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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장래와 세계의 종국"
    2001-12-13 16:43:55   read : 985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태 24: 1∼ 14) 설교자:임영수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일은 점성술가, 종교인들만이 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점성술가, 종교인보다 과학자들이 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을 많이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인류의 미래는 매우 어둡습니다. 그들이 인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데는 몇 가지 그럴만한 객관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원고갈, 환경파괴, 핵폐기물, 산업 쓰레기, 심각한 물 부족, 기아, 질병과 같은 것들로 인류의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예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두 가지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를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의 약속을 믿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그 기도의 성취를 기다립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우리가 애착을 갖고 노동하고 사랑하고 고민하는 땅의 장래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는 장차 다가올 환경오염, 기근, 질병, 전쟁으로 인한 파멸을 예감하면서, 이 땅 위에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동시에 매일 신문을 읽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에 참여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리가 신문을 읽는 것은 이 세계의 운명에 참여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희망에 동참하고 지구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을 결합시킬 수 있을까? 입니다.

    공관 복음서의 소 묵시록에서 현저하게 눈에 띠는 것은 장래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는 하나님의 희망과 지구의 미래에 관한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날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예수께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그후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아 계실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다가와서 여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으며, 세상 끝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질문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하나님 나라와 고생, 눈물, 고통, 죄가 있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물음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는 하나님 나라의 설립과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징조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과 그들이 관계맺고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도래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경험 가운데서 그들의 가정, 친척,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시각 장애인이 보고, 육체적 장애인이 걷고, 나병인이 깨끗케 되고, 귀신들린 자가 온전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버림받고 멸시받는 불행한 피조물과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에게, 그리고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에게 임한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사랑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경험과 동시에 세상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예수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으며,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만 재난의 때를 알아서 어떻게 그 때를 모면할 수 있을까? 라는 통속적인 종말의식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다 같이 통속적인 종말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말 의식은 언젠가는 세상이 모두 파멸된다는 위기의식과 그러한 대 환란을 면하기 위해 어떤 종교적 선행을 쌓아가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말의 때에 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 때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도피처를 구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질문은 그러한 질문과는 다릅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님 나라의 경험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참여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자들의 "언제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때 징조는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은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돌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눈물과 한숨, 고통, 질병의 종국을 묻는 물음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너무 기쁘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다 버리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해서 예수와 함께 사랑의 사역에 동참해가고 있습니다. 그의 생의 희망, 양식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진정 자유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종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때때로 하나님께 기도 가운데서 묻습니다. 주님 언제 이런 일이 (하나님의 완성의 시간)이 있겠으며 그때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의 물음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 공포에서 도피를 위한 준비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의 시간을 묻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이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다." (4-6)

    이 예수의 답변에서 빠트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경고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 는 "아직 아니다."(noch nicht)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완성되어 가는데는 '아직 아니'라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과정이 있다는 사실에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농부가 봄에 밭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수확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완성의 시간까지는 '아직 아니'라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하루 같기도 하고 천년 같기도 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신이 그리스도요, 해방자, 구원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미혹케 하는 그들은 왜 그리스도 만이냐? 고 반문하면서,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들의 경제이론, 정치이론, 그들의 철학이 진정 인간을 해방하고 세상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집요하게 세뇌합니다.

    실제로 '아직 아닌' 이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미혹케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시대는 제외하고, 우리의 시대에서만도, 칼 막스, 주체사상, 경제 절대주의, 복제인간, 온갖 사이비 종교,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것들이 인류가 당하고 있는 고통, 눈물, 한숨의 문제를 종결지을 수 있다고 외침니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오직 경제 성장만이 인류의 문제의 해답이라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욱더 균형을 잃어가고 있고, 삶의 터전은 더욱 황폐되어가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심각해져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미혹받지 말라."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에 의해 영향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는 이러한 것들 떄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당황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경고가 나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미움 받는 이유가 단 한가지입니다. 그들의 거짓, 불의에 동참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참여하고 있다는 오직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금번 베트남에 가서도 직접 듣고 경험한 바이지만,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사회주의 복음을 믿지 않고, 거기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신뢰하고 따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억압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도 아무런 안전성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이 소 묵시록에서 또 하나의 경고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오직 한가지 구원의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예수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승리 시간까지 참고 견디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견딘다'는 세상에서 삶을 포기하고 은둔 생활로 들어가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의 사역에 참여해 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식어져 가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정의, 공의가 무너져 가는 세상에서 끝까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 삶으로 되어가는데서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섬김에 참여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예언적 경고가 있습니다.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며, 그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세계 구석구석 어디에나 듣거나 말거나 복음이 전달되면 끝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간과 공간의 의미보다 믿는 자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끝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유유히 걸어가는 그 발걸음에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집니다. 각종 이단, 무신론, 쾌락, 회의 가운데서도 끝까지 복음의 삶을 재구성해가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 거기에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실현됩니다.

    결국 마지막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은 전쟁, 기근, 지진에 의해 일어나는 인류의 대 참사에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은 전쟁, 기근, 배신, 굶주림, 지진과 같은 상황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되는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그러한 희망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러한 의미에서 인류의 해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파멸과 죽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죄로 인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생명을 나누며 공존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창조의 균형을 깨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살라고 주신 세상은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그 균형이 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파괴하고, 죽이는 일로 우리의 시간을 다 소멸시켜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명을 창조하는데 보다 생명을 소멸시켜가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시간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착취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 아닌, 그와는 반대로 새 생명을 창조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일이 전개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황폐한 세상과 함께 소멸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어둠들을 사용하셔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가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파괴하고, 죽이는 일에 우리의 생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시간에 참여해가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장래가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자녀들이 살 수 있는 삶의 장소가 마련됩니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가 파괴하고, 황폐시켜가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하시는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시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눈물과 한숨, 질병, 고통을 종결짓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시간에서 살도록 하기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파멸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새 생명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남은 생의 시간을 이 하나님의 시간에 참여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은 모든 창조의 질서가 소멸되는 참혹한 종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마지막은 모든 어둠의 권세가 제압된 부활의 아침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새 아침에 참여해 가야합니다.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아직 아님"이라는 시간에서 전쟁, 테러, 살인, 파괴, 각종 미혹케 하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하면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때문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아야합니다. 이러한 것들로 인간의 시간은 점점 소멸되어갈 것이고 이땅은 생명이 존재해가기 어려울 정도로 마지막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새 창조의 완성의 시간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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