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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삶
    2001-12-13 20:48:32   read : 111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년 6월 10일
    행 1:4-8









    우리 인간의 일상적인 하루는 깊은 잠에서 깨어남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이 여러분의 깊은 잠을 깨운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입니까? 소음입니까? 햇빛입니까? 시계입니까?




    또한 죄의 깊은 잠, 나태와 무기력과 나약함, 절망과 좌절과 영적 침체의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그 마음과 영혼을 깨워주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새로운 몸짓을 시작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적인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에 갔을 때에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맛보며 잠을 깼고, 일본에 갔을 때에는 출근하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잠을 깼지만 그러나 한국에 갔을 때에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세계의 미래는 한국 사람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기도하는 민족도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지만 결코 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눈물의 자녀도 잠시 방황하기는 하지만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상황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너무 염려할 필요도 없고, 조급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내하며 기도하면 됩니다. 인내의 기도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고 풍성합니다.




    6월은 호국의 달이고 지난주간에는 현충일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새롭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 나라 약한 설움, 나라 가난한 설움은 보통 설움이 아닙니다. 러시아 여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몸을 팔고 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힘쓰고 애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 나라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1:3). 그것도 모르고 제자들은 주님에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를 물었습니다(6절). 그때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받고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8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 버는 일, 먹고사는 일, 자식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공헌하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도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공기로 숨을 쉬지만 우리의 정신은 희망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각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사람을 희망을 가지고 배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크게 쓰임 받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님은 기다리면서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의 기간은 무엇보다도 기도로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참을 수 있습니다.




    인내의 기도가 희망인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기도가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살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기도자들이 있는 한 미래는 우리의 것입니다.




    심슨(A. B. Simpson) 목사는 “폭풍우 치는 밤에 이슬이 맺히지 않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도 요동하는 영혼에게는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것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다림의 자세에 능숙해야 합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교회생활, 가정생활에서 결코 성공적인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부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하나로 살 수 있었습니까? 사랑했기 때문이고, 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참고 기다리는 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참고 인내하고 계십니다. 참고 기다리지 않으면 인생의 작품이 나올 수도 없고 내일의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고 기다림으로 성령 충만도 받고 축복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방에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어둠과 싸우기보다 빛을 비춰야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기도하며 기다리며 성령의 권능을 받고 사랑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변화가 성령의 능력에 의한 인격의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생기는 성령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한 마음이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말씀을 배우고 기적을 봤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쳤지만 그들은 높은 자리를 생각했고, 십자가를 배웠지만 그들은 주님 따라 다니면서 영광을 얻을 것만 생각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도 "누가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것인가?"로 싸워서 예수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더니 승천하실 때에도 그런 욕망을 보입니다(행 1:6). 본문 6절을 보면 나라의 회복과 그 때에 한 자리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낍니다. 그 엄숙한 순간에서조차 현세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지만 오순절 다락방 사건에서 성령 충만을 받은 이후에 그들은 변했습니다. 3년 동안 그들을 철저히 따라다니던 욕망이 거룩한 소망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소리 없이 충성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청소부도 좋다는 생각! 그래서 성령은 겸손을 낳고, 겸손한 마음은 반드시 충성스런 삶을 낳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겸손하게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과 교회를 높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으뜸 되기를 좋아하면 튀는 행동을 하게 되고, 자신을 높이게 되고, 자기 의견을 절대화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할 때 공동체의 평화가 위협받게 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항상 교회적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상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정 내가 어떤 모습인가를 항상 살펴가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자기를 단장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를 낮추는 겸손함이 있을 때 그곳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둘째, 온유한 마음이 능력입니다.




    겸손한 마음과 가장 관련된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이 온유한 마음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자기를 잘 통제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교회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온유함입니다. 분노를 폭발하면 공동체의 평화가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폭발 후에 수습 능력을 키우지 말고 폭발하지 않도록 미리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비판과 비방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나의 정당한 것 같은 비판이 오히려 나의 허물과 올무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통해서 항상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셋째, 일치하는 마음이 능력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화해, 평화, 일치를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삶에 오시면 삶의 형태가 뜨거워지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일치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화해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사람은 남을 탓하는 자세가 없어지고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남을 탓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펼쳐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운전하는 것만 봐도 그런 문화를 너무 많이 접합니다. 내가 끼어 들면 바쁘니까 어쩔 수 없고, 남이 끼어 들면 얌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내가 남의 차를 받으면 그 사람보고 "왜 급정거했느냐?"고 하고, 남이 내 차를 받으면 그 사람보다 "왜 안전거리 안 지켰느냐?"고 합니다. 어쩌다 내가 단속을 당하면 억세게 재수 없게 생각하고 마음 상해하면서, 남이 단속을 당하면 "잘했어. 저건 단속해야 돼!"라고 하면서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남의 작은 잘못은 철저히 따지고 자신의 큰 허물은 그냥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에게는 원칙대로 살 것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융통성 있게 봐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죄가 생기고 성령이 지배하는 마음이 떠난 결과입니다. 누구나 허물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덮어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세 속에서 수정과 변화와 창조를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화해를 지향하는 모습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의 참된 의미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되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가슴과 가슴을 연 대화가 되고, 기쁨과 슬픔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거룩한 의사소통을 이루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자기 언어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다른 언어가 들려도 내 가슴에 그 언어가 주는 감동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 충만의 첫 열매는 의사소통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방언이 터졌고, 각 나라에서 온 무리들의 귀가 열려 그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룩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와 가정에도 그것이 필요합니다. 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성령 충만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격려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성령 충만하면 서로 격려하며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은 위로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남을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남을 이해할 줄 압니다. 성령 충만하면 부자간에 이해하려고 합니다. 부부간에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처럼 성령 충만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사람 사이에 있는 어떤 장벽도 거뜬하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계층의 장벽도 지역의 장벽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민족의 경계, 나라의 경계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남을 경시하고 남을 차별하며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 탓하기를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처럼 성령 충만으로 생기는 일치하는 마음은 인간 성공의 가장 소중한 요소입니다.




    모험하는 마음이 권능입니다.




    성령이 계시면 환상이 생기고 비전이 생깁니다. 그래서 거룩한 모험을 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모험정신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개척정신을 가지고 모험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열정이 없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진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험하는 인생이 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런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비전과 거룩한 모험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하나님의 명령과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모험적인 삶을 살아보십시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삶의 가치와 삶의 질을 엄청나게 다르게 부각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공동체가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치권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온 국민의 이기심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 대해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 일을 가지고 오늘의 엄숙한 삶의 교훈으로 삼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무리 봐도 희망을 노래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여겨져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 없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무와 책임입니다. 그처럼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힘찬 모험의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절대로 절망하거나 좌절하거나 탄식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며칠 정도는 침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섭니다. 탄식이 찬송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평범한 사람도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지난주일 성령강림주일을 지냈고 지금은 교회 절기로 오순절 기간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쉽게 말하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긴 예루살렘 교회의 창립기념일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교회의 부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분란과 침체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성장하고 성숙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어떻게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성령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성령 충만함으로 창조적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항상 성령 충만한 삶을 삶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기쁨을 줍니까? 혼자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전체를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면서 협력하며 일하는 사람이 기쁨을 줍니다. 앞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또한 뒤에서 조용히 협력하는 사람을 봐도 마음이 얼마나 시원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협력 중에서 최고의 협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대개 넉넉함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은 항상 큰일난 것처럼 흥분하며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다 불안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좋은 말로 마음을 시원하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좋은 일을 하고, 그 칭찬을 우연히 외부로부터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마음이 뿌듯하고,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에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해서 부정적인 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지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입니까?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답답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항상 막힌 담을 뚫어 주는 시원스럽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출산하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




    여러분, 생명을 출산하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는 필연적으로 전도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양육하는 교회,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아가서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배우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유능한 자나 무능한 자나, 함께 모이면 차별의식, 열등의식, 부끄러운 수치감이 아니라 서로 떳떳이 고개를 들고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힘이 가난한 자,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너라는 사람은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자살을 하자 자신도 자살을 결심합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들고 중대한 결단 앞에 서게 되는 순간에 그의 손에 들려진 전도지를 읽다가 성령의 역사 하심 가운데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분명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 후로 자신의 살아야 할 이유를 되찾거니와 많은 사람에게 이것을 깨우쳐주는 전도인으로 평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함으로 새 출발하게 됩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든든하고 평안하게 서가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재와 미래를 사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과거에 살지 않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사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과거를 따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 점검하고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차지해야 할 백성들이기 때문에 과거를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현재와 미래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주 과거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끙끙대며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구체적인 계획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일 어떻게 살까? 10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 미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앞날이 어렵고 힘들게 보여도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맡기고 사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 인도하심 따라 살되 무엇을 하든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증인의 사명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바로 살 뿐 아니라 증인되어 살면, 이 나라 이 민족의 한 부분이 달라질 것입니다. 의식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는 변화는 거창한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한사람 증인되어질 때 변화는 일어납니다.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는 이 증인의 사명 감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




    누에는 계속 자라다가 때가 되면 그물을 만들기 시작해서 고치 속에 들어갑니다. 고치 안에서 잠을 자는데 누에의 몸에는 특수한 세포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그 세포들이 애벌레로 사는 동안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자랐을 때에는 몸에서 무슨 성분이 나와서 고치를 만들고 잠을 잡니다. 자는 동안 이 세포가 퍼지기 시작하여 서로 연결해서 퍼지고 마침내 이 세포들이 애벌레의 나머지 부분을 다 먹어버립니다. 그리고 누에벌레가 없어지고 대신 나비가 나옵니다. 벌레가 변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비의 세포가 벌레 안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그만 세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세포가 퍼지고 퍼져서 변화를 일으켜서 마침내 나비의 몸뚱이와 날개 등 여러 지체가 따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창조의 과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두서너 명이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퍼지고 퍼져 마침내 서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새로운 교회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싸우거나 요란한 외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벌레에 속하는 신자들이 우리를 보고 "나도 성령을 받아야겠다. 성령을 받아서 나비에 속하는 신자가 되어야지" 그래서 육적인 신자들이 점점 없어지는 대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신자들이 많아져서 교회 전체가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나 자신부터 모여서 조그만 공동체를 시작하고 그것이 점점 퍼지고 퍼져 마침내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받은 우리 신자들에게 부여된 책임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에게 의식주 문제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먹을 때, 밥 한 그릇은 거룩한 생명의 떡이 되지만, 먹기 위해서 살려고 할 때는 밥 한 그릇은 썩어질 물질로만 남게 됩니다. 우리가 여행 목적과 방향을 잊어버리고 여행가방 꾸리는 일에 전 관심을 쏟느라고 정작 여행다운 여행을 못하고 일생을 다 허송해 버리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사람들




    시인, 예술가, 성인은 그 점을 다른 사람보다 좀더 분명하게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상 속에 살며시 와 있는 거룩한 것의 현존, 신비이신 하나님의 감추인 얼굴, 일상적인 일 속에 와 계시는 성령의 영광스런 빛과 음성을 보고 듣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과정 어느 순간 속에 침투해 들어오시는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그것을, 살포시 안아주시는 사랑의 가슴을 보통사람보다 좀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일상 속에 현존하는 신비의 은혜와 능력




    어떤 사람이 무신론자이든 신앙인이든 이미 사람으로 태어난 그 때부터 모든 인간은 일상 속에 현존하는 신비의 은혜와 능력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것 속에서 경험하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경험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은 사랑의 경험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들의 영혼을 맑게 하고 무엇이 귀중한 일이고 무엇이 버려도 될 일인지를 분별하는 혜안을 띄어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은 사물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분별하는 눈이 열릴 뿐만 아니라,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가치와 항상 있을 가치를 분별하고 그 안에서 영원을 맛봅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통찰과 판단이 상대적이고 부분적일지라도 온전한 것을 미리 앞당겨 맛보게 하는 사랑, 바로 그것이 성령 그 분의 몸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물이라는 물질은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음으로서 물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하나님은 사랑으로 계시고 성령은 사랑의 능력과 현실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 속에서도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은 현존하시고 우리를 사람 되라 부르십니다. 사랑과 진실 그리고 정의로움과 화해하는 가운데, 마음이 가난해지는 그 일들 속에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을 가까이 조용히 체험하시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예수와 함께 사십시다. 그 예수는 오늘의 예수요, 바로 현존하시는 예수입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요, 성령이 나를 그에게로 인도하시고, 그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삽니다. "안에"는 곧 성령 안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기고 죄악을 이깁니다. 이 승리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승리케 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 짓




    19세기의 최대의 시인 롱펠로우는 그 명성에 비하여 많은 시련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유학 중에 첫 번째 부인을 잃고 재혼한 두 번째 부인마저 불행한 사고로 불타 죽었습니다. 롱펠로우는 그렇게 인생의 쓰라린 경험자였습니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왔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 뿐 아니라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이에 롱펠로우는 마당에 보이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했습니다.“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계속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롱펠로우에게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생명과 부활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 성령의 능력 안에 사는 사람은 그 삶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풍성해 집니다.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의 세계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 짓"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성령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살아야 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새 피조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고민하며 새로운 꿈과 소망을 향해 달려갑니다. 심령 가운데 샘물처럼 솟아나는 단 하나의 기쁨, 생명과 진리를 좇는 행복을 누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삶, 승리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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