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 시간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닙니다. 나의 내일이 있게 하는 원천입니다.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서 사람이 짜증이 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짜증을 이길까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짜증스런 삶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희망을 가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 영혼의 중심을 분명히 하고, 든든히 서서 과거의 삶을 회상해보십시오. 그러면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 나 자신도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발견>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보물을 발굴하는 작업이 감사입니다. 그렇게 과거의 삶에서 감사를 발견하면 어느새 절망은 희망으로 변합니다.




    과거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도 겉으로만 보지말고 진지하게 보십시오. 순간적으로는 짜증이 날만한 일에도 자세히 보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그처럼 삶의 중심을 확실히 하시고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반드시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아무리 쓰러지고 굴러도 곧추 서게 하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어렵다고 느낄수록 희망을 가지십시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옥스포드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의 몸에 이상한 증세가 생겼습니다. 구두끈을 매기도 힘들 정도로 손이 떨렸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이었습니다. 의사들은 2년 이상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기로 각오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초월한 각오를 하면서부터 그의 영감과 창의력은 극대화되었습니다. 그 뒤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30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가 현존하는 최대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강한 의지도 생명을 지탱시켜줍니다. 하물며 믿음의 힘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 편에 서서 내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환경을 바라보거나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고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 쓰기에 따라 삶의 질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렵더라도 희망을 예견하고 희망을 말하고, "한번 해 보자!"고 하는 자세! 그러한 긍정적인 자세 속에서 공동체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입술이 되어 사랑과 격려의 말을 통해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 누가 희망을 줍니까? 대개 보면 겸손한 사람이 희망을 줍니다. 겸손한 사람은 나의 죄를 크게 생각하고 남의 죄를 관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을 세워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희망이 전해집니다. 여러분! 진정 존경을 받고 싶으시면 먼저 겸손히 존경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회개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이제 내 중심적인 삶을 벗어나 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항상 남의 입장을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가 통합니다. 그러나 회개가 없는 사람은 대화가 막힙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시험이 드는 영적 미숙함을 종종 드러내곤 합니다.




    신앙체험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체험한 다음에 자신의 신앙체험을 절대화시키는 잘못은 없어야 합니다. 나에게 맞는 어떤 종교의식, 자기가 잘하는 신앙스타일만을 주장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잘하는 어떤 신앙스타일이 최고인 줄 아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가시 돋친 말, 자기를 높이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항상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세워주는 말, 배려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하면 얼마나 듣는 사람이 힘이 됩니까?




    이타주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하게 이타주의로 사는 삶입니다. 부자이지만, 높은 명예를 가졌지만 겸손하게 티내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넉넉해지는 느낌을 받고 삶의 짜증이 사라지는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일까요?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부족한 면이 보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그러나 짜증나게 하는 사람은 부족한 면이 보이면 자꾸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살다보면 우리 가정과 교회에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왜 내가 속한 공동체에 그러한 부족한 것이 있게 되었을까요? 그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얼마나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돕고 채우려고 하지 않고 말만하고 말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어느 누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태도라 하겠습니까? 반대이겠지요.




    그리고 충성은 순종하는 삶을 만들어내고, 순종은 행복의 산실입니다. 반대로 순종이 없는 이기심은 항상 삶에 짜증과 불행을 동반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랑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소중한 장소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장소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본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래야 행복합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은혜를 알고, 겸손을 아는 행동은 사실상 순종입니다. 그렇게 순종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을 알고 순종을 아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남을 섬길 줄 압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항상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보십시오. 섬기는 삶에 불평과 짜증에 어찌 있겠습니까? 오직 행복과 평화뿐입니다. 진정한 섬김의 정신이 있는 인격에 결코 짜증과 불평의 체질화는 없을 것입니다. 받으려고만 하면 삶의 짜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불행한 삶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간에 주려고 해보십시오. 섬기려고 해보십시오. 바로 그러한 삶에 행복이 있고, 짜증스런 삶이 시원한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 그리고 가정생활은 어떻습니까? 혹시 받는 생각에만 익숙한 것은 아닙니까? 이제는 주려고 해야 합니다. 받는 것이 사랑의 느낌을 주긴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증거의 주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보십시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고, 삶의 불평과 짜증과 섭섭함은 어느새 새벽 안개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나눠줌으로 어디든지 기쁨을 주는 진정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깨어남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잠을 자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고 축복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날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가 영원히 잠들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깨어났다는 것은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어떤 생각과 느낌과 마음들이 오고 가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고 잘 듣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오감이 열려야 합니다. 눈, 코, 귀 등은 사랑이 드나드는 문, 하나님의 출입구입니다. 내 생각이나 내 의견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드나드시는 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입니다.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것입니다.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는 관점에서는 제대로 보고들을 수가 없어요. 보는 그 자체를 자기라고 착각하고들 있습니다. 그 고장난 내가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보고... 고장난 것이 자기인 줄도 모르고 그것이 자기인 줄 집착하고, 편견에 편견을 거듭하고... 그런 식으로 한평생을 가는 것이지요. 이 깨어남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면 미움의 세계, 미움의 관계를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입니다. 반대로 바로 이웃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공경하면 그 관계와 세계를 제일 먼저 사는 것도 나입니다. 내가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미움의 세계를 만들고 내가 그 미움의 세계를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보고 들어놓고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고, 피해자인양 하는 것은 조잡한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숨겨진 역사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 복음의 역사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가루 속에 들어간 누룩이 비밀리에 점점 확장되고, 퍼져나갔습니다. 비밀리에 들어가고, 조용하지만, 엄청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결과는 세상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비관하고 낙심하던 사람이 용기를 얻고, 새 사람으로 일어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룩처럼 은밀히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누룩의 비유는 하늘나라 복음의 확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누룩처럼 은밀히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누룩의 세포 분열이 기하급수적인 것처럼 우리의 복음도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퍼져 가는 누룩의 확산력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조금만 넣습니다. 누룩이 들어간 반죽과 그렇지 못한 반죽과의 외견상의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의 모습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입니다. 누룩이 들어간 반죽은 부풀어오르고 부드러워집니다. 맛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부풀어 가는 과정은 교회의 확장과 복음의 확장에 대한 상징이며 하나님 나라의 표상입니다.




    누룩을 가진 교회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힘을 지닌 교회


    계란을 깨어보면 껍질 속에 흰자가 있고 그 안에 노른자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른자위에 티눈처럼 박힌 배아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씨눈입니다. 계란이 아무리 충실해 보일지라도 배아가 없으면 식용으로 쓸 수 있어도 부화용으로 병아리를 깰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본질이 없다면 배아 없는 계란처럼 생산성이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누룩입니다. 교회는 누룩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시체이듯이 말씀과 성령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누룩을 가진 교회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닷물 속에는 염분이 들어있습니다. 전체 바닷물의 2.8%가 염분이라고 합니다. 바다를 썩지 않게 하는 것은 염분 때문입니다. 그 적은 소금물이 그 많은 바닷물의 생명입니다. 교회는 누룩을 키워야 하고 누룩을 늘려야 합니다. 교회가 누룩만 있다면 세상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누룩의 또 하나의 특징은 누룩은 온 밀가루 덩어리를 숙성시키는데도 불구하고, 누룩 자체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자기 몸을 온전히 그 밀가루 덩어리에 섞어서 스스로의 형체는 없어지지만, 모든 밀가루 덩어리를 숙성시켜 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복음적인 모습입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발효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침투하여, 녹아지고, 스며들어, 영적 작용을 하는 누룩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최선의 길


    미국 코카콜라의 새 회장으로 취임한 Douglas N. Daft 가 어느 대학 종업식에서 다음과 같은 축사를 했습니다. "찾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의 문을 닫지 말라.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너무 꽉 쥐고 놓지 않는 일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은 누룩의 역할과 같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룩인가요? 밀가루인가요? 밀가루가 아무리 많아도 밀가루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소수라도 분량이 적어도 누룩일 때 힘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힘에 의해 지배됩니다. 힘이 적으면 적게 이루고 힘이 크면 많이 이룹니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목적을 이루려 한다면 먼저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번 산상부흥회를 통하여 우리 영암교회 성도들이 모두 영적인 힘을 공급받고 삶의 재충전을 받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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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한계 앞에 선 하나님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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