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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조물들이 바라는 희망"
    2001-12-13 16:31:50   read : 838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롬 8:18-26) 설교자 : 임영수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 가운데서 매우 힘든 고통이 해산의 고통일 것입니다. 여성이 경험하는 해산의 고통은 남성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새 생명을 해산하는 순간에 다시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이 결혼 후에 여성이 평생 경험하는 고통이라면 아마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잠시 한 순간이며 그러한 고통 후에 얻게 되는 성취감과 기쁨을 내다보기 때문에 그 고통을 감내하게 되고, 반복해서 몇 번 받아들이게 됩니다. 의미없는 고통, 끝이없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현실은 모두 회색입니다. 그는 사도가 되었지만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기보다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배척과 멸시를 받았고, 매를 맞거나 옥에 갇히기도하고, 때로는 굶기도 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에게서 아름다움과 조화의 찬양소리 보다는 깊이 신음하고 있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사도에게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는 현실에서 그가 경험하고 있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희망적인 미래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경험하고 있었던 미래는 인간에 의해서 잘 살게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경험적으로 맛보고 있는 미래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성취되는 새하늘과 새땅이었습니다. 그가 경험한 새 세상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모든 피조물에게 다 해당됩니다. 바울은 피조물의 신음 소리와 함께 그 영광의 날을 갈망하고 있는 피조물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희망과 소원은 다릅니다. 희망은 자신보다 더 위대한 대상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며 소원은 자신이 막연하게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소원이 아닌 희망입니다.



    현실이 살기에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뚜렷한 희망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갈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 그러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 희망은 체험적인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바울과 같은 고난의 상황에 있다고 하면 현실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든가, 아니면 고난을 가져다 주는 원인을 포기 해버리고 고난이 없는 현실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두 가지 다 선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실에서 더욱더 허구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진정한 희망의 미래에 참여해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 고난이 없는 현실 그가 원하고 바라는 바를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체험적으로 절망, 답답함, 어두움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실에서 가난하게, 힘들게, 많은 것을 유보하며 살아가지만 언제나 열려진 희망을 체험하며, 확신과 기쁨 가운데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는 현실에서 전혀 희망없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을 체험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내다본 장차 올 세상은 현재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이 모두 파멸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체험 가운데서 내다본 미래는 능력의 하나님의 손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치유되고, 보상되고, 용서되고, 화해되는 미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미래는 모든 피조물을 억압하고, 짓누르고 있는 죄로 파멸하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미래였습니다. 현재의 어두움이 결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넘어설 수 없는 영광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실의 고난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절제, 인내는 그가 선취한 미래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러한 미래를 맛볼 수 있었는가?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의식화를 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희망의 선취는 성령을 통해서였습니다.


    성령은 그 자체가 향수냄새를 풍기거나, 뜨겁게 달구어진 물건이거나, 차갑게 느끼게 하는 물질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광의 미래를 미리 맛보게 해주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온 세상의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에 의해 받는 능력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체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사람은 진정 자기 시대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은 그 나라를 미리 체험한 사람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현실을 넘어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그 어두운 현실에 손상되지 않고, 묶여있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체험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 감옥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그들을 채운 착고가 풀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힘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한편 성령은 고난의 현실에서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마땅히 구할 바를 알려주시고, 대신 그것을 간구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바울이 현실의 고난에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체험하게 된 것도 성령께서 그를 대신해서 간구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대신 간구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현실에서 조금만 영적 감수성을 가지고 살펴보면 곧 시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것, 경쟁심, 욕심에서 간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존속되는 것은 성령께서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구하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은 깊은 탄식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해 주십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성령의 간구하심이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희망이 없는 현실에서 이 현실을 넘어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우리가 듣는 희망의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미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죄와 죽음의 권세아래 있지 아니하고 사랑의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긍정하는 유일무이한 삶의 원동력이며 근거입니다.


    고난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현실과는 전혀 다른 희망의 현실을 체험해 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께 감사하며 소외된 이웃을 받아들이는 삶 그 자체가 구속받은 자의 삶입니다.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한달에 한끼 북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며 누가 보지않는 가운데서 작은 액수를 따로 떼어 놓습니다. 그것은 외형적으론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의 희망은 저 북녘 땅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모든 피조물의 미래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러한 희망은 단순히 적선하는 마음에서 하지않고, 지금 그가 체험하는 그 희망의 체험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구제나 적선을 넘어섭니다. 그들이 하는 선은 하나님의 희망을 체험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 희망에서 그렇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절망과 어둠의 상황에서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맺어갈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맺어지는 교제 가운데서 우리는 미움을 사랑, 절망을 희망, 적대감을 화해로 바꾸어 가게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분명히 사막, 감옥, 질병, 풍랑이 이는 바다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피해 갈만큼 지혜롭거나,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있는 곳으로, 감옥에서 푸른 초원으로, 질병에서 구원으로,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잔잔한 해안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메시지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 깊은 탄식 가운데서 대신 기도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의 경우 깊은 탄식 가운데서 기도하시는 성령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매우 부정적인 인간이 되어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잘못으로 분명히 잘못된 길을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를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의 기도가 있습니다.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고, 결국 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듭니다. 성령의 간구는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자신이 먹고싶고, 살고싶고, 놀고싶고, 가지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지만 언제나 절망, 씁쓸함, 떳떳치 못함, 가책이 그의 실존 의식의 기반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류는 먹고싶고, 놀고싶고, 입고싶고, 가지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아 늘 부러움, 적대감, 한, 원망이 그의 실존의식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양자의 유형을 다 초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 긍정, 받아들임, 평화, 용서가 있습니다. 그들의 실존의식은 감사, 희망, 소멸되지 않는 기쁨입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 맛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미리 맛보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미리 맛보아 알고 있는 사람은 맛없는 것을 미리 많이 먹어두지 않습니다. 나중에 맛있는 것을 먹기위해 배고프지만 기다립니다.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된 미래를 미리 맛보고 있는 사람은 현실의 것으로 배불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더좋은 것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있습니다.



    열 살 된 아들이 아버지께 함께 놀아달라고 조르자, 아버지는 세계지도를 갈기갈기 찢어 던져주면서 " 이 세계지도를 다 맞춰 놓으면 놀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세계지도를 다 맞추려면 적어도 5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5분도 못돼어 싱글벙글하며 맞춘 지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놀라자 아들은 "아빠, 지도 뒷장에 큰 얼굴이 있어 그 얼굴을 보며 지도를 마췄어요, 자, 이제 놀아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찢겨진 세계지도처럼 파괴되어 가는 현실을 보며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손상되고 이그러져 가는 희망이 없는 현실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약속을 무효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희망의 계획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참여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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